-
-
[eBook] 촉법소년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29
김선미 외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9월
평점 :
썩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그리고 마냥 측은해지지도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읽었다. 진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모두가 알아야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읽다보면 화딱지나며 울컥하기도하고, 뭐 이딴 일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성질이 솟구치지만 소설같아도 소설만큼이나 현실에는 촉법소년이라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망나니마냥 깽판치는 연놈들이 많다는 거다.
네오픽션 ON시리즈 29권으로 만난 범죄 앤솔러지 촉법소년. 다섯명의 작가가 서로 다르게 바라보았을 촉법소년의 면면이 이 한권에 모여있다. 여기에는 사건의 피해자가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하고, 피해자의 부모나 교사 등 주위 사람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한다. 가해자의 목소리를 빌려 생생하게 전달하기도 했으며 소설이긴하나 다양한 인물시점으로 촉법소년과 소년범죄의 실상을 여실이 드러내주었다. 이젠 하도 흔해져서 모든 감각이 무뎌진게 아닐까 싶었으나 글로 읽은 이야기는 그간 봐왔던 영상이나 기사들로 켜켜이 쌓이다보니 머릿속에 그 현장이 그려져 더욱 사람에게 질려버리는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성인의 덩치마냥 훌쩍 커 버렸으나 아직은 보호받아야 할 아이 인 척 하는 설익은 인간. 누군가가 기분이 나빠져도, 다치고 상처 입는 상황이 주어져도, 심지어 죽더라도 괜찮다는게 말이 될까? 촉법소년이라서 괜찮다는 저 덤덤한 모양새는 과연 이 제도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되면서 사람은 고쳐쓰는게 아니라던 어떤이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뿐이다.
📖레퍼토리_ 나 같은 밥벌레도 형사처벌 늪에서 빼내 소년원으로 보내주는 좋은 법이지. 교정교육으로 비행을 예방할 거라는 순진한 발상은 안타깝긴 하지만.
히어로도 아닌 것이 다크 빌런도 되지 못하는 놈이 뭐라도 된것 마냥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기도하고, 자신의 기분에 맞춰주지 않는다 하여 이러한 일을 저지르는 상황. 소년원에서 썩는게 그 2년이라는 시간이 길었다며 심신미약, 우발적 살인으로 9호 처분을 받고 6개월말 살다가 나왔어야하는데 그전 절도 보호관찰때문에 재수없이 10호받았다며 짜증을 내는 목소리. 교정교육과 예방을 위해 시간을 벌어주는 게 의미가 있을까. 뚜렷한 목적의식이라도 있는게 아니라 그저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위해 행위에 죄책감이 없다는 것. 한 번이 어려운거지, 반복되다보면 습관이되고 무뎌진다는 말을 이러한 상황에 쓰니 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이미 교정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는데 므슨 소용이 있을까 싶은 행정상 절차. 아마 소년원에 이어 교도소 수감과 석방이 반복된다 하더라도 뉘우침 보다 또 똑같은 삶의 반복 이어갈 삶처럼 느껴졌다. 부디 이 인간의 주변에 무해한 사람들의 사건사고가 없기를 이 인간의 행동반경에서 멀어지길 바랄 뿐이다.
📖징벌_ 그때 난 어렸어, 어렸다고. 뭘 몰라서 그랬어. 그런데 이건 아니잖아. 말로 할 수 있잖아.
그때도 지금도 말로 할 수 있었다.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너는 해도 되고, 네가 당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웃기지. 진솔은 연예인이랍시고 자신을 케어해주는 주변 사람들을 하대하고 있다. 매니저도 안다. 그렇지만 얘가 캐스팅이 안 되면 자신의 밥벌이도 끊길 것이니 비유를 맞춰줘야했고, 떠받들어 주며 오냐오냐 해주며 감정을 꾹꾹 누르고 버틴다.
전진솔에겐 이러한 까칠함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소년 시절 왕따와 학교폭력을 일삼던 무리였다. 그러한 비행이 도를 넘다보니 단편에서는 2045년 청소년들의 촉법소년 징벌 강화를 위해 '정신 징벌'이 제정된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대상자는 징벌 포켓에 들어가 자신이 벌인 일을 똑같이 당하고, 미래까지 엉망이 되는 경험을 체험하는데 그 충격은 실제로 당하는 것과 흡사하도록 구성되어있다. 정신을 놓거나 극도의 불안 장애를 얻으며 사회에 대한 공포를 얻게 된다. 과거 자신들이 상대에게 했고, 상대가 겪었던 만큼 그대로 겪는 상황을 통해 정신징벌 집행의 과정을 보여준다. 논란 끝에 법은 통과되었으나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신 징벌 연구소장 최연희는 단호하게 말한다.
"잊지 말아요, 우리는 이제 가해자의 인권 따위를 우위에 두지 않기로 했어요."
그렇다. 상대의 인권을 존중해 주지 않은 채 청소년이며 아직 보호 받아야 할 덜 자란 아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살았었다. 존중 받고 싶다면 그에 맞는 행실을 했어야겠지. 설령 이러한 상대의 존중과 예의를 모른다 할 지라도, 다 커서는 사람 구실을 했어야 하는데 제 버릇 개 못 준 겪으로 살아왔으니 그만틈 되돌려받고있음에 나도 연구소장과 같은 마음으로 감정을 뺀 채 바라보게 되었다. 백방 말해봐야 소용이 없구나. 직접 겪어봐야 피눈물 흘리며 싹싹 빌게되는 모습을 보니 반성? 갱생? 그런건 말로 해서는 이뤄지지 않는 부류임에 다시금 변할거라는 기대를 놓게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감정의 억제나 해선 안된다는 도덕적 정의는 분명 교육받았을텐데 이들의 머릿속엔 남아있는게 없어 보였고, 촉법소년을 위해 시청각 교육이든 언어순화와 대화의 과정이든 피부로 즉각적으로 와닿는 강력한 대응과 비교 할 때 무의함에 회의감이 든다. 어릴때 교사들이 꼭 그런 레퍼토리를 한 적이 있지. '꼭 매를 들어야 말을 듣니?' 라는 문장. 진솔에겐 딱 그정도, 똑같이 위해를 가해야만 타격을 받는 것을 통해 순화교육만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의 갱생확률이 있긴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
📖네메시스의 역주_ 오늘 너 때문에 돈 엄청 썼으니까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다 갚아야 한다!
개인적인 복수, 그리고 법이 다 채우지 못한 틈. 범죄의 양면. 예린이 선택한 건 핏불 테리어를 통한 복수였다. 단편의 시작은 디데이부터 이 일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을 역순으로 보여준다. 복수를 위한 과정을 결말부터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계기까지 거꾸로 올라가다보면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 수긍하게된다. 해서는 안 되는 것 이지만 그럴만큼의 이유가 타당해보였던 슬픈 목적. 이야기 초반을 보면 복수를 위해 예린를 칠 것 처럼 돌진하는 장면이 보여진다. 조사관도 알고 예린도 안다. 일부러 그러했다는 것. 자신의 아들이 예린의 개에게 물렸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위협을 주고 싶었던 것으로 속에서 드글거리는 화가 진정 이 아버지 뿐인가를 생각하다가 후반에 가면 모두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누굴 탓해야할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들의 잘못을 타이르기 보단 수습하느라 쓴 돈과 시간,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에 흠이 간 것이 짜증스러운 부모의 말을 통해 하루는 가정에서 뉘우치고 옳고 그름의 정확한 정의와 함께 잘못을 뉘우칠 만한 회귀의 과정을 영영 얻을 순 없음을 비춰낸다.
📖OK목장의 혈투_ 그러니까 이 또라이 선생님아, 외지인이면 외지인답게 그냥 곱게 있다 꺼지세요. 왜 남의 일에 끼어들어, 끼어들기를. 그냥 모른척하고 꺼지라고!
아이를 키우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댔지? 아이를 망나니를 키우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한거였다! 라는 말로 이 단편을 표현 할 수 있었다. 그 십자가 귀고리를 한 아이는 아버지를 등에 엎은 후 제 멋대로 구는 악마로 변해있었고, 아버지는 그걸 수습하기 위해서 온 마을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허허실실 자선가 행세를 했다. 그리고 봉사와 나눔이라는 이름을 거들먹거리며 보여지기에는 참 좋은 사람으로 살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자식놈의 허울을 덮기 위해 바삐 살았다. 알면서도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 알지만 어찌 할 수 없는 권력과 재력 앞에서 보고도 못본척, 들어도 모르는척 그렇게 벙어리 귀머거리 봉사로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사건이라고 한 건 지역사회가 가지는 결속력이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서 외지인이나 힘없는 사람을 한순간에 병신취급하고 되려 네가 이상한 놈이라는 방식으로 몰아세우기 때문에 저자는 소설의 배경을 지방의 소도시로 지정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를 바로 잡는 것은 기대도 하지 않겠다. 촉법소년이라는 소재에 빌붙어 어른들의 무책임함과 권력 앞의 외면을 통해 정작 도움 받아야 할 아이가 손가락질 받는 상황을 보면서 모든게 완벽하게 어그러진 세상임을 느꼈다.
📖그는 선을 넘지 않았다_ 당신도 나와 똑같은 심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가해자가 사실과 다르게 빠져나간다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이에요.
그는 선을 넘지 않았지. 이미 예전부터 선을 넘었기에 더이상의 넘을 정도의 선이 없었을 뿐인 상황이다. 부모가 자식놈의 범죄를 촉법소년이라는 것으로 덮어두면 평생 잘 먹고 잘 살줄 알았겠지.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도 자연스레 잊혀질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부모가 자식놈의 명줄을 제 손으로 비틀었음을 느낀다. 자식놈이 반성하며 살아갈 몇번의 기회를 매번 외면 한 것도 부모였으니까. 제 자식 만큼이나 남의 자식도 그만큼 귀한 줄 알아야 하는데 꼭 이렇게 사람이 죽어나가야만 실감하는 모습을 보면 어불성설로 끝까지 자기 아들만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일관하는 모습에서 역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고쳐쓰이질 못할 인간 심은 데에 똑같은 인간이 나는 거였다는 걸 느낀다.
마지막 문장에서 사람이라면, 적어도 어른이라면 반성과 후회의 기미가 있길 기대한 내가 바보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사람을 죽였음에도 그는 자신의 아들을 교통사고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을 제 손으로 벌하였다며 끝까지 과거의 잘못을 들먹이진 않겠지. 어째 죽어서도 고쳐먹을 껀덕지가 없어뵈나 모르겠군.
.... 그리고 나에게는 촉법소년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었다. 다는 말로 아들을 감싸는 아버지라는 작자의 세치 혀를 잘라버리고 싶게 만들기도 했다.
다섯편의 이야기들은 호흡이 길지 않았고, 바로바로 상황을 직시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세세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익히 아는 사건들로 인해 데이터가 많이 쌓여있으니 몇몇의 문장들로 모든 극의 배경과 에피소드들이 머릿속에 구현되었다. 그리고 다시 책 표지를 봤다. 눈은 뜨고 있으나 동공이 풀린건지 집중을 해야하지만 관심이 없는건지 알 수 없는 눈빛과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을 듣긴 들겠지만 담아두지 않겠다는 낯빛통해 일단 이 책에 있는 촉법소년들은 말귀를 알아 먹지 못할 애들의 조합이었음에 다시금 명치가 갑갑해져온다.
과연 법이 저 아이들을 봐주기 위해 이러고 있는 걸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흉악 소년범죄는 일부이며, 대부분은 교화가 가능했고 그러한 반복적인 교육을 통해 가정으로 돌아가 다시금 정상적이라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살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촉법 연령을 낮추는 것으로 법 개편을 요구하기도 한다지만 연령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보호를 해주고, 개화의 기회를 주는 것. 글쎄, 나로서는 촉법소년으로 불리워 질만한 시도를 한 것으로도 잘못된 사안을 인지하지 않고 했다고 간주하게 된다. 이들이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잘못된 것이며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고, 자신으로 인해 빚어진 사건에 대해 반성과 사과의 마음이 순수한 100% 진심으로 사죄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출판사에서 홍보문구로 기록해둔 카드 문구의 마지막을 보면 욱하는 마음이 솟구친다. '법의 가호를 받는 건 과연 누구인가' 라는 문장을 통해 또래들 사이에서 영웅이 된 것 마냥 떠벌려 질까 무서워지며 결국 이러한 모든 사건은 피해자의 손을 잡아 주려 하기보단 '애는 착해요~'라는 말로 덜 영근 인간을 감싸기에 급급해보여 마음이 아린다.
법이 저 아이들을 봐주었고, 법이 당한 사람들을 다독인다. 그냥 '괜찮아? 괜찮아!' 라고 하면 끝나는 이 다섯편의 피해자들 속에서 우리가 진짜 봐 주어야 하는 존재를 놓치고 있는건 아닌지를 걱정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