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루코와 루이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윤은혜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디든 떠나고픈 마음을 먹게 만드는 책 표지와 함께 '인생 2회차, 두 여자의 통쾌한 질주'라는 말에 더 구미가 당겼는지도 모르겠다. 책띠지에도 적힌 것 처럼 '일흔 살에도, 그 이후에도 삶은 여전히 반짝일 수 있다!'는 말에 일흔살을 지는 해로 표현하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고, 여전히 청춘 일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되는 문장들 속에 내가 살아갈 미래의 순간이 책 표지의 그녀들처럼 역동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해진다. (요즘 청춘에 관련된 음악을 주구장창 들어대서 더욱 와닿았나보다) 몇번 눈만 깜빡이면 나도 40대가 되어있을거 같아 주인공들 나이에 더욱 예민하게 감정이입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부장적인 남편을 두고 떠나는 '데루코'와 노인 아파트에서 뛰쳐나온 '루이' 일흔살 동갑내기인 그녀들이 감행한 일탈. 참기만 했었고 자신을 우선 순위에 두지 않았던 삶이었다. 결국 꾹꾹 누르던 마음이 팡 하고 터진 루이는 데루코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녀 역시 같은 마음으로 함께 나선다. 70년 동안 그림자처럼 자신을 뒤로 숨겼던 과거를 놓아두고 진짜 나를 찾으려 떠나는 여정. 일탈? 해방? 자유? 그걸 넘어선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모습을 통해 더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 그간 참아왔을 당신들의 삶이 애틋해진다.




이들을 보면 델마와 루이스가 떠오르기도 하지만(책 뒷부분 옮긴이의 말에 보면 '델마와 루이스'를 오마주한 작품이라 언급했음), 노희경님의 디어 마이 프렌즈 속 정아와 희자가 떠오르기도 한다.(앞서 언급했던 두 작품과 함께 데루코와 루이 역시 차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 일탈이라는 단어보다 자유라는 의미가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나의 삶도 그렇게 특별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책 속의 그녀들 역시 주변에서 볼 법한 아줌마, 할머니의 삶으로 넘어가는 과정인데 어떻게 다들 한결같이 희생을 강요하듯 자신을 후순위에 두는걸까를 생각해보면 천성이라기보다 그럴 수 밖에 없던 환경을 탓하게된다.

결혼생활을 하든, 화려한 솔로로서 복권 당첨금으로 노인아파트에 들어가 멋드러진 싱글라이프를 살든 각각의 삶의 테두리 안에서는 열심히 살았고, 또 그만큼의 행복을 누렸겠지만 그 너머의 세상이 궁금했을 것이고 한번 사는 인생인데 그 한번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거 같으니 안 해본것, 못 해본 것들이 탐이났고 그래서 감행한 진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퇴직금 계좌 비번이 그와 그의 여친 이니셜과 각각의 생일이라는 걸 통해 마냥 사랑받고 살던 세월은 아니었다는 것도 느꼈고, 살면서 제 집 앞마당의 눈을 치워야 좀 더 편한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부지런함도 깨우친다. 그렇다. 세상을 잘 안다고 여겼는데 매번 이렇게 뒷통수 쳐 가며 눈 똑바로 뜨고 살라고 말해주는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 잘 있어요. 이 한마디면 충분하다 싶었지만, 억측의 여지를 남겼다가는 쓸데없이 일이 커져서 뒷수습이 귀찮아질지도 모른다. 잘 있어요. 저는 떠납니다.

데루코가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였다. 정중한 굿바이 인사. 부들부들 떨면서 아내를 찾지 않도록, 그리고 정말 진심을 다해 마침표를 찍고자 하니 성급한 결정이 아님을 드러내는 부분이었다. 사건 사고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실종 신고라도 하며 호들갑 떨며 남 탓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도시로 자신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라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라는 뉘앙스이기도 했다.

45년에 이르는 결혼 생활이 마냥 행복하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걸 비춰주는 데루코의 울분의 인사였다. 운전을 가르쳐 준 것도 함께 드라이브하며 행복한 순간을 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술마신 도시로를 데리러 가던가 술마실 예정일 도시로를 모셔다 드리는 대리기사노릇을 위한 것. 모두의 행복이 아니라 일방적인 한 사람을 위한 편의를 위한 것. 그걸 40년 가까이 해댔으니 이제 데루코는 온전히 자신을 위한 핸들을 잡은 것으로 보여 은색 BMW를 잡은 손이 결연했으리라 느껴졌다.

요즘 심심찮게 보이는 황혼이혼과 졸혼의 과정이 이 부부에게도 필요했나보다. 마냥 행복 할 순 없겠지만 마냥 불행할 수도 없으니까. 그러기엔 우리의 삶에 2회차가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데루코는 더 늦기전에, 더 주저하기 전에 딱 이 날만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그 외의 일들도 우리 스스로 해내고 싶었으니까. 우리의 긍지 문제예요.

각각의 삶에 쳐져있던 바운더리를 벗어난 새로운 시작.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더한 걱정이 가득한 낯선 걸음들. 뭐든 해 내야 했다. 그러니 주저해서도 안되는 것이었고 피할 수도 없음을 보여주는 표현법이었다. 스스로 해내야 했고, 그래야만 다음을 기대 할 수 있음을 아는 삶을 좀 살아본 사람다운 답변이었다.

소형 트럭을 몰아보는 것도, 자투리 목재를 구하러 가는 것도, 친구를 데리고 나오며 화목난로 앞에서 지폐를 던져 넣어가며 아닌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다부진 마음까지. 아마 45년에 한 해 두 해 더한다고 달라질것 없을 생에 도파민 가득 터지게하는 에피소드들은 어떻게든 자신들이 자신답게 살아내고 있음을 내비치는 증명같아 보이기도 했다.




안 될거 같던 것들도 일단 하면 해내어 지는게 사람이더라. 우물안 개구리라는 뜻 보다 안 해봐서 못 했던 걸로 예쁘게 포장하고싶은 변화된 삶이다. 어떻게든 탈출하면 숨통이 트일것 같던 순간도 있었고, 예전의 익숙함이 그리워지는 찰나도, 살아온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반절의 삶 또한 잘 보내야 하기에 진득하니 정주도 살아야하는 변화된 주변까지. 서로를 배려만 하지 말고 대화를 하며 꽁꽁 닫아만 두었던 과거와 진심, 그리고 바라는 마음들까지. 그래서 이 관계가 좀 더 오래 진득하니 유지되길 바라게된다. 후반부에 나오는 데루코가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잔잔해진 이후의 삶에 또 다른 일렁임으로까지 다가오니 마지막까지 그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보기로 하면 좋겠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 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