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p. 95

미래는 연장해야할 경험들의 합(合)일뿐이었다. 24개월의 군 복무, 일, 결혼,
아이들. 사람들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계승을 받아들이기를 기대했고, 우리는 정해진 이 미래 앞에서 막연히 오랫동안젊음에 머무르기를 바랐다. 연설과 제도는 우리들의 욕망보다 뒤처졌고, 사회가 말로 표현하는 것과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사이의 격차는 당연했으며, 그것은 메울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조차 아니었다. 단지 네 멋대로 해라를 보면서 각자가 마음속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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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p. 89

 수치심은 여자애들을 계속해서 위협했다. 그들이 옷을 입고 화장하는 방식은 늘 과하다는 시선을 받았다 : 너무 짧 고, 너무 길고, 너무 파였고, 너무 붙고, 너무 보인다 등등,
 신발의 굽 높이, 그녀들이 만나는 사람들, 그녀들의 외출과 귀가, 매달 그녀들의 팬티 안쪽, 그녀들의 모든 것이 사회 전반적인 감시 대상이었다. 가족의 품을 떠나야만 하는 여자애들을 남자애들과 타락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여학생 기숙 사, 남자애들과 떨어져 있는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게 했다.
 지적능력, 공부, 외모, 어느 것도 젊은 여성의 성에 대한 평 판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결혼 시장에서 그녀들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어머니가그랬던 것처럼 그녀들을 감시했다 : ‘결혼하기 전에 남자와자면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을 거야‘라는 말 속에는 불구자,
환자 혹은 그보다 더한 이혼남처럼 남자 쪽에 하자가 있어서 불량품인 경우는 제외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미혼모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으며 결함이 있는 상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용인해 줄 남자의 희생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혼 전까지 사랑 이야기는 타인의 판단과 시선 아래 전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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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Omer Z. 리반엘리 지음, 고영범 옮김 / 가쎄(GASSE)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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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불안으로 세워지는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
중동에서 발생하는 여러 테러, 극단적 이슬람주의는 가끔 신문으로 접했었다. 더 가끔은 책에서도. 다만 이 책의 화자처럼 이토록 불안해하며, 상상 할 수도 없는 고통을 읽기는 처음이었다.
주인공 이브라힘이 어릴적 친구 후세인이 미국에서 인종차별주의자에게 피살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저널리스트인데 이 사건을 처음 취재하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에도 친구의 죽음 이면에 감쳐진 불안을 깊게 체감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고향 마르딘의 역사적인 풍경과 신비로움에 점점 매료되지만 현시대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건 이와는 너무나 괴리감이 느껴지는 아이시스와 그들의 폭력적 행태뿐이다. 그 속에서 후세인과 그가 사랑했던 여자 멜렉나즈를 추적하며 그는 점점 중동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불안의 기운을 몸소 체험하고 괴로워한다.
이브라힘은 서구식 문화에 익숙한 터키인이지만 점차 자신의 기억 속 따뜻했던 이슬람적인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이에 동화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현재의 이슬람이 괴물들에 의해 변질되고 왜곡되며 동시에 끔찍한 짓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을 직접 체감하며 자아의 깊은 불안을 느낀다. 아이시스가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지디에게 가하는 짓들은 차마 글로 옮기기도 힘들다. 분노를 넘어서 인간 자체에 대한 회한이 들게 만든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나도 이런데, 종교적 생활화가 특히 체계화돼있는 이슬람교도들은 얼마나 자신의 뿌리에 상처를 입을것인가. 내가 믿는 신이 그렇게 악용된다는 절망은 역사의 침몰일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말살일 것이다.
멜렉나즈는 아이시스로 인해 고통 받는 에지디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사라져버린 그녀와 대화하고 싶다는 갈망으로 이브라힘은 본인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끝내고 싶어한다. 그녀에게 자신의 불안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의 이러한 갈망은 그녀를 향한 사랑과 그녀가 자신을 불안에서 구원해줄거라는 희망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것 같다. 결국 이브라힘은 그녀를 찾아낸다. 선과 악의 경계를 넘어 선과 악을 모두 보유한 천사를 믿는 그녀에게 자신의 불안을 말하고, 그녀의 고통을 말한다. 다만 한계를 넘어선 고통을 겪은 이에겐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단지 종교적인 이유로 인간이 인간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끔찍한 일임을 너무나 절감하면서 읽었다. 지금도 수많은 고통을 겪고 있을 시리아 난민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들의 눈물과 절규, 그들이 흘린 피를 생각해본다. 가슴이 막히는 것 같고 분노가 차오른다. 신문기사를 검색해보고 당장 이 책의 내용이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몸서리쳐진다. 나는 다만 깊은 한숨을 내쉰다.
옮긴이의 말 중에 중역이 번역의 질을 떨어뜨릴지라도 세상에 알려야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번역했다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알려져야 하고 지금의 비인간적 행태가 어떤 상황인지 계속 추적해가야 한다. 비록 직접 나서서 도와줄 수 없더라도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불안, 이브라힘이 느끼고 중동에서 박해받는 수많은 이들이 느끼는 불안을 인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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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p. 136

사람들은 반대로 생각하지만, 불안은 삶의 자연적인상태다. 평화는, 그 반대로, 아주 드물게 불쑥불쑥 찾아온다. 있기는 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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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p. 99

 두 해 전에, 나는 경찰에게 고문을 당한 젊은이를 인터뷰한 적이있다. 그들은 그 어린 청년을 지하실에 가두고 회복 불가능한 불구가 될 때까지 고문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생각은 그 지하실 천장에매달려 있는 새장 속의 카나리아에게 붙잡혀 있었다. 그 카나리아가미웠어요, 그 아이는 내게 말했다. 고통스러웠어요. 그 새는 저한테바깥세상의 일들, 봄날, 산책하는 연인들, 자유 같은 것들을 생각나 게 했거든요. 아름다움의 상징이라는 그 새가 싫었어요. 그 방에는 아름다움과 관계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졸리 역시 그 카나리아 같은 존재였다. 타부스 천사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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