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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p. 85

내가 불평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후세인은 이렇게 썼다. 그의
연인의 발에 밟힌 포도알처럼 / 나는 장밋빛 붉은 포도주로 으깨어졌네 / 그리고 그렇게, 나는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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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p 81

비슷한 종류의 저주들이 이 선언에 이어져서 나왔다. 나로서는이 일 전에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진정으로 우아한 저주의 강물이었다. 이 중에 몇 가지는 적어놓는 게 좋을지도 몰라, 나는 생각했 다. 나는 알라께서 그자에게 온갖 가려움증을 내려주시지만 손톱은 허락하지 않으시길" 이라는 저주가 특히 마음에 들어 기억에 담아 두었다. 그게 대체 어떤 걸까. 세상에 그런 고문이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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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p. 53~54

삐거덕거리던 나무계단, 자주 있던 단전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가까이 두고 있던 가스램프의 가늘게 흔들리던 불꽃, 기도를 하기위해 몸을 엎드릴 때를 노려 내가 등 위에 올라타면 그저 조금 더 소리를 높여 세미 알라후 리벤세미 알라후 리멘 하미데라고 기도하던 나의 자상한 할머니, 잼을 만들기 위해 과일을 끓일 때 집 안 구석구석까지 스며 들던 그 황홀한 냄새,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떠올리는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고 지내왔는가를 깨닫게 되면서 드는, 나 혼자만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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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젊은이여, 하레세가 무슨 뜻인지 아는가? 고대 아랍에서 쓰던 말이지, 탐욕, 욕심, 야심, 게걸스러움, 이런 종류의 말들의 뿌리에 놓여 있는 말일세. 이게 바로 하레세‘ 야, 젊은이, 낙타를 일컬어 사막의 배라고 하지 않나? 이 축복받은 짐승은 워낙 강인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몇 주 동안이고 사막을 걸어갈 수 있지. 그런데 이놈들은 모래 속에서 자라는 한 가지 특정한 종류의 엉겅퀴를 아주 좋아한다네. 그래서 이걸 만날 때면 걸음을 멈추고는 뜯어먹기 시작하는데, 그걸 씹는 동안 억센 가시가 입안을 온통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놓게 되지. 이때 입속에서 흐르는 피의 찝찔한 맛이 엉겅퀴의 맛과섞이게 되는데, 낙타는 바로 이 맛을 너무나 좋아한다네. 그놈들은씹으면서 피를 흘리고, 피를 흘리면서도 씹지, 낙타는 이거라면 한도끝도 없이 먹으려 들어, 억지로 그만두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 과다출혈로 죽을 때까지 계속 먹을 거야. 이게 바로 하레세‘ 라네. 내가이미 말했지만, 이게 바로 탐욕, 욕심, 게걸스러움을 일컫는 우리 말의 뿌리일세. 그리고 이게 바로, 젊은이, 중동이 걸어왔고 가고 있는길일세. 우린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서로를 죽여왔네. 상대를 죽임로써 자기 자신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로 우린 우리 자신의 피에 취해 있는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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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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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구원의 대서사시
죄와 벌을 워낙 재밌게 읽었기에 도스토옙스키의 또 다른 걸작을 읽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죄와 벌을 읽었을때도 인간의 본성을 낱낱이 파헤친다는 점에서 단순히 재미로만 읽을 수는 없었지만, 이 작품은 특히나 깊고 거대해서 온 정신을 다해 읽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이 너무도 생생했고,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다툼과 갈등을 관조할 수 있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파렴치한 행태나 미챠의 광기어린 사랑에의 갈망, 이반의 신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맞부딪쳐 3권 내내 이야기를 끌어오며 인간사에 대한 여러가지 관념, 신에 대한 철학 등 심오한 주제가 동시에 강하게 뿌리박혀있다. 특히 이것은 알료사를 통해 더욱 강하게 증명되는데, 알료사는 작품 속 모든 등장인물들을 통틀어 가장 사랑에 충만하며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을 섬기는 고귀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말하는것보다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것처럼, 알료사는 완전한 구원자의 입장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등장인물들에게, 동시에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말한다.
등장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에서 서로 다른 입장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특히 인간의 이성과 논리가 얼마나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으며, 또한 강력한 감정이 그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걸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특히 인상깊었던 것이 미챠의 공판 때 여러 증인들이 증언할 때였다. 카체리나는 너무 오만하고 총명해서 본인의 자존심이 다치는 순간과 그렇게 민든 대상을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데 이는 이반이 법정에서 미챠 대신 파멸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 즉시 광분하여 이전의 이성적인 판단을 내팽개치고 미챠가 본인을 경멸한다는 수치심을 그 즉시 폭발시킨다. 심지어 미챠는 그녀를 경멸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신성시하지 못해 안달났음에도 말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논리를 그 누구보다 재빠르게 보면서도 감정적으로 누군가에게 굴복하는 순간이 오면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말을 줄줄이 내뱉는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보다 차라리 아예 이성적인 판단을 제쳐놓고 본능에 의해서만 솔직히 움직이는 표도르나 미챠가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한 사건을 두고 검사와 변호사간의 치열한 논고가 이루어질 때 분명 그것은 얼핏 논리적인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감정의 모래알이 쌓은 허술한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검사보다 변호사의 논리가 방청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음에도, 배심원단이 그와는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린것은 이 모든것이 얼핏 논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여지나 실상은 감정싸움이었음을 보여준다. 단지 광기를 단죄하여 러시아의 악한 습관을 멈추자는 감정적 호소와 어린시절부터 광기로 물들 수 밖에 없던 환경에서 자라온 한 인간을 구원하자는 또 다른 호소가 논리적으로 전개됐을 뿐이다. 사실 검사가 제시하는 모든 증거는 변호사의 말대로 그저 심리적 분석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었는데도 배심원단은 결국 그의 감정적 논리에 공감하여 판결을 내렸다. 증거가 있었지만 그 증거를 전개하는 방식은 변호사의 말처럼 소설적인 부분에 가까웠어도 말이다.
사건의 모든 전말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변호사의 말에 좀 더 공감을 하는 것일까? 책을 다 읽고 난 후 스스로 자문해봤지만 내가 그 날 방청객이었어도, 나는 쉽게 미챠를 벌주지는 못했을것 같다.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을 죄수로 만드는것보다 차라리 열 명의 죄수를 풀어주자는 변호사의 논리가 좀 더 내게 감정적으로 와닿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저런 논리와 감정과 이해관계들이 어울려 한 사람을 파멸시켰지만 바로 여기에서 이 책이 내내 말한 구원의 길이 열린다. 결국 그것은 사랑이다. 죄와 벌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결국 사랑이 인간을 진정으로 구원 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외쳐대고 있다.
마지막 장례식에서 알료사가 소년들에게 얘기하는 모든 것이 그렇다. 죄로 물들어 악해져도 어린시절의 친구를 사랑했던 순간을 되돌아보며 스스로 구원하자는 것은 인간의 자기치유적인 사랑의 힘을 한평생 꾸준히 갈고 닦자는 말이다. 즉,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자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악한 짓을 한다고 해도 그것에 침몰되지 말고 내 안에 깊이 숨겨진 사랑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낼 용기만 있다면 내 자신을 용서할 용기도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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