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Omer Z. 리반엘리 지음, 고영범 옮김 / 가쎄(GASSE)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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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불안으로 세워지는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
중동에서 발생하는 여러 테러, 극단적 이슬람주의는 가끔 신문으로 접했었다. 더 가끔은 책에서도. 다만 이 책의 화자처럼 이토록 불안해하며, 상상 할 수도 없는 고통을 읽기는 처음이었다.
주인공 이브라힘이 어릴적 친구 후세인이 미국에서 인종차별주의자에게 피살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저널리스트인데 이 사건을 처음 취재하고자 마음을 먹었을 때에도 친구의 죽음 이면에 감쳐진 불안을 깊게 체감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고향 마르딘의 역사적인 풍경과 신비로움에 점점 매료되지만 현시대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건 이와는 너무나 괴리감이 느껴지는 아이시스와 그들의 폭력적 행태뿐이다. 그 속에서 후세인과 그가 사랑했던 여자 멜렉나즈를 추적하며 그는 점점 중동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불안의 기운을 몸소 체험하고 괴로워한다.
이브라힘은 서구식 문화에 익숙한 터키인이지만 점차 자신의 기억 속 따뜻했던 이슬람적인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이에 동화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현재의 이슬람이 괴물들에 의해 변질되고 왜곡되며 동시에 끔찍한 짓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을 직접 체감하며 자아의 깊은 불안을 느낀다. 아이시스가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지디에게 가하는 짓들은 차마 글로 옮기기도 힘들다. 분노를 넘어서 인간 자체에 대한 회한이 들게 만든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나도 이런데, 종교적 생활화가 특히 체계화돼있는 이슬람교도들은 얼마나 자신의 뿌리에 상처를 입을것인가. 내가 믿는 신이 그렇게 악용된다는 절망은 역사의 침몰일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말살일 것이다.
멜렉나즈는 아이시스로 인해 고통 받는 에지디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사라져버린 그녀와 대화하고 싶다는 갈망으로 이브라힘은 본인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끝내고 싶어한다. 그녀에게 자신의 불안을 고백하고자 한다. 그의 이러한 갈망은 그녀를 향한 사랑과 그녀가 자신을 불안에서 구원해줄거라는 희망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것 같다. 결국 이브라힘은 그녀를 찾아낸다. 선과 악의 경계를 넘어 선과 악을 모두 보유한 천사를 믿는 그녀에게 자신의 불안을 말하고, 그녀의 고통을 말한다. 다만 한계를 넘어선 고통을 겪은 이에겐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단지 종교적인 이유로 인간이 인간에게 고통을 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끔찍한 일임을 너무나 절감하면서 읽었다. 지금도 수많은 고통을 겪고 있을 시리아 난민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들의 눈물과 절규, 그들이 흘린 피를 생각해본다. 가슴이 막히는 것 같고 분노가 차오른다. 신문기사를 검색해보고 당장 이 책의 내용이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몸서리쳐진다. 나는 다만 깊은 한숨을 내쉰다.
옮긴이의 말 중에 중역이 번역의 질을 떨어뜨릴지라도 세상에 알려야 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번역했다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알려져야 하고 지금의 비인간적 행태가 어떤 상황인지 계속 추적해가야 한다. 비록 직접 나서서 도와줄 수 없더라도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불안, 이브라힘이 느끼고 중동에서 박해받는 수많은 이들이 느끼는 불안을 인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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