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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 - 용기 있게 나를 마주하는 글쓰기 수업
김소민 지음 / 스테이블 / 2023년 7월
평점 :
책을 읽으면서 나의 오랜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날 것의 상태로라도 글로 옮겨 보고 싶다는 욕구가 올라왔다. 그 기억들이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왜곡된 것이 많겠지만 기억의 파편들을 어떤 형태로든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아마 몇 해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나는 탓도 있는 듯 하다. 엄마와 얘기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내 기억 속의 아버지와 남편을 먼저 보낸 엄마의 기억 속의 아버지는 다르게 느껴졌다. 상실의 아픔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사실 다 이해했다고 확신 못하겠다. 아주 가까이 존재했던 가족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야말로 찾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라고나 할까. 아버지의 빈자리와 엄마의 힘들어하심이 교차하면서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글은 마력이 있다. 쓰다 보면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내 감각, 생각, 느낌을 쓴다는 건 자신에게 자기를 인증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있다고.
저자는 기자 출신의 글쓰기 선생님이다. 목적이 분명한 글쓰기와 '내 이야기 하나쯤'이란 에세이 수업을 진행한다. 이 책에는 수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사연과 글쓰기를 업으로 하면서 경험했던 것, 감정, 생각들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가끔은 그녀의 표현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이런 표현도 가능하겠구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은 다를 수 있고, 심지어 글쓴이의 의도와 다르게 독자는 해석하기도 한다. 의미 전달의 자유로움과 유연함은 '글'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책을 읽는 사람들의 다양함에 의해 달라지는 것 같다. 동일한 글을 읽으면서, 각기 다른 역사를 가진 독자라는 프리즘을 통과했을때 다른 빛깔로 빛나는 것이 '글'이라는 것의 매력이 아닐까.
그런데 뭔가 빠진 것 같았다. 시간이 설사처럼 흘러갔다. 기억이 두루뭉술해졌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나는 무슨 생각을 했나? 아무 흔적이 남지 않았다.
내가 뭔데 세상에 흔적을 남기겠나 싶지만, 적어도 내 대뇌피질에는 뭔가를 남겨야 하지 않나. 내 존재가 흐릿했다. 이상하다.
나한테 글쓰기는 밥벌이 였는데, 돈 주지 않는 글을 쓰는 건 자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럴까?
'나는 글쓰기를 영혼에 따귀를 맞아가며 배웠다' 라고 표현하는 저자는 글쓰기 재능을 가진 작가들의 글을 보면 질투가 난다고 한다. 막연히 부자인 사람을 보고 부러워하는 감정과 자신이 간절히 욕망하는 글쓰기에 대한 질투는 엄연히 경계가 다르다. 나의 욕망이 가르키는 곳은 높더라도, 사실 그리 높은 실력만이 '글'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글'은 다양한 형태로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1부, 2부에서 글쓰기를 위한 준비단계였다면, 3부는 본격적으로 '어떻게 써야 하나'를 다룬다. 목적있는 글을 쓸때의 방법, 글에 꼭 담겨야 하는 내용, 놓지지 말아야하는 글의 구성, 내용 뿐만아니라 문법적인 요령도 함께 알려준다. 마지막 부록에는 '내 이야기 하나쯤' 수업에서 씌여진 일곱 편의 글이 소개된다.
슬픔만이 글의 소재가 되는건 아니지만 유독히 깊은 슬픔은 글을 쓰는 이도, 글을 읽는 독자도 슬픔에 한번 빠졌다 나오는 경험을 할때가 많다. 글을 쓰는 이는 자신의 슬픔을 객관화하면서 슬픔을 바라보고, 글을 읽는 이는 경험하지 못한 슬픔을 간접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용기 있게 나를 마주하는 글쓰기 수업'이란 부제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살아온 순간들을 떠올려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