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취향과 영감을 더하는 전국 문구점 도감 - 문구인이 사랑하는 전국 문구소품샵 35곳
모두의 도감 편집부 지음 / 모두의도감 / 2025년 9월
평점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의 국민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는 보물섬같은 존재였다. 내가 원하는게 다 있는 곳이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콩닥콩닥 뛸 정도로 좋았다. 그 당시에는 문방구에 간식도 팔고, 게임기도 있어서 나에게만 좋은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수업시간에 노트 필기를 공들이는 편이여서, 종이의 질과 필기도구를 무척이나 까다롭게 고르곤 했다. 새로운게 나오면 한번씩 써보고, 당장 사용할 일이 없는 옆서나 편지지, 수첩들도 하나씩 사서 모으곤 했다. 그렇게 구입한 문구류를 혼자 다 사용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즈음에는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 '목표없는 수집병'이 조금씩 사라지게 되었다.
학창시절에는 자주 일기를 썼지만, 숙제를 위한 일기가 아니라 기록을 위한 일기를 쓴 것은 20대 이후였다. 내 취향에 맞는 다이어리를 구매해서 기록하다가도 1년을 성실하게 꾸준히 메꾸어 나가기는 여간 힘든게 아니다. 기록하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면서도 여지껏 이어오고 있는 것에는 아마 '다이어리꾸미기'란 열풍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예전의 심심한 일기가 아니라 어느 순간 화려한 재료들이 쏟아지면서 스티커의 세계도 몰라보게 풍부해졌다. 기록으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티커로 일상을 표현하기도 하고, 실제 일상을 담은 사진으로 일기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록의 도구의 다양함은 더 놀라웠다. 화려운 문구류와 도구들의 르네상스 시대를 살아가다보니 과거의 '목표없는 수집병'은 다시 재발할 수밖에.
이 책엔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의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35곳 문구점을 소개한다.
어떤 문구점에서는 주인장의 인터뷰가 함께 있어서 문구점의 특별한 존재 이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감성의 수집, 디자인의 세계, 기록의 시작 이라는 챕터로 문구점을 나누어 각자의 특색 중 일부를 책에 소개한다.
'더 프렐류드 샵'은 '프렐류드'라는 단어가 서곡을 의미하는 덕분에 첫번째 장소로 소개된 듯하다. 문구 브랜드 '프렐류드 스튜디오'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쇼윈도의 개성있는 장식과 내부의 화려한 색들이 인상적이다. 문구점이 아니라 인테리어 소품가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에 위치한 '띵스오브노트'에는 매달 정기 전시를 하는 공간이 있다는게 특이하다. 단순한 문구점이 아니라 예술의 경지까지 넘나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DIY 키링을 만들어 볼 수 있는 '리틀템포 디자인 샵'은 친근하고 따스한 느낌의 우드 스탬프와 그림들도 만날 수 있다.

사진 속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는 가끔 나의 다이어리에 하루를 책임지게 해도 손색이 없어보여 구매하러 가야할 것 같다. 경주만의 이야기를 담은 마스킹테이프가 있는 '배리삼릉공원', 예전 한의원 공간에 자리잡은 '브레드브레드바나나'에서는 세상에 한권만 존재하는 커스텀 노트를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성북동 엽서가게'는 문구점이라기 보다는 작가와 소통하는 예술적 공간같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의 스탬프가 거의 다 있지 않을까 싶은 '스탬프마마', 수박그림과 함께 즐거운 글을 입간판에 그려 놓은 '여름문구사' 등 정말 다양한 개성으로 존재 이유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초록이라는 뜻을 가진 '미도리작업실', 여행과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제로스페이스'에서는 일러스트 포스터가 시선을 사로 잡았다. 예쁘다기 보다는 친근하고 약간은 어설퍼 보이지만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일러스트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타임 남산'에는 미도리, 트래블러스 상품이 모두 있다고 한다. 트래블러스노트에 매장 기념 스탬프를 찍으러 가야겠다. 여기 외에도 필기구, 노트에 특화된 문구점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서 뒤로 갈수록 꼭 한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문구라는 실용적인 물건에 창의적인 감각과 아름다움이 접목되어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문구로 예술적인 경지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여지껏 알고 있는 문구의 세계보다 더 넓고 깊다는 생각이 들면서 감탄하면서 책을 읽었다. 처음에는 35곳이 적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나니 35곳이라도 다 가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내 취향을 한껏 즐겁고 행복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