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주강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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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간만에 괜찮은 책을 찾았다.
한민족에 대한 평가는 많고도 많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 만주를 정벌한 대륙민족, 농경민족, 순수형통민족,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 중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해양민족이라는 부분일 것이다. 동복아시아 지도를 거꾸로 놓고 살펴보자. 북방으로 뻗어나가려는 호랑이는 일순간에 모습을 바꿔, 포근하게 감싸인 서해와 새파란 동해를 활몸삼아 확 트인 남해로, 태평양으로 쏘아져나가는 화살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고려가 대식국(아라비아?)까지도 교역을 했다는 정도는 국사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해상왕이라고까지 일컫는 장보고의 이름 역시 최근에는 널리 알려져 있다. 대륙민족이라고만 하던 고구려마저도 서해 일대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보하이만이나 산둥반도에 여러 번 상륙작전을 펼쳤다는 기록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실력은 해금령에 휘말린 조선시대에도 살아남아 이순신 장군은 당시 세계 최강의 함대를 운용하기도 하였으며, 현대에까지 이어져서는 벌써 3년 연속 일본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민간선박건조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참고로 50%와 48%다).
그러나 한민족의 역사, 그 중에서도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해양력의 관점에서 살펴본 자료가 극히 드문 것 역시 사실이다. 이 책은 그 드문 자료 중에서 상당히 잘 된 자료에 속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몇몇 군데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틀린 부분도 조금씩 보이지만 그건 좀 더 조사해봐야만 할 것 같고...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성상 대륙 진출의 발판이며, 해양 진출의 출구이다. 위치적으로도 동항 바로 아래쪽에 존재한 최초의 부동항이라는 점에서 압도적인 이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해양세력이 강할 때는 해양세력에 의한 대륙 진출의 발판으로 주목되었고, 대륙세력의 영향력 하에서는 태평양 진출의 부동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20세기,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대결마저도 결국은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해양세력인 미국의 싸움이었다는 것으로까지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한반도의 바다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돼서 이렇게 됐다' 고 단언하기는 쉽다. 하지만 세상은 수학 공식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함께 존재할 수 있고, 여러가지 결과가 함께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역사 연구는 앞서 연구한 연구자들의 자료를 소리내어 읊기만 하는 수준의 막무가내 일직선 패턴이었는데, 그런 사학게의 분위기 속에서 이런 독특한 물건이 나왔음은 놀랍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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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포트리스 2
댄 브라운 지음, 이창식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일단 '댄 브라운' 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작품. 댄 브라운의 처녀작이라는데, 도리어 [다빈치 코드] 보다 완성도가 높다는 점은 기뻐해야 할까 아니면 아쉬워해야 할까? 확실히 작품의 완성도는 높으며, 배신과 음모가 뒤섞인 전개구조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머리좋은 놈 둘이서 승부를 겨루다보면 어느 사이엔가 바보가 골인해 있다는 전개라는 점이 조금 당황스럽지도 않달 정도지만. 스릴러에 익숙하지 못하니 깊이 평가할 재주는 없지만 일단 읽었을 때 어색함이나 진부함 없이 이어진다는 점 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다만 공학도로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으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암호를 풀 수 있는' 위대한 컴퓨터 트랜슬러의 정체가 결국 병렬처리에 의한 단순한(?) 극초고속 연산장치일 뿐이라는 점이 조금 슬프달까. 하기사 카이사르 박스보다 더 파고들어가 '암호해독구조론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중심으로 했다가는 대중소설이 아니라 코드연산학 입문서 내지는 대학 졸업논문이 되어버리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21세기걸랑요. 차라리 배경 1940년에 최강의 암호작성기 에니그마의 해독을 위한 '에니악'의 개발과 그 파괴공작에 대한 재해석 소설이었다면 내 영혼에 직격했을지 모른다(당신... 2차대전/군사과학/전쟁사 오타쿠도(度)가 너무 높아...).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전체 전개구조에서 이렇다 할 모순점도 찾아내지 못했고, 흘러넘치는 테크놀로지 스릴러의 기계적이고 차가운 빛에 더해 적당히 섞인 애증의 얽힘이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작품에 충분한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단 두 시간만에 두 권을 정신없이 읽어버린 작품, 그 속도감과 긴장감의 연속은 지나치게 빡빡하기는 하지만 2중 구성으로 두 장소에서 이어지는 긴박한 사건이 끝나자마자 '조국의 운명이 걸린' 대사건으로 이어지는, 강약 조절 없이 끝도 없이 질주해가는 사건의 연속이야말로 읽는 속도가 머리 회전과 호흡을 따라가지 못해 숨가빠지는 느낌을 끌어낸다. 그 정신적인 속도감을 만끽해보고 싶다면 절대로 추천한다!
...근데 번역이 상당히... 1권에서만 번역 오류가 5군데였던가. 개정판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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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느끼는 거지만, 이 사람은 필명을 정말 잘 지었다. 혹은 필명에 너무 잘 따라가고 있다. 바나나, 겉은 노랗지만 속은 희다는 뜻으로 서구화된 동양인을 악의적으로 비난하는 호칭이건만,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켰다는 점을 보고 있으면 서구적이다 동양적이다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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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의 밀크티 4
미야노 토모치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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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은 겉보기에는 복받다못해 제정신을 못차린 남주인공인 여장을 하면서 자기한테만 귀여운 소꿉친구 여동생과 자기한테만 귀여운 남성공포증 동급생과 자기한테만 귀여운 인기절정 친누나와 심지어는 남자까지(...) 집적거리는 작품이다. 그러기에 동인지가 필요없는 만화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업계"에서는 찬사에 가까운 비난(?)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그러나 동인지가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심리묘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의외로 진지하게 볼 만한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주인공 요시노리는 이상적인 여성성에 대한 동경을 완벽한 여성캐릭터를 만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여장으로 해소하고 있고, 히다리는 요시노리에 대한 사랑과 요시노리의 여장형인 유키에 대한 동경을 자신의 성장 모델로 삼고 있으며, 미나모는 남성공포증을 '남자이지만 남자가 아닌' 유시노리-유키와의 접촉으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단순히 '남자'인 요시노리만으로는 접점을 찾을 수 없었을 캐릭터들은 [남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인 유키의 존재가 있음으로서 한 곳에 모인다. 그렇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심리묘사 역시 여성캐릭터 중심인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요시노리의 시선을 중심으로 하며, 그러한 표현은 3인칭 시점으로 노골적으로 부각시켜오는 다른 연애물들과는 크게 차이를 보인다. 표현 및 묘사에 있어서는 노골적이면서도 요시노리의 시선을 거쳐 넘어오는 감성은 은근하고 내밀하며, 아울러 그 감각이 상당히 나와 비슷한지라 매력을 더한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갈수록 내용이 막나가버리고 있는데다 아직 번역되어나오지 않은 일본판 연재분들을 살펴보면 거기서도 더 나가서 XX가 XXX하고 XX를 XXX하는 절대 국내 정발될 수 없는 스토리 전개라는 것이다. 일본어 구사가 가능하고 일본 잡지를 구해볼 수 있는 업계의 전문가(혹은 괴인) 대부분이 국내 정발판은 포기하고 일본 원판으로 구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일어를 모르는 나는? 제발 19금 딱지 붙이고 무삭제로 나와주세요.

자, 4권까지 (기적적으로) 출간! 그럼 과연 5권은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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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랑가인 -하
홍정훈 지음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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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극도로 발달한 판타지세계를 그린 작품은 드물지 않다. 개중에는 마법이 과학을 대신해 현대 지구 수준의 물질문명사회를 이룩한 세계까지 있는데, 그런 모습에 재미를 느꼈다면 절대로 봐라! [흑랑가인]은 무공이 극도로 발달하여 물질문명사회를 이룩한 무협세계다!
[비상하다가 자빠지는 매](뭔가 틀려…)로 특유의 발랄한 상상력을 자랑하던 휘긴경이 발랄하다못해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해 구성한 이 세계의 중심은 내공의 전수라 할 수 있다. 무협지를 보면 주인공을 단시간에 고수로 만들기 위한 양대 기법으로 내공 전수와 기물 섭취가 꼭 있지 않은가(두 가지를 합쳐 '기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휘긴경의 결론에 따라 어차피 죽으면 없어질 내공 전수해 주는 것으로 1년이면 1갑자의 내공을 쌓는 것이 손쉽게 된 데다(…) 기물섭취가 휭횡하는 것이 시대적 트렌드 급이라 길거리 건달 모씨가 엎어져 개똥을 먹었는데 그게 기연이라 몇갑자 내공이 증진되었더라~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그 몇 갑자 정도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이 더욱 무섭다). 결국 '삼천갑자 동방삭'(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라는 컨셉까지 나와 버리는 지경에 이르런 시점에 조상님 노아(노아)의 자손 노아불함(아브라함)이 쌍둥이를 두었으니 한 명을 노아벌(아벨)이라 하고 한 명을 노가인(카인)이라 하더라. 한 명은 천왕성의 기를, 한 명은 천살성의 기를 타고났으니 뺑뺑이로 누가 타고났는지 골라(이봐) 천살성의 기를 타고난 가인의 무공을 폐하였노라!
…뭔가 틀려.
지금 세상이 어떤 꼴인가 하니, 편지? 사람이 나른다. 경공이 너무 발달해서 전서구도 말도 사람을 따라올 수 없게 된 것이다. 포도소명(포스트맨)이라고들 부른다. 마차를 수없이 이은 열차도 있다. 역시 사람이 끈다. 무술이 너무 발달해서…(이하동문). 벽력주라는 전등도 있다. 전기는 뇌공을 익힌 무술가에게 의존한다(어이). 무술이 너무 발달해서…(다시동문). 무공수련한다고 산을 부수고 강줄기를 찢어버리는 일이 너무 흔해서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법령이 정해졌다. 내공 100갑자 넘는 모씨가 수직으로 뛰어 봤다가 주역에 이르는 것처럼 하늘은 둥글고 땅이 네모진 것이 아니며, 어떤 선을 지나면 반탄강기 없이는 호흡이 힘들고 하늘이 사라지며 별이 빛나는 천외천이 있어 진상을 밝히기 위한 조사단이 계획되는 시점이다.
역시 휘긴경. 왜 이런 걸작을 달랑 2권으로 끝내버린 겁니까! 그렇게 짧다 보니 가벼운 꽁트 같은 느낌으로, 아벨과 카인… 아니 아벌과 가인의 골육상쟁이 쟁점이 아니라 무공만능세계 여행기 같은 분위기로 대강대강 봉합해 버렸달까. 뭐 [비상하는 매] 쓰시며 장난삼아 쓴 글이니 당연하지만, 거기에 진지하게 매달려 주셨었으면… 사실 최근작은 취향이 좀 안 맞아서. 역시 작품의 생명은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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