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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랑가인 -하
홍정훈 지음 / 이야기(자음과모음)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마법이 극도로 발달한 판타지세계를 그린 작품은 드물지 않다. 개중에는 마법이 과학을 대신해 현대 지구 수준의 물질문명사회를 이룩한 세계까지 있는데, 그런 모습에 재미를 느꼈다면 절대로 봐라! [흑랑가인]은 무공이 극도로 발달하여 물질문명사회를 이룩한 무협세계다!
[비상하다가 자빠지는 매](뭔가 틀려…)로 특유의 발랄한 상상력을 자랑하던 휘긴경이 발랄하다못해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해 구성한 이 세계의 중심은 내공의 전수라 할 수 있다. 무협지를 보면 주인공을 단시간에 고수로 만들기 위한 양대 기법으로 내공 전수와 기물 섭취가 꼭 있지 않은가(두 가지를 합쳐 '기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휘긴경의 결론에 따라 어차피 죽으면 없어질 내공 전수해 주는 것으로 1년이면 1갑자의 내공을 쌓는 것이 손쉽게 된 데다(…) 기물섭취가 휭횡하는 것이 시대적 트렌드 급이라 길거리 건달 모씨가 엎어져 개똥을 먹었는데 그게 기연이라 몇갑자 내공이 증진되었더라~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그 몇 갑자 정도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이 더욱 무섭다). 결국 '삼천갑자 동방삭'(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라는 컨셉까지 나와 버리는 지경에 이르런 시점에 조상님 노아(노아)의 자손 노아불함(아브라함)이 쌍둥이를 두었으니 한 명을 노아벌(아벨)이라 하고 한 명을 노가인(카인)이라 하더라. 한 명은 천왕성의 기를, 한 명은 천살성의 기를 타고났으니 뺑뺑이로 누가 타고났는지 골라(이봐) 천살성의 기를 타고난 가인의 무공을 폐하였노라!
…뭔가 틀려.
지금 세상이 어떤 꼴인가 하니, 편지? 사람이 나른다. 경공이 너무 발달해서 전서구도 말도 사람을 따라올 수 없게 된 것이다. 포도소명(포스트맨)이라고들 부른다. 마차를 수없이 이은 열차도 있다. 역시 사람이 끈다. 무술이 너무 발달해서…(이하동문). 벽력주라는 전등도 있다. 전기는 뇌공을 익힌 무술가에게 의존한다(어이). 무술이 너무 발달해서…(다시동문). 무공수련한다고 산을 부수고 강줄기를 찢어버리는 일이 너무 흔해서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법령이 정해졌다. 내공 100갑자 넘는 모씨가 수직으로 뛰어 봤다가 주역에 이르는 것처럼 하늘은 둥글고 땅이 네모진 것이 아니며, 어떤 선을 지나면 반탄강기 없이는 호흡이 힘들고 하늘이 사라지며 별이 빛나는 천외천이 있어 진상을 밝히기 위한 조사단이 계획되는 시점이다.
역시 휘긴경. 왜 이런 걸작을 달랑 2권으로 끝내버린 겁니까! 그렇게 짧다 보니 가벼운 꽁트 같은 느낌으로, 아벨과 카인… 아니 아벌과 가인의 골육상쟁이 쟁점이 아니라 무공만능세계 여행기 같은 분위기로 대강대강 봉합해 버렸달까. 뭐 [비상하는 매] 쓰시며 장난삼아 쓴 글이니 당연하지만, 거기에 진지하게 매달려 주셨었으면… 사실 최근작은 취향이 좀 안 맞아서. 역시 작품의 생명은 상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