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서양철학 명저 100선
허만원 외 지음, 주혜란 옮김, 다카미네 이치구 감수 / 이른아침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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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서계의 가장 큰 문제는, 교양과 전문지식이 너무 유리되어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라틴어로 교양과목을 직역하면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기술과 식량과 무기 이외의 무언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무언가를 공급받지 못하는 처지에 있었다. 애초에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은 물론이요, 그 알지 못하는 무언가에 궁금함을 느끼더라도 찾아볼 방법이 흔하지 않다. 형이상학, 명상록, 몽테뉴의 수상록,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론, 홉스의 리바이어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학교 사회 시간에 여기저기서 들어본 이름들이다. 그런데 무슨 내용이었더라?
"무슨 내용인지는 대학 가서 배운다."
나는 이공계에 지원했고, 어떤 내용인지 배우지 못했다. 알아보고 싶어서 도서관을 뒤졌지만 이미 알고 있는 단편적인 내용 아니면 손도 댈 수 없을만큼(아니, 일부러 어렵게 쓴 게 아닐까 싶은) 복잡하고 두꺼운 전문서적 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외계어로밖에 보이지 않는 숫자와 기호의 조합 속에서 허우적대던 어느 날 발견한 이 책은, 나에게는 말라붙을 것만 같은 - 그러나 너무나 오래되어 목이 마르다는 것까지도 잊어버린 지적 갈증을 상쾌하게 채워 주었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재미있다. 그리고, 지적 포만감을 가득 채워준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읽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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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님이 보고계셔 1
콘노 오유키 지음, 윤영의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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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판 출간 전부터 국내에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해서 압도적인 인기를 끈 뒤 소설판 출간 이후에도 그 인기가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묘한 성적을 지니고 있는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남자따위 모르는 순수배양된 소녀들의 풋풋한 학창일기라고 쓰겠지만 수백 배는 많은 2차 창작물들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던 괴상한 작품의 코믹스판이 출간되었다.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는 전술한 바와 같이 2차 창작물(동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원작자가 직접 내놓은 멀티미디어 작품마저도 동인의 틀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즉, 원작을 기반으로 애니메이션이나 코믹스를 만들었을 때 그것이 '이미 있는' 2차 창작물과 큰 차이가 있을 경우 지금까지 그 2차 창작물을 소화해 온 소비자들이 거부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가 소비자의 품에 안긴 경우인데, 이 [마리아님이 보고계셔] 코믹스는 그런 함정을 잘 빠져나가 있다. 어디까지나 원작에 충실하며 그림체가 거부감을 주지 않아, 객관적인 완성도는 충분히 높다고 하겠다. 일단 원작자와 만화가 모두 이름 하나는 확실하니 다음 권이 망가질 걱정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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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브리더스 8
이토 아키히로 지음 / 시공사(만화)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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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취향에 대해 5개 단어로 요약하라면, 미소녀, 무기, 액션, 나이스 미들, 밀리터리 되겠다. 5가지를 몽땅 확실하게 만족시키는 역작이다. 아카히로 이토! 이 쌈빡한 아저씨 같으니라구! 원래의 내용은 변신 고양이라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퇴마'물이었건만, 어찌된 일인지 중간에 이야기가 비틀리는가 싶더니 해상자위대와 교전, 육상자위대 고사특과(방공포병)대와 교전, 미해병대와 교전하더니 지금은 야쿠자와 전면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마당. 내용 따윈 상관없다. 액션물에서 액션만 있으면 되지 딴게 뭔 상관이냐! 유원지 대관람차가 수류탄에 무너지고, 해상자위대 호위함이 출동해 지상에 팰렁스를 퍼부어대고, 자주판단식 무인 대인/대전차 장갑차가 밤의 거리를 질주한다! 머리 위에선 아파치와 하운드가 격돌하는 가운데 오스프리가 강행돌파하고 점보기를 상대로 패트리어트 10발을 퍼붓는가 하면(그걸 다 요격하는 점보기도 괴물은 괴물이다), 교통사고를 일으켜 통행 중지된 해안도로를 활주로로 점보기가 강행착륙! 그리고 거기에 맨주먹으로 맞서는 우리의 주인공들. 그야말로 눈물이 흐르는 감동의 순간들.
그뿐인가? 80년대식 닛카츠 액션에 맛들인 이 아저씨는 8권쯤부터 완전히 내용을 오우삼식 총격전물로 만들어 버렸다. "자네들 그런 말 하면 부끄럽지 않나?" 라는 질문에 "전혀!" 라고 대답하는 우리의 마키 양은 데크레챠프부터 2차대전에 독일이 쓰던 유탄권총에 이어 남아공제 6연발 유탄발사기와 판쩌슈레케로도 모자라 20mm라티 대전차총까지 퍼부어대며 수십명의 프로 암살자들을 쓱싹해버리고 있다. 그것도 알몸으로. 킬링타임용이라고 부르면 할 말 없지만, 킬링타임을 위한 모든 것을 갖췄달까나. 아무튼 빵빵한 허벅지와 불꽃튀는 총염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만화. 종이에 인쇄된 만화가 영화나 애니보다 몇 배는 역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준 수작이다. 실제로 본인은 이 만화 이후 어지간한 액션물은 느려서 못 보고 있다. 하나 재미있는 점이라면 1권만 해도 엄청나게 자르고 덧칠하느라 정신없던 책이 8권에 와서는 홀랑 벗겨놓고 별 부담없이 총질을 시키고 있다는 것. 시대가 변한 게야.(만세!)

근데 출판사가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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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메피스토(Mephisto) 1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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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잠언을 시작으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세상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함께 동서양을 막론한 철학자와 학술가와 과학자와 선인들까지의 화두였다. 그리고 두 명의 낙오자가 모여 시작한 '파이트 클럽'은, 가장 원시적이지만 직설적인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공간이다.
일요일마다, 월요일마다, 화요일마다 어딘지 모를 좁은 링 위에서 맞부딪치는 사람들. 우리의 '낙오자'도 그 위에서만은 사회의 낙오자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승패는 관심거리가 아니다. '파이트 클럽'은 시합장이 아니라 승리의 쾌감과 패배의 굴욕, 상처의 고통을 통해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를 진득하게 감싸고 있는 테러리즘의 유혹 역시 외부적이라기보다는 내부적이다. 그들이 폭약을 만들고, 계획을 짜고, 사람을 모으고, 그리고 저지르는 것은 외부적인 목적 -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힘의 증명, 힘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여 얻어낸 결과에 의해 '힘'과 그 힘을 사용하는 '나 자신'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거대한 울부짖음에 다름없다. '그'는 이토록 무차별한 폭력의 행사를 통해 시작도 끝도 없이 존재할 뿐인 허깨비인 자신을 증명하고,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정체성이 확립됨에 따라 점차 존재를 상실해 가는 '나'에게 파이트 클럽은 어떤 장소인 것이까? '그'를 존경하고 신뢰하며 '그'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던 '나'에게 던져진 진실은 가슴이 아려올 정도로 잔혹하고 강렬했다. '나'는 파이트 클럽에서 나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증거라고 있었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사회 낙오자들의 폭력 찬미적 소설이나 무시무시한 오컬트물 정도로 볼 지도 모르겠지만, [파이트 클럽]에는 인간이 타인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하며 또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져 있다. 내용누설을 막기 위해 '힘'이니 '그'니 '나'니 하는 의미 불명의 대명사로 리뷰를 덧씌웠으니, 반드시 일독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당신의 의지로 당신 자신을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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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천사들 2 - 신들의 우울
카야타 스나코 지음, 한가영 옮김, 스즈키 리카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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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말하자면, 켈리와 재스민이 돌아온 다음에나 리뷰를 쓰려고 했었다.
[새벽의 천사들]은 [델피니아 전기]의 후계작인 동시에 [스칼렛 위저드]의 후계작이다. 그러기에, [스칼렛 위저드]의 그 미시즈 앤드 미스터 자이언트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은 작품이 시작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하기사 이 금쥐, 은쥐, 까만 쥐에 사향고양이까지 더해졌으니 늙다리들(...)이 끼어들 공간도 없으리라는 것을 예측했어야 했다! 이런 불찰이 있나!
구성으로 보면 어디까지나 도입부 내지는 서장에 지나지 않는다. 리의 과거(?)가 조금 밝혀졌고, 리의 가족관계(?)가 조금 밝혀졌고, 본쥬이의 실체(?)가 조금 밝혀졌고, 셰라의 배경(?)이 조금 밝혀졌다. [델피니아 전기]의 캐릭터들 집합 완료. 이제 해적과 여왕([스칼렛 위저드]의 가칭이었음)만 부활하면...
우주 멸망쯤은 일도 아니지. 라의 일족의 예언이 정확했다는 것이 곧 증명될지니...
진짜 불쌍한 건 누가 뭐래도 댄 맥스웰. 이 페이스로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몰리다가는 루에게 깔릴 날이 머지 않았다. 그 날, 젬은 행복할 것인가!?

그리고 카야타 스나코 씨, 거기서 끊는 건 반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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