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 메피스토(Mephisto) 1
척 팔라닉 지음, 최필원 옮김 / 책세상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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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잠언을 시작으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것은 세상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함께 동서양을 막론한 철학자와 학술가와 과학자와 선인들까지의 화두였다. 그리고 두 명의 낙오자가 모여 시작한 '파이트 클럽'은, 가장 원시적이지만 직설적인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내는 공간이다.
일요일마다, 월요일마다, 화요일마다 어딘지 모를 좁은 링 위에서 맞부딪치는 사람들. 우리의 '낙오자'도 그 위에서만은 사회의 낙오자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승패는 관심거리가 아니다. '파이트 클럽'은 시합장이 아니라 승리의 쾌감과 패배의 굴욕, 상처의 고통을 통해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작품 전체를 진득하게 감싸고 있는 테러리즘의 유혹 역시 외부적이라기보다는 내부적이다. 그들이 폭약을 만들고, 계획을 짜고, 사람을 모으고, 그리고 저지르는 것은 외부적인 목적 -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힘의 증명, 힘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여 얻어낸 결과에 의해 '힘'과 그 힘을 사용하는 '나 자신'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거대한 울부짖음에 다름없다. '그'는 이토록 무차별한 폭력의 행사를 통해 시작도 끝도 없이 존재할 뿐인 허깨비인 자신을 증명하고,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정체성이 확립됨에 따라 점차 존재를 상실해 가는 '나'에게 파이트 클럽은 어떤 장소인 것이까? '그'를 존경하고 신뢰하며 '그'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던 '나'에게 던져진 진실은 가슴이 아려올 정도로 잔혹하고 강렬했다. '나'는 파이트 클럽에서 나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증거라고 있었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사회 낙오자들의 폭력 찬미적 소설이나 무시무시한 오컬트물 정도로 볼 지도 모르겠지만, [파이트 클럽]에는 인간이 타인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위험하며 또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져 있다. 내용누설을 막기 위해 '힘'이니 '그'니 '나'니 하는 의미 불명의 대명사로 리뷰를 덧씌웠으니, 반드시 일독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당신의 의지로 당신 자신을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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