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이순신 - 전8권 세트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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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개인적으로 이 물건에 불만이 많다. 물론 그중 절반은 드라마에 관한 것이지만, 소설에도 심각한 수준까지 투덜거려줄 생각이다. 드라마가 심지에 불붙여야 하는 화승총을 드르륵 긁어대는 일본군이라던가, 그 일본군을 육기까지 따라가 단병접전으로 해치우는 조선 수군의 탈을 쓴 한국 해병대라던가(임란 당시에 조선 육군이 그거 절반만 싸웠으면 육지에서 끝장냈을 거다)는 무시하고 생각하면 전투장면 묘사 하나만은 제법 했듯 소설 역시 필력 하나는 탁월하다.
문제는 역사왜곡을 한다는 사실이다! 드라마에서는 '영화적 상징성을 위해' 멀쩡한 거북선을 진수식에서 침몰시키지 않나, 돌격하다가 포위된 안위를 도망치다 포위된 걸로 해 놓지 않나(안위 후손분들! 뭐하시는 겁니까!), 원균이 전쟁터에 나가질 않나, 대체 이게 어디가 역사드라마라는 거야? 사극'풍' 판타지라고 불러야 할 거 아냐! 할 거면 최소한 '실제로는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나, '이랬다고 주장하는 사료도 있습니다' 혹은 '이랬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자막이라도 붙이던가! 조선왕조실록은 보고나 기록이 잘못된 것을 확인해도 그 기록을 고치는 게 아니라 사실을 그냥 쓰기 때문에, 일부분만 발췌하면 잘못된 사실이 '진실'로 기록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다. 이런 작품의 멀티컨텐츠인만큼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 기대를 이렇게 직통으로 맞춰버리면 참 괴로와진다. 아니, 어떻게 원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원균행장기 기록을 쓸 수가 있는거냐. [균이 적함으로 뛰어들어 백 명을 베었으나 천 명의 왜적을 당하지 못하고 쓰러졌다]는 게 정말로 보이디? 이건 그냥 과장법이라 친다 해도, 조선왕조실록 정유년 이후에 끈질기게 나오는 "원균이놈 찾아서 책임을 지웁시다!"는 아예 눈에 안 보여? 선조가 끝까지 우긴 "원균이 죽었으니까 추증하자니까" 만 보이고 그에 대해 신하들이 끝까지 반박한 "아 글쎄 그놈 싸우지도 않고 도망간 게 틀림없으니 잡아다 목 자르자니까요!"는 안 보였겠지.
할 말은 하나뿐이다. 나라 이름 바꾸고, 등장인물 이름 바꾸고, 소설 장르 바꿔라. 그럼 빈사상태에 빠진 현대 한국 판타지를 구원할, 반지전쟁 이상 가는, 애끓는 애국심과 불타는 전우애와 무인의 명예로 가득한 걸작 전쟁소설이 나왔다고 찬송찬양 경배하겠다. 그럴만한 필력이 충분히 된다.
하지만, 역사소설이라고 우기는 이상은 절대로 용서 못한다!

하기사 이항복같은 경우는 선조가 "원균 꽤 열심히 하..."는 말을 자그마치 '끊어버리고' "남도의 방비태세에 대해 보고하겠습니다."해 버린 상황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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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무얼 스마일즈의 인격론
사뮤엘 스마일즈 지음, 정준희 옮김, 공병호 해제 / 21세기북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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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약하다. 그래서 사람은 함께 살아가며, 그러기에 천재성은 감탄을 불러 일으키지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격이다. [궁극적으로 인생을 지배하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양심이다. 사람들은 천재성을 지닌 사람들은 단순히 찬미하지만, 인격을 갖춘 사람은 신봉한다.] 천재는 타인과 다른 존재이기에 공동체를 뒤흔들지만 인격자는 공동체를 더욱 단단히 결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재능은 선택받은 일부만 타고나는 것이지만, 무리지어 살아가는 본능은 모든 인간이 타고나는 종족적인 힘이다. 사람은 무리지어 살아가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에서는 얀센 법의 이야기가 나온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리와 다른 자는 악이다'는 것. 그리고 '너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너는 우리와 다를 수 없다', '너는 우리와 달라서는 안 된다'.
하지만, 꼭 다를 필요 따위 없잖아.
[오 자히르]에서 얀센 법은 자히르, '마치 마법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열정'을 봉하는 족쇄, 인간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추악한 요소로 그려진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게'는 '위대하게'의 동의어가 아니다. 님들과 다르게, 남들보다 위대하게, 남들보다 뛰어나게 되는 것만이 발전일까?
새무얼 스마일즈는 '남과 같이', '다른 사람들처럼', '모두 함께' 위대해 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논하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인격]이라 부른다.
재능이 아닌 양심의 발현을 의미하는 인격. 그리고 재능과 달리 모든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 성선설을 주장한 공자의 말대로라면 태어났을 때부터,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의 말대로라면 교육의 결과로 누가나 가지고 있으며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양심을 드러내보이는 것 만으로 인간은 '남과 같으면서도' '위대한'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격자'라는 말은 '천재'나 '영웅', '위인' 보다는 느낌이 약하다. 하지만, 정말로 세상을 유지해가는 것은 '인격자'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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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사냥꾼 - 이적의 몽상적 이야기
이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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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이적이라는 가수를 모른다. 은둔생활이라고 할 만큼 대중문화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기에 노래는 들어봤을지 몰라도 가수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게 대부분이고, 그렇기에 나는 가수 이적의 책이 아닌, 범상치 않은 상상력을 가진 작가 이적의 책을 만날 수 있었다.
그기로 그런 만남의 감상은, '이 사람도 상당히 맛이 간 인종임에 틀림없다'랄까. 나로서는 최대의 찬사다. 그 머릿속의 아주 일부를 아주 잠깐 엿보았을 뿐이지만, 앨리스가 헤메던 이상한 나라 정도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엉망진창인(역시 찬사다) 세계임에 틀림없다. 현실에 매몰되어 생각도 상상도 포기한 창의성 제로의 모자 받침대들과 비교하면, 마치 깜짝상자같이 예측할 수 없는 상상력의 소우주를 만난 것이다, 쓴웃음에 가까운 해학이라는 찾아보기 힘든 최근의 독서 경험에, 흔치 않을만큼 신랄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문인 이적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 따름이다.
그건 그렇고 음악도 한번쯤은 들어주는 게 예의일 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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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잭 웨더포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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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안 그런 시대가 있었겠건만, 12세기는 전란의 시대였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징롱 금당 왕국이 기지개를 켰고, 중동에서는 그 이름 높은 살라딘이 십자군을 격파하며, 아프리카에서는 (백인들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기는 하지만) 흑인들의 위대한 말리 제국이 사하라 사막 거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남북 아프리카의 중계무역을 독점하여 향후 2세기동안 이어질 대제국의 기틀을 닦은 시대였다. 유럽? 열심히 장작 쌓고 마녀 태우고 있었지.
그러나 그토록 혼란스러운 시대, 최강의 국가를 칭하자면 몽골제국을 꼽을 수밖에 없다. 인구, 동원능력, 기술력, 정치력, 문화적 발전정도, 그 어떤 것도 몽골제국은 세계 최강국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다. 문명 수준과 정보통신능력의 발달을 감안하면, 당시 몽골의 세력은 현대 미국을 아득히 뛰어넘어 적어도 목성이나 토성 정도까지 식민지를 건설하고 명왕성에도 선발대를 보낸 수준이랄까.
이 책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은 그런 몽골제국의 기반을 닦고, 주춧돌을 심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 그야말로 혼자서 뚝딱 제국 하나를 만들어버린 칭기즈 칸의 일생을 추적한 작품으로 큰 가치를 갖는다. 솔직히 칭기즈 칸과 비교할만한 인물은 몽케 칸 정도밖에 없지 아마. 아주 잘 봐줘서 카이사르하고 알렉산드로스 정도가 될까말까.
그런 사서들이 딱딱하고 접하기 어려운 데 비해,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서는 사람을 매혹시키는 필력이 감칠맛난다. [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에서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잭 웨더포드는 읽기 힘든 글을 읽기 쉽게 표현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몽골의 후계자들이 깊숙히 감춰두었었다는(사실 이런 거야말로 제일 의심가는 부분이지만) '몽골비사'를 맹목적으로 추종한 것이 아니라 금석학적으로 찾아낸 - 그리고 이상한 부분과 조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는 탁월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현재는 과거에서 배운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천년 전 칭기즈 칸의 가르침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정보통신망의 구축, 기술 우위와 유통로 확보의 중요성, 그리고 아직도 가장 받아들이지 못한 것 - 민족주의를 뛰어넘은, 무한히 펼쳐진 세계시민주의. 이미 케케묵은 역사에서 배울 것은 다 배웠다고 믿는 사람에게 이 책은 충분한 경종을 울려 줄 것이다.
현재는 과거에서 배운다. 그리고 배울 것은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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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리뷰 꼭 쓰자... 읽으면 읽을수록 뭐라 리뷰 쓰기가 힘들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꼭 쓰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지금의 감상은 딱 하나. 안 깨웠으면 더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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