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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소수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9
시오노 나나미 지음, 이현진 옮김 / 한길사 / 2002년 10월
평점 :
품절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닉슨 대통령이 “‘사일런트 머조리티’가 나를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태어난 단어, 침묵하는 다수. 한때 다수는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중, 대세, 메이저라는 단어가 ‘정의는 이곳에 있다’는 얼굴로 네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과 다른 존재는 침묵하는 소수, 사일런트 마이너리티인 것이다. 잘난 것이나 위대한 것이아니다. 그저 다수와 다르니까 마이너리티인 것이고, 목청 높여 주장하고 싶지 않으니까 사일런트인 것 뿐이다. 남과 같다는 것도 남과 다르다는 것도 무슨 큰 벼슬처럼 여기는 풍조가 만연한 시대에 “나는 남과 다르다. 그것뿐이다.”고 말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자전 에세이 [침묵하는 소수]는, 그렇기에 그녀가 사랑해온 지중해처럼 초연하게 서 있다.
에세이집에서는 그 사람의 심경이 드러난다.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나 [바다의 도시 이야기] 등과는 달리 아무런 부담도 없이 자신의 심경을 드러낸 [사일런트 마이너리티]는, 지독하게 관능적이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군 전체에 깃들어 있는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듯한’ 애정과 ‘시간의 흐름 아래 무뎌진 예술품을 사랑하는 듯한’ 관능은 그녀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감성적인 축이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 책 [침묵하는 소수]에서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과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관능을 폭발시키지는 못했다. 하기사 생각해 보면 ‘호메로스에 빠져 그리스어와 악전고투하느라 수험공부를 소홀히 한 탓에 가고 싶은 대학에 미끄러지자 배우고 싶은 서양철학과 교수가 시간강사로라도 와 주는 대학에 입학한’ 여자일 만큼 스스로에게 충실한 여자가 아니던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를 두고 ‘자신에게만은 한결같은’ 사람이며 ‘일생동안 관능적이었던’ 남자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바쳐야 할 평가인지도 모른다.
카이사르의 연인이며 마키아벨리의 친구. 이런 남자들을 사랑했기에 변한 것일까, 처음부터 그랬기에 이런 남자를 사랑한 것일까. 최근 며칠간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들을 처음부터 다시 뒤적거리고 있는데, 오늘 [침묵하는 소수]와 [신의 대리인]을 마무리했고 내일은 그녀의 친구에게 바친 헌정작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과 [르네상스의 여인들]에 손을 댈 생각이다(...시험은!?). 과연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서른 다섯이 넘어 관능이 무엇인지 알고 난 다음에야 모피와 보석이 어울리는 것처럼, 꺾인 오십 고개를 넘은 지금에야 그녀의 관능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