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있던 자리에
니나 라쿠르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1년 5월
평점 :
“네가 가는 곳으로 갈래.” 그 순간 내가 너를 바라봤다면, 어쩌면 우린 달라졌을까
그 애는 내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바로 알아들었던 것 같아요. 특유의 진중한 표정으로 따라나섰거든요. 바로 그런 것 때문에 나는 걔를 좋아하는 거예요.바로 그런 것 때문에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P.66)
카메라 렌즈로 세상과 삶을 담아내는 것을 좋아하는 케이틀린과 잉그리드. 서로 모든 것을 공유한다고 믿었던, 모든 것을 같이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잉그리드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케이틀린이 학교에 복귀하면서부터의 이야기가 흐른다. 아직 케이틀린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심리치료를 거부하고 우울에 쌓여 있어 심리적으로 심각하게 불안한 상태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잉그리드의 죽음을 묻는 친구들과 사람들 앞에서 괜찮아 보이고 싶지 않은 케이틀린의 학교생활은 그리 순탄해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침대밑에 있던, 잉그리드가 자살전에 자신에게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일기장을 발견하고 조금씩 일기장을 읽어나가며 자신이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지만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친구의 아픔들을 하루에 조금씩 나눠 읽어가며 자신이 친구로서 아무것도 할수 없었음에 가슴 아파한다. 케이틀린이 사진외에 재능이 있고 또 좋아하던 목재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으로 인해 상처를 치유 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님은 목재와 공구 그리고 작업을 위한 케리틀린만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학교에서 새로운 친구 딜런을 만나게 되면서 마음을 함께 하고 케이틀린의 회복을 위해 애쓰는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잉그리드의 부모님의 노력과 사랑으로 함께 트리하우스를 지으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사계절을 담은 이야기로 소중한 그 무엇인가를 상실한 사람의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묘사가 탁월하다고 해야 하나. 고등학생의 케이틀린의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맘으로 빠져들게 한다.
“내가 속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멋대로 판단하는 사람은 속물이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에 대해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속물이 할만한 짓이고. 그리고 난 속물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든 관심 없어.” (P.179)
오랜 친구라는 이유로 걱정하고 있다며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며 어줍잖은 충고를 던지는 동창에게 던지는 말은 슬픔에 빠져 주변에서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피하고만 다니던 케이틀린이 서서히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상처에 이별을 하는 기점일지도 모르겠다.
케이틀린이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만큼이나 시선이 멈추는 곳이 있다. 그것은 부모님과 잉그리드와 케이틀린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던 델라니 선생님의 케이틀린을 대하는 태도다. 얼른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지금의 아이 모습이 내가 바라는 대로 향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태도로 인해 아이의 상처가 깊어지지 않도록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태도가 유독 마음과 눈길이 갔다.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더더욱이 이런 모습들이 어른이 해야하는 몫이겠지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청소년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데 나는, 즉 우리는 어른이 해야 할 일들을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봉투를 받아들고 싶지 않다. 가게를 떠나고 싶지 않다. 지금, 모든 것이 완벽하다. 햇볕,음악, 도저히 끝날 기미가 없는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는 타투 한 여자, 계산대 너머에서 다정하게 웃고 있는 매디, 그 때, 내 머릿속에 쿵, 하고 내려않는 생각. 친구가 있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이 느낌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릴 만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가게 문을 나선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봉투를 건네받고, 그 안에서 잉그리드의 그림 하나를 찾아낸다.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의 다리를 그린 그림, 맨밑에 쓰여 있는 단어는, 용기. (P.331)
출판사와 아독방의 서평단으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