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외 지음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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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의 작가가 하나씩, 디저트를 소재로 쓴 단편소설 앤솔러지이다. 초콜릿,이스파한,젤리. 사탕,슈톨렌에 각자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디저트에 이렇게 진심일수 있나 싶었고 각 단편마다 작가의 색이 뚜렷해서 읽는 재미도 있다.

 

 

5편의 단편중 오한기 작가의 <민트초코 브라우니> 와 박소희 작가의 <모든 당신의 젤리>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여전히 똥에 집착하는(?) 작가님의 특유의 유쾌함이 살아있는, 그러면서 어딘가 서늘해지는 그런 느낌~ 이거 소설이 아니고 실제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던 단편이었다.

 

 

평소 젤리를 아주 즐겨먹는 나에게 <모든 당신의 젤리>는 소재부터가 맘에 들었고 내용또한 좋았다. 죽기직전에 의식을 복사해서 한사람의 정신을 무려 400개의 젤리에게 심었다는 기찬 설정,그로 고 내가 먹는 젤리속 어딘가에 그 사람의 의식이 살아있는 젤리가 있고 그 젤리와 만나게 된 화자인 내가 젤리와의 인연으로 엮이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제 아마도, 얼마동안 젤리봉지를 뜯을 때면 젤리를 보고 말을 걸수도 있을거 같다. 혹시 거기 있어?

 

 

말랑말랑 새콤달콤하기만 하지는 않고 사람을 잃은 슬픔과 오랫동안 거리를 두고 살다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오랜 시간의 틈과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씁쓸함등 다양한 이야기를 엿볼수 있다. 커피와 혹은 음료와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을 옆에 두고 읽으면 더욱더 좋을 그런 책이다.

 

 

출판사의 지원도서이며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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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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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를 읽어보려고 시도한적이 있었다. 몇페이지 읽다가 무슨 신들이 인간보다 변덕도 심하고 그런 막장이 따로 없어~하고 덮었었다. 간혹 한 부분만을 들을때는 재밌는데 전체를 보려니 매력이 없었던 책이었다. 메두사. 머리가 뱀으로 이뤄져 그녀를 보는 사람은 돌로 변한다는 신화. 단지 내가 아는 건 그것 하나였던 메두사였기에 책을 읽다 말고 검색에 들어가야했다. 순전히 한 방향으로만 쓰여진, 페르세우스의 업적을 높이기 위해 쓰여진 글이었다 싶었다.


이번에 출간된 <메두사>는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다시 쓰여졌다. 표지에 부제처럼 신화에 가려진 여자 <메두사>의 시선으로, 그녀에게 목소리를 부여해 쓰여진 소설이다. 서정적인 글과 감각있는 삽화로 마음과 눈길을 잡는다.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수 없는 아름다움을 타고난 메두사, 메두사에 반한 포세이돈의 지독한 집착에 영혼이 파멸되어가던 메두사는 아테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아테나의 신전으로 은거한다. 아테나가 없는 틈에 포세이돈은 메두사를 범하고,아테나는 자신을 신전을 더렵혔다며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뱀으로 만들어 버리는 벌을 준다. 신전을 더렵혔다는 건 핑계,메두사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다. 두 언니들과 함께 외딴 섬에 살아가고 있는 메두사, 배를 타고 메두사를 찾아 다니다 길을 잃고 그 섬에 표류하게 된 페르세우스. 동굴속에서 바위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들은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런 날이 하루 이틀,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 하고 가까워지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데 ...


자신을 사랑했던 메두사는 가혹한 자신의 운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4년동안 인적이 없는 섬에서 살았다. 지독한 운명의 동굴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메두사가 자신을 똑바로 보기 시작하고 늪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문장들로 살아난다. 페르세우스로 인해 메두사는 자신이 자신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아픈 사랑이지만 따스하게 그려진다. 신화의 재해석이라는 점, 여성의 시작으로 신화를 다시 보게 된다는 점, 마치 어른을 위한 동화같은 소설이었다.


“예쁜 여자라는 말보다는 잘생긴 남자라는 말을 듣는 편이 더 쉬울 것 같아, 여자에게 아름답다는 말이 따라붙으면, 그게 곧 그 애의 존재의 본질이 되거든.그 애가 가진 다른 모든 가능성을 덮어버려. 남자는 그 사실이 모든 가능성을 덮어버리지는 않잖아”(p.85)


“때론 말이야. 삶은 대답하고 싶지 않은 끝없는 질문의 연속인 것 같아. 한동안은 대답하지 않고 살수도 있겠지. 한동안은 내면의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인 척 할수도 있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척, 내가 하는 생각,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실이 아닌척.” (p.179)


신화는 얕은 무덤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찬란하게 솟아 오른다. 나의 팔과 다리, 나의 몸과 가슴을 빼앗아도 좋다. 나의 목을 베어도 나의 신화는 끝나지 않는다.(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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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제닝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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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의 등대지기로 오랜 시간 혼자 살고 있는 새뮤얼그는 세상으로부터혹은 폭력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서 홀로 살아가고 있다. 2주마다 한번씩 오는 보급선외에 접촉하는 이는 없다사람들의 권유에 뭍으로 나갈 시도는 해봤으나 사람들과 함께 뭍에 도착했을 때 몇발자국 걷지 못하고 찾아오는 이유 모를 공포와 호흡곤란으로 다시 섬으로 돌아와야 했다그에게 섬은 주거를 위한 곳이기에 앞서 안식처다외롭지 않다그렇게 그는 섬이 된다.


 

그럴듯한 사건이나 긴박한 일들이 없는 섬에 어느날 시체가 떠내려왔다잊을만 하면 어디엔가 떠내려오는 무연고 시신들이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그를 밀었는데 그가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사경을 헤매는 한 남자가 새뮤얼의 섬에 들어섰다그들의 동거가 시작됐다타인과 함께하는 이전과는 다른 하루하루,새뮤얼은 그와 공존할수 있을까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난민임이 분명한 남자와 새뮤얼의 동거는 침묵 자체가 불안과 공포가 되고 서로의 손끝 하나의 움직임조차 주시하게 되는 묘한 공기를 만들어낸다그런 불안속에서 새뮤얼은 잊고 있던 자신의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두려움이 커진다나라가 식민지가 되면서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쫒겨났던 어린시절,식민지의 나라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던 아버지그리고 소원하던 독립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질줄 알았던 나라가 부패정권군부독재로 이어지고그들과 투쟁하던 많은 국민들그중에 하나였던 새뮤얼은 정치범으로 25년을 감옥에서 지내다 나온 세상은 가족마저 그를 반기지 않았다그렇게 섬에 정착하게 된 새뮤얼에게 23년간 유지해 오던 일상의 삶에 균열이 생긴다.

 


 

평화로운 삶속에 낯선 타인이 함께 하는 나흘동안 소통이 안되는 두사람의 사이에서 어떻게 불신이 쌓이게 되고 불안이 되는지어떻게 의심과 폭력으로 이어지는지 나흘간의 이야기로 펼쳐진다또한 둘의 이야기 속에 새롭게 생각해볼 거리는 불안정한 정세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는 난민들의 삶과 식민지 시대를 거쳐간 나라에서 개인의 얼마나 무참히 배척되고 무너질수 있는지 무심한 듯 써내려간 문장들은그래서 오히려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이다이미 다른 나라에서 작가로 인정 받던 작가가 정작 자신의 나라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소설속 이야기가 역사의 상흔을 다뤘다는 이유였다한다출간이 거부 되다가 신생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하면서 셀로 뒤커상을 수상받게 되면서 자국에서도 주목 받게 됐다고 하는데 작가의 이력도 소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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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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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990년에 발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모아 출간 된 책이다. 최근 작가의 작품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의 단편들인데 이번에 실린 6편의 단편은 조금은 서늘한 느낌이 나는 단편들로 모은 듯 하다.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좀 약하지만 현실과 상상의 세계 어디쯤 기로에 선 어떤 세상과 마주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 최근 작품들의 특성이 이미 그때부터 시작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TV피플> <비행기-혹은 그는 어떻게 시를 읽듯 혼잣말을 했나> <우리시대의 포크루어_고도자본주의의 전사> <가노 크레타> <좀비> <> 6편이 실려있다.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있는 단편들이라 그 중 몇편을 고른다는 것이 의미는 없다. 조금 난해했던 < TV 피플>, 그리고 <우리시대의 포크로어> <> 은 너무 좋았고 <좀비>는 작가의 단편에서 이런 류의 글을 읽어본적이 있었나 하고 되짚어 보는데 아직은 없다. 이런 글도 썼었구나 했다

 

 

작가 자신이 <TV피플><>은 단 한편의 베스트 단편선을 기획한다면 반드시 수록할 작품이라고 했다는데 그만큼 강렬한 무언가가 있다. 손에 잡힐 듯이 잡히지 않을 듯이 그런, 그런데도 그 뭔가가 참 강한 그런 느낌의 단편이다. 이런 느낌이 좋아 다시 찾게 되나보다

 

주인이 있는 집에 들어와 제 집처럼 활동하는 TV피플, 17일동안 잠을 한숨도 못자는 여자, 여자를 잡아 먹기위해 사귀는 남자, 시를 읽듯이 혼잣말을 하는데 정작 본인은 모르는 남자, 물소리를 듣는 여자 등 주인공 또는 등장인물들은 어딘가 비틀어진 모습들이다. 그들이 모습에서 나의 외로움과 뒤틀어진 욕망을 본다

 

 

그의 소설들은 줄거리로 이야기를 풀려고 하면 이상해진다. 일반적인 다른 소설처럼 줄거리를 쓴다면 이게 먼말인가 싶어지니 말이다. 읽고 있을 순간의 느낌,그 느낌을 믿어본다. 이 책을 읽고 그의 다른 작품이 읽고 싶어져서 검색에 들어간다. 도서관에서 <렉싱턴의 유령> 책도 대출해왔다

 

 

 

사람 마음은 깊은 우물 같은 것 아닐까 싶어. 바닥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때로 거기서 떠오르는 것의 생김새를 보고 상상하는 수밖에 (P.66/ 비행기)

 

나는 옛날부터 스스로를 따분한 인간이라고 생각해왔어그는 말했다. “아주 어릴적부터 발 뻗고 즐기지를 못하는 아이였지. 언제나 틀 같은 것이 내 주위에 보여서, 거기서 빠져나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살았어. 눈앞에 늘 가이드라인이 보여. 친절한 고속도로 비슷한거지.어디어디 방면은 오른쪽 차선을 타라, 더 가면 커브가 있다, 추월금지, 라든가. 그 지시를 따르면 틀림없이 잘 돼, 어렸을 때는 나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런데 다 보이는 줄 알았어.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곧 알게 됐지.” (P.88~89/ 우리 시대의 포크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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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3킬로미터
이요하라 신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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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말고 작가이력을 들춰봅니다. 그럴만한 것이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소설이거든요. 지구과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대학교에서 조교로도 근무하시는분이더군요. 어쩐지.....죽을 장소를 찾아서 헤매다가 우연히 타게 된 택시에서 만난, 달을 너무나도 잘아는 기사이야기나,수몰된 지역에서 떠나지 않고 화석을 캐는 전 박물관 관장이야기라든가, 바다나 호수 밑에 쌓인 퇴적물들 뒤적이는 기후 연구자 등 모든 이야기에 과학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함께 합니다.

 

7편의 단편에는 자신의 인생에서 좌절을 겪고 상처도 받고 힘든 시기를 지나며 살아온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 그저 우리네 사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사업의 실패로 빚을 끌어안거나 똑똑한 형으로 인해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둘째이거나 30년의 세월을 가족을 위해 살았으나 절벽 끝에 선 것 같은 외로움에 힘든 삶을 살고 있거나 하지요. 그래서 일까요. 그들의 이야기가 시나브로 스며드는 느낌이 좋았어요. 든든한 밥 한끼 뚝딱 해치운 기분이 들어 아주 든든해졌어요.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되고 결국 위로 하게 되는것에 자연과 과학을 묶어 이런 소설을 쓸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도 했고요. 김초엽 작가가 생각이 나기도 했답니다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단편이 좋았어요. 그중에서도 좋았던 3편입니다

 

삶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고 죽을 곳을 찾는 남자. 보름달이 뜨는 밤, 우연히 만난 택시기사와의 하룻밤. 표제작이기도 하고 표지의 그림으로도 표현된 <달까지 3킬로미터>

 

바다나 호수밑에 퇴적물로 고 기후를 연구하는 형과 잘난 형의 그늘에 가려있다 하는 동생, 그러나 우애가 좋은 형제와 전직 유명 기타리스트였으나 갑자기 인생의 방향을 틀고 나서 달라진 그의 삶을 돌아보는 <덴노지 하이에이터스>

 

 

삼십년동안 가족을 위해 살았던 주인공, 병든 시아버지와 결혼때부터 자신을 탐탁치 않아 하던 시어머니, 그리고 무심한 남편과 아이들,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산을 잘게 쪼개다>

 

 

작가가 된 과정이 참 흥미로운 분이었는데요. 연구가 진척이 되지 않아 주춤하던 시기에 우연히 떠오른 트릭으로 소설 한편을 썼고 탈고하고 나니 본인이 쓴 글이 어느정도 레벨인지 궁금해져서 에도가와 란포상에 응모를 한게 덜컥 최종 후보작에 남았고 그 이후 소설가로 방향을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하네요. 살아가다가 삶의 방향을 틀게 하는 무언가의 계기, 소설속에 나오는 그런 만남, 소설과도 같은 삶이었구나 싶더라구요.

 

과학자의 시선이라고 하니 어려운가 싶다면 그런 걱정 따위는 버려도 좋아요.요 근래 이렇게 따듯한 소설을 읽었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 따뜻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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