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편지
조현아 지음 / 손봄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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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였을 때 누구나 가지고 있었을 순수한 호의들. 누군가가 '숨처럼 내쉬던 작은 호의들'을 우리는 분명 어디선가 겪었을 테고 어쩌면 우리가 그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 속 호연이처럼 그 호의에 순수하게 고마워하고 평생 기억하겠다는 단단한 다짐을 하지 않으면, 그 호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대로 가지고 자라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 <연의 편지>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존재와 그 마음에 반가워하고 부러워하고 또 반성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소리'는 학교에서 한 아이를 괴롭히는 무리에 앞을 막아서다 자신 역시 괴롭힘의 표적이 되고 만다. 상황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고 소리가 구해준 지민이도 그리고 소리도, 각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어릴 적 살던 동네로 다시 돌아온 소리는 이전 학교에서의 기억 때문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다 자신의 책상 밑에 붙어있는 편지를 발견하게 된다. 편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판타지적 요소가 과하지 않고 오히려 그 편지를 찾기 위한 간절한 마음과 도움을 주려는 선의가 더해진 기적 같은 느낌이라 좋았다. 또 그 과정에서 소리가 원래의 성격대로 더 적극적이고 씩씩한 모습을 찾아가는 게 좋았다. 어릴 때 선물하려 가져온 종이꽃에 기대 웃는 모습이나, 기차에서 동순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걸어내려오는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 사실 지민이의 편지를 받아 울음을 터트릴 때마저도 성별을 떠나서 참 예쁘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금방 읽어낼 수 있는 책이기에 정말 여러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소리에게 반해서 주변에 소리 같은 친구 한 명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상상을 했다. 

    

 

<연의 편지>는 웹툰으로 연재되었다가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는데 처음부터 책으로 구성되어 그려진 것처럼 컷 분할이나 장면 편집이 너무 잘되어 있어서 좀 놀라웠다. 내 경우에 웹툰은 가끔씩 보긴 하지만 그리 챙겨 보지 않아서 단행본으로 출간되면 책으로 찾아보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런데 웹상에서 연재를 위해 그려진 장면과 단행본에서 한 장면이 당 주어지는 페이지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수정 작업이 만만치 않고 페이지 구성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독자가 받는 느낌이 많이 달라지게 된다고 알고 있다. <연의 편지>의 경우 웹 연재 시 읽어보지 않아 그 차이가 큰지는 알 수 없지만 각 컷마다 꽤 두터운 테두리를 넣어 통일된 형식으로 페이지를 채웠는데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읽힌다고 할까, 깔끔한 편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여름 부친 이 편지가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궁금하고 설레는 날들입니다.

도착한 <연의 편지>를

어딘가에서 읽어주시는 분들,

다시 멀리멀리 날려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조현아 드림

- 책날개, 작가의 말 중

크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에게 호의나 선의를 베푸는 장면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생전 본적 없는 사람이어도 사소한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사람에게 망설이지 않고 손 내밀어 줄 수 있는 정도의 호의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런 마음은 언제 어디서 배우게 된 걸까.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돕는다던가, 같이 운동을 하던 사람의 자세가 잘못되었을 때 바로잡아주고 조언해준다던가, 아이를 안은 아주머니가 짐을 떨어뜨렸을 때 그 짐을 냉큼 주워준다던가 내가 최근에 봤거나 한 행동들에도 그런 사소한 선의가 들어있었다. 호연이가 자신이 받았던 호의를 편지에 담아 다시 보내준 것처럼, 지민이가 소리가 해주었던 행동을 떠올리며 용기 낼 수 있었던 것처럼, <연의 편지>를 읽고 다시 그 편지를 멀리 멀리 날려주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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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 김용택의 꼭 한번 필사하고 싶은 시 감성치유 라이팅북
김용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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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의 시집보다 가볍지만 마음이 동하기 쉬운 예쁜 시들을 읽고 싶어 도서관을 둘러보다 골라 온 책이었다. 드라마 도깨비 때문에 더 유명했던, 시집이자 필사책. 드라마나 서점에서 예쁜 글씨로 필사되어 있던 공간들은 깨끗하게 비어있었지만 필사를 위한 공백들이 나름대로 심심하지 않게 꾸며져 있어 필사하기 좋은 구성이라고 느꼈다. 맨 첫 장을 열면 '감성치유 라이팅북 가이드'라는 제목으로 각 부의 제목에 대한 설명과 각 파트가 담고자 한 메시지를 간략하게 소개해준다. 국내 시인들의 시가 주를 이루지만 세계 각국의 시인들의 시도 섞여있었고, 4부에서는 책의 엮은이인 김용택 시인의 시를 모아두었다. 본문 뒤편으로 시 제목과 시인의 이름으로 다시 원하는 페이지를 찾아볼 수 있는 색인도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쓰인 볼테르의 글귀. 필사책이라서 그런지 이 글귀가 특히나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도 그 반은 독자가 만드는 것이다. - 볼테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보니 책에 필사를 할 수 없어 오랜만에 시노트를 새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는데, 좋았던 시들을 옮겨놓고 보니 내 마음에 든 시들이 꽤 많았던 걸 느꼈다. 엮은 시집이다 보니 유명하거나 다른 시집에서 이미 몇 번 본 시들도 물론 있었지만 그래도 시 감상과 필사라는 두 가지 면에서 다 만족도가 높은 책이었다. 김용택 시인은 이전에도 '시와 대중의 만남을 꾸준히 주선'해준다는 의미로 다양한 테마의 모음, 엮음 시집을 많이 출간했다고 하는데, 이 책은 시와 더불어 최근 많은 관심을 받는 필사, 캘리그래피 등의 취미 분야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인기에는 드라마 도깨비의 영향도 물론 컸다고 생각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시와 필사에 관심 있는 초심자들에게 선물용으로 좋은 책이었다.

시집은 읽을 때마다 좋아하는 시가 변하기 마련이라 생각하지만 이번에 읽었을 때 좋았던 시들을 몇 편 꼽아보니 자연과 생의 수많은 감정을 다룬 시들로 엮었다는 2부의 시들이 많았다. 1부에서는 도깨비에서 공유가 읽어주었던 김인육 <사랑의 물리학>과 왠지 낯설지 않은 시였던 최영미<선운사에서>. 2부에서는 항상 좋아했던 이육사의 <청포도>, 아버지가 딸에게 읊조리듯 말하는 이상국 <혜화역 4번 출구>, 자두를 먹어버렸다는 귀여운 고백의 윌리엄 윌리엄스 <다름 아니라> 등등. 3부에서는 시의 제목을 따온 댄 조지<어쩌면>, 그리고 문정희<비망록> 이 두 편이 기억에 남는다.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읽어본 적이 있어서 4부의 시들은 그리 낯설지 않았는데 <안녕, 피츠버그 그리고 책>이라는 장문의 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참고로 그리 길지 않은 시들이 많아서 캘리그래피나 필사에 필요한 구절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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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하느라 꽃을 피웠을 뿐이에요
나태주 엮음, 한아롱 그림 / 니들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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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으로 유명한 시인, '나태주 시인이 당신의 봄과 인생에게 건네는 시' 를 엮어 만든 책이다. 짧은 시들이 읽고 싶어 고른 책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은 따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쪽을 고를까 하다 그림이 들어가고 조금은 더 가볍고 따스한 느낌의 책을 골랐다. 작가가 쓴 서문과 책 속 삽화들에 마음이 동한 것도 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들이 가장 많고, 그 외에 몇몇 외국 시인들의 시를 함께 엮었다. 작가의 시에는 풀꽃을 포함해 식물과 자연 등을 소재로 쓰인 시가 많다고 느껴졌는데 그래서인지 봄이란 테마에 썩 잘 어울렸다. 책 삽화는 아티스트 한아롱(호칭을 뭐라 적을까 하다 책날개에 쓰인 대로 쓴다. 검색해보니 그림과 캘리그래피 작품 활동을 같이 하시는 듯)의 그림인데 얼핏 아이들의 낙서 같기도 한 몽글몽글한 꽃송이와 복잡하지 않은 그림들은 마치 동시집 같은 인상도 주었다. 가끔 연필 혹은 색연필로 어린아이가 따라 쓴 듯 크고 또박또박하지만 왠지 엉성해 보이는 글씨들이 본문 옆에 있을 땐 어떤 독자가 이 책의 빈 공간에 따라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기억에 남는다.

​​

목놓아 울고 싶다. 그러나 소리 내어 울지는 말아야지. 지그시 울음을 참고 있으면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몇 마디 말이 있을 것이다. / 그것이 우리들의 시다. 이 봄에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우리들의 마음이고 또 시의 문장이다. 부디 당신도 그러시기를 바란다. 울고 싶지만 울지는 마시라. 그대 앞에 눈부신 봄이 있고 그 뒤에 그대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대의 봄을 안고 그대의 인생을 안아보시라.

서문 중, 6-7p

엮은 시집을 연달아 읽다 보니 중복되는 시들을 발견하는 게 조금 재미있었고, 익숙하게 들어봤고 문장은 알았지만 출처를 몰랐던 몇몇의 시들의 출처를 확인하게 되어서 좋았다.(그중 시집의 테마와도 잘 어울리는 퍼시 비시 셸리의 <서풍의 노래>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 책 읽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시의 마지막 문장을 어디선가 보고 꽤 오랫동안 기억해두었는데 이제서야 출처를 발견한 기쁨이 꽤 컸다.) 총 4장으로 나누어진 본문은 각 장에서 행복, 사랑, 삶,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굳이 장을 구분해가며 읽지는 않았다. 삶의 고민을 가진 시인과 그런 시인에게 연민의 눈빛을 보내는 상냥한 소녀의 이야기가 담긴 기어 샤를르 크로스 <룩상부르크 공원에서>라는 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집을 읽다가 놀라기도 하고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던 건 하이쿠가 들어간 페이지의 편집 구성이었다. 목록에 제목이 '바쇼의 하이쿠', '타이키의 하이쿠' 이런 식으로 되어있었는데, 제목이 따로 없고 글자 수 제한이 있는 하이쿠의 문학적 특성을 감안하고,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겠거니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려 해도, 3~5편의 하이쿠를 마치 연작 시처럼 한 페이지에 몽땅 실어버리는 건 정말 어떤가 싶다. 하이쿠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페이지를 보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하이쿠를 아는 사람들 역시 아무리 짧아도 각각이 한 편인 작품인 것을 아는데 블로그나 필사 노트도 아니고 정식 출간된 책에서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걸 보고 싶을까. 우리나라의 시를 예로 들자면 '윤동주의 시'라는 제목으로 한 페이지에 <서시>에 이어서 가운데 별점 하나 그리고 바로 이어서 <자화상>을 이어 써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글의 내용과 형식, 공백까지도 시를 감상하는데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는데다 지금까지 하이쿠를 다룬 책을 몇 편 읽어본 적 있었던 터라 이런 식의 편집은 불편했다. 책 속에서 이미 한두 줄의 짧은 시들을 보여주는 페이지가 있었기에, 하이쿠 역시 그런 짧은 시 한 편과 마찬가지로 다루는게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이쿠 페이지에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충격을 빼면 평화스러운 느낌의 시집이었다. 첫 대면한 나태주 시인의 시들의 느낌을 알아가며 읽었다.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시인의 시가 잔뜩 실려있는데 정작 시 <풀꽃>은 없었던 게 조금 의외이기도 했다. 길지 않지만 긴 여운을 갖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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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 나를 감싸 안는 따뜻한 시 문장들
나태주 엮음, 한아롱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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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응원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전에 내가 당신의 응원이 되고 파이팅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당신도 나의 응원이 되고 파이팅이 되어주십시오.

<서문. 응원이 필요합니다> 중, 5p

시인의 대표시라고 할 수 있는 <풀꽃>의 한 구절이 책의 제목이다. 하지만 이 책은 부제 또한 주목해야 한다. '나를 감싸 안는 따뜻한 시 문장들' 문장들,이라고 말하는 만큼 시의 전문을 싣지 않고 문장들을 발췌해서 수록한 경우가 꽤 많지만 별다른 표기가 되어있지 않아 독자들이 간혹 몇 문장들을 시 전문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2015년에 출간된 책으로 시집으로 보아도 괜찮지만 나태주 시인의 응원이 담긴 기운 나게 해주는 문장집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개인적으론 시집으로 보기엔 시의 전문에 변형을 주었기에(부분 발췌, 가끔은 연행의 분리를 변형 등)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문장집으로 여기고 마음 편히 문장의 내용만을 보았을 때는 나름의 응원과 위로를 받은 책이었다. 바로 이전에 읽은 나태주 시인의 책에 풀꽃이 없는 게 아쉬워 읽게 된 책이다. 참고로 <풀꽃>은 1,2,3편의 연작시로 이 책에는 1과 3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에 쓰인 구절이 포함된 시는 연작시의 첫 번째 작품이다.

 

 

 

 

본문은 6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각자의 제목을 달고 쉼, 희망, 삶, 사랑, 그리다, 사람에 대한 테마를 갖는다. 문장이라 할 만큼 본문의 양이 많지 않기에 글과 그림을 따라 눈을 옮기다 보면 정말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 이전에 읽은 <당신 생각하느라 꽃을 피웠을 뿐이에요>(2018, 이후 '당신 생각'으로 표기)와 그린이가 같았는데, 이 책이 더 먼저 나온 책으로 글의 비중을 줄인 만큼 그림과 캘리그래피에 조금 더 힘을 준 책이다. 그래서 페이지 전체로 보았을 때 참 예쁜 장면들이 많았다. 시와 캘리그래피가 함께 있는 페이지는 본문의 글보다 그림 속 캘리그래피에 먼저 시선이 가기도 했다. 사실 필사도 하고 해서 '당신 생각'과 번갈아 여러 번 읽었는데, 시 전문을 읽고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똑 떼어다 다시 한번 읽는 느낌이 반갑기도 했고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삽화에 캘리그래피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캘리그래피 하기에 좋은 짧은 문장들이 정말 많아서 캘리 취미를 갖는 사람들에게 특히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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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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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걸어다는 배우 하정우라 자기소개를 한 저자가 걷기 예찬 겸 걷기와 관련된 그의 생활과 생각에 대해 쓴 이 책의 평이 좋다는 얘기를 출간된 즈음부터 주변에서 그렇게 많이 들었다. 올해부터 돈 들이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걷기와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된 참에 읽어볼 만한 책이다 싶어 리스트에 올려놓고 동네 도서관의 기나긴 예약 시간을 거쳐 드디어 읽었다. 본업은 배우, 그 외에도 화가, 감독으로도 활동하며 글까지 쓰는 다재다능한 사람 하정우는 어떤 사람인지, 그저 배우 하정우로 스크린을 통해 보았을 때보다 그가 쓴 책을 읽어본 지금 조금은 더 친숙하게 하정우란 사람을 알게 된 느낌이다.

보통 직장인의 경우 하루 평균 6000천보를 걷는다는 이야길 어디서 듣고, 올해 초 나도 평균 언저리는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매일 최저 5천보는 걷자 하는 목표치를 세웠다. 별도의 기기 없이 핸드폰으로 기록되는 걸음수를 보면 하루 5천보 채우기도 생각보다 녹록지 않아서 걸음수가 모자라는 날이면 항상 저녁식사 후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게 일과다. 이 정도 양에도 그나마 매일매일 목표치를 채우는 걸 뿌듯해하던 중 하루 3만 보, 가끔은 10만 보(1부의 제목)를 걷는다는 내용을 보자니 조금 시무룩해지기도 했지만(내가 하루 종일 걸려 걷는 양을 작가는 아침에 일어나 러닝머신 40분으로 끝내버린다 하니 조금 허무...)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고 걸음이 다르다는 상냥한 서문에 위로받고 점점 걸음수를 늘려나가자 다짐하게 되었다.

전반에 걸쳐 작가가 말하는 걷기의 장점은 대부분 공감하고 있는 것이기에 별다른 감흥 없이 읽었다. 하지만 글을 꽤 매끄럽게 써낸 필력도 있고, 걷기를 통한 자기관리, 함께 걷는 사람, 걷기 외에 좋아하는 것(먹기, 작품 활동 등)에 대한 생각들 등등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쓴 내용이 더 와닿았다. 기본적으로 저자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점도 있지만, 걷기를 기본으로 자신을 탄탄하게 잡아두려 노력하며 지내왔다는 게 느껴졌다. 걷기 위해 하와이에 간다는 일반인에겐 좀 무리한 일상은 약간 별나라 이야기 같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도 해지는 시간의 그 오묘한 하늘색을 보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노을을 모자처럼 머리 위에 얹고 걷는 게 좋다' 라는 그 표현에는 충분히 공감하기도 했다.

 

 

 

열심히 걸은 뒤에 먹는 밥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열심히 걸어야 하고 열심히 걷는 사람은 잘 먹게 될지니, 걷기와 먹기는 환상의 짝꿍이다. (본문 중 124p)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이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십 분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본문 중 206p)

 

 

 

 

좋아하는 걸 이야기하다 보면 이야기하는 사람도 신이나기 마련인데 걷기와 먹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특히 뭔가 신나서 한 번에 써 내려간 글같이 느껴져서 읽으면서도 꽤 즐거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남에게 이야기할 때 듣는 사람도 그걸 좋아하게 만드는 것 또한 일종의 재주인데, 작가에게는 어느 정도 그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론 그의 목소리와 말투에 익숙한 탓인지 부분적으로 머릿속에서 본문을 읽어주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재미있었다. 책에 수록된 사진들도 대부분 '나 오늘도 걸었다'하는 인증 사진 같아서 재밌었다. 표지 속 사진처럼 힘을 좀 뺀 상태에서, 그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는 하정우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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