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 생각하느라 꽃을 피웠을 뿐이에요
나태주 엮음, 한아롱 그림 / 니들북 / 2018년 4월
평점 :
'풀꽃'으로 유명한 시인, '나태주 시인이 당신의 봄과 인생에게 건네는 시' 를 엮어 만든 책이다. 짧은 시들이 읽고 싶어 고른 책이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은 따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쪽을 고를까 하다 그림이 들어가고 조금은 더 가볍고 따스한 느낌의 책을 골랐다. 작가가 쓴 서문과 책 속 삽화들에 마음이 동한 것도 있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들이 가장 많고, 그 외에 몇몇 외국 시인들의 시를 함께 엮었다. 작가의 시에는 풀꽃을 포함해 식물과 자연 등을 소재로 쓰인 시가 많다고 느껴졌는데 그래서인지 봄이란 테마에 썩 잘 어울렸다. 책 삽화는 아티스트 한아롱(호칭을 뭐라 적을까 하다 책날개에 쓰인 대로 쓴다. 검색해보니 그림과 캘리그래피 작품 활동을 같이 하시는 듯)의 그림인데 얼핏 아이들의 낙서 같기도 한 몽글몽글한 꽃송이와 복잡하지 않은 그림들은 마치 동시집 같은 인상도 주었다. 가끔 연필 혹은 색연필로 어린아이가 따라 쓴 듯 크고 또박또박하지만 왠지 엉성해 보이는 글씨들이 본문 옆에 있을 땐 어떤 독자가 이 책의 빈 공간에 따라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여서 기억에 남는다.
목놓아 울고 싶다. 그러나 소리 내어 울지는 말아야지. 지그시 울음을 참고 있으면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몇 마디 말이 있을 것이다. / 그것이 우리들의 시다. 이 봄에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우리들의 마음이고 또 시의 문장이다. 부디 당신도 그러시기를 바란다. 울고 싶지만 울지는 마시라. 그대 앞에 눈부신 봄이 있고 그 뒤에 그대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대의 봄을 안고 그대의 인생을 안아보시라.
엮은 시집을 연달아 읽다 보니 중복되는 시들을 발견하는 게 조금 재미있었고, 익숙하게 들어봤고 문장은 알았지만 출처를 몰랐던 몇몇의 시들의 출처를 확인하게 되어서 좋았다.(그중 시집의 테마와도 잘 어울리는 퍼시 비시 셸리의 <서풍의 노래>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 책 읽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시의 마지막 문장을 어디선가 보고 꽤 오랫동안 기억해두었는데 이제서야 출처를 발견한 기쁨이 꽤 컸다.) 총 4장으로 나누어진 본문은 각 장에서 행복, 사랑, 삶,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굳이 장을 구분해가며 읽지는 않았다. 삶의 고민을 가진 시인과 그런 시인에게 연민의 눈빛을 보내는 상냥한 소녀의 이야기가 담긴 기어 샤를르 크로스 <룩상부르크 공원에서>라는 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집을 읽다가 놀라기도 하고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던 건 하이쿠가 들어간 페이지의 편집 구성이었다. 목록에 제목이 '바쇼의 하이쿠', '타이키의 하이쿠' 이런 식으로 되어있었는데, 제목이 따로 없고 글자 수 제한이 있는 하이쿠의 문학적 특성을 감안하고,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겠거니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려 해도, 3~5편의 하이쿠를 마치 연작 시처럼 한 페이지에 몽땅 실어버리는 건 정말 어떤가 싶다. 하이쿠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페이지를 보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하이쿠를 아는 사람들 역시 아무리 짧아도 각각이 한 편인 작품인 것을 아는데 블로그나 필사 노트도 아니고 정식 출간된 책에서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걸 보고 싶을까. 우리나라의 시를 예로 들자면 '윤동주의 시'라는 제목으로 한 페이지에 <서시>에 이어서 가운데 별점 하나 그리고 바로 이어서 <자화상>을 이어 써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글의 내용과 형식, 공백까지도 시를 감상하는데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는데다 지금까지 하이쿠를 다룬 책을 몇 편 읽어본 적 있었던 터라 이런 식의 편집은 불편했다. 책 속에서 이미 한두 줄의 짧은 시들을 보여주는 페이지가 있었기에, 하이쿠 역시 그런 짧은 시 한 편과 마찬가지로 다루는게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이쿠 페이지에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충격을 빼면 평화스러운 느낌의 시집이었다. 첫 대면한 나태주 시인의 시들의 느낌을 알아가며 읽었다.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시인의 시가 잔뜩 실려있는데 정작 시 <풀꽃>은 없었던 게 조금 의외이기도 했다. 길지 않지만 긴 여운을 갖는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