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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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걸어다는 배우 하정우라 자기소개를 한 저자가 걷기 예찬 겸 걷기와 관련된 그의 생활과 생각에 대해 쓴 이 책의 평이 좋다는 얘기를 출간된 즈음부터 주변에서 그렇게 많이 들었다. 올해부터 돈 들이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걷기와 달리기에 관심을 갖게 된 참에 읽어볼 만한 책이다 싶어 리스트에 올려놓고 동네 도서관의 기나긴 예약 시간을 거쳐 드디어 읽었다. 본업은 배우, 그 외에도 화가, 감독으로도 활동하며 글까지 쓰는 다재다능한 사람 하정우는 어떤 사람인지, 그저 배우 하정우로 스크린을 통해 보았을 때보다 그가 쓴 책을 읽어본 지금 조금은 더 친숙하게 하정우란 사람을 알게 된 느낌이다.

보통 직장인의 경우 하루 평균 6000천보를 걷는다는 이야길 어디서 듣고, 올해 초 나도 평균 언저리는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매일 최저 5천보는 걷자 하는 목표치를 세웠다. 별도의 기기 없이 핸드폰으로 기록되는 걸음수를 보면 하루 5천보 채우기도 생각보다 녹록지 않아서 걸음수가 모자라는 날이면 항상 저녁식사 후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게 일과다. 이 정도 양에도 그나마 매일매일 목표치를 채우는 걸 뿌듯해하던 중 하루 3만 보, 가끔은 10만 보(1부의 제목)를 걷는다는 내용을 보자니 조금 시무룩해지기도 했지만(내가 하루 종일 걸려 걷는 양을 작가는 아침에 일어나 러닝머신 40분으로 끝내버린다 하니 조금 허무...)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고 걸음이 다르다는 상냥한 서문에 위로받고 점점 걸음수를 늘려나가자 다짐하게 되었다.

전반에 걸쳐 작가가 말하는 걷기의 장점은 대부분 공감하고 있는 것이기에 별다른 감흥 없이 읽었다. 하지만 글을 꽤 매끄럽게 써낸 필력도 있고, 걷기를 통한 자기관리, 함께 걷는 사람, 걷기 외에 좋아하는 것(먹기, 작품 활동 등)에 대한 생각들 등등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며 쓴 내용이 더 와닿았다. 기본적으로 저자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점도 있지만, 걷기를 기본으로 자신을 탄탄하게 잡아두려 노력하며 지내왔다는 게 느껴졌다. 걷기 위해 하와이에 간다는 일반인에겐 좀 무리한 일상은 약간 별나라 이야기 같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도 해지는 시간의 그 오묘한 하늘색을 보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노을을 모자처럼 머리 위에 얹고 걷는 게 좋다' 라는 그 표현에는 충분히 공감하기도 했다.

 

 

 

열심히 걸은 뒤에 먹는 밥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열심히 걸어야 하고 열심히 걷는 사람은 잘 먹게 될지니, 걷기와 먹기는 환상의 짝꿍이다. (본문 중 124p)

독서와 걷기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저는 그럴 시간이 없는데요'라는 핑계를 대기 쉬운 분야라는 점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하루에 20쪽 정도 책 읽을 시간, 삼십 분가량 걸을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본문 중 206p)

 

 

 

 

좋아하는 걸 이야기하다 보면 이야기하는 사람도 신이나기 마련인데 걷기와 먹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특히 뭔가 신나서 한 번에 써 내려간 글같이 느껴져서 읽으면서도 꽤 즐거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남에게 이야기할 때 듣는 사람도 그걸 좋아하게 만드는 것 또한 일종의 재주인데, 작가에게는 어느 정도 그 재주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론 그의 목소리와 말투에 익숙한 탓인지 부분적으로 머릿속에서 본문을 읽어주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재미있었다. 책에 수록된 사진들도 대부분 '나 오늘도 걸었다'하는 인증 사진 같아서 재밌었다. 표지 속 사진처럼 힘을 좀 뺀 상태에서, 그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는 하정우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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