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 - 페미니스트가 말하는 남성, 남성성, 그리고 사랑
벨 훅스 지음, 이순영 옮김, 김고연주 / 책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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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아이들과 여성들-그리고 남자아이들도-모두 공통적으로 이 비밀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남자들에 관한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111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몸에는 생물학적으로 섹스에 대한 갈망이 내장되어 있다고 믿지만 

사랑에 대한 갈망이 내장되어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141




어떤 책은 경험의 밑바닥을 들어올린다. 썪고 부유해서 형체가 온전하지 못한 부분을 이렇게 들어 올려 보인다. <남자다움이 만드는 이상한 거리감>을 읽으면서 그랬다. 내가 느꼈던 무력함과 이해할 수 없던 부분들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 감정을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볼 수 있었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나는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갖게 되었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무엇을 더 할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더 큰 분노와 더 큰 화를 낼 수 있게 되었지만 힘이 들었다. 내가 아는 이들을 '미워한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앞이 '막혔다'는 느낌이었다. 그 후에 남는 것은 허탈함과 절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는 기쁘지 않았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kai_rev님 트위터 캡쳐.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자라면서 가장 많이 배우는 것 하나는 가부장제 시스템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 단어를 전혀 모른다 해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가부장적 성역할을 떠맡으며 이를 가장 잘 수행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끊임없이 지도받기 때문이다. 52

 

 

'어릴 때부터 가부장적 성역할을 떠맡으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위 트윗은 '라면'이라는 한 요리가 가족의 구성원 중 어떤 이를 통해 나오느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읽히는지 잘 보여준다. (중요: 라면이라는 요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르게 읽히는 정도가 바로 성역할을 의미한다. 최근에 추석도 있었으니 긴 말없이 자신의 추석을 생각해 보면 되겠다. 드러나 있는 나의 성에 따라 '앉는 자리''하는 일'이 달라진다. 이것은 말하자면, 모든 인간을 같은 범주에 놓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풍경이다. 추석 풍경이나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누가 앉아서 술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가, 누가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원래' 그것을 더 잘하는 사람은 없다. 누가 그 사람을 그 자리에 놓는가 만 있을 뿐이다. 위계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다. 어떤 성이 다른 성을 억압하는지도 사족처럼 따라 읽힌다.

 

벨 훅스는 '가부장제'는 정신질환의 하나라며 강력한 훅을 날리는데 이보다 정확한 말은 없어 보인다. 이 단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가부장제'를 이해할 만한 열쇠가 없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어떤 종교보다 강한 믿음으로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 역시 그렇다. 내가 찾지 못했던, 그러나 찾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이 나가야 할 길은 바로 이 가부장제를 알고, 이 아래서 억압받는 남성과 여성이 바로 '우리'임을 알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가부장제 아래 체화된 이들을 공격하고, 잘못되었다고 분리하고 격리하는 건 우리가 건강해지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니까 여성들 대부분은 적어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 마음을 친한 친구에게든 치료사에게든 혹은 비행기나 버스에서 옆에 앉은 낯선 이에게든 말할 수 있다. 남성들은 가부장적 관습에 따라 일종의 감정적 금욕을 배운다. 이 가부장적 관습에서는, 아무 느낌도 갖지 않는다면 더 남자다운 것이겠지만 혹여 무엇을 느끼고 그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해도 그 느낌을 틀어막고 그 느낌을 잊고 그 느낌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남자다운 태도라고 가르친다. 30

 

누가, 그렇게 가르치냐고 물을 수 있다. 사회 전체가 그렇게 이끈다. '남자답게'라는 말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점을 포함한다. 아버지의 분노와 체벌로 크지 않은 이들이라도 창피를 주거나 눈치를 주는 식으로 성역할에 맞는 행동을 하며 자라왔다.

 

조지 와인버그는 <왜 남자들은 자신을 던지려 하지 않는가>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이미 완벽한 상태에 있는 여성을 찾는데, 관계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기본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그 문제에 대해 말하기보다 빗장을 지르는 편이 더 쉬워보인다" 남자다운 척한다는 것이 말하는 바는 진짜 남자라면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33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이 표현해도 된다고 인정해주는 딱 한 가지 감정이 있다. 바로 분노라는 감정이다. ...어떤 사람이 고통이나 영혼의 괴로움을 감추려 할 때, 분노는 그것을 숨기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34

 

나는 '아버지'라는 대명사가 슬픔 대신에 분노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버지만큼 슬픈 사람도 없게 된다. 하지만 슬픔은 울거나 무너지는 슬픔의 방법으로만 드러나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의 감정으로 순화될 수 있다. 분노는 진짜 감정을 멀어지게 하고 주위의 공분과 두려움만을 살 뿐이다. 슬픔이 약함이라는 증거인 양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약하다면 왜 안되는지 대답하지 못하면서 슬픔을 가린다. 어떤 문제에 정답과 오답은 있으면서 감정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정답과 오답을 내릴 수 없었다. 감정에 대해서 왜 배울 수 없었는지, 배우려고 하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가진 감정은 거의 ''. 그게 아니고서는 나일 수 없다. 내가 느끼는 것, 감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것. 이것은 '언어'를 배우고 어떤 ''을 배우는 것만큼 소중하다.

 

(...)남성이 여성을 지배해야 하며 강한 남자들은 자신보다 약한 남자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배운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남성들은 가부장적 사고와 실천을 순순히 따를 때 자신들이 받게 되는 주요 보상들 중 하나가 성적으로 여성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리라고 일찌감치 배운다. 그리고 여성이 주위에 없다면, 그들은 자신보다 약한 남성을 '여성'의 자리에 놓을 권리를 갖는다. 143

 

성교를 뜻하는 남성 중심의 속어인 'fuck'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을 fuck한다는 것은 그녀와 섹스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상황에서 누군가 fuck하는 것은 (...)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그를 속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대개 폭력에 대한 암시이거나 폭력을 가하겠다는 위협이다. 사람들은 섹스와 폭력을 여전히 같은 단어로 사용한다. 섹스가 폭력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생각과 섹스가 명백히 폭력적이라면 강간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에 반대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가부장제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153

 

남성은 섹스를 하면서 사랑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감정적 만족을 얻고 싶어 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섹스를 통해 살아 있고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얻을거라고, 가깝고 친밀하다는 느낌과 기쁨을 얻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섹스는 그런 좋은 것들을 주지 않는다.

 

성에 관한 이야기는 내 이야기를 덧대서 이야기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완벽하게 이 책을 읽을 이들을 격려하고 이해할 수없었던 것들을 설명하는데, 벨 훅스의 글은 어떤 심리학, 의학서보다 남성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

 

 

비어만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를 비롯한 모든 남성들의 미래 모습은 우리가 부정하도록 훈련받아온 인간성의 모든 부분을 되찾는 것이다. 섹스에 대한 집착이 치유될 수 있으려면, 굳이 없어도 어떻게든 지낼 수 있다고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인간 경험의 본질적인 면을 되찾아야 한다. 서로에 대한 친밀감, 나이와 배경과 성을 막론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그들에게 연결되는 것, 자신의 몸으로 느끼는 감각적인 즐거움, 열정적인 자기표현, 마음을 들뜨게 하는 갈망, 자신과 또 다른 사람에 대한 다정한 사랑, 나약함, 어려울 때 받는 도움, 편안한 휴식, 많은 사람들과 많은 종류의 관계를 맺고 가까이 지내는 것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303

 

이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페미니스트 아동문학이나 페미니즘에 대해서 공교육과 사교육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 감정의 본질적인 모습을 알 수있는 것, 비어만이 한 말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능하다면 이들이 어른이 된 시점에서는 굉장히 많은 사회적인 문제가 해결돼 있을 것이다. 나와 나의 세대가 7살 때 이것을 알았더라면, 13살에, 17살에 그리고 21살 때 알았더라면. 내 삶은, 내가 사는 사회는 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것들을 느끼고 표현했을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을 배우고, 소통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을 '희망'을 갖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마음이 아파서 읽은 기록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했다. 내가 읽어본 최고의 치유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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