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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전자 전쟁 -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조적 파괴
칼레 라슨 & 애드버스터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홈플러스가 선보인 건강카트 2012. 4
카트 말인가? 백 원을 넣으면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카트 무더기에서 하나를 빼낼 수 있고, 다른 카트에 끼워야 달칵 하면서 백 원을 돌려주는 <꽤나 합리적으로 생긴 물건>말인가. 요새는 칼로리 소비량도 측정 해준다던데. 마트를 돌아다니면서 운동량도 쟬 수도 있으니 <꽤나 똑똑하고 기특한 물건>아닌가. 아니, 장을 다 보고 빈 카트를 원래 카트 무더기에 놓아야 하것만 이것을 귀찮아하면 찾지 못한다는 '백 원' 말인가. 어떤 이는 카트의 '백 원' 쯤이야 넓은 아량으로 그냥 주고 돌아서고 어떤 이는 이런 행위에 분개해 잡지를 만들게 되었다는 문제의 '동전' 말인가. 그 어떤이는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를 비틀어 그것을 공격하는 총알을 만들었다는데. 칼레 라슨과 그가 만든 <애드버스터스>의 이야기이다.
문화유전자라는 다소 낯선 말, meme밈이라고 읽는 편이 낫겠다. 그 밑엔 조금 더 낯선 부제가 있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조적 파괴>, 잔뜩 긴장하며 몇 장을 넘기면, 몇 장을 넘겨도 본문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멀다. 의미를 알기 어려운 흑백의 풍경이 계속된다. '별 의미 없는 사진'이라며 긴장을 푸는 순간 이런 문구를 만나게 된다. '왜 우리는 아무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생각해 본적 없는 물음. 대답을 생각하면서 다음 장을 넘기면 '빅뱅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라고 써 있다. 그건 좀 더 어려운 걸. 다음 장에는 '이 땅위에 존재하는 생명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고 묻는다. 멈칫한다. 저녁으로 먹은 맥도날드 부스러져있는 쓰레기, 반쯤 남은 콜라, 자리를 치우느라 뜯어낸 휴지, 말하자면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는 '나'의 의미 말인가? 쓰레기를 만드는 것과 쓰레기로 남는 것의 차이? 쓰레기와 쓰레기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동시에 존재하는 이유? 싸구려 고기 볼에 가득한 채 몇 개의 그래프를 넘긴다. "그래, 경제학을 공부하신다고?"
이 책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허구를 까발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경제학의 대안을 제시한다. 총 10장으로 각 장은 창의적인 광고와 패러디의 유기적인 나열, 적절한 문구가 더해져 마음을 움직이는데 최적화 되어있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분야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학자들의 글을 실어서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책을 넘기기 전에 신+고전파 라는 이름부터 알고가자. 이것은 '인간을 합리적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가정 하에 경제를 설명하고 제시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인간은 합리적이다' 웃음이 다 나온다. 웃음을 틀어 맨 이 근엄한 말은 '진짜 인간'을 오해하고 있다고 외친다. 지금의 세계는 신고전파라는 '신화'를 만들기 위해 본성을 억제당한 인간들을 배출하는 '기이한 구조'로 이뤄졌다고 해야 한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손', 언제 적 얘기인지, 이 손은 논리의 빈곳을 메꾸며 사람과 환경을 좌지우지 한다. 이상 상황 파악 끝. 칼레 라슨이 말하고 싶은 것은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그릇된 신화를 부수가 위해서 필요한 전쟁을 선포한다. '문화유전자'를 통한 파괴뿐이라고.
앞에서 말했던 '극대화의 추구'를 조금 더 살펴보자. 거의 전 세계의 모든 개인과 나라의 목표인(지금도 여전하다) 이것은 어떤 숭고한 목적이 있을 것 같지만 어리석게도 그저 '부는 있을수록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간은 얼마나 부유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러는 동안에 기아와 자연재해,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죽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심각한 생태 위기는 TV가 말하지 않아도 피부에 닿고 호흡에서 느끼지 않나. 망할 미세먼지. 부의 극대화는 환경파괴의 극대화도 이뤘다.
지구는 규제를 벗어난 이 모든 경제 활동을 지탱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고 우리는 심각한 생태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제는 극대화만을 추구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이제부터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생산을 줄여야 합니다. 생산이야말로 지구에 숱한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니까요. 생태 위기가 뜻하는 바는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을 백지 상태에서 다시 사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p.157.
지구의 피해에 경제학이 개입했다는 고백이다. 경제학의 방향을 수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산자를 넘어선 생산량을 위해 달릴 것이고 지구가 버틸 수 없게 된다. 부를 목표로 하는 (잘 살아 보려는)삶은 근본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을 위협하는 셈이다. 소비주의가 과연 인간 본성의 일부인가. 그게 아니고서야 생산과 소비에 모든 것을 걸지 않을 수 없잖나. 무엇을 사지 않고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처럼 매일 소비하는 사람들. 그러나 본능에 내재 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압력으로 형성된 역할극이라면? 역시나, 가난한 사람들 모두 문명의 이기를 선호 할 것이란 예상은 틀렸다. 원주민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좋은 삶에 대한 기준이 달랐기 때문인데, 원주민들은 가족 관계와 공동체의 관계를, 그리고 어머니 자연과의 관계가 '문명의 이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부를 쌓느라 놓친 것을 생각할 수 있겠다. 앞서 원주민들이 물질을 제끼고 지켰다는 가치가 흰트다. 가족 관계와 공동체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 파괴된 지구는 말할 것도 없다. '개인의 탁월함과 공동체의 가치를 저버린지 오래'라는 케네디의 연설을 인용한다. 213. 무려 68년에 퍼졌던 말이지만 상황은 그때보다 악화되어 잘 맞아 떨어진다.
미국의 GNP는 연간 8,000억 달러를 넘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됩니다. 대기 오염, 담배 광고, 고속도로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구급차, 현관문에 다는 특수 자물쇠와 이 잠물쇠를 부수는 사람을 가두는 감옥. (...)하지만 다음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 놀이의 즐거움. 시의 아름다움. (...)한마디로 GNP에는 삶을 살아갈 만하게 만든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p. 213.
이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경제를 잘 설명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현재까지도 나라의 부를 가늠하는 지표로 쓰여 왔다. 내가 크게 놀란 것은 이 다음 장, <진짜 비용>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진짜 비용을 계산하는 부분이다. "자동차가 내뿜는 탄소의 환경 비용, 도로를 건설하고 보수하는 비용, 교통사고로 인한 의료비용, 도시 확장으로 인한 소음과 불쾌함, 심지어 주요 유전과 송유관을 보호하는 군사비용까지 전부 합산한다. 자가용을 사려면 최소 1억 원, 휘발유 한 번 주유하려면 30만 원은 족히 들 것이다. 운전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운전해도 괜찮지만, 미래 세대나 지구 반대편의 무고한 사람들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부담해야 한다. 그러면 부자들만이 마음껏 사치를 누리는 세상이 아니라 그 반대의 세상이 될 것이다." 221
이런 비용을 생각한다면 자동차는 탈 수가 없다. 우리는 그 모든 비용을 계산 하지 않고 먼 미래에 채무 하고 있었다. 그저 합리적인 경제활동, '지속 가능성'이라는 딱지에 안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실재의 본질은 자본과 <자연>이다. 둘 다 천상 저 너머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는 유출된 원유가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저 너머>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p. 246.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비꼬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티머시 모턴의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1) 사물의 본질은 다른 곳(자본, 무의식, 존재의 심층 구조)에 있다. 2) 본질 따위는 없다(행성 지구가 지금 큰 곤경에 처한 한 가지 이유는 답이 명쾌하지 않아서다. 이건 마치 회갈색과 갈회색 중 하나를 선택하는 꼴이니까). 그래서 여기 제3의 답안이 있다. 3) 본질은 존재한다. p. 246.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일까. 살아가는 것으로 생기는 부같은 '부산물'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행위자체일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느낌을 잃지 않기 위한, 정서적 교류를 지속하기 위한,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정서적 핵심 지대에 머물기 위한 영적 싸움이다'.p. 264.
잘 모르겠다면 세 가지 질문을 기억하면 된다. 책은 마치면서 처음, 난데없이 시작한 질문을 다시 묻는다. 1) 우리는 누구인가? 2)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3)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지구와 인간 경제의 체제의 재인식, 재구성에 있다. 인간 경제가 지구보다 상위에 위치하는 신고전파 패러다임을 버리고 그 반대의 위치를 갖는 생태주의 패러다임으로 건너가는 것. 이것은 자연 뿐만 아니라 인간도 살게 하는 새로운 질서다. 꿈같은 이야기다. 싸구려 고기를 다 삼키고 플라스틱물병을 든다. 이 역시 얼마나 많은 '가격'이 매겨져야 합당한 ‘물’인지 생각한다. 생각과 실천을 준비한다. 실천이 당장 어렵다면 생각을 퍼뜨리는 수밖에. 밈이 그런 의미 아닌가. meme : 유전자처럼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거나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는 비유전적 문화요소. 이제 새로운 '문화 유전자'를 받아들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