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목걸이 -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메리 린리 테일러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은 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일기의 특징, 오래 쌓이면 기록이 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20세기 초, 한국이 만났던 무수한 외국인 중에 기억해야 할 어떤 여성의 이야기가 그렇다. '메리 린리 테일러.' 그녀는 영국인으로 자신의 나라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버리고 연극배우로서 동남아를 순회한다. 전쟁과 가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문화를 만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는 일본에서 머물 때 만났던 미국인 브루스와 결혼하면서 한국에 오게 되는데, 여기까지 행로만 보아도 그녀가 가진 특별함을 짐작할 수 있다. 한 세기가 지난 요즘에도 보기 드문 사람이다.

 

진취적인 그녀가 있던 배경이 바로 '일제강점기의 한국'이라는 점은 이 이야기가 개인의 삶이자 어떤 기록의 '가능성'을 추측하게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한 인간으로서의 삶이 더 궁금할 수 밖에 없는데. "네가 어떻게 한국에서 산단 말이니?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찾을 수 없는 나라에서!" 232 라는 그녀 어머니의 말씀이 오늘날 한국에 사는 내 귓가에도 닿기 때문이다.

 

그녀가 한국과 얼마나 소통할 수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녀는 약소국에게 일방적으로 적용되었던 치외법권처럼 진공된 공간 '딜쿠샤'에서 한국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한국에 있는 영국의 집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때 나는 왕비가 파티에서 입을 옷을 고르는 일을 도왔’고 232 ‘내 병실의 창은 황제의 장례 행렬을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위치’ 232 였다고 적는다. 그녀는 인생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생각까지는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동양의 정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하지만 서양의 우월함이 곳곳에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히 그녀와 그녀의 남편 브루스가 한국의 근현대에 미쳤던 중요성보다 그날을 복원한 풍경에 오래 머물게 된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깡충거리며 사방치기를 했다. 바닥에 대충 사각형을 그려놓고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것이, 서양에서 하는 방식과 거의 비슷했다. 다만 이 아이들은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포대기로 등에 아기 동생을 한 명씩 업고 있었고, 아이들이 뛸 때마다 업힌 아기들의 머리도 건들건들 흔들렸다. 380

 

아이를 등에 엎은 아이의 놀이. 건들건들 흔들리는 머리의 풍경이 그날 서울에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석탑을 통째로 떠와서 선물 주는 장면은 당시 문화재가 '선물'같은 것으로 쉽게 수탈되었던 것을 보여준다."소달구지에 실어서. (‥‥‥)  한 조각 한 조각씩 지게로 져다 날랐지. " 그리고 메리가 처음 김치를 먹었던 날, 그때의 기록도 흥미롭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목구멍에 불이 난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밥을 듬뿍 떠서 꿀꺽 삼켰다."215 브루스가 등을 토닥였던 대견하게 보던 옆에서 그때의 김치맛,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녀의 삶과 함께 엮인 20세기 전반 한국의 풍경, 충실히 꿰매서 묵직하게 빛나는 목걸이를 읽는다. 그녀는  인생이 아름답게 만들어진 목걸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목걸이에 쓰이는 보석을 한 알 한 알 골라서 꿰메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희소한 목걸이가 있는 좌판을 떠나 내 뒤에 쌓인 모래 같은 이야기를 돌아본다. 그곳에서 나의 한 알을 찾는 일이 『호박 목걸이』가 전해준 목소리에 대한 대답일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