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트] 만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1~3 세트 - 전3권 - 더 깊고 풍부해진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ㅣ 만화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수박 그림 / 별천지(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개미 혹은 마야, 마르크스 혹은 핑크 플로이드, 그리고
고백하건데 나는 이 책을-학습용 만화시장에-적합한 기획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성공을 다시 한번 부흥시키기 위해 만화로 옮겨 놓은 것일 뿐이라고 폄하했다. 이것은 슬쩍 본 그림에서 비롯된 비호감에서도 기인했다. 인물의 비율이며 인상이며, 그림이 이게 뭔가?(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후 생각이 바뀌었다. 잘 못 그리는 듯한 그림은 [작화는 이야기를 도울 뿐]을 실천하려는 김수박의 고도의 계산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적당히 못 그린 작화는 지문에 집중을 방해하지 않으며, 만화의 구성은 지문을 쉽게 이해하고 진행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오해를 반성하며 쓴다. 언젠가 둘러 앉은 저녁에서 <상상력 사전>에 관한 이야기를 할 가족을 상상하며 적는다. 단언컨데,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원작 이상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원작과 다른 새로운 구성
우선, 이 책은 전작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하 백과사전)과 전혀 다른 구성을 갖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이하 베르나르)수집하고 생각했던 백과사전 형식의 책은 말 그대로 사전식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상상도 하지 못한 것 표제어가 제시되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각각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베르나르 한 사람의 생각과 관심에서 시작된 책이기 때문에, 단절된 이야기지만 앞 뒤가 이어지거나 확장되는 주제가 많다. 이것을 재구성 하는 것은 책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이해했음을 의미하고 그것을 새롭게 만드는 창작과 다름없는 일을 뜻한다. 전체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그 내용 안에 분절된 마디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베르나르의 방대한 관심과, 들쑥날쑥한 이야기를 고른 호흡과 예상 가능한 주기로 정리해 독자를 이끈다.
이야기 밖의 주인공들
이 새로운 구성은 원작의 백과사전에 없었던 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주인공은(얼마나 촌스러운 이름인지) 헐렝이, 이쁜이, 멋쟁이이다. 새로운 세 명과, 원작에서도 역시 없었던 베르나르 본인이 친근한 얼굴로 등장하며 그린이 김수박 또한 화자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소소한 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이것은 만화라는 양식을 채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왜 스무살 인가
원작 <백과사전>은 읽을 대상의 나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쉬운 부분도 있지만 딱딱한 부분이 더 많다. 어렵고 다방면에 흩어져 있는 관심을 쉽게 풀고자 만화로 기획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주인공이 나이가 스무살인가. 대부분 스무살은 더 이상 학습용 만화를 보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의문이었다. 예를 들어 학습만화의 신기원 이원복의<먼나라 이웃나라>를 보면 주인공은 이름과 나이가 명확하지 않다. 화자가 이원복 자신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웃나라에 대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화자는 화자만의 나이나 고민을 갖을 이유가 없었다.
사랑은 우리 모두의 초점
이들이 교복을 입은 청소년이었다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독자도 더 명확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김수박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만화는 단지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에게 더 쉽고, 틀을 깨는 방법으로 다가 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세 주인공은 사랑을 하고 술을 먹기도 하며 군대도 간다. 이들은 우선 만화의 주인공이어서 <상상력 사전>을 이야기 하지만 스무살이 갖고 있는 고민을 조금씩 내보인다. 중요한 점은 작가가 이들은 이십대가 아니라 '스무살'에 고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름을 대명사로 하지 않고 어리숙한 것을 가져온다.(헐렝이, 이쁜이, 멋쟁이) 책을 읽을 대상은 우선 고등학생까지이기 쉬운데 이 책은 중고등학생이 바라보는 스무살의 호기심(스무살은 과연 무엇일까) 스무살 이후에서 바라보는 스무살(스무살이 포함된 이십대의 대체적인 고민)을 모두 잡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화자가 스무살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랑'의 관념적인 이야기가 가능했다. 헐렝이와 이쁜이가 자신과 남에 대해서 이해하고, 사랑을 하고, 맞춰 나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가는 것이 <상상력 사전>의 큰 틀로 움직인다. 이 안에서 다른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조합되며, 독자층을 청소년에게 한정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점은 일반 어른이 읽어도 좋다. 그럴듯 하게 포장되어 나오는 "심리 실용서"보다 더 나를 돌아보는 데 이로울 것이다. 스무살은 <상상력 사전>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물으며 때로는 반박하는 것을 스무살의 멍청함과(어른인가 아이인가) 스무살의 명민함(중2와 비교할 수 없는 날카로움)으로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김수박은 누구인가
이 책의 최대 수확은 김수박의 시선이나 생각이 곳곳에서 배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념]을 설명하는 장에서, 공산주의 관념을 설명한 후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나온다. 원작에서 하려는 이야기는 "문명은 관념들 간의 투쟁을 통해 발전한다"는 것이었을 테지만 "공산주의라는 관념이 쇠퇴해서 소수의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라는 관념도 변하게 만들었다." 라는 내용이 따라온다. 여기에 "인터넷에서 어떤 관념을 전파하거나 퍼올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이 붙는다. "관념이 만든 사람이나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보다 더 강력하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이것은 대상이 명확하다. 일베나 디씨 등등 웹상에서 쉽게 소비되고 회화화 되는 '관념'에 일침을 놓는 것이다. 그곳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아이들의 생각에 전환을 가져오지 않을까. 이것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다. 이 설명에는 생각을 재고할 수 있을 것 같은 논리가 있다.
기억하고 싶은 한 컷
[세 가지 반응]이라는 항목은 생물학자 앙리 라보리의 『도피예찬』의 한 구절로 시작된다. 그는 "인간이 마주칠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가지 뿐"이라고 한다. 첫째는 '시련에 맞서 싸우는 것'이고, 둘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도피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생물학자라니 과연 베르나르의 관심은 개미만큼 많다. 그가 아니었다면 보통사람은 알기 어려웠을 지식을 만화로 첫 번째와 두 번재에 관해 자유롭게 풀어 쓴다. 그리고 세 번째 방법인 도피 중에는 '예술적 도피'도 있다고 설명한다. 자기의 분노와 고통 여러가지 분야로 표출하는 것을 적는다. 여기서 김수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이 책의 곳곳에서 세상의 불합리함을 알리고 있었다. 그것은 먹먹했다. 영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올리버 스톤의 'JFK'가(존 F.케네디 의 암살 사건에 대한 진실), 음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We don't need no education(우리는 교육같지 않은 교육은 필요없어)',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노래 가사를 적는다. 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그린다. 이어지는 다음 칸에 "현실 세계에서는 감히 주장하지 못하는 것을 상상 세계의 자기 주인공으로 대신 말하게 합니다"라며 김수박이 만화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 컷에서는 무엇이 나왔는 줄 아는가. 김수박이 그린 "용산 남일당 건물"이 나온다. 낡은 콘크리드 건물 위, 망가지고 주저앉은 컨테이너가 흑백으로 말이다. 나는 이 페이지를 오래 넘기지 못했다.
상상력 사전에서 용산 남일당 건물로
<상상력 사전>에서 용산 남일당 건물로 리뷰를 마무리 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것은 김수박이었기 때문에, <상상력 사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이 책으로 베르나르의 <백과사전>이 완전히 우리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번역과 또 다른 작업이다. 외국 작품을 우리의 정서로 읽는것이나 만화로 조금 더 쉽게 풀어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고민들을 곳곳에 적었다. 이것은 '고민 할 수 있어야'했던 것이었으나 '고민 할 수 없었던(하지 않았던)'것이다. 상상력 사전을 통해서 내가 사는 세상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상상력 사전>의 역할이 아닐까. 이 어리숙해 보이는 책을 학부모들은 고민 없이 사야 한다. 아이들은 읽을 것이다. 공부에 바쁘지만 돌고래나 바퀴벌레, 뇌나 알끈에 대한 탐구를 시작 할 수도 있을 것같다. 때로 자신의 궁금점과 생각을 부모에게 이야기 할 것이다. 일과 생활에 지친 부모들은 가끔은 대답을 궁리할 것이고, 아이들은 스스로 궁금한 이름을 검색하기도 할 것이다. 저녁, 부모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함께 <상상력 사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상상한다. 개미 혹은 마야인, 마르크스 혹은 핑크 플로이드를. 그리고 정부와 언론, 사회의 무관심에 묻혀 그저 '사건'으로만 기억되는 일들을,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을 말이다.
김수박의 책들 : 『빨간 풍선』과 『먼지 없는 방』은 김수박이 그렸고, 그 외 다른 책은 다른 만화가와 함께 참여했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