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 며칠 행복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하면서.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을 찾으면서요. 앞으로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행복하려고 합니다.


1. 이런 책을 어디서 발견했습니까

최근 문을 닫은 동네서점에서 발견했습니다.


여러모로 매대 위에 놓이기에 마땅치 않은 제목입니다. '식민'에서 한 번 걸리고 '모더니즘'에서 한 번 더 걸리는데, '-적'이라는 말에서 마침내 넘어지게 됩니다. 모더니즘도 어려운데 모더니즘적-은 또 무슨 말이며, 이 단어들을 받치는 마지막 단어가 '상상력'이라는 데서 헛웃음이 납니다. 제목에서 문학 평론일 것이라는 감이 들었습니다만, 저자 이름에 가서 한 번 더 넘어집니다. 자넷 풀. 그는 외국인이었습니다. 한국인이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충격입니다. 


이 제목을 한 책을 매대에서 발견했다는 점은, 서점이 문을 닫는다는 점을 훌륭하게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서울의 외지라도 매대에 이런 책을 놓는다는 것. 이 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책들이 매대를 얼마간 점령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매출 악화를 이끄는 일은 아니었을까요. 한 서점의 미래가 사라져가는 가운데, 저는 '다행스럽게'도 전혀 연고 없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런 우연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단지 2만원 가량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책을 만나게 되다니요. 앞으로는 그 서점이 없어졌으니 이런 우연을 기대할 수도 없어 그저 슬픈마음입니다. 미래가 사라져갈 때. 


https://www.yna.co.kr/view/AKR20210905036200004?input=1195m 

2. 이 책은 무슨 책인가요

우선 서론의 한 문장을 인용합니다. 


"이 책의 핵심에는 시간의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이 책은 일본 식민 지배의 마지막 십 년 동안 한반도에 살았던 시인, 철학자, 소설가, 저술가 들의 작품에서 사라지는 미래에 대한 감각과 현재를 재구성하기 위한 상상의 고투가 전개되는 양상을 다룬다."


제가 책에 얼굴을 덮고 싶었던 부분을 구절구절 말해보고 싶으나, 위의 문장은 완벽해서 어떤 부분을 달리 떼올 수 없습니다. 그저 다시 읽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문장은 결코 단어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단어는 모두 한문인데 그것들은 문장을 짧게 만들면서도 단단하게 하고 어떤 오해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합니다. "상상의 고투가 전재되는 양상"이라는 부분에서 식민 지배 마지막 십년 동안 살았던 작가들의 미간이, 찡그림이 다 보이는 듯 하고 제가 알수 없는 고통이 제가 아직 읽지 못한 글에서 지나다니는 것 같습니다...


3. 식민 말기에 대한 인상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러하듯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중에 하나입니다. 그 시기에 주목한 몇몇의 영화들 역시 독립 운동에 대한 이야기로 말미를 꺼내어 근대로의 이행하던 복잡한 시기를 그저 '민족적'인 열망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미래'가 있었습니다. 독립을 언젠가 하고 만다는. 어쨌든 이 고난을 이기고 다른 세상을 맞이하겠다는.


그러나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그러한 미래는 없었을 것입니다. 


"식민 말기 소설에서 미래는 부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 그에 대한 후대의 역사 서술에서 미래는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존재한다. 식민 말기 한국을 다루는 역사가는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문제에 부딪힌다. "



4. 반쯤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가들의 글을 대부분 모르기 때문에 읽고 싶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습니다. 서인식, 최재서, 최명익, 이태원 등등. 그밖에 이 책이 영향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글도요. 존더베크, 피터 오즈번, 브루스 커밍스 등등.


"미래가 사라지는 대라고 해서, 시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식민 말기 조선에서도 시간은 멈추지 않고, 식민지 파시즘 아래 펼쳐진 일상 생활이라는 복잡한 영역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때의 미학적 성좌들은, 식민지 시대 역사 중 한 부분이라고 손쉽게 환원되어 간과되곤 하는, 힘들과 시간성들의 충돌을 가시화하고 있다. "


5. 식민 말기 한국의 모더니즘적 상상력에 대해서라면

대부분의 한국인이 어쨌든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입니다. 자료를 보거나, 읽거나, 이해하는 것까지.

자넷 풀은 토론토대학교 교수로 한국문학과 문화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한국어를 배웠다고 하는 것 같고요, 그보다 일찍 일본어를 배운 것 같습니다. 제게도 대학교 1학년과 2학년이었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리고 저도 그때쯤 일본어를 수강하거나 철회하거나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20살 무렵 배웠던, 기초적인 외국어를 이렇게 키워서 당시의 살던 이들의 마음을 밝혀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물론 이 책은 번역서입니다. 번역도 훌륭합니다.


6. 좋은 책에 대해서 상찬할 수 있는 말이 제 안에 없다는 것도 슬픈일입니다.

추천사를 가져와 봅니다. 


"학문성과 개념적 사유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른 이 책에서 자넷 풀은 식민지 시대 한국의 시인, 철학자, 수필가들이 아무 변화의 전망도 없이 사라져가는 미래 앞에서 어떠한 고투를 펼쳤는지 보여준다. 한국이라는 지역적 사례를 통해 식민 말기의 복잡한 시간성이라는 문제를 폭넓게 해명하고, 문화가 이러한 시간 인식을 문화적 형식 속에 어떻게 각인하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앨런 태즈먼(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7. 저는 그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지만, 우선 쓰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한국어로 써도 읽을 수 있겠지? 토론토 학교로 보내면 되겠지?

좋아하게 되면 편지를 쓰고 싶어지더라고요.

뭐라고 써야할지는 책을 더 읽고, 이 책이 불러오는 다른 책도 다 읽고, 그런 후에나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https://www.dbpia.co.kr/author/authorDetail?ancId=555706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1/07/684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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