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기를 슬퍼하는 사람

미싱 영업을 하면서 '실'의 냄새와 촉감으로 감수성을 붙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상수는 단박에도 영업을 잘하는 이가 아니다. 그는 '제인에어가 어린 시절, 불우 아동들을 위한 기숙학교에 갔을 때 경험했던 그 교사의 차가운 공기가 상상되어 울었'던 이다. 이건 단순히 책을 많이 읽어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소설 속의 공기가 상상되어서 우는 이. 그의 정체성은  두 개로 갈라져 있다. 그게 직장에서의 삶을 어딘가 모르게 자꾸만 뒤쳐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그의 퇴근 이후의 삶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그가 다름 아닌 낙하산이기 때문이라는 오해로 그럴싸한 인과관계를 완성한다. 국회의원의 아들, 불우한 어머니의 생을 지켜본 감수성 짙은 아들, 아버지를 증오하지만, 이 회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아버지 때문이다. 가부장적이며 남성성만을 갖고 있는 이 집안의 남자들에게 질려 있으면서도 그것에 맞설 만한 힘이 없는 사람이다. 문제를 어렵풋이 알고 있지만 해결할 수 없다. 이 대척점에는 퇴근 후에 '언니는 죄가 없다'페이지 운영자로 활동하며 사랑에 아픈 이들에게 조언해주는 언니로 둔갑하는 그가 있다.


괄호를 읽지 않는 사람

상수가 일을 하는 비교적 위 직급의 경쟁, 일의 실재를 보여준다면, 경애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경애가 간직하며 살아왔던 기준을 보여준다. 그녀에게는 그래야 하는 것과 그러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일에 괄호를 끼어 넣으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어 판단하는 것과 달리, 경애의 문장은 단순하다. (직장의 눈 밖에 나고 돈을 못 벌지도 모르지만) 파업을 해야 하는가? (파업을 망칠지도 모르지만) 지도부의 성추행을 알려야 하는가? 그녀는 괄호 안의 말과 밖의 말을 잘 구분한다. 문장에서 더 가중되어야 한다고 믿는 괄호 안의 말을 읽어내는 정도가 사회적응도, 잘사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쳐주는 가운데 그녀는 그런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녀는 파업을 위해서 삭발까지 했던 이 중에 하나였지만, 파업을 망치게 했다는 욕도 들어야 했다. 조 선생은 그녀에게 절대로 사표를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녀는 그것만을 지키며 버텨왔다. 이런 것을 상관하지 않은 이의 말로는 무엇일까. 누가봐도 좌천중인 팀에 합류해 성과를 내는 거였다. 그것도 베트남에가서. 그녀의 마음은 그녀를 늘 벼랑에 서 있게 한다.  


인터넷과 교실 책상, 어떤 한 사람을 두 사람이 아는 일

이 둘은 E 혹은 은총이라는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뭐 이런 우연이. 라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연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일 뿐. 현실과 가상 세계 모두 지분이 있는 80년대 후반, 90년대 사람들은 이것을 신기해 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어떤 대화로, 어떤 이의 팬으로, 어떤 관심사의 하나로 깊게 만났던 사람은 현실에서 마주치며 생활하는 어떤 사람의 존재보다 더 실감 나게 살아있을 수 있고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단지 우연인 것은 아니다. 


한 사건을 기억하는 두 사람의 마음의 차이

같은 때에 둘 다 E와 은총을 잃었다. 그는 한 사람이고, 그것은 사고였으나 인간이 만든 재난이었다. 상수는 은총과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였음에도 은총의 죽음에 대해 깊게 의문하지 않았다. 이때 상수가 기억하고 있던 건 경애를 몹시 아꼈던 은총의 마음이었다. 경애는 E의 죽음 앞에 괄호가 두세 개는 더 끼어 있었던 일을 기억한다. 그 괄호 중 하나는 탈출은 중요하지만 돈은 내야 한다 라는 사람에게 있었고, 또 하나는 '노는 애들'이 '그런 곳'에 가서 당한 사고라니 별로 할 말이 없다라는 시선에도 있었다. 이 둘은 각각의 마음을 간직하고 어른이 되었다. 다 자란 이들의 행보는 자신이 더 무겁게 기억하는 마음을 따른다. 사랑에 다치는 마음을 위로하는 일과, 사회에 다치게 하는 마음에 대항하는 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흰 윤리

이쯤에서 뻔하지만 기대하는 바와 같이 상수와 경애가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되고 서로를 보듬는다는 이야기가 와야겠지만 소설은 녹록치가 않다. 같은 영업부 내에서도 성과를 빼앗기고 그에 대해서 별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상수와, 그런 상수를 상사로 두어서 조금도 힘도 나지 않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고 그를 모욕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 경애는 좀처럼 친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 한 땀씩 오가는 이야기는 혹시 E와 은총을 상기시켜 편하게 다가서지지도 않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여기다. E와 은총을 아는이라고, 서로를 특정하게 된 순간에 기쁨이 오지 않는 것. 이 기쁨을 연기하는 것은 소설이 실제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그런 상황에 있더라면 기뻐서 E와 은총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서로가 모르는 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은 새로운 상처일 수 있다. 두려워하는 것. E와 은총이가 영원히 부재하는 중에 어떻게 내가 알고 있는 E와 은총을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그건 영원히 꺼내지지 않는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이들은 내가 당신의 일부를 안다는 것이 상처가 되지 않을지를 오래 고민한다. 


어렴풋한 혹시는 소설의 전반부에서 일찌감치 들통나지만 이를 고민하는 일은 소설의 내내 이어진다. 어쩔 수 없이 자수하듯, 혹은 고백하듯 자신들에게 중요했던, 지금은 없는 E와 은총의 이야기를 하고 나서도, 그 후에 어떻게 서로를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민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흰 윤리가 여기 있다.  


마침내 다른 종류의 마음을 들여놓게 되었을 때

둘은 서로의 마음의 가중을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고 따라가게 된다. 한 쪽으로만 자꾸 커져서 균형을 잃은 사람처럼, 분열하는 사람처럼 살아야 했던 이들이 마침내 다른 종류의 마음을 들여놓게 되었을 때, 비로소 소설은 연애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둘을 하면서 사회 속에서 살아있는 것을 확이하는, 월요일 출근을 준비하면서 바로 이 책을 읽을 '독자'를 같은 선 상에 놓게 된다. 비로소 입체적으로 나와 같은 시대의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때문에 누가 이 책을 읽어도 이상하지 않다. 상수가, 혹은 경애가, 그리고 당신 중 누가 읽어도 말이다. 


'마음은 폐기될 수 없다'는 소설의 주된 물음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괴롭지 않기 위해서 갖고 있던 '마음'을 버리고 싶은 때를 떠올리게 한다. 상수가 '언죄다'에 쏟은 마음을 버리고 경애가 괄호를 읽지 않는 마음을 버리면 그들은 더 나은 상수와 경애로 살게 되었을까.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 마음을 버리도록 요구하는 등과 밥상을 견뎌야 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그렇게 견뎌야 하는 이유는 다른 종류의,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결의 마음을 하나 더 보태서 내가 갖고 있는 마음에 용기를, 박동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타인의 마음 한 가닥을 받아서 나를 지킬 수 있고, 그렇게 내가 사는 곳과 나 같은 다른 사람이 사는 이곳을 낫게 만든다고 믿게 된다. 라고. 


경애의 '마음'이 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