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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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레 G '검은 주머니'

그 때를 '과학시간'이라고 불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유년의 어느 수업에검은 상자(주머니)에 손을 넣어 물건을 꺼내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의 두근거림을 기억한다. 두려움, 궁금함, 놀라움. 여러가지 촉각을 잘 느끼게 하는 것으로 두려움 속에서도 마침내 재미있는 활동으로 남아있다. 소설은 그 검은색 주머니같다. 오감을 문장에 맞긴 채 읽어가야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소설엔 손에 들리는 거라곤 축축하고, 무겁고, 냄새가 나며, 보고 싶지 않은 것들 뿐이라는 점. 거센 숨결, 욕지거리, 음울하게 지껄이다가도 고음의 목청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쇼가 시작되었다.


 

욕망의 잔치에 잘 오셨습니다

도빌레 G의 스탠드 업 코미디의 드러난 주제는 '사드'의 그것과 같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해 보지 않은 욕망을 대신 까발린다그의 이야기는 금지된 것들을 욕망하도록 도와주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세련된 말장난같아 저속함이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쇼에는 두 가지 장치가 있다.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능력에 스스로를 찬탄하게 만들기그러나 그 정도의 지성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육욕의 쾌락을 발견하고 즐기게 하기



고통스러운 쾌락 끝에 만난 지독한 광경

두 개의 트랩에 관객의 즐거움은 배가 되며, 관객은 '' 버리고 스포트라이트 주변의 어둠으로 숨어들어 가책없이 그를 지켜보게 된다. 그러나 도발레 G의 쇼는 그게 다는 아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느끼게 될 이야기를 함께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원하지 않았으나 잊어버릴 수도 없도록. 바로 도빌레 G의 이야기이다



이 고통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영원히 이야기해도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될 수 없는 그의 인생은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시작한다. 이를테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테이블과 벽 사이에 갇힌 채 아버지의 허리띠 채찍질을 받아내는 조그만 아이', '하루종일 땅바닥만 바라보고 넝마를 뒤집어쓰고 고무장화를 신고 걸어다닐 수 있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들리는 수군거림을 멈추기 위해 엄마 뒤를 물구나무를 서서 걸어가는 아이. 그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시대에 휩쓸려 '다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말하는 대신 자신의 삶과 부모의 생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코미디의 소재로 써내린다.  


아버지의 눈에서 '검은 공깃돌'을 발견하고 짐승 한 마리의 진화를 기억하는 아이, 엄마를 보호하기 위해 물구나무를 서서 걸어 다녔던 아이에게 '일상'이 존재했을까. '사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까. 동화 속 괴물이 은유가 아니라 일상에 존재한다고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을까이 아이의 성장을 어떻게 두렵게 지켜보지 않을 수 있을까. 마침내 한 무대에서 찾게 된다.  



그로스만의 주제: 자랄 수 없는 유년, 오직 한 명의 타인

도빌레 G는 원한 적도 없이 환멸에 찬 생을 살아 마침내 57살이 되었다이 나이는 작가가 작품을 쓴 나이와 비슷하다. 그의 전작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 <나의 칼이 되어줘>에서의 주제가 마침내 이 작품으로 모였다는 점을 눈여겨 볼만하다. 30대에 쓴 소설 <사랑 항목을 참조하라>에서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그리고 작가가 된 후의 이야기가 녹여져 있다. 치유될 수 없는 것을 글 속에서 치유하기 위해 나치를 동물에 가두는 주술을 하고, 사람이 연어가 되고, 바다와 사랑을 하고가해자와 피해자가 당시의 시공에서 만나게 하는 등 그의 동화같은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 <나의 칼이 되어줘>에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 믿을 수 있도록 세상에 단 한 사람, 하나의 타인을 갈구하는 병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우는 것이 맞습니까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은 압축적으로 이 모두를 담아낸다부모의 이야기부터 자신의 유년에 대한 무자비한 조롱이 이끌어가는 목적지는 자신에게 '슬퍼하는 방법' 알려주지 않았던 인생의 첫 번째 장례식이다. 도발레가 살았던 공동체에는 슬픔에 대해서 말해줄 사람이 없었다. 우는 아이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는 어른이 아이를 위로하고자 전해 준 이야기가 '유머'였고, 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우는 시간을 포용할 수 없는 사람들, 슬픈 일을 슬퍼할 수 없게 버려두는 방치하는 사람들, 마땅한 감정을 사용하지 못하고 어른이 된 이가 있다. 전작<나의 칼이 되어줘>에서 사랑을 빙자해 폭력으로 사용한 타인의 갈구를 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다듬었다. '나를 봐주면 좋겠어. 나를 봐주면, 정말로 봐주면, 그런 다음에 말해주면 좋겠어.'라고. 자신의 유년을 함께 보낸 친구, 아비샤이에게 부탁한다.  



'피해자'라는 가면: 연약하고 착해서 우는 사람들

도발레 G는 우리가 생각해 온 일반적인 '피해자'상을 뒤집는다. 연약하며 착해서 불쌍해지며 우는 사람들. 피해자는 도와야하는 사람들이라는 등식을 파괴한다. 사회에서 '피해자'는 보호하고 무엇보다 다룰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도발레 G는 그렇지 않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영혼을 갉아먹히는 느낌이 든다. 때문에 이런 명명이란 그저 또 다른 가해자의 탄생을 막기 위한 억압의 장치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피해자야말로 악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까. 거의 악마가 된 도발레 G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매우 빠르게 도발레의 삶 자체가 '피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의 삶이 위험하며, 그가 있는 사회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더해서 든다. 복구 불가능한 삶. 같은 인간이라고 놓을 수 없는 선을 발견하게 된다



한 번도 말해진 적이 없는 피해자의 증오

'나를 봐달라'는 그의 부탁은 동시에 독자들에게 건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검은 주머니를 뒤집어 쓰고 그는 아직도 희망 같은 것을 기다리고 있다. 증오가 다 말해지고 나면 끝내 나오게 될 희망 같은 것을.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언어를 말이다. 연민이나 사랑을 원하지 않고, 죄책감과 반성을 원하는 바 없이 역사가 기억할 수 없는 사실을 기록하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으로 탄생한 인간의 마음을 보여준다전쟁이 보여주는 끔찍한 결과는 바로 이런 인간의 탄생이라고.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피해자들의 파괴되 영혼 자체라고 말이다


도발레 G는 무대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몸을 몇 차례 보여준다. '수평으로 흉터가 있는 쑥 들어간 배, 좁은 가슴, 무시무시하게 두드러진 갈비뼈, 궤양 때문에 군데군데 쪼그라들고 반점이 있는 팽팽한 피부.' 이것은 홀로코스트로 죽어 간 이들의 몸이며, 동시에 그곳에서 살아남은 부모의 몸이다.  몸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생생한 목소리가 내리꽂는 무대의 기이함. 우리는 어둠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어둠이 된 인간에게서 오는 공포를 읽고 있다


몸과 목소리의 부조화는 결국 하나의 진실을 향한다. '그는 병이 들었다.' 아비샤이는 마침내 깨닫는다그러나 그렇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가 쇼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그의 조건에 이렇게 눈을 감고, 이렇게 나 자신에게만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어떻게 나는 계속 내부로만, 나 자신의 삶으로만 고개를 돌렸던 것일까?'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일이 옳은가에 대해서까지 묻는다



아직도 절규가 들리지 않는다면 당신의 인간됨을 돌아볼 것

이를 말하기 위해 도발레 G는 병든 몸을 이끌고 자신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정신을 바짝 타들어게 할 언어도 몹시 익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도발레의 쇼에 사람들은 내내 웃는다. 술 한잔과 머리가 띵해질 이야기를 얻기 위해 앉은 자리에서 홀로코스트 이후의 삶을 엿보게 되었다


그러나 도발레는 검은 주머니에 사람들을 가두기 위해서 쇼를 한 것은 아니다. 홀로코스트 밖의 인간이, 그러니까 다른 종류의 인간이, 이 검은 주머니 안쪽을 잡고 입구로 나가 뒤집어주기를 바랐다자신이 도저히 끌고 나올 수 없는 고통받는 영혼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마침내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나오기를 말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내가 겪지 않은 슬픔을 생각만으로 아파하게 되는 거라고. 내가 겪은 슬픔도 아니면서 점점 더 아파하게 되는 내 모습을 보는 거라고. 그런데 피해자들이 코미디 쇼에 가야지만 귀에 이 환난이 들리는 세계가 얼마나 잘못된 거냐고, ? 어떻게 웃지 않을수가 있느냐고 말이다. 이 소설을 덮고 돌아봐야 할 것은 당신의 주위이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의 인간됨을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인간적으로 안내한 순서이나 뒤집어 살피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읽기 굉장히 고통스러운 소설이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중에 대 다수가 아직 들을만 한 것은 당사자에게서 비롯된 언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울만한 이야기들은 아직도 이 이야기가 얼마나 피해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가늠하게 도와줄 뿐이다. 정말로 고통에서 비롯된 언어는 울 수도 없게 만든다.  

*이 소설에는 여성 혐오가 끝없이 나온다. 정확히 9쪽부터 나온다. (책은 7쪽부터 시작한다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언제나 여성으로 희화화되며 동성애, 병을 조롱하는 놀라운 표현이 끝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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