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물었다. 어떤 말은, 특정 음식이 인체에 계속 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키듯, 정신에 그렇게 반복적인 부작용을 일으킨다고오익은 생각했다. 말의 독성은 음식보다 훨씬 치명적이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음식은 기피할 의지만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 말은 아무리 기피하려 해도 그럴 수 없기때문이다. 아니, 기피하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점점 더 그말에 사로잡혀 꼼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다. 원채는 다 갚기 전에는 절대 안 없어진다고, 죽어도 안 끝나고 죽고 또 죽어서도 갚아야 하는 빛이 원채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오익은 그게 바로 사는일 같다고 생각했다. 기피 의지와 기피 불가능성이 정비례하는그런 원채 같은 무서운 말과 일들이 원채처럼 쌓여가는오익은 잠시 귀를 기울였다. 희미하지만 또렷한 어떤 소리가 들려온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했다.

오익에게 증상이 나타난 건 그러고 얼마 뒤였다. 오랜만에 학교때 선배들을 만나기 위해 전철역을 향해 가던 중에 어머니에게서전화가 걸려왔다. 대꾸를 하면 통화가 더 길어질 테니 아무 말도하지 않으리라 굳게 결심했지만 어머니가 다짜고짜 나는 요양원같은 데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말하는 바람에 누가 요양원에 가시라고 한 적이 있느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궤헤그르르궤에 그릇이 들었다는 뜻인가.
………궤헤그르르 오익의 두 눈이 슬슬 감겼다. 졸음이 쏟아졌………다. 오익은 낮잠에 빠져들면서 자신이 결국 박사논문을 쓰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해도 아무렇지 않았고 지금 당장은궤헤그르르……… 그 의미를 알아내는 일이 훨씬 중요한 것 같았다. 잠들면 악몽 속에서나마 알아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뜻밖에도 숲속 식당은 운치 있는 오두막 이런 게 아니라 둥근유리 천장에 사방이 개폐 가능한 유리문으로 된 현대식 건물이었다. 식당 앞에서 제부가 내게 좋지요 뭐 어쩌고 했다. 청력이 좋지않은데다 마스크 때문에 뒷말을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나는 좋네요. 했다. 식당의 평평한 마당 끝에 도로가 있고, 도로 너머로 논과 밭이 펼쳐졌고, 그 뒤로 노랗고 빨갛게 단풍이 든 낮은 언덕과높은 산들의 능선이 빙 둘러쳐져 있었다. 식당은 알록달록한 그릇한가운데 놓인 유리구슬처럼 사방으로 단풍 든 산에 둘러싸인 야트막한 평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런 모호하고 어두운 기운을 가만히 품고 있기만했던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있는 그대로 때로는 1과장해서 드러내곤 했다. 스물넷이었으니까, 위험한 무엇을 가만히 갖고 있는 것으로는 안 되고 그걸 어떻게든 뱉어내거나 발산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이였으니까, 그 내용이나 표현이 기괴하고 언짢아서 누구에게도 제대로 가닿지 못하리란 걸 알 수도 없고 신경도 못 쓰는 나이였으니까.

아무 일도 아니다 생각하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되는 듯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듯 어제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내 손에 쥔 확실한 패는 오늘밖에 없고 그 하루를 땔감 삼아 시간을 활활 태워버리면 그만이라고생각했다.

나도 어느새 경서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가사를 모르는 부분에선 혼자 부르기도 했다. 노래가 3절까지 완벽하게 끝났을 때 구선배가 뭐 이런 빌어먹을 노래를 끝까지 다부르고 난리냐며 술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승희가 좋아요, 하고 일어났다. 경서도 좋죠. 하고 일어나더니, 같이 가도 되는지 빠져줘야 하는지 몰라 멀뚱멀뚱 앉아 있는 내게 기묘한 손짓을 했다. 다리가 불편한 숙녀에게 춤이라도 권하는 듯한, 우아하고 장난스런 초대의 손짓을.

자다 가끔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날 때가 있다. 누구나 자기가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경서와 내가 멀어지게 된 데 특별한이유나 계기는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당시내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고 대학원이라는 접점이 없어지면서 우리는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번쩍 몇 가지 일들이 떠오르면서, 그것들이 뜻밖의 별자리를 만들면서 내 정신은 깊은 어둠과무지에서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났다.

나는 여자의 말투를 흉내낸 게 아니라 내 속에 오랫동안 고여있던 가래 같은 말을 내뱉은 것이다. 학대의 사슬 속에는 죽여버릴까와 죽어버릴까밖에 없다. 학대당한 자가 더 약한 존재에게 학대를 갚는 그 사슬을 끊으려면 단지 모음 하나만 바꾸면 된다. 비록 그것이 생사를 가르는 모음이라 해도.

나는 흰 종이를 꺼내 큼지막하게 123이라고 써보았다. 마주서서, 인사하고, 빙글. 세 숫자는 볼수록 춤을 추기 위해 준비하는사람처럼 보였다. 양력 음력이라는 두 겹의 차원이 123 이라는동일한 무늬로 만나, 마주서서 인사하고 빙글, 마주서서 인사하고 빙글, 마주서서 인사하고 빙글, 우주의 왈츠를 추는 날. 내생애 한 번밖에 없었을 그날에 나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나. 어머니 앞에 엎드려 울며 다시 착한 딸이 되겠다고 빌고 있었나, 끝장을 보자고 대들다 오빠에게 머리를 펀칭볼처럼 두드려 맞고 쓰러져 있었나. 세상은 그날 왜 나를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원하지 않는 짓을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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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반희는 여행에 대해서보다 자신이 전화로 한 말들을 먼저 돌아보았다. 너무 많은 말을 한 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적게 하려고 애써서 채운을 서운하게 한 건 아닌지, 혹시 쓸데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반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이런 점검을 하는 자신이 싫었고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채운과의 관계에서는 그러지 않았고 그러지 못했다. 자꾸 살피게 되었다. 채운이 알지 모르지만, 반희가 자신을 ‘엄마‘라고 칭하지 않고 채운을 ‘딸‘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그런 살핌의 일종이었다.
가끔 오늘처럼 실패하기는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었다.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둘 사이가 끊어진다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는 ‘너‘, 나는 ‘나‘여야 했다.

올라올 때만 해도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해가 비쳤는데 어느새 산그늘이 졌다. 산길을 내려가면서 채운은 반희가 말한 그날이 자신이 기억하는 그날일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운 기억은 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기억하는 날은 실제가 아니라 상상인지도 몰랐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초에서 고2까지, 채운은 늘어뜨린 손가락을 천천히 꼽아보았다. 팔 년이었다.
엄마가 버틴 시간, 그리고 고2에서 지금까지 손가락을 꼽아보니칠 년이었다. 세상에, 엄마가 집 나간 지 칠 년밖에 안 됐다고? 채운은 어이가 없었다. 엄마는 팔 년이고 자신은 칠 년이라니, 뭔가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겨우 잠들었던 반희는 테라스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빛과 새소리에 잠을 깼다. 옆에 채운이 누워 있었다. 자는 얼굴은 아기 같은데 잔뜩 술냄새를 풍기고 얕게 코까지골며 자고 있었다. 반희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앉아 채운의어깨를 내려다보았다.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채운의 오른쪽 어깨에 타투를 했다가 지운 자국이 손바닥만한 크기의 흉터로 남아 있었다. 흔적으로는 아마 애초에 장미 모양의 타투를 하지 않았을까싶었다. 타투를 한 것도 지운 것도 오로지 채운의 의지였을까. 혹시라도..….…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반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베르타는 이건 바로 내 얘기가 아닌가 싶어 잠시 어리둥절했다.
마리아가 자신의 집에 일을 다녔던 한 달 남짓 동안 베르타가 느꼈던 바로 그 감정, 그 대화를 데레사가 고스란히 복기하고 있는듯했다. 베르타는 먼 하늘을 바라보는 또래 친구 데레사에게 깊은친밀감을 느꼈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하고 사비나가 말했다. 저도 베르타 자매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덩달아 데레사가 고개를 끄덕였고 올가도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수산나는 긴 이야기를 할 수있게 되어 다소 흥분된 기색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마리아는 장례를 부탁하면서 장례미사를 위한 헌금도 냈는데그때만 해도 안셀모 신부는 마리아가 이렇게까지 빨리 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 뜻을 잘 알았다고 답하고 감사히 헌금을받았다. 그때부터 마리아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성당 사택으로 반찬과 국을 날라왔고 죽기 바로 전주까지도 역시 반찬과 국을 만들어날라주었는데, 그날 아침에 우리 신부님이 마리아가 만들어준 그반찬과 국을 먹고 바로 당사자의 장례를 준비하러 나갔다고 수산나가 말하자, 올가가 그 참 기가 막히구만, 기가 막혀 했다.

소미가 페북의 그 집사님을 잘 아느냐고 묻자 현수는 잘 모른다고, 그 여자가 집사냐고 되물었다. 근처 지리에 밝은 사람답게 현수는 국도를 달리다 좁은 골목으로 꺾어 들더니 이리저리 우회전좌회전을 하며 달렸고 심지어 포장도 안 된 논둑길을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기도 했다. 논둑길 중간쯤에서 현수가 소미를 돌아보며뭐라고 말했다. 차가 빨리 달리지 않는데도 엔진소리가 시끄러워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 들린다고 소미가 소리치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미와 현수가 시킨 만둣국이 나왔다. 알이 굵으니까 여기 놓고 꺼먹어, 하고 현수가 앞접시를 들어 보였다. 소미가 굵은 만두한 알을 앞접시에 덜어놓는데 옆자리 남자가 얘는 또 왜 이래 이거 왜 이래 이거, 하고 소리쳤다. 돌아보니 남자의 시선은 옆자리유아차에 앉혀둔 앉혀두었다기보다 담요로 칭칭 감아 묶어둔 듯보이는 작은애를 향해 있었다. 돌쯤 되었나 싶은 작은애가 입가에흰 국물을 흘리며 토하고 있었다.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를바라보는 동안 남자가 말했다.

언젠가 한번 소미는 그 땅을 싸게라도 팔아치우려고 한 적이있었다. 묘지로 둘러싸일 땅을 붙들고 있으면 뭐하나 던져버리자 싶어 충동적으로 땅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업자 말로는 산 값의 반도 받기 어려울 거라고 했지만 소미는 어떻게든 팔아달라고했다. 얼마 뒤 업자가 연락을 해서 마침 사겠다는 외지인이 나섰는데 손해를 보더라도 이 기회에 처분하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했다. 소미는 매매계약을 하러 전철과 기차를 갈아타고 U시 역으로갔다. 시간이 일렀고 배도 고파서 소미는 택시를 잡아타고 만둣국을 파는 식당에 갔다.

소미는 그렇다고, 혼자서, 매일, 기차 타고, 소풍 가듯이, 하더니 남편을 빤히 쳐다보았다. 남편은 속으로 소풍이라니 이 여자참 철없는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소미는 처음에 누구 만나는 사람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갑자기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소미는 현수인지 뭔지 하는 친구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웃고 끝낼 때도 웃은 것인데 남편으로서는 아내가 이렇게 잘 웃는 여자였던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수와 웃음, 이 조합은 한동안 남편 뇌리에 납득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깊이 박혀 있었는데, 땅의 존재를 안 뒤부터는 U시와 웃음, 이라는 새로운 조합으로 간단히 교체되었다. 이번에는 참으로납득이 되는 조합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현수와 연락할 방법을 찾자면 없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현수가 그 땅의 현재 가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을까. 안다면 자기의 혜안이 맞았다고 기뻐하기만 하고 끝낼까. 사람은 절대 그렇게 무구하지 않다. 또 현수가 얼마나 거칠게 변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때 마흔다섯 살의현수도 소미의 상상과는 너무도 달랐지 않은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인문대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던 늘씬한 아가씨가 이혼하고 혼자 딸 둘을 키우는 뚱뚱한 중년 여자가 되어 피곤에 전 모습으로 부동산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았던가.

사거리에서 혜영은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좌회전 차선에 접어들며 왼쪽 방향지시등을 켰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자매는 규칙적인 점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 시간이 그날 하루 중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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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통이 커서 늘 우리의 리더 노릇을했는데, 리더로서의 자의식도 없는데다 리더의 권위를 도전받아도 개의치 않고 부디 나 대신 누가 리더 좀 해줘 하는 식의 임의적이고 편안한 태도를 취했기에 더 리더로서 적합했다. 툭하면 우리를 구박했지만 우리에게 구박도 잘 당했다. 우리 모두 부영을 믿고 의지했지만 룸메이트인 정원이 특히 그랬다.

먹고 점점 부영에게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게 되었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섰다가도 내 차례가 되면 쓸쓸히 돌아서곤 했다. 누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까. 갈등과 암투만을 먹고 사는 인간이. 새끼 오리 친구들에게 전화를 못하게 된 후로 나는 술 먹고자주 다쳤다. 낯선 고립감이 이리저리 쏠리면서 신체의 균형을 망가뜨리는 것 같았다. 술에서 깨고 나면 어딘가 욱신거렸고 팔꿈치나 무릎에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어렸을 때의 다친 마음이 뒤늦게 몸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영의 말대로 응석받이였던 나는 살아남았고 부영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정원은 어떤 응석도 없이 갔다. 그리고 정원이 떠난 지 이십 년 되는 날 밤 오래전의 내 못된 술버릇이 모조리 도졌다.

소주 한 병을 새로 시키면서 혹시라도 술에 취해 부영에게 전화를 걸거나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게 될까봐 휴대전화를 종료해 가방 깊숙이 넣었다. 이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두진씨가 풀려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부영과 두어 달에 한 번씩은 통화를 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즈음 부영은, 준희야, 내가 요새 잠을 못잔다 했다. 머리 수술하고 나서는 그렇게 밤낮없이 잠만 잤다는데 그때 미리 다 자둬서 그런지 죽어도 잠이 안 온다. 잠이 안 오면 곽두진 생각보다 정원이 생각이 그렇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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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민족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문화,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 이는 지극히 깊은 의미를 가지는 말일 것이다. 한 국토가 필연적으로 자아내는 향기와 색채와 형태와 정신이 어떤 명확하고 구체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면, 그것은 반드시 다른 국토의다종다양한 정신으로 자연히 연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분명 깨달을 것이다. 음악이든 회화든 문학이든 마찬가지다. 전후 세대인 사카가미 씨가 그리는 병풍화를 보고 어떤 이는 어쩌면 비난조로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어째서 요즘 시대에 이런 고풍스러운 그림을………"

<흙탕물 강>은 다자이 오사무상을 받았고, 그 수상 후첫 번째 작품으로 <반딧불 강》을 손질해 발표했는데 그것이 생각지 못하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쿠타가와상 수상 후 첫 번째 작품을 써야 하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내 짧은 역사 속에서 ‘강‘이 언제나 커다란 배경으로 흐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문학을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이노우에 야스시 씨의 <아스나로 이야기>를 읽고 아아, 소설은 이렇게멋진 것이구나 생각했고, 그 뒤 닥치는 대로 책을 탐독했다. 푸시킨, 투르게네프, 플로베르, 스탕달, 톨스토이, 도 스토옙스키, 고골, 발자크…………. 나는 수험 공부도 내동댕이치고 언어와 마음으로 짜낸 이야기에 푹 빠진 시기를 보냈는데, 사회인이 되어 나날의 업무에 쫓기기 시작하자 어느덧 문고본 한 권조차 집어 들지 않게 되었다. 문학에 정신없이 매료되었던 시절을 한때 나 자신이 가졌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던 것이다.

나는 어째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나. 그런 질문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짊어진 신경중이라는 병을 나의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았을 때, 나는 비로소 결심이 섰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내 안에 있는 생명이 샘솟았다. 이케가미 기이치라는 사람과의 만남도 외적 우연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 역시 생명의 힘이다.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지만 각본상을 다른 작품에게 빼앗긴일을 두고 나는 오구리 씨에게 전화로 농담 비슷하게 "원작이 훌륭한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벌이야"라고 말했다. 얼마나 도량이 좁았던가.
그는 순간적으로 그것을 농담이 아니라 내 본심에서 나온 말로 받아들였을 터다. 이 지면을 빌려, 오구리 씨에게나의 속 좁음을 깊이 사과드리고 싶다.

듯한여기까지 쓰고서 나는 지금 번개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더비에서 마권의 축으로 삼았던 말은 모두 1착으로들어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뭘 망설이겠는가. 단순 마권을 사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더비에 한해서라면 나는 단승 귀신인지도 모른다. 올해 더비는 xxxxxx의 단승 마권을 살 테다.

석 달에 한 번씩 열 편을 연재하면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리는 셈이다. 3년 동안 나의 마음속에 가공의 서러브레드한 필이 계속 존재하는 것이다. 그 한 필의 말에 자신의 꿈을 맡긴, 경주마 생산자와 마주와 조교사와 기수가 지닌인간으로서의 기쁨과 슬픔을 배경으로 나의 ‘바람의 왕‘을창조해낼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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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평생을 끝없이 방탕하게 살다 간 사람이라서내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언쟁이 잦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외동아들인 나를 데리고 자주 집을나갔다. 앞으로 며칠은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가출했지만, 날이 저물면 결국 어디도 갈 곳이 없어서 다시 내 손을잡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북쪽 지역의 번화가나 상점가 신사이바시스지를 걸을때 볼 수 있는 화려한 것은 없었고, 작은 탁자 위에 얇은 나무판을 늘어놓고 참배객의 요청에 따라 거기에 붓으로 뭐라고 써넣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몹시 초라하고 고독해 보였다. 언제까지고 걸어도 어머니가 말하는 절은 안 나오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영 전철이 지나가는 굉음과 대중식당 몇 채와 꾀죄죄한 빌딩이 그 거리의 한 모퉁이를 빗속에서 한층 너저분하게 만들었다. 어수선한 거리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차갑고 한산하다. 말로 표현하자면 그에가까운 감정을 그때 나는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가게를 나와 다시 참뱃길을 걸어 서문까지 갔다.
경내로 들어가 다시 한 번 시텐노지에 있는 것을 봐둘각이었지만, 흐린 하늘 아래에서 기묘히도 눈부시게 빛나는 무성한 새잎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갑자기 불우한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경내에 발을 들이지 않은 채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초여름이었으나거기서 보이는 시텐노지의 가람은, 나에게는 역시 온기 없이 황량한 건물로만 느껴졌다.

평생토록 두 번 다시 생명체는 키우지 않겠다고 맹세했을 텐데, 열흘 전 나는 비글종 수컷 강아지를 데려왔다. 덴스케, 마리, 무쿠, 2대 무쿠, 고로에 이은 여섯 번째 개다.
나의 어린 아들들에게 사랑할 대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며, 생로병사라는 엄연한 법칙을 자연스레 인식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공부를 싫어했고 운동도 잘 못했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서투른 데다 제멋대로에 울보에 병약하기까지 했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담임선생님이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배신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이렇게만 교육하고 있습니다. 매화나무에서는 장미꽃이 피지 않습니다."

는나는 결핵으로 입원했을 때 문화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문화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병으로 고통받으며 오랫동안 입원 생활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일본의 의료기관에서 일하는공무원 중에는 타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은 사람이 많다.
문화국가란 다정한 사람들에 의해 성립되는 나라이지, 전자제품이나 무력이 완비된 나라가 아니다.

이똥
"그는 강가의 자갈밭에 누워 강물을 마시려고 했지만 마실 도리가 없었다. 그는 랭보인가. 천만에, 그런 묘한 남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다. 우리 모두가 죽기 직전의 모습이다."
랭보라는 인간의 정신과 그 말로에 대한 상념에 젖을 때,
나는 고바야시 히데오 씨가 정말 그렇게 느꼈고 느낀 그대로 글을 썼다는 것을 납득한다. 랭보도, 다른 숱한 천재들도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사람은 죽음에 처할 때 그게 우리라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 것이다.

나는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해도 상품 하나를 팔기 위해계속 걸어가는 세일즈맨을 존경한다. 매일매일 핸들을 쥐는 운전사를 존경한다. 눈의 통증을 참으며 교정지를 확인하는 편집자를 존경한다. 그 사람들은 어중간한 학자나 소설가보다 훨씬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내 아내는 그 강아지에게 틀림없이 엄마일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이길 수 없구나 싶다. 엄마라는 존재는 불가사의하리만치 끝 모를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힘에는 외적 우연을 곧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 법이다. 이 사상은 종교적이다."
이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모차르트> 속 한 구절이다. 어떤 불행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며 그에 맞서는 철학을,
인간은 슬슬 추구하기 시작하지 않을까.

인생도 마찬가지일 터다. 야마모토 슈고로는 굴지의 이야기꾼이었지만 벚나무에 장미꽃을 피우지는 않았다. 그- 거짓말은 했지만 인생의 실상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야마모토 슈고로의 작품은 전부 대중소설의 범주속으로 내던져졌다. 나니와부시"라는 소리를 들었고 통속소설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인간의 일상에서 통속적이지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을 통속소설이라든가 나니와부시라고 평가하는 이는 벚나무에장미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기뻐할 사람이 틀림없다.

현대 문학은 두 가지 길로 나뉘려 하고 있다. 벚나무에장미꽃을 계속 피울 것인가, 혹은 벚꽃은 벚꽃, 장미는 장미로 피울 것인가. 이 두 가지 길로 말이다. 100년 뒤에도야마모토 슈고로의 작품이 계속 읽히리라고 확신하는 나는, 머지않아 ‘요물’이 패배해 달아나는 시대가 오리라는것도 확신한다. 야마모토 슈고로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읽을 때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믿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들기 때문이다. 정교한 이론은 결국 늘 소박한 현실에 굴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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