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평생을 끝없이 방탕하게 살다 간 사람이라서내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언쟁이 잦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외동아들인 나를 데리고 자주 집을나갔다. 앞으로 며칠은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가출했지만, 날이 저물면 결국 어디도 갈 곳이 없어서 다시 내 손을잡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북쪽 지역의 번화가나 상점가 신사이바시스지를 걸을때 볼 수 있는 화려한 것은 없었고, 작은 탁자 위에 얇은 나무판을 늘어놓고 참배객의 요청에 따라 거기에 붓으로 뭐라고 써넣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몹시 초라하고 고독해 보였다. 언제까지고 걸어도 어머니가 말하는 절은 안 나오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영 전철이 지나가는 굉음과 대중식당 몇 채와 꾀죄죄한 빌딩이 그 거리의 한 모퉁이를 빗속에서 한층 너저분하게 만들었다. 어수선한 거리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차갑고 한산하다. 말로 표현하자면 그에가까운 감정을 그때 나는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가게를 나와 다시 참뱃길을 걸어 서문까지 갔다.
경내로 들어가 다시 한 번 시텐노지에 있는 것을 봐둘각이었지만, 흐린 하늘 아래에서 기묘히도 눈부시게 빛나는 무성한 새잎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갑자기 불우한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경내에 발을 들이지 않은 채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초여름이었으나거기서 보이는 시텐노지의 가람은, 나에게는 역시 온기 없이 황량한 건물로만 느껴졌다.

평생토록 두 번 다시 생명체는 키우지 않겠다고 맹세했을 텐데, 열흘 전 나는 비글종 수컷 강아지를 데려왔다. 덴스케, 마리, 무쿠, 2대 무쿠, 고로에 이은 여섯 번째 개다.
나의 어린 아들들에게 사랑할 대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며, 생로병사라는 엄연한 법칙을 자연스레 인식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공부를 싫어했고 운동도 잘 못했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서투른 데다 제멋대로에 울보에 병약하기까지 했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담임선생님이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배신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이렇게만 교육하고 있습니다. 매화나무에서는 장미꽃이 피지 않습니다."

는나는 결핵으로 입원했을 때 문화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문화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병으로 고통받으며 오랫동안 입원 생활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일본의 의료기관에서 일하는공무원 중에는 타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은 사람이 많다.
문화국가란 다정한 사람들에 의해 성립되는 나라이지, 전자제품이나 무력이 완비된 나라가 아니다.

이똥
"그는 강가의 자갈밭에 누워 강물을 마시려고 했지만 마실 도리가 없었다. 그는 랭보인가. 천만에, 그런 묘한 남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다. 우리 모두가 죽기 직전의 모습이다."
랭보라는 인간의 정신과 그 말로에 대한 상념에 젖을 때,
나는 고바야시 히데오 씨가 정말 그렇게 느꼈고 느낀 그대로 글을 썼다는 것을 납득한다. 랭보도, 다른 숱한 천재들도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사람은 죽음에 처할 때 그게 우리라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 것이다.

나는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해도 상품 하나를 팔기 위해계속 걸어가는 세일즈맨을 존경한다. 매일매일 핸들을 쥐는 운전사를 존경한다. 눈의 통증을 참으며 교정지를 확인하는 편집자를 존경한다. 그 사람들은 어중간한 학자나 소설가보다 훨씬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내 아내는 그 강아지에게 틀림없이 엄마일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이길 수 없구나 싶다. 엄마라는 존재는 불가사의하리만치 끝 모를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힘에는 외적 우연을 곧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 법이다. 이 사상은 종교적이다."
이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모차르트> 속 한 구절이다. 어떤 불행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며 그에 맞서는 철학을,
인간은 슬슬 추구하기 시작하지 않을까.

인생도 마찬가지일 터다. 야마모토 슈고로는 굴지의 이야기꾼이었지만 벚나무에 장미꽃을 피우지는 않았다. 그- 거짓말은 했지만 인생의 실상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야마모토 슈고로의 작품은 전부 대중소설의 범주속으로 내던져졌다. 나니와부시"라는 소리를 들었고 통속소설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인간의 일상에서 통속적이지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을 통속소설이라든가 나니와부시라고 평가하는 이는 벚나무에장미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기뻐할 사람이 틀림없다.

현대 문학은 두 가지 길로 나뉘려 하고 있다. 벚나무에장미꽃을 계속 피울 것인가, 혹은 벚꽃은 벚꽃, 장미는 장미로 피울 것인가. 이 두 가지 길로 말이다. 100년 뒤에도야마모토 슈고로의 작품이 계속 읽히리라고 확신하는 나는, 머지않아 ‘요물’이 패배해 달아나는 시대가 오리라는것도 확신한다. 야마모토 슈고로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읽을 때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믿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들기 때문이다. 정교한 이론은 결국 늘 소박한 현실에 굴복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