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통이 커서 늘 우리의 리더 노릇을했는데, 리더로서의 자의식도 없는데다 리더의 권위를 도전받아도 개의치 않고 부디 나 대신 누가 리더 좀 해줘 하는 식의 임의적이고 편안한 태도를 취했기에 더 리더로서 적합했다. 툭하면 우리를 구박했지만 우리에게 구박도 잘 당했다. 우리 모두 부영을 믿고 의지했지만 룸메이트인 정원이 특히 그랬다.

먹고 점점 부영에게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게 되었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섰다가도 내 차례가 되면 쓸쓸히 돌아서곤 했다. 누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까. 갈등과 암투만을 먹고 사는 인간이. 새끼 오리 친구들에게 전화를 못하게 된 후로 나는 술 먹고자주 다쳤다. 낯선 고립감이 이리저리 쏠리면서 신체의 균형을 망가뜨리는 것 같았다. 술에서 깨고 나면 어딘가 욱신거렸고 팔꿈치나 무릎에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어렸을 때의 다친 마음이 뒤늦게 몸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영의 말대로 응석받이였던 나는 살아남았고 부영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정원은 어떤 응석도 없이 갔다. 그리고 정원이 떠난 지 이십 년 되는 날 밤 오래전의 내 못된 술버릇이 모조리 도졌다.

소주 한 병을 새로 시키면서 혹시라도 술에 취해 부영에게 전화를 걸거나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게 될까봐 휴대전화를 종료해 가방 깊숙이 넣었다. 이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두진씨가 풀려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부영과 두어 달에 한 번씩은 통화를 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즈음 부영은, 준희야, 내가 요새 잠을 못잔다 했다. 머리 수술하고 나서는 그렇게 밤낮없이 잠만 잤다는데 그때 미리 다 자둬서 그런지 죽어도 잠이 안 온다. 잠이 안 오면 곽두진 생각보다 정원이 생각이 그렇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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