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닭 울음과 새소리, 풀벌레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서둘러 욕실에서 씻고 떠날 준비를 했다. 이부자리를 반듯이 정리한 뒤 깃털베개를 손으로 두드려 적당히 부풀리고 그 위에화려한 색상의 쿠션까지 완벽하게 올렸다. 짐은 전날 미리 싸둔 터였다.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 버리고 물걸레로 숙실 마루를 훔쳤다. 우리가 떠난 뒤 어차피 메이드가 한번 대청소를 할테지만 마지막까지 깔끔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이해 못할 허영이겠지만 당장 누가 들어와도 새집처럼 보였음 했다.
애리조나 여행에서 돌아와, 평소엔 잘 가지 않는 방에 가보니그녀의 크리넥스 더미가 있다. 거기에는 침대도 있다. 나는 더 이상 침대 시트를 갈 수도 없고, 그녀의 흔적을 치울 수도 없다. 아니, 그게 그들 중 누구의 흔적이든 상관없다. 대체 왜 그렇게 자주 코를 풀었을까? 속옷은 왜 두고 간 걸까? 속옷이라기보다는 그저 벗겨져서 침대에 널브러지기 위해 존재한 하늘색 천 조각이다.나중에야 발견한 그 조각은 세탁기 옆에 불가사리처럼 붙어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마른 몸매를 살찌우려 노력하는 나.우리가 사귀는 동안 나는 매년 0.5킬로그램씩 살이 빠졌다. 내 살은 드레스를 벗듯 우아한 움직임으로 빠져나갔다. 우리 침실에서P.R. 이 드레스를 벗고 있다. 코를 풀고 있다. 코를 풀고 있다. 어떤빌어먹을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으나 코를 풀고 있다.
거기에서 다음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딱딱한 벤치 다음엔 열병과 오물통이라니. 조니 미첼이 불렀던 헤로인 중독에 관한 노래 같았다. 여느 노래가 그렇듯 중독을 미화하지는 않았지만, 차갑고 푸른 금속*은 완전히 끔찍하게 들리진 않는다. 모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릴리즈 부인**을 찾는 건 당연하다. 차갑고 푸른 금속을 통해서든, 다른 노래의 더 자극적인 가사처럼아찔한 연애 중독을 통해서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독이자 강력한약은 바로 사랑일 테니까.
대신 그녀가 그를 떨어뜨렸다. 아니, 그들이 서로를 떨어뜨렸던가?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사진에서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변한 것 같았다. 유명 작가에게서 벗어난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편안하고 밝아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유명 작가는 아직도 무언가에 휘감긴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있고, 지나가고, 지나가고, 또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얼어붙은 채 지켜보고 있다.
에마와 나는 불꽃을 보려고 어두운 언덕에서 다른 어두운 언덕으로 뛰어다녔지만, 그래도 불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나는 계속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캐시를 느낄 수 있지만,그녀를 볼 수는 없어. 행여 보이는 게 연기뿐이라도, 어디에선가캐시가 그녀의 불꽃을 보내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