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본래 색깔이 없다. 그것이 욕망으로 물들 때 우리는 그것을 ‘탐욕스러운 마음‘이라 부른다.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 그것은
‘화내는 사람‘ 혹은 ‘화내는 마음‘으로 불린다. 마음챙김이 없으면 마음은 이 분노에 영향을 받는다. 분노는 마음을 오염시키는본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독을 만든다. 그러나 마음은 분노가아니며 분노는 마음이 아니다. 마음은 탐욕이 아니고 탐욕은 마음이 아니다. 이것을 기억하라. 마음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본성을 갖고 있지 않다. ‘마음‘은 단지 ‘아는 능력‘, ‘인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그에게는 런던 지하철역에 열차가 도착한 것도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처음엔 거의 알아차릴 수없는 열차 소리, 열차가 다가옴에 따라 점점 커지는 소리, 그 앞으로 밀려오는 바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모든 것이그의 전염성 있는 마음챙김의 장 안에서 활기를 띠었다. 그와 함께있는 것은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지금 여기에 열려 있고 깨어 있는, 살아 있는 수행이었다."

온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일 때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 그것은 영적인 면에서 이로울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면에서도 유익하다.
그것은 또한 정화의 과정이다. 마음이 정화될 때, 몸과 마음의많은 병들이 자동적으로 치유된다. 그때 자신의 분노, 미움, 질투를 이해할 수 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불건전한 요소들의 대부분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감정적인 반사 작용에 의해 축적해 온 그토록 많은 몸/마음의 질병들은 통제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억압과는 다르다.
가까이 다가가 그것들을 들여다봄으로써 많은 육체적 질병, 정신적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때 그것들은 더 유연해지고 더 다루기 쉬워진다.

"일어나고 있는 것이 진리이다. 만약 그대의 마음이 산만해져 있다면, 이 순간에는 그것이 진리이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슴과 머리, 감정과 지성, 믿음과 지혜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 이 사띠, 즉 마음챙김이 둘사이에 균형을 가져온다. 둘 다 필요하다. 너무 많은 노력은 인간을 쉬지 못하게 만든다. 너무 많은 사마디(사념을 떠나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고도로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얻는 고요한 선정 상태)는졸리게 만든다.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집중이 필요한지 어떻게 아는가? 그것이 마음챙김의 기능이다. 마음챙김은 노력과 집중 사이에 균형을 가져다준다.

카말라 마스터즈가 한번은 무닌드라에게 화가 난 적이 있는지물었다. 무닌드라는 카말라에게 말했다.
화가 올 때 거기 하나의 조짐, 신호가 있다. 느낌이 있다. 그것은심적인 불편함이다. 따라서 그 신호가 있을 때 그것(화)이 입밖으로 나오게 하지 말라. 그것이 활동을 시작하게 하지 말라. 그저 그것이 지나가게 하라 온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라 그것을지켜보라. ‘화가 일어난다. 화가 일어난다, 화가 일어난다. 하고.

그대가 큰 강을 건너고 싶어 한다고 가정하자. 그대는 헤엄을 쳐서 건널 수도 있지만 배를 이용할 수도 있다. 배는 훨씬 쉽고 더즐겁다. 만약 그대가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다 알고 수행한다면그대는 배를 타고 빠르게 이 강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사마타를 알지 못한다면 그대는 손과 발을 이용해야 한다. 사마타수행이 없으면 그것을 메마른 위빠사나(숙카 위빠사나)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둘 다를 아는 것이 좋다."(선정이나 정신 집중의 준비과정 없이 바로 위빠사나를 닦는 수행법을 청정도론』 등의 문헌에서는
‘건乾‘이라고 했다. 사마타, 즉 고요함 없이 통찰의 지혜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마음이 깊은 선정 상태에 들면, 그때 그대는 육체의 의식 너머로 간다. 누군가가 그대를 찔러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소리도 듣지 않는다."

마음의 장애 요소들은 진압될 수 있지만 그것들은 내면 깊은 곳의 무의식 차원에선 사라지지 않는다. 선정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이 부정적인 힘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인간으로서 그대는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다. 왜냐하면 몸이 물질적 차원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대는 돌아와야 한다. 돌아와서 감각 대상과 접촉할 때 그때 그대는 기쁨을 주는 것에 집착한다. 매달리고 비난한다. 짜증이 오고 화가오고 미움이 오거나 탐욕이 온다. 이해가 없고 지혜가 없으면 선정에서 다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그대는 슬퍼진다.

무드라의 메시지는 우리가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니얼 테일러는 무닌드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진리 추구를 계속해 나아감을 상징한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예이다. 진리에 대한 이 경이로움은 끝이 없으며, 다음 순간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에게서 배웠다."
대니얼은 무닌드라가 준 영향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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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그런 동의의 뜻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경험은 대부분 훗날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곤 하지만 그날의 그 깨달음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롤케이크를 들고 다시 의자에 앉은뒤, 나는 아직도 많이 남은 롤케이크를 베어 물었다. 크림이 삐져나와서 바지 위에 떨어졌는데 더이상 창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계속 먹으니 입안이 미끌거리고 속이 메스꺼웠지만 나는 멈추지않았다. 물 한모금도 요구하지 않았다.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을때까지 그녀 역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환상과 두려움의 기원은 같을지도 모른다. 이를 추동하는 미지의 영역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따라 성장의 모양은 달라진다. 이 소설집의 소녀들은 점액질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불현듯 탄생한 놀라운 사랑을 받아들이고, 밤을 또렷하게응시하게 된다. "지저분하고 오염된 것, 우스꽝스러운 느낌" (60쪽)이 드는 것들이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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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받은 참고서가 가득 든 쇼핑백을 품에 안고 있었다. 눈에 젖지 않게 복층 아줌마가쇼핑백 위에 신문지를 덮어주었는데, 눈에 젖은 신문의 기름냄새를 맡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과 패배감을 느꼈다. 나는 내가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지만 누구로부터 그런 취급을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엄마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내내 나는 입을 꽉 다물고 있었고, 평소와 달리 엄마는 그런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불과 며칠 후, 결국 새로운 과외 선생님이 집으로 왔다. 그는 두꺼운 모직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안에 코르덴 재킷과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는 코트와 재킷을 차례로 벗었고 엉거주춤하게 선 채로 물었다.
"이걸 걸어둘 곳이 없을까?"

"네, 미국에서 같이 살았었다고요."
‘같이 살았다‘라는 표현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었다. 나 역시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때는 동거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전이었다. 그건 엄마가 경멸하는 가출한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잘못 불순하고 불온한 일로만 여겨졌다.

그 질문은 내 본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를 당황시키거나 곤란하게 만들려고 계획적으로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왜? 내게 왜 그전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단 말인가? 나는 정말로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그 생강과자 냄새를 풍기고, 자신의 코트와 재킷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신을 물 먹는 하마라고 소개하는가 그것에대해 설명해주기를 절실하게 바랐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설명할 기회를 얻게 되기를 바랐다.

이사 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편함을 뒤지곤 했다. 그전에살던 동네에서 나를 돌봐줬던 언니가 한 달에 한 번 편지를 보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현관의 낡은 우편함을 뒤질때마다 어머니는 팔짱을 끼고 뒤에 서서 나를 지켜보았다. 두어달쯤 지났을 때, 어머니는 그런 말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기겠다는 듯이, 그녀가 편지를 보내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진짜로 끈이 달려 있진 않은데, 뭘로 언니가 나를 조종해요?"
처음 그녀가 그 놀이를 제안했을 때, 나는 그렇게 물었다. 사실나는 기꺼이 그녀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이었다. 아니, 그러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질문이 필요하다고도 느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는 것에 약간은 우쭐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우리 어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런 식의 단어를 사용해 (몇 번 마주치지도 않은) 어른을 평가 내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판단을진실인 양 선포해버리는 그 자신만만함 때문에 그녀는 종이의 맨아래에 날짜와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고, 이름 옆에 빨간색 펜으로도장을 그려넣었다. 상장은 아주 그럴싸해 보였다.

그런 일이 있었던 건 그날 딱 한 번이었다. 나는 요즘도 그날 밤을 종종 떠올려보곤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 속에서 어머니는이제 막 물속에서 나온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머리카락이젖어 있거나 옷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느낌의 문제였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꿈을 꾼 게 아닐까, 무엇인가를 착각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니었을것이다. 꿈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방학을 이 주 정도 앞둔 그날은 성급하게 우편함 안으로 손을 집어넣지 않았다. 어떤 예감이 있었던 걸까? 아니었다.
그저 정말로 추웠을 뿐이었다. 손이 꽁꽁 얼어서 약간 고통스러울지경이었다. 손을 녹인다 한들 별 효과도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손을 녹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덜덜 떨면서 손에입김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외투 소매로 손을 감싼 후에 우편함 안으로 집어넣었다.

"우리 엄마가 입원해 있는데, 아빠는 내가 거기에 가면 안 된대요. 하지만 나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특별히 머리를 쓴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이 입에서 잘도 나왔다.
병원은 거대했고 건물도 여러 개였으며 통로가 많았다. 그런 병원에는 그날 처음 가본 것이었다. 병원이 너무 크고 그곳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사람들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그녀의 병실이 있는 층에 내렸다. 그런 후 별 고민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느라 병실 복도로 이어지는 커다란 유리문이열렸을 때 그 안으로 쑥 들어갔다(성인이 된 후 이 병원을 다시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나는 계속 헤맸다).

"맞아, 내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어. 선물을 돌려달라고 말이야."
그녀는 딴청을 피우듯이 블라인드가 쳐진 창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주었다는 뜻일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편지를 보냈다는 말일까? 다른 사람들도 포옹해준 적이 있다는 걸까? 다른 사람에게도・・・・・・ 내안에서 이런저런 궁금증이 흘러넘쳤지만, 어째서인지 그때 내 입에서 나온 질문은 이것이었다.
"선물을………… 돌려준 사람이 있어요?"

"언니가 외고에 떨어져서 내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 말에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그녀의 눈물이 볼을타고 내려와 머리카락을 적셨고, 목덜미로 흘러들어가 베개에 흔적을 남겼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때, 그녀가 손으로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정성을 들여서 잠시 후 그녀는 상체를일으켜 앉고서 나를 바라보다가 입술 끝을 올려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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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다가오자 우리를 속박하던 질서의 일부분이 힘없이허물어졌다. 담임선생은 자주 자율 학습을 시켰고, 종례 시간이 되면 청소를 다 하고 가라는 말만 남기고 제일 먼저 교실을 떠났다.
체육 선생은 우리에게 피구 경기나 줄넘기를 시키고 교무실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가끔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스탠드에 가만히 앉아서 멍하니 운동장을 바라보곤 했다. 교복을 입은 중학생 오빠들이 정문을 지나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며 가로지르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숙직실은 일층 중앙 로비 뒤편, 후문으로 이어지는 통로 구석에 있었다. 나는 상상 속에서, 신발을 신은 채 중앙 로비로 저벅저벅 들어가는 중학생 오빠들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상상속에서 나는 양우정의 무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마침내 판결이 내려졌고, 나는 순순히 따랐다. 방안의 다른 애들에게서 나를 향한 놀라움과 적대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엉거주춤 안으로 들어간 나는 구석의 장롱 옆에 붙어섰다. 그제야 방의좁은 쪽 벽에 커다란 전신 거울이 걸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대체 이런 게 왜 여기에 있는 걸까? 하지만 그걸 누구에게 물어본단말인가? 그애들조차 이곳의 주인이 아닌데. 양우정은 내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쾌하게 박수를 한 번 쳤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하루종일 비가 와서 옥상에 올라갈 수 없었던 날, 나는 침대 위에 누워서 그녀가 외출하기만을 기다렸다. 혹시라도 남아 있을 아버지의 무신경함의 흔적을 찾아서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볼 계획이었다. 또다른 라이터를 찾으면 다시 한번 더 아버지를 원망할생각이었다(한 번 그런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두 번은 왜 못하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노크도 하지 않고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분통을 터뜨리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직장에서 친구를 사귀었고, 자주 누군가의 집에서 모였다. 열 명 정도 되는 여자들이 보름이나 한 달 간격으로 한집에 모여 저녁을 먹고(보통 중국 음식을 시켜 먹었다. 요리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맥주를 마시는 모임이었다. 모임에는 결혼한 여자도있었고 안 한 여자도 있었다. 남자들은 없었다. 아이가 있는 여자들의 남편은 다른 날짜를 정해서 자기들끼리 만났다. "놀기 위해서 번갈아가며 아이를 돌보는 거죠. 합리적으로 말이에요." 그녀는 돈을 조금 주는 조건으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중년 여자에게 딸을 맡겼다.

나는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왜 세상에 종말이 온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하나도 창피하지 않다는 듯 초연하게 굴었고, 심지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나는 나중에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내 외부에서 벌어지는그 어떤 일도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의 핵심에는 허영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영원히 휴식을 취한다, 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알아?"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마치 이런 식의 주제로 넘어오는 게 정해진 수순이라는 듯이 할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어쩐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구겨진 반팔 티, 헝클어진 머리카락, 번들거리는 이마, 그리고 턱 아래에 남아 있는 옅은 수염 자국 그에게서 술냄새와 땀냄새,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체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시선을 떼고 대답했다.

피크닉을 가던 그날은 그해 여름 들어 가장 기온이 높은 날이었다. 할머니와 나는 바다로 떠날 준비를 했다. 맛있는 음식이 잔뜩든 피크닉 박스가 있었고, 나는 헐렁한 거즈 원피스 안에 수영복을 입고 있었으며 새 샌들을 신고 있었다. 차에 올라타기 전, 삼층끝에 있는 삼촌 방을 올려다보았다. 그토록 더운 날이었는데도 창문은 꼭 닫혀 있었고 커튼까지 쳐져 있었다.

새아빠는 퇴근 후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채 한동안 머물다가 아기를 데리고 나오곤 했다.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분유를 먹이는건 잘했지만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어쩔 줄을 몰라하며 쩔쩔맸고, 결국 아기는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만삭이었던 엄마의 배를향해 그가 보여줬던 위엄은 자취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같았다. 그때의 위엄이 예외적인 것이었고, 주춤거리고 멈칫거리는게 그의 보편적인 특성이었던 걸까? 집안에는 갈피를 잡을 수없는 어떤 분위기가 있었다. 단조로운 활력, 만성적인 고단함, 수용되어야만 하는 체념, 그리고 그 틈새를 흐릿하게나마 감싸고 있는 애정의 조각들.

그가 과외를 그만둔 후, 가끔 새벽에 깨어날 때가 있었다. 어둠속에서 내가 간절하게 바란 건 몇 달 전 새벽에 들었던 목소리를다시 듣게 되는 것이었다. 혹독하고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던 그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누구의 죽음에 대해이야기하고 있었던 걸까? 사실, 그 대답은 자명했다. 너저분하고 짐스러운 신체의 죽음. 그런 생각을 하면 나 자신을 관통하고있는 모든 요소가 하잘것없게 느껴졌고, 오로지 벗어나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을 끝도 없이 흘려보내는 중인 것만 같았다.

복층 아줌마는 화장을 하지 않았고, 감색 모직 스웨터에 검은색슬랙스를 입은 채 우리를 맞이했다. 키가 작고 말랐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살이 쪄본 적 없을 것 같은 몸이었다. 짧게 잘라서 웨이브를 넣은 머리카락은 완전히 새까맸고, 피부는 어두운 편이었다. 그 집 벽에는 (우리집처럼) 무언가가 걸려 있지 않았고 커튼에는 아무런 무늬도 없었다. 있어야 할 어떤 것을 일부러 비워둔 듯한 인상을 주는 집이었다. 화병은 딱 하나였다. 커다란 크리스털화병. 그 안에 신선한 생화가 가득 꽂혀 있었다. 계절에 맞지 않는초록색 투피스를 입고 이 집에 있었을 엄마를 떠올려보았다. 실수로 떨어져나온 얼룩처럼 보였을까? 아니면 벽에 간 실금처럼 보였을까?

나는 침대 위에 앉았다. 푹신한 매트리스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는 내 앞으로 화장대 의자를 끌고 와 그 위에 간식 쟁반을 올려두고 자신은 바닥에 앉았다. 의자의 높이가 어정쩡해서 내가 간식을 먹으려면 상체를 조금 숙여야 했고, 그녀가 먹으려면 팔을조금 높게 들어야 했다. 그녀는 복층 아줌마와 그리 닮지 않은 것같았다.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편이었으며, 등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머리카락은 갈색빛을 띠었다. 말을 할 때마다 왼쪽 볼에 보조개가 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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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한동안 나는 남자 어른들은 말하는 걸 싫어하는 부류인 게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을 정도였다.
엄마는 말로 내뱉을 수 없는 생각이라면 머리와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게 양심이라는 거야!" 외숙모는 수다쟁이였지만 외삼촌의 과묵함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찾아냈는데, 외숙모가 엄마처럼 질문을 던지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숙모는 진정한 수다쟁이였다. 그건 외숙모가 마치 독백을 하듯 혼자서도 어떤 이야기든술술 해낸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외숙모가 자기 내장에 있는 것까지 다 끄집어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나는 두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입에서 자꾸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패배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나를 둥글게 둘러싼 아이들에게서 승리감의 기색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애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패배감을 느꼈을 거라고 영예은의무리를 제외한 다른 애들은 내가 일종의 시험에 들었다고 판단했고 내가 그 시험에 통과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고 말이다. 영예은역시 승리감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피를 흘린 건―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너무 과도한 반응이었다.

들그녀와 아버지는 손님이 오기 전 어떤 역할을 맡을지 미리 약속이라도 한 사람들 같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말을 하고 매력을 발산하며 눈길을 끌고, 아버지는 내내 점잖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관심을 골고루 나누어준다. 아버지는 과묵하게 굴었지만 적절한 때 재치 있는 농담을 던질 줄 알았다. 아버지는 이런말을 했다. 아내는 내 진정한 대변인이야. 우리는 이심전심이야,
나는 말을 할 필요조차 없어, 기타 등등. 그녀를 숭배하는 듯한 아버지의 목소리 주위로, 그전까지 마구 흩어져 있던 자신감과 권위의 조각들이 한꺼번에 일렬로 줄을 서는 것 같았다. 그러면 그녀는 자신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아버지와 맞닿지 않은 어깨 쪽으로모조리 넘겨버리고는 마치 머리카락이 아버지와의 사이를 갈라놓는 장벽이라도 된다는 듯ㅡ아버지의 팔에 자신의 팔을 완전히밀착시켰다. 나는 항상 그걸 못 본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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