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본래 색깔이 없다. 그것이 욕망으로 물들 때 우리는 그것을 ‘탐욕스러운 마음‘이라 부른다.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 그것은
‘화내는 사람‘ 혹은 ‘화내는 마음‘으로 불린다. 마음챙김이 없으면 마음은 이 분노에 영향을 받는다. 분노는 마음을 오염시키는본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독을 만든다. 그러나 마음은 분노가아니며 분노는 마음이 아니다. 마음은 탐욕이 아니고 탐욕은 마음이 아니다. 이것을 기억하라. 마음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본성을 갖고 있지 않다. ‘마음‘은 단지 ‘아는 능력‘, ‘인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그에게는 런던 지하철역에 열차가 도착한 것도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처음엔 거의 알아차릴 수없는 열차 소리, 열차가 다가옴에 따라 점점 커지는 소리, 그 앞으로 밀려오는 바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모든 것이그의 전염성 있는 마음챙김의 장 안에서 활기를 띠었다. 그와 함께있는 것은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지금 여기에 열려 있고 깨어 있는, 살아 있는 수행이었다."

온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일 때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 그것은 영적인 면에서 이로울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면에서도 유익하다.
그것은 또한 정화의 과정이다. 마음이 정화될 때, 몸과 마음의많은 병들이 자동적으로 치유된다. 그때 자신의 분노, 미움, 질투를 이해할 수 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불건전한 요소들의 대부분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감정적인 반사 작용에 의해 축적해 온 그토록 많은 몸/마음의 질병들은 통제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억압과는 다르다.
가까이 다가가 그것들을 들여다봄으로써 많은 육체적 질병, 정신적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때 그것들은 더 유연해지고 더 다루기 쉬워진다.

"일어나고 있는 것이 진리이다. 만약 그대의 마음이 산만해져 있다면, 이 순간에는 그것이 진리이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슴과 머리, 감정과 지성, 믿음과 지혜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 이 사띠, 즉 마음챙김이 둘사이에 균형을 가져온다. 둘 다 필요하다. 너무 많은 노력은 인간을 쉬지 못하게 만든다. 너무 많은 사마디(사념을 떠나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고도로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얻는 고요한 선정 상태)는졸리게 만든다.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집중이 필요한지 어떻게 아는가? 그것이 마음챙김의 기능이다. 마음챙김은 노력과 집중 사이에 균형을 가져다준다.

카말라 마스터즈가 한번은 무닌드라에게 화가 난 적이 있는지물었다. 무닌드라는 카말라에게 말했다.
화가 올 때 거기 하나의 조짐, 신호가 있다. 느낌이 있다. 그것은심적인 불편함이다. 따라서 그 신호가 있을 때 그것(화)이 입밖으로 나오게 하지 말라. 그것이 활동을 시작하게 하지 말라. 그저 그것이 지나가게 하라 온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라 그것을지켜보라. ‘화가 일어난다. 화가 일어난다, 화가 일어난다. 하고.

그대가 큰 강을 건너고 싶어 한다고 가정하자. 그대는 헤엄을 쳐서 건널 수도 있지만 배를 이용할 수도 있다. 배는 훨씬 쉽고 더즐겁다. 만약 그대가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다 알고 수행한다면그대는 배를 타고 빠르게 이 강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사마타를 알지 못한다면 그대는 손과 발을 이용해야 한다. 사마타수행이 없으면 그것을 메마른 위빠사나(숙카 위빠사나)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둘 다를 아는 것이 좋다."(선정이나 정신 집중의 준비과정 없이 바로 위빠사나를 닦는 수행법을 청정도론』 등의 문헌에서는
‘건乾‘이라고 했다. 사마타, 즉 고요함 없이 통찰의 지혜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마음이 깊은 선정 상태에 들면, 그때 그대는 육체의 의식 너머로 간다. 누군가가 그대를 찔러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소리도 듣지 않는다."

마음의 장애 요소들은 진압될 수 있지만 그것들은 내면 깊은 곳의 무의식 차원에선 사라지지 않는다. 선정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이 부정적인 힘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인간으로서 그대는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다. 왜냐하면 몸이 물질적 차원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대는 돌아와야 한다. 돌아와서 감각 대상과 접촉할 때 그때 그대는 기쁨을 주는 것에 집착한다. 매달리고 비난한다. 짜증이 오고 화가오고 미움이 오거나 탐욕이 온다. 이해가 없고 지혜가 없으면 선정에서 다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그대는 슬퍼진다.

무드라의 메시지는 우리가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니얼 테일러는 무닌드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진리 추구를 계속해 나아감을 상징한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예이다. 진리에 대한 이 경이로움은 끝이 없으며, 다음 순간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에게서 배웠다."
대니얼은 무닌드라가 준 영향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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