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끊고 반희는 여행에 대해서보다 자신이 전화로 한 말들을 먼저 돌아보았다. 너무 많은 말을 한 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적게 하려고 애써서 채운을 서운하게 한 건 아닌지, 혹시 쓸데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반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이런 점검을 하는 자신이 싫었고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채운과의 관계에서는 그러지 않았고 그러지 못했다. 자꾸 살피게 되었다. 채운이 알지 모르지만, 반희가 자신을 ‘엄마‘라고 칭하지 않고 채운을 ‘딸‘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도 그런 살핌의 일종이었다.
가끔 오늘처럼 실패하기는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었다.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둘 사이가 끊어진다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는 ‘너‘, 나는 ‘나‘여야 했다.

올라올 때만 해도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해가 비쳤는데 어느새 산그늘이 졌다. 산길을 내려가면서 채운은 반희가 말한 그날이 자신이 기억하는 그날일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운 기억은 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이 기억하는 날은 실제가 아니라 상상인지도 몰랐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초에서 고2까지, 채운은 늘어뜨린 손가락을 천천히 꼽아보았다. 팔 년이었다.
엄마가 버틴 시간, 그리고 고2에서 지금까지 손가락을 꼽아보니칠 년이었다. 세상에, 엄마가 집 나간 지 칠 년밖에 안 됐다고? 채운은 어이가 없었다. 엄마는 팔 년이고 자신은 칠 년이라니, 뭔가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밤새 뒤척이다 새벽에 겨우 잠들었던 반희는 테라스 커튼 사이로 새어드는 빛과 새소리에 잠을 깼다. 옆에 채운이 누워 있었다. 자는 얼굴은 아기 같은데 잔뜩 술냄새를 풍기고 얕게 코까지골며 자고 있었다. 반희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다시 앉아 채운의어깨를 내려다보았다.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채운의 오른쪽 어깨에 타투를 했다가 지운 자국이 손바닥만한 크기의 흉터로 남아 있었다. 흔적으로는 아마 애초에 장미 모양의 타투를 하지 않았을까싶었다. 타투를 한 것도 지운 것도 오로지 채운의 의지였을까. 혹시라도..….…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반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베르타는 이건 바로 내 얘기가 아닌가 싶어 잠시 어리둥절했다.
마리아가 자신의 집에 일을 다녔던 한 달 남짓 동안 베르타가 느꼈던 바로 그 감정, 그 대화를 데레사가 고스란히 복기하고 있는듯했다. 베르타는 먼 하늘을 바라보는 또래 친구 데레사에게 깊은친밀감을 느꼈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하고 사비나가 말했다. 저도 베르타 자매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덩달아 데레사가 고개를 끄덕였고 올가도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수산나는 긴 이야기를 할 수있게 되어 다소 흥분된 기색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마리아는 장례를 부탁하면서 장례미사를 위한 헌금도 냈는데그때만 해도 안셀모 신부는 마리아가 이렇게까지 빨리 죽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 뜻을 잘 알았다고 답하고 감사히 헌금을받았다. 그때부터 마리아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성당 사택으로 반찬과 국을 날라왔고 죽기 바로 전주까지도 역시 반찬과 국을 만들어날라주었는데, 그날 아침에 우리 신부님이 마리아가 만들어준 그반찬과 국을 먹고 바로 당사자의 장례를 준비하러 나갔다고 수산나가 말하자, 올가가 그 참 기가 막히구만, 기가 막혀 했다.

소미가 페북의 그 집사님을 잘 아느냐고 묻자 현수는 잘 모른다고, 그 여자가 집사냐고 되물었다. 근처 지리에 밝은 사람답게 현수는 국도를 달리다 좁은 골목으로 꺾어 들더니 이리저리 우회전좌회전을 하며 달렸고 심지어 포장도 안 된 논둑길을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기도 했다. 논둑길 중간쯤에서 현수가 소미를 돌아보며뭐라고 말했다. 차가 빨리 달리지 않는데도 엔진소리가 시끄러워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 들린다고 소미가 소리치자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미와 현수가 시킨 만둣국이 나왔다. 알이 굵으니까 여기 놓고 꺼먹어, 하고 현수가 앞접시를 들어 보였다. 소미가 굵은 만두한 알을 앞접시에 덜어놓는데 옆자리 남자가 얘는 또 왜 이래 이거 왜 이래 이거, 하고 소리쳤다. 돌아보니 남자의 시선은 옆자리유아차에 앉혀둔 앉혀두었다기보다 담요로 칭칭 감아 묶어둔 듯보이는 작은애를 향해 있었다. 돌쯤 되었나 싶은 작은애가 입가에흰 국물을 흘리며 토하고 있었다. 여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를바라보는 동안 남자가 말했다.

언젠가 한번 소미는 그 땅을 싸게라도 팔아치우려고 한 적이있었다. 묘지로 둘러싸일 땅을 붙들고 있으면 뭐하나 던져버리자 싶어 충동적으로 땅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업자 말로는 산 값의 반도 받기 어려울 거라고 했지만 소미는 어떻게든 팔아달라고했다. 얼마 뒤 업자가 연락을 해서 마침 사겠다는 외지인이 나섰는데 손해를 보더라도 이 기회에 처분하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했다. 소미는 매매계약을 하러 전철과 기차를 갈아타고 U시 역으로갔다. 시간이 일렀고 배도 고파서 소미는 택시를 잡아타고 만둣국을 파는 식당에 갔다.

소미는 그렇다고, 혼자서, 매일, 기차 타고, 소풍 가듯이, 하더니 남편을 빤히 쳐다보았다. 남편은 속으로 소풍이라니 이 여자참 철없는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소미는 처음에 누구 만나는 사람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처럼 갑자기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소미는 현수인지 뭔지 하는 친구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웃고 끝낼 때도 웃은 것인데 남편으로서는 아내가 이렇게 잘 웃는 여자였던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수와 웃음, 이 조합은 한동안 남편 뇌리에 납득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깊이 박혀 있었는데, 땅의 존재를 안 뒤부터는 U시와 웃음, 이라는 새로운 조합으로 간단히 교체되었다. 이번에는 참으로납득이 되는 조합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현수와 연락할 방법을 찾자면 없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현수가 그 땅의 현재 가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을까. 안다면 자기의 혜안이 맞았다고 기뻐하기만 하고 끝낼까. 사람은 절대 그렇게 무구하지 않다. 또 현수가 얼마나 거칠게 변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때 마흔다섯 살의현수도 소미의 상상과는 너무도 달랐지 않은가.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인문대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던 늘씬한 아가씨가 이혼하고 혼자 딸 둘을 키우는 뚱뚱한 중년 여자가 되어 피곤에 전 모습으로 부동산사무실에 앉아 있지 않았던가.

사거리에서 혜영은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좌회전 차선에 접어들며 왼쪽 방향지시등을 켰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자매는 규칙적인 점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 시간이 그날 하루 중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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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은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통이 커서 늘 우리의 리더 노릇을했는데, 리더로서의 자의식도 없는데다 리더의 권위를 도전받아도 개의치 않고 부디 나 대신 누가 리더 좀 해줘 하는 식의 임의적이고 편안한 태도를 취했기에 더 리더로서 적합했다. 툭하면 우리를 구박했지만 우리에게 구박도 잘 당했다. 우리 모두 부영을 믿고 의지했지만 룸메이트인 정원이 특히 그랬다.

먹고 점점 부영에게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게 되었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섰다가도 내 차례가 되면 쓸쓸히 돌아서곤 했다. 누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을까. 갈등과 암투만을 먹고 사는 인간이. 새끼 오리 친구들에게 전화를 못하게 된 후로 나는 술 먹고자주 다쳤다. 낯선 고립감이 이리저리 쏠리면서 신체의 균형을 망가뜨리는 것 같았다. 술에서 깨고 나면 어딘가 욱신거렸고 팔꿈치나 무릎에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어렸을 때의 다친 마음이 뒤늦게 몸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영의 말대로 응석받이였던 나는 살아남았고 부영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정원은 어떤 응석도 없이 갔다. 그리고 정원이 떠난 지 이십 년 되는 날 밤 오래전의 내 못된 술버릇이 모조리 도졌다.

소주 한 병을 새로 시키면서 혹시라도 술에 취해 부영에게 전화를 걸거나 이상한 메시지를 보내게 될까봐 휴대전화를 종료해 가방 깊숙이 넣었다. 이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니까 두진씨가 풀려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부영과 두어 달에 한 번씩은 통화를 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즈음 부영은, 준희야, 내가 요새 잠을 못잔다 했다. 머리 수술하고 나서는 그렇게 밤낮없이 잠만 잤다는데 그때 미리 다 자둬서 그런지 죽어도 잠이 안 온다. 잠이 안 오면 곽두진 생각보다 정원이 생각이 그렇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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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민족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문화, 특히 예술의 영역에서 이는 지극히 깊은 의미를 가지는 말일 것이다. 한 국토가 필연적으로 자아내는 향기와 색채와 형태와 정신이 어떤 명확하고 구체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면, 그것은 반드시 다른 국토의다종다양한 정신으로 자연히 연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분명 깨달을 것이다. 음악이든 회화든 문학이든 마찬가지다. 전후 세대인 사카가미 씨가 그리는 병풍화를 보고 어떤 이는 어쩌면 비난조로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어째서 요즘 시대에 이런 고풍스러운 그림을………"

<흙탕물 강>은 다자이 오사무상을 받았고, 그 수상 후첫 번째 작품으로 <반딧불 강》을 손질해 발표했는데 그것이 생각지 못하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쿠타가와상 수상 후 첫 번째 작품을 써야 하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내 짧은 역사 속에서 ‘강‘이 언제나 커다란 배경으로 흐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문학을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이노우에 야스시 씨의 <아스나로 이야기>를 읽고 아아, 소설은 이렇게멋진 것이구나 생각했고, 그 뒤 닥치는 대로 책을 탐독했다. 푸시킨, 투르게네프, 플로베르, 스탕달, 톨스토이, 도 스토옙스키, 고골, 발자크…………. 나는 수험 공부도 내동댕이치고 언어와 마음으로 짜낸 이야기에 푹 빠진 시기를 보냈는데, 사회인이 되어 나날의 업무에 쫓기기 시작하자 어느덧 문고본 한 권조차 집어 들지 않게 되었다. 문학에 정신없이 매료되었던 시절을 한때 나 자신이 가졌었다는 사실조차 잊었던 것이다.

나는 어째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나. 그런 질문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짊어진 신경중이라는 병을 나의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았을 때, 나는 비로소 결심이 섰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내 안에 있는 생명이 샘솟았다. 이케가미 기이치라는 사람과의 만남도 외적 우연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바라보게 만드는 것 역시 생명의 힘이다.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지만 각본상을 다른 작품에게 빼앗긴일을 두고 나는 오구리 씨에게 전화로 농담 비슷하게 "원작이 훌륭한 덕분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벌이야"라고 말했다. 얼마나 도량이 좁았던가.
그는 순간적으로 그것을 농담이 아니라 내 본심에서 나온 말로 받아들였을 터다. 이 지면을 빌려, 오구리 씨에게나의 속 좁음을 깊이 사과드리고 싶다.

듯한여기까지 쓰고서 나는 지금 번개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더비에서 마권의 축으로 삼았던 말은 모두 1착으로들어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뭘 망설이겠는가. 단순 마권을 사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더비에 한해서라면 나는 단승 귀신인지도 모른다. 올해 더비는 xxxxxx의 단승 마권을 살 테다.

석 달에 한 번씩 열 편을 연재하면 완성하는 데 3년이 걸리는 셈이다. 3년 동안 나의 마음속에 가공의 서러브레드한 필이 계속 존재하는 것이다. 그 한 필의 말에 자신의 꿈을 맡긴, 경주마 생산자와 마주와 조교사와 기수가 지닌인간으로서의 기쁨과 슬픔을 배경으로 나의 ‘바람의 왕‘을창조해낼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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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평생을 끝없이 방탕하게 살다 간 사람이라서내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언쟁이 잦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외동아들인 나를 데리고 자주 집을나갔다. 앞으로 며칠은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가출했지만, 날이 저물면 결국 어디도 갈 곳이 없어서 다시 내 손을잡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북쪽 지역의 번화가나 상점가 신사이바시스지를 걸을때 볼 수 있는 화려한 것은 없었고, 작은 탁자 위에 얇은 나무판을 늘어놓고 참배객의 요청에 따라 거기에 붓으로 뭐라고 써넣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몹시 초라하고 고독해 보였다. 언제까지고 걸어도 어머니가 말하는 절은 안 나오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영 전철이 지나가는 굉음과 대중식당 몇 채와 꾀죄죄한 빌딩이 그 거리의 한 모퉁이를 빗속에서 한층 너저분하게 만들었다. 어수선한 거리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차갑고 한산하다. 말로 표현하자면 그에가까운 감정을 그때 나는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가게를 나와 다시 참뱃길을 걸어 서문까지 갔다.
경내로 들어가 다시 한 번 시텐노지에 있는 것을 봐둘각이었지만, 흐린 하늘 아래에서 기묘히도 눈부시게 빛나는 무성한 새잎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갑자기 불우한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경내에 발을 들이지 않은 채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초여름이었으나거기서 보이는 시텐노지의 가람은, 나에게는 역시 온기 없이 황량한 건물로만 느껴졌다.

평생토록 두 번 다시 생명체는 키우지 않겠다고 맹세했을 텐데, 열흘 전 나는 비글종 수컷 강아지를 데려왔다. 덴스케, 마리, 무쿠, 2대 무쿠, 고로에 이은 여섯 번째 개다.
나의 어린 아들들에게 사랑할 대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며, 생로병사라는 엄연한 법칙을 자연스레 인식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공부를 싫어했고 운동도 잘 못했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서투른 데다 제멋대로에 울보에 병약하기까지 했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담임선생님이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배신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이렇게만 교육하고 있습니다. 매화나무에서는 장미꽃이 피지 않습니다."

는나는 결핵으로 입원했을 때 문화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문화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병으로 고통받으며 오랫동안 입원 생활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일본의 의료기관에서 일하는공무원 중에는 타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은 사람이 많다.
문화국가란 다정한 사람들에 의해 성립되는 나라이지, 전자제품이나 무력이 완비된 나라가 아니다.

이똥
"그는 강가의 자갈밭에 누워 강물을 마시려고 했지만 마실 도리가 없었다. 그는 랭보인가. 천만에, 그런 묘한 남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다. 우리 모두가 죽기 직전의 모습이다."
랭보라는 인간의 정신과 그 말로에 대한 상념에 젖을 때,
나는 고바야시 히데오 씨가 정말 그렇게 느꼈고 느낀 그대로 글을 썼다는 것을 납득한다. 랭보도, 다른 숱한 천재들도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사람은 죽음에 처할 때 그게 우리라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 것이다.

나는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해도 상품 하나를 팔기 위해계속 걸어가는 세일즈맨을 존경한다. 매일매일 핸들을 쥐는 운전사를 존경한다. 눈의 통증을 참으며 교정지를 확인하는 편집자를 존경한다. 그 사람들은 어중간한 학자나 소설가보다 훨씬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내 아내는 그 강아지에게 틀림없이 엄마일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이길 수 없구나 싶다. 엄마라는 존재는 불가사의하리만치 끝 모를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힘에는 외적 우연을 곧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 법이다. 이 사상은 종교적이다."
이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모차르트> 속 한 구절이다. 어떤 불행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며 그에 맞서는 철학을,
인간은 슬슬 추구하기 시작하지 않을까.

인생도 마찬가지일 터다. 야마모토 슈고로는 굴지의 이야기꾼이었지만 벚나무에 장미꽃을 피우지는 않았다. 그- 거짓말은 했지만 인생의 실상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야마모토 슈고로의 작품은 전부 대중소설의 범주속으로 내던져졌다. 나니와부시"라는 소리를 들었고 통속소설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인간의 일상에서 통속적이지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을 통속소설이라든가 나니와부시라고 평가하는 이는 벚나무에장미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기뻐할 사람이 틀림없다.

현대 문학은 두 가지 길로 나뉘려 하고 있다. 벚나무에장미꽃을 계속 피울 것인가, 혹은 벚꽃은 벚꽃, 장미는 장미로 피울 것인가. 이 두 가지 길로 말이다. 100년 뒤에도야마모토 슈고로의 작품이 계속 읽히리라고 확신하는 나는, 머지않아 ‘요물’이 패배해 달아나는 시대가 오리라는것도 확신한다. 야마모토 슈고로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읽을 때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믿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들기 때문이다. 정교한 이론은 결국 늘 소박한 현실에 굴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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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처럼 비가 오는 날, 더 자도 괜찮은데 여덟 시가 되면 허겁지겁 일어나 전철을 타고 대학교 근처의 찻집으로 뛰어든다. 거기에는 볕에 그을린 같은 테니스부 패거리가 벌써 네다섯 명 모여서 시치미 뗀 얼굴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근처 여대의 테니스 부원들도 비 오는 날에는연습을 하지 않아서, 그날만큼은 마음 편히 주스나 초콜릿파르페 같은 것을 먹으며 우리 그룹에 끼기 때문이다. 각자 찍어둔 여자 선수가 있었으므로 비가 아침부터 오는 날이면 강의든 뭐든 뒷전으로 돌리고 찻집에 눌어 붙었다.
요컨대 비 오는 날만이 연습, 연습에 내몰리는 우리에게주어진 장미와 안식의 날이었던 셈이다. 그날만큼은 세상의 여느 대학생들처럼 음악을 들으며 여성의 달콤한 향기를 코끝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소설을 쓰다 지치면 흔들어도 두들겨도 소리가 나지 않는 〈간다강〉 레코드를 바라보았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레코드 라벨을 매직으로 칠해 뒤덮어버렸다. 구입한 지몇 년 만에 나의 전축으로 《간다강>을 들었을 때는 아주행복하기도 했고 이상하게 슬프기도 했다.
당신의 상냥함이 두려웠어…………."
이것은 노래가 되어 비로소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한 소절이다.

내가 산 마권은 모조리 빗나갔고, 해가 슬슬 저무는 무렵에는 돌아갈 전철비와 세뱃돈용으로 빼둔 천엔짜리 지폐 한 장만 남게 되었다. 원래라면 그 천 엔까지도 남김없이 다 써버리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나였지만, 하늘 높이 떠오른 연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좋아져서 멍하게 잔디밭에 앉아 4코너를 통과해 달려가는 무수한 말발굽 소리와 몇 만 명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는 5년 동안 다닌 회사를 1975년 여름에 그만뒀다. 스물여덟 살 때였다. 그 3년 전부터 심한 불안 신경증이 도져서회사원 생활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오래 전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상당히 고민했지만, 나는 낮에 회사 일을 하고 밤에 소설을 쓰는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어졌다. 회사에서 돌아와 열한 시쯤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새벽 서너 시까지 작업을 계속하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는 나날이었는데, 몸이 약한 나에게 그런 턱없는 생활이 가능할 리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똑바로 걷지 못하게 되었고 계단 대여섯 개만 올라가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지쳐버렸다. 이대로 그런 생활을 계속한다면 나는 분명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었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아무 장점도 없는 인간이고, 머리도 나쁘고 완력도없으며, 제멋대로에 겁쟁이에 질투가 심하다. 하지만 단한 가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내가조금은 타인의 고통과 함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살짝 낮춰 대답할 것이다. 대답한 순간 나의 마음에는 틀림없이그 열 권의 손때 묻은 문고본 다발이 스쳐갈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는지모른다. 머지않아 다시 르네상스가 일어날 거라고. 그러지않는다면 지구는 멸망해버릴 거라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 그런가요, 하고 애매한 대답을 할 뿐이다. 진정한 평화는, 달리 말해 전쟁을 저지할 것은, 보유하고 있는무기의 수가 아니라 실은 문화의 힘이라고 믿는 나는 21세기에 르네상스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인간 중 하나다. 열여덟 살 때 읽은 162편의 러시아와 프랑스 소설은 나의 내면에 깊게 침전해 딱 한 방울의 이슬을 뇌수에 떨어트렸다.
그것이 혀 위로 올라오면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라는 말로 바뀐다.

어느 날 갑자기 퇴원하라는 말을 듣고 내 방으로 돌아오자 ‘스토마이‘가 협탁 위에 발라둔 잼을 핥아먹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스토마이‘를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눌러 으깨버리자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관두자, 아냐, 으깨버리자, 승강이 끝에 나는 어째서인지 내 마음과는 정반대로 5개월을 함께한 ‘스토마이‘를 집게손가락으로으깨었다. 사람을 죽인 것과 같은(아직 죽인 적은 없지만) 두려움을 느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해버렸을까.

운이 나쁜 사람은 운이 나쁜 사람을 만나 서로 이어진다.
야쿠자의 곁에는 야쿠자가 모여들고, 편협한 사람은 편협한 사람과 친해진다. 마음이 맑은 사람은 마음이 맑은 사람과, 사기꾼은 사기꾼과 만나 어울린다. 실로 신기한 일이다. ‘유유상종‘이라는 사자성어가 담고 있는 것보다 더심오한 법칙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만들어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최근 겨우 이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법칙 중하나를 깨달았다. ‘만남‘이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지않고서야 어떻게 ‘만남‘이 한 인간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있겠는가. 내가 하는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인간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아내를, 혹은자신의 친구를 철저하게 분석해보기 바란다. ‘만남‘이 결코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을어느 맑게 갠 가을날, 나는 아버지와 경마장에 갔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말을 사달라고 졸랐다. "이번 장사가잘 되면 두세 마리 사주마"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하지만
‘이번 장사‘가 성공적으로 궤도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벌써 십몇 년이 지났다. 말을갖고 싶다는 나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예탁료*만 해도 1년에 월급쟁이 연봉만큼의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설령 내 책이아무리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그 꿈은 이룰 수 없겠구나생각했다. 10엔이 없어서 사카이에서 오사카의 후쿠시마구까지 걸어 돌아왔던 저녁을 결코 잊지 못하는 나에게 경주마를 가질 도량이 있을 리가.

시텐노지四天王寺*는 거리 속에 있다.
이제까지 나는 시텐노지의 경내에 두 번 발을 내딛었다.
첫 번째는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내가 열 살 때였고 두 번째는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취재차 방문한 1981년 봄이다.
열 살 때 기억에 남은 시텐노지와 그 일대의 풍경은 그저잿빛 일색이었고, 아마도 비가 온 듯 흠뻑 젖은 아스팔트길과 비둘기 몇 마리, 절에 인접한 어떤 건물의 긴 담장, 게다가 가람 기와의 빛바랜 광택이 묘하게 선명한 인상으로마음에 각인되어 있다. 모든 것이 죄다 잿빛이었던 듯한느낌이다. 추운 날이었다는 것도 기억이 나고, 어머니와둘이서 시영 전철을 타고 갔던 것도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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