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처럼 비가 오는 날, 더 자도 괜찮은데 여덟 시가 되면 허겁지겁 일어나 전철을 타고 대학교 근처의 찻집으로 뛰어든다. 거기에는 볕에 그을린 같은 테니스부 패거리가 벌써 네다섯 명 모여서 시치미 뗀 얼굴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근처 여대의 테니스 부원들도 비 오는 날에는연습을 하지 않아서, 그날만큼은 마음 편히 주스나 초콜릿파르페 같은 것을 먹으며 우리 그룹에 끼기 때문이다. 각자 찍어둔 여자 선수가 있었으므로 비가 아침부터 오는 날이면 강의든 뭐든 뒷전으로 돌리고 찻집에 눌어 붙었다. 요컨대 비 오는 날만이 연습, 연습에 내몰리는 우리에게주어진 장미와 안식의 날이었던 셈이다. 그날만큼은 세상의 여느 대학생들처럼 음악을 들으며 여성의 달콤한 향기를 코끝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소설을 쓰다 지치면 흔들어도 두들겨도 소리가 나지 않는 〈간다강〉 레코드를 바라보았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레코드 라벨을 매직으로 칠해 뒤덮어버렸다. 구입한 지몇 년 만에 나의 전축으로 《간다강>을 들었을 때는 아주행복하기도 했고 이상하게 슬프기도 했다. 당신의 상냥함이 두려웠어…………." 이것은 노래가 되어 비로소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한 소절이다.
내가 산 마권은 모조리 빗나갔고, 해가 슬슬 저무는 무렵에는 돌아갈 전철비와 세뱃돈용으로 빼둔 천엔짜리 지폐 한 장만 남게 되었다. 원래라면 그 천 엔까지도 남김없이 다 써버리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나였지만, 하늘 높이 떠오른 연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좋아져서 멍하게 잔디밭에 앉아 4코너를 통과해 달려가는 무수한 말발굽 소리와 몇 만 명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는 5년 동안 다닌 회사를 1975년 여름에 그만뒀다. 스물여덟 살 때였다. 그 3년 전부터 심한 불안 신경증이 도져서회사원 생활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오래 전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상당히 고민했지만, 나는 낮에 회사 일을 하고 밤에 소설을 쓰는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어졌다. 회사에서 돌아와 열한 시쯤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새벽 서너 시까지 작업을 계속하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는 나날이었는데, 몸이 약한 나에게 그런 턱없는 생활이 가능할 리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똑바로 걷지 못하게 되었고 계단 대여섯 개만 올라가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지쳐버렸다. 이대로 그런 생활을 계속한다면 나는 분명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었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아무 장점도 없는 인간이고, 머리도 나쁘고 완력도없으며, 제멋대로에 겁쟁이에 질투가 심하다. 하지만 단한 가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내가조금은 타인의 고통과 함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살짝 낮춰 대답할 것이다. 대답한 순간 나의 마음에는 틀림없이그 열 권의 손때 묻은 문고본 다발이 스쳐갈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는지모른다. 머지않아 다시 르네상스가 일어날 거라고. 그러지않는다면 지구는 멸망해버릴 거라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 그런가요, 하고 애매한 대답을 할 뿐이다. 진정한 평화는, 달리 말해 전쟁을 저지할 것은, 보유하고 있는무기의 수가 아니라 실은 문화의 힘이라고 믿는 나는 21세기에 르네상스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인간 중 하나다. 열여덟 살 때 읽은 162편의 러시아와 프랑스 소설은 나의 내면에 깊게 침전해 딱 한 방울의 이슬을 뇌수에 떨어트렸다. 그것이 혀 위로 올라오면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라는 말로 바뀐다.
어느 날 갑자기 퇴원하라는 말을 듣고 내 방으로 돌아오자 ‘스토마이‘가 협탁 위에 발라둔 잼을 핥아먹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스토마이‘를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눌러 으깨버리자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관두자, 아냐, 으깨버리자, 승강이 끝에 나는 어째서인지 내 마음과는 정반대로 5개월을 함께한 ‘스토마이‘를 집게손가락으로으깨었다. 사람을 죽인 것과 같은(아직 죽인 적은 없지만) 두려움을 느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해버렸을까.
운이 나쁜 사람은 운이 나쁜 사람을 만나 서로 이어진다. 야쿠자의 곁에는 야쿠자가 모여들고, 편협한 사람은 편협한 사람과 친해진다. 마음이 맑은 사람은 마음이 맑은 사람과, 사기꾼은 사기꾼과 만나 어울린다. 실로 신기한 일이다. ‘유유상종‘이라는 사자성어가 담고 있는 것보다 더심오한 법칙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만들어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최근 겨우 이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법칙 중하나를 깨달았다. ‘만남‘이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지않고서야 어떻게 ‘만남‘이 한 인간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있겠는가. 내가 하는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인간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아내를, 혹은자신의 친구를 철저하게 분석해보기 바란다. ‘만남‘이 결코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을어느 맑게 갠 가을날, 나는 아버지와 경마장에 갔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말을 사달라고 졸랐다. "이번 장사가잘 되면 두세 마리 사주마"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하지만 ‘이번 장사‘가 성공적으로 궤도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벌써 십몇 년이 지났다. 말을갖고 싶다는 나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예탁료*만 해도 1년에 월급쟁이 연봉만큼의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설령 내 책이아무리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그 꿈은 이룰 수 없겠구나생각했다. 10엔이 없어서 사카이에서 오사카의 후쿠시마구까지 걸어 돌아왔던 저녁을 결코 잊지 못하는 나에게 경주마를 가질 도량이 있을 리가.
시텐노지四天王寺*는 거리 속에 있다. 이제까지 나는 시텐노지의 경내에 두 번 발을 내딛었다. 첫 번째는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내가 열 살 때였고 두 번째는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취재차 방문한 1981년 봄이다. 열 살 때 기억에 남은 시텐노지와 그 일대의 풍경은 그저잿빛 일색이었고, 아마도 비가 온 듯 흠뻑 젖은 아스팔트길과 비둘기 몇 마리, 절에 인접한 어떤 건물의 긴 담장, 게다가 가람 기와의 빛바랜 광택이 묘하게 선명한 인상으로마음에 각인되어 있다. 모든 것이 죄다 잿빛이었던 듯한느낌이다. 추운 날이었다는 것도 기억이 나고, 어머니와둘이서 시영 전철을 타고 갔던 것도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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