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응구가 웃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서 수지가 가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마음 맞는 사람 몇몇과 지방을 전전하며 노가다 생활을할 때였다. 숙소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는 수지의 이름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며칠 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밤새 마신 술이 깨기를 기다렸다가 늦은 오후에 아내를 찾아갔다. 아내는 누운 채로 나를 맞았다. 할 이야기가 없어 수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야기를 한참 하다보니 아내가 수지를 모른다는 게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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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듣자마자 구내식당의 식판이 눈앞에 떠올랐다. 넉넉 또한 양과 다채로운 반찬들 사이에 언제나 끼어 있던 중국산 김치,
중국에서 먹으면 국내산이다 농담하면서 물컹거리며 짓이겨지는배춧잎을 억지로 삼킬 때, 퇴식구에서 숟가락 젓가락은 따로 내놓으라고 외치던 조리사 아주머니가 다가오는 나를 기다리면서 뚫어져라 수저만 쳐다볼 때, 옆구리를 잡힌 채 전혀 ‘미쓰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 때, 아버지를 잃은 나에게 자칭 아버지라는 사람이 잘 키워주겠다는 말을 했을 때, 돌이켜보니 전부 비슷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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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바라는 것을 함께 도모했던 우리가, 이제는 각자 살아남을 길을 찾기 위해 흩어지는 사람들로 남아야 한다는 걱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 더이상 남겨지는 방식으로 살지 말자.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내가 지금껏 비교적 행복하게 살아왔던건 둔감해서였다고 해두자. 하지만 행복과 둔감이 같은 상태가 아니라는 건 안다. 말하자면 나는 이제 어떤 단어라도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잘 살아가려는 사람이다. 호영의 답장이 늦는다. 견디다보면 결국 누군가를 닮게 될 뿐이라는걸 호영은 알까. 엄마가 사다리를 오르더니 지붕의 눈을 털기 시작했다. 나는 장갑을 끼다 말고 서둘러 썼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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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일은 카페에서 나오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음악에 조예가 없는 나로서는 별로 할말이 없었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상일은 내게 주로 무슨 음악을 듣는지 물었다. 클래식. 상일은 자기도 클래식은 잘 모른다고 했고 나는 내심 다행스러웠다. 좋아하는 음악 장르를 알면 섹스 스타일도 알 수 있는데, 상일의 말에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뭐라고? 웃음기 섞인나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상일은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 내가 뭘 좀 썼는데 한번 봐줄래? 맞춤법도 맞지 않는 문장 몇 개가 영어문장들 사이에 간혹 섞여 있는 짧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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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재영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재영이는 남편의 딸인데 올해로 열여덟 살이 되었다. 그 아이를 남편과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사 년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 나는 재영이가 아직도 남편과 한 달에 한 번쯤 만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남편은 내게 그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돈을 주면 사람들은 많은 것을 알아다주었다. 짐보에게 그애 이야기를 몇 번인가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매끈한 얼굴을 커터 칼로 그으면 어떤 느낌일까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짐보는 나와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기에 그에게는 마치 땅을 파서 비밀을 이야기하고 묻어버리는 것처럼 마음에 담아둔 말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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