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 선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카리브해의 타이노족이 돌돌 만 마른 나뭇잎 끝에 불을 붙여 연기를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콜럼버스는 이걸 새로운 형태의 약이라고 보았다. 물론 현재의 우리는 타이노족이 나뭇잎을 태워 피우는 문화가 당시보다도 1500년 전인 마야 문명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안다. 콜럼버스와 선원들은 그 식물을스페인으로 가져갔고 타이노족의 언어를 빌려 tabaco라 불렀다.
1561년 리스본 주재 프랑스 대사였던 장 니코 드 빌망 Jean Nicot deVillemain 은 친구 집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했다가 tabaco를 보았다. 그날 밤 만찬 참석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그 잎사귀에 강력한 치유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파리로 돌아온 니코는 대비이자 섭정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게 아들의 편두통에 써보라며 담배 가루를 보냈다.
그 방법이 통했건 통하지 않았건 담배는 파리의 인기 상품이 되었고곧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이후 프랑스는 니코를 기리는 의미에서담배에 herba nicotonia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담배풀에서 발견된 알칼로이드 성분도 그의 이름으로 불렀다. nicotine은 19세기초영어에수입되어 지금까지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맹세할 때 많은 사람이 흔히 자기 생명이나 명예를 건다. 절실한신념을 담은 진지한 약속인 경우에는 신에게 맹세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날 swearing은 맹세보다 욕설이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한 단어가 어쩌다 이렇게나 다른 뜻으로 쓰이게 된 걸까? 그 이유를살펴보면 나름의 연관성이 있는데, 중세 시대 사람들은 신의 이름을너무 자주 부르는 일이 불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어의 많은 인사말은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중세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오래된 표현이 많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많이 쓰인wotcha도 헨리 6세의 인사말 what cheer에서 유래했다. what cheer은지인을 만났을 때 잘 지내는지, 어떻게 지내는지를 묻는 전통적인 표현이다. 여기서 cheer은 얼굴을 뜻했다. 표정이 마음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what cheer가 변형된 게 전형적인 코크니런던 동부 노동자 계층의 방언. 가수 아델이 쓰는 말투로 유명하다 어휘인 wotcha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인사말은 비단 영어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가령 이탈리아어 작별 인사 ciao도 ‘나는 당신의 노예입니다‘라는 뜻의 방언schiavo에서 온 것이다.

어떤 행사나 파티에 갔다가, 혹은 길에서 우연히 누구를 만나 ㅇ야기를 할 때 별로 재미없다고 느껴지면 빠르고 정중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떠날 기회를 엿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눈치 보지 않고 재빨리 absquatulate하는 사람들도 있다. 1830년대에 미국에서 장난스럽게 만들어진 absquatulate는 어딘가를 갑자기 떠나는 걸 가리킨다.
이 말이 만들어질 당시는 터무니없고 우스꽝스러운 단어나 표현을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absquatulate의 경우는 라틴어와 일상어를 섞어만든 단어다.
말장난 열풍 속에서 다른 재미있는 조어들도 많이 태어났다.
discombobulate혼란에 빠뜨리다, skedaddle허둥지둥 달아나다은 지금까지 사용되는 표현이다. 반면 어떤 것들은 안타깝게도 금세 사라졌는데, 그중에는 goshbustified지나치게 흡족해하다, dumfungled완전히 탈진한처럼 흥미로운 단어들도 꽤 있다. 또 허풍꾼과 관련해서는 blustrification허세,
humbuggery속이다. bamboozlement골탕 먹임 같은 단어들이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약성어에는 흔히 외부에 대한 비난이 깔려 있다. NATO는 ‘Noaction, talk only행동은 안 하고 말만 한다‘의 약자로, 기술자들이 답답한 사무직 직원을 비유할 때 쓰는 암호다. PICNIC은 ‘problem in chair, notin computer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의 약자로, 설명서에 다 나와 있는데도 거듭 문의하는 상습 문의자를 가리키는 기술 지원 팀의 비밀 속어다(RTFM, read the fucking manual제발 설명서 좀 읽으세요라는 말도 있다).

별명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별명은 많은 성의 기원이기도 하지만, 사전 편찬자에게 그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 bilberry 항목에 실린 최초의 인용문은 1584년에 쓰인 것이지만, 노팅엄 법원 기록에는그보다 2세기 전에 살았던 Adam Bilberylyp이라는 사람의 기록이 있다. 이름으로 보아 아마도 입술이 푸르죽죽했던 모양인데, bilberry는현대에 블루베리와 비슷한 빌베리를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판은 깊은 동굴이나 어두운 숲 같은 외딴곳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장난 치는 것을 좋아했기에 지나가던 나그네들은 알 수 없는 곳에서 터져나오는 거대하고 섬뜩한 소리를 들으면 판의 고함이라 생각했다. 판의 명성 덕분에 16세기 영어에는 갑작스럽고 강렬한 공포를뜻하는 Panic frights, Panic fear 같은 표현이 들어왔다. 그러다 세월이흐르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런 어원은 점차 사라지고, panic은 학교나 회사에 지각할 것 같은 불안과 짜증을 표현하는 말로 자리 잡게되었다.

이쯤되면 해독제로 쓰이던 theriake가 어떤 성분이었는지 궁금해지지만 아쉽게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치료제 하나는 몰약, 사프란, 주름버섯, 생강, 계피, 유향을 비롯한 41개의 재료를 넣어 만든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대부분이 희귀한 재료였을 것이다. 로마 시대에 제조되던 어떤 약은 아편과 뱀도 넣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달콤한 시럽과는 거리가 엄청나다.

싶오늘날 BBC 사옥 앞에는 마틴 제닝스가 만든 오웰의 조각상이 서있다(BBC 회의실도「1984』에 101호실로 나오는 고문실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한다).
조각상 뒤쪽 벽에는 1984] 속의 한 문장이 적혀 있다. "만약 자유가무언가를 의미한다면 그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할 권리다."

theist라는 말을 들으면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이 단어가 17세기 말 처음 기록되었을 때는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좀 더 현대적이라 여겨지는 두 번째 뜻도 있다. 이 두 번째 뜻은 신성한신(그리스어로 theos)이 아니라 따뜻한 차tea를 숭배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theism은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딱 한 번 기록되긴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이 말을 쓸 명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theism은 차 중독자를 말한다. 차를 사랑한 것으로 유명한 시인 퍼시비시 셸리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침대 위에 누워 뒹굴면서 차를 마시는 것 외에는 어떤 일도 거부하는 사람(7월 27일 참고)을 칭할 때는 prioriteasepriority와 tea를 결합한 말라는 말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커피 애호가에게는 procaffeinate라는것이 있다. 이 단어는 prioritease보다 널리 알려져 있고, 커피를 한잔마시기 전에는 어떤 일도 시작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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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오후, 아니 하루 전체를 헛되이 낭비해본 사람이라면 빈둥거리기가 역사적으로 전혀 새로운 게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될지도 모르겠다. 13세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13세기에 생겨난 말 forsloth는 빈둥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행동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단어다. 하루를 빈둥빈둥 보내는 건 시간을 몰수당하는lorfeit 일이며 그런 사람은 엄청난 게으름뱅이 sluggard기에, 이 두 단어가 합쳐져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사전을 살펴보면 게으름 피우는 것과 관련된 표현이 아주 많다. 15세기에는 tiffle, piddle, pick asalad, 17세기에는 fanfreluch, 지난 세기에는 moodle, fanny, fart-arse같은 다양한 표현이 게으름을 가르키는 말로 쓰였다.

프랑스 사전에 실렸음에도 영국인들은 이 단어가 영국 것이라고생각한 것 같다. 영국에서 이 단어는 주인을 너무 바짝 따라다니다가업무 지시 외의 다른 것까지 받게 되는문자 그대로는 방귀를 잡는다는 뜻 시종을 뜻하는 속어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말은 정치적 대세를 따르는 사람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바람결에 따라 펄럭이는 바람자루의 17세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4월, 풍자 잡지 《내셔널 램푼National Lampoon》이 등장했다.
이 잡지의 패러디와 초현실적 스타일은 몇십 년 동안 미국 코미디에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lampoon이란 누군가를 조롱한다는 뜻이지만원래는 술과 관련된 말이었다. 17세기 프랑스에서 "Lampons!"이라고하면 "술 마시자!"라는 뜻으로 술자리에서 부르는 외설스럽고 조롱 가득한 노래를 의미한다.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비슷한 말로 pasquinade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내셔널 램푼》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는 단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pasquinade는 인물이나 사건을 익명으로 풍자하고 조롱하는 걸 의미하며 16세기 초 로마에서 발굴된 조각상에 기원을 두고 있다. 사람들이 조각상 하단에 격렬한 풍자와 조롱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조용한 기술자의 이름을 딴 것 같다. 다른 기념물들에도 비슷한 일이이후 조각상은 Pasquino라 불렸는데, 아마 바티칸 사람들을 즐겨생기자 로마에서는 Pasquino처럼 교회와 국가를 신랄하게 비난하는글이 게재된 조각상을 말하는 조각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작되었을「캔터베리 이야기』는 순례자들이 런던에서 캔터베리까지 말을타고 순례 여행을 가며 이야기 경연을 하는 구성이다. 목적지는 캔터베리 대성당의 성 토머스 베켓 성지였고, 우승 상품은 귀환길에 서더크 대성당에 있는 타바드 인의 공짜 식사였다. 휴가 기분에 들뜬 순례자들은 가십과 이야기를 나누며 긴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먼 길을 가야 하는 말이 지치지 않도록 느린속도로 움직인다. 당시에는 그런 걸음을 Canterbury trot이라 표현했는데, 이 말이 17세기가 되며 Canterbury로 줄었다가 마침내 canter가되었다.

람이 죽었다.
유대인 탄압의 역사는 ghetto라는 단어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1516년 베네치아는 유대인들을 사회에서 분리시키기 위해 고립된 주거 구역을 만들었고, 많은 유럽 도시가 이를 따랐다. 베네치아의 유대인 구역은 옛 주물공장터에 세워졌다. 이탈리아어로 getto가 주물공장을 뜻하니 이게 ghetto의 어원이라 볼 수도 있지만, 교외를 뜻하는borghetto, 즉 borgo에 작다는 뜻의 접미사가 붙은 것이라고 말하는사람도 있다. 오늘날은 ghetto의 뜻이 넓어져 고립된 소수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의미의 영역은 확장되었을지언정 그 뿌리가 반유대주의에 있다는 역사적 사실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수는 없다"며 그 사실naked truth있는 그대로의 사실라는 표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우화「진실과 거짓」에서 비롯되었다. 이 우화는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서정 시집Horace‘s Odes』과 고대의 몇 가지 이야기에 등장한다. 내용인즉슨 진실과 거짓이 함께 목욕을 하는데, 거짓이 먼저 물에서 나온 뒤진실의 옷을 훔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진실은 거짓의 옷을 입느니 알몸이 되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러 표현으로반복되다가 중세 시대에 naked truth로 확립되었다. naked truth와 대척점에 있는 말로는 the skinny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 가십가 있는데, 비교적 최근인 1930년대에 태어난 말이다.

May는 여신 Maia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 Maius mensis에서 온 단어다. 마이아는 그리스신화의 티탄 신 아틀라스의 일곱 딸 중 하나로로마신화에서는 봄과 다산을 상징하는 마이아 마에스타Maia Majesta가되었다.
may는 산사나무 꽃의 이름이기도 하다. 개화 시기는 5월이며 영국 시골 곳곳의 산울타리에 핀다. 고대영어 노래인 <May Day> 가사를보면 "5월에 견과nuts를 주우러 가네"라는 대목이 나온다. 주로 가을에보이는 견과를 5월에 이야기하는 게 이상해 보이는데, 아마 산사나무꽃다발을 뜻하는 knots of May가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셰익스피어가 말한 darling buds of May 도 산사나무를 가리킨 걸 수 있다.

1525월 4일은 스타워즈의 날이다. <스타워즈> 팬들은 이날 "May theFourth be with you"라고 인사를 나누는데, 이것은 <스타워즈>의 유명대사 "May the Force be with you포스가 함께하길"를 비튼 표현이다. 수세대에 걸쳐 수천만 명을 사로잡은 <스타워즈〉 시리즈는 세계까지는몰라도 영화계의 판을 바꾸었다는 평을 받는다.
<스타워즈>는 언어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droid, jedi, lightsaber, Padawan 같은 단어와 함께 Force의 새로운뜻이 〈스타워즈>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jedi(<스타워즈>에서 신비의 힘인포스를 사용하는 영웅적인 수도승 전사)는 뛰어난 기술이나 불가사의한 힘을가진 사람을 두루 뜻한다. 영화에서 로봇을 뜻하는 droid는 주로 인격없는 자동인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며, 제다이 수련생을 뜻하는Padawan은 젊고 미숙하고 순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스타워즈>는 정치에도 스며들었다. 스타워즈라는 말 자체가 전략방위구상(1983년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군사 방어 전략, 소련이발사한 미사일을 우주에서 파괴하는 계획이다)의 별명이 된 것이다. <스타워즈>가 세상에 선보인 지 40년가량이 지난 지금, 악의 무리에 대한 승리와몰락한 영웅의 부활을 그린 이 이야기는 중요한 문화 지식 중 하나로남아 있다.

1954년 5월 6일 어느 비바람 부는 오후, 런던 세인트메리 병원의한 의학생이 근무를 마치고 옥스퍼드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그리고몇 시간 후에 달리기의 역사를 바꾸었다.
로저 배니스터는 훌륭한 달리기 선수였던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배니스터의 아버지도 당시 많은 선수가 그랬듯 달리기가 끝나면 곧잘기절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배니스터는 아버지와는 다른 상황에서 달리기를 배웠다. 그에게 달리기는 취미일 뿐 아니라 나치 대공습 때 방공호로 달아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아마 빨리 달리지 않으면 폭탄이 머리 위로 떨어질 거라고 상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과 함께 『영어 방언사전 Englih DialectDictionary)은 잠자리에서 읽기 아주 좋은 책이다. 조금 두껍긴 하지만,
옥스퍼드대학교 문헌학자 조지프 라이트의 주도하에 발간된 이 여섯권짜리 방언 모음집은 아직도 이 분야의 표준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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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옛날부터 특별한 동물이었고 언어에서도 그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낸다(1월 5일 참고). 곰은 두려움과 흥미를 자극하는 존재이자잔인한 중세의 여흥 수단으로 영어 곳곳에 웅크리고 있다. 웨일스어로 곰을 뜻하는 arth 또는 arthen에서 게일어 이름 Art와 Arthur가 나왔다. Ben은 곰을 뜻하는 어근 bera를 품은 게르만어계 이름이다. 노르만 계열의 이름인 Orson도 곰을 뜻하는 프랑스어 ours에서 온 것이다. 또 곰의 여신 아르티오를 모시던 도시는 오늘날 베른(곰의 도시)이되었고, Arctic북극과 Antarctic남극은 북반구의 두 별자리인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에서 온 이름이다.
바이킹은 특히 곰을 존경했는데, 비외른Björn 같은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북유럽신화에는 거칠고 사나운 고대 전사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berserker rage라는 무시무시한 춤을 췄다. berserker는 전쟁에 나가는 전사들이 입었던 곰 가죽으로, 이가죽을 입으면 초인적인 힘이 생긴다고 믿었다. 오늘날 go berserk 난폭해지다처럼 쓰이는 말에는 곰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겨울의 정원은 조용히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새해가 시작되면 몇몇 식물을 선두로 활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이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단연 천리향daphne이다. 천리향은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OITZIOOMIL피며 향기도 진하다.
daphne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월계수에서 왔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요정 다프네Daphne는 원치 않는 아폴론의 애정 공세를 피해 도망다니는 처지였다. 절박해진 다프네가 아버지 (대부분의 사료에서 강의 신 페네오스라 알려져 있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페네오스는 다프네를 월계수로 만들어준다(7월 25일 참고).
나무로 변신하기 전 다프네는 샘이나 우물 등 민물의 요정인 나이아데스의 일원이었고, 강물의 요정인 포타미데스 중 하나이기도 했다. 포타미데스 중에는 레테 Lethe(저승에 흐르는 망각의 강 레테에 사는 망각의요정)도 있는데, 레테가 지키는 강의 물은 이승에서 쌓은 기억을 모두잊게 한다. 레테의 이름에서 탄생한 말이 lethargic무기력한이다.

와스카치위스키 생산에 관해서는 15세기부터 기록이 남아 있다. 제임스 4세가 파이프주 린도레스 수도원의 존 코 수사에게 맥아 8배럴로 강한 증류주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whisky라는 단어 자체는 1715년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시인 겸 골동품상 제임스 메이드먼트는 "위스키는 우리 두뇌를 미치게 할 것이다"라는 불길한 문장을남겼다. 1753년 《젠틀맨스 매거진》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 독주에 대한 불안이 아일랜드까지 퍼져 있었다. "위스키라는 그 저주받은 술은더블린의 한 술집에서만 454리터가 팔린다."
하지만 18세기 런던에서 공적 지탄의 대상이 된 진gin과 달리위스키는 꾸준히 평판이 좋아져서 스코틀랜드 최고의 유산으로 꼽히게 되었고, 생명수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라틴어 aqua vitae에서온 아쿠아비트(북유럽식 증류주)가 그렇듯이 whisky의 어원인 게일어usquebaugh도 생명수라는 뜻이다.
스카치위스키는 real McCoy라는 신기한 표현도 남겼다. ‘진정한것‘을 뜻하는 이 표현은 미국 권투 선수 키드 매코이, 유명 목축업자,
금주법 시대의 럼주 상인 등을 가리킬 때 쓰여왔다. 하지만 사실 최초의 사례는 매코이가 아니라 매케이, 정확히 말하면 에든버러의 유명위스키 업체인 메서즈 G. 매케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짜 매케이 한방울"은 1800년대 말 인기 광고 슬로건이었다.

2월 9일 무렵부터는 개구리와 두꺼비가 올챙이 tadpole로 부화할알을 낳기 시작한다. tadpole은 직역하면 ‘두꺼비 머리‘라는 뜻이다. 머리와 꼬리만 있는 올챙이의 형태 때문에 붙은 이름일 것이다. 여기서pole은 voting poll투표의 형제 단어로, 원래는 머릿수 세는 일을 뜻했다.
개구리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중요한 의료용 동물이었다. 예컨대산 개구리를 입에 물고 있으면 목병이 낫는다는 말이 있었다. 한편개구리와 두꺼비가 독을 품고 있다는 말도 있었고, 17세기의 돌팔이와사기꾼들은 이 믿음을 이용해 의심스러운 재주를 부리기도 했다.
quack은 quacksalver(‘연고 바르는 사람‘이라는 뜻의 네덜란드어)가 줄어든 단어다. 16세기에는 장터 곳곳에서 신기한 재주로 사람을 놀라게하며 각종 의료 용품을 팔던 가짜 의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의 악명 높은 술책 중 하나는 독이 있다고 알려진 두꺼비를 조수에게먹인 후 기적의 약을 처방해 목숨을 구한 뒤, 군중에게 그 약을 만병통치약이라고 파는 것이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1850년대 크림전쟁 야전병원들을 시찰하던 중 어떤 요소가 환자의 회복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부상병들의 위치였다. 나이팅게일은 식물이 태양을 향해기울듯 환자들이 창문을 보며 눕는 모습을 발견했다. 심지어 자세가고통스러워도 바꾸지 않았다. 햇빛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한나이팅게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환자가 원하는 건 그저 빛이 아니라 내리쬐는 햇빛이었다."

파이어는 배열된 단어의 글자 수가 파이의 숫자와 똑같도록 쓰는 언어다. 사람들은 파이어로 시도 썼고, 단편 소설도썼고, 하이쿠(파이쿠라고도 한다)도 썼고, 심지어는 책도 썼다. 예를 들어마이클 키스가 쓴 1만 단어 분량의 작품 『흔적 없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Now I fall, a tired suburbian in liquid under the trees." 이처럼 파이의 숫자(3.1415926535……)를 각 단어의 알파벳 개수에 반영하는 것이다.
파이 데이는 모두가 즐기는 기념일은 아니지만, 파이 데이의 팬들은 사랑하는 무리수를 기념하기 위해 이 날 파이를 굽는다. 먹는 파이pie에도 의외의 기원이 숨어 있는데, 라틴어 pica까치에서 온 말이다.
여러 재료를 모아 만드는 파이의 특징이 까치가 주워 모은 잡동사니와 비슷해서다.

‘오늘날 조롱을 뜻하는 heckling은 노동조합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이 단어의 기원은 특히나 호전적이던 스코틀랜드 노동조합에서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heckle (hackle이라고도 한다)은 아마나 대마 섬유를 빗어 정돈하는 강철 빗을 말한다. 이 작업이 공업화되기 전까지heckling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중노동이었다. 악명 높은 작업장이었던 스코틀랜드 던디의 글래스고 베넬 10번지는 환기조차 되지 않아 중노동을 할 만한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힘든 환경에서 끝없이 작업한 사람 중에는 시인 로버트 번스도 있었다. heckling 작업은 but과ben이라는 두 과정으로 이루어졌으며 ben 쪽에서 처리한 삼실을 but쪽에 보관했다.
#0081880년부터는 공장 노동자들이 노동환경 개선 투쟁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이들의 무기는 머릿수와 고함이었다고 한다. 그 뒤로 사람들은 heckling이라고 하면 금세 노동조합과 열변을 떠올리게되었고, 여기서 관중의 조롱이라는 뜻이 생겼다고 한다. 더 간단한 설도 있는데, 얽힌 삼실을 빗으로 꼼꼼히 빗고 끊고 펴는 일이 정치인이나 공연자에게 끈질기게 질문하는 것과 비슷해서라는 것이다.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로는 책과 더불어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최초의 ‘앨범’은 음악이 아니라 독서와 관련된 말이었다. 고대 로마에서 흰색과 검은색을 동시에 뜻하는 albus는 공지 사항을 적은 서판을가리켰다.
이런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나무에서 책이 나온 게 너무나 적절하게 느껴진다. 참고로 tree는 true와 언어적 뿌리가 같으며, truth는충성, 확고함, 견실함을 뜻한다. 사전 편찬자들이 늘 단어의 root를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봄이 오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그간 머물던 찬 기운이 온기에 자리를 비켜주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는 3월 중순은 새싹이 힘차게 흙을 뚫고 나오는 시기다. 겨울의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 건 비단식물만이 아니다. 이때는 사람도 기쁨이 싹트고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른다. 활력을 느끼는 걸 넘어 명백한 vernalagnia를 경험하기도 한다. vernalagnia는 봄이 올 때 생기는 낭만적 감정으로, 최근에 라틴어vernalis봄의와 lagnia욕망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말이다.

3월 23일은 세계 기상의 날이다. 많은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흥미롭게 전달하려는 경쟁 속에서 날씨를 전하는 TV, 라디오, 인터넷 매체들이 과장을 보탠 덕에 날씨 용어는 최근 들어 많은 변화를 겪었다.
도입에는 강렬한 멘트를 넣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다. "오늘은 악천후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폭풍은 남쪽으로 이동하며 강펀치를 안겨줄 예정입니다." thundersnow비 대신 눈이 오는 폭풍, frostquake기온이 강하하며 발생하는 지진, firenado불의 소용돌이 같은 현상들이 새롭게 알려지기도 했다. 다행히 안목 있는 일부 기상 캐스터들은 petrichor(7월 31일 참고)나 apricity(3월 2일 참고) 같은 다양한 어휘를 사용해 날씨를 설명한다.
극적인 날씨에 대한 전통 어휘는 지금도 탐구할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혼란과 파괴를 연상시키는 허리케인hurricane Hurakán 이라는 고대의 외다리 신에서 유래했다. 그는 마야 문명에서 힘이 꽤 강했던 신 중 하나로, 인간을 창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Hurakán이라는이름은 외다리를 뜻하는 토착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며 K라는다른 신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K 역시 외다리이며 번갯불을 상징하는 뱀으로 묘사된다. Hurakán은 바람, 폭풍, 불의 신이다. 남아메리카의 타이노족, 카리브해의 카리브족과 아라와크족도 Hurakan 신이날씨를 지배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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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바를 다 먹고 해가 지는 천변을 오래 걸었다.
Y가 꿈에서 봤다는 하늘이 꼭 이랬을까? 나는 지난 어버이날 먼저 전화를 걸어온 엄마가 수화기를 붙잡고 아이처럼 울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안좋은 일이든, 안 좋은 마음이든 자식이 신경 쓸까 봐 무조건 숨기려고만 하던 엄마가 이제는 올 일이 생기면 자식에게 먼저 전화해서 "오늘은 내가 마이 싫다" 말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나는 그게 반갑다고 엄마가 충분히 약해진게, 평생 기댈 줄을 모르고 살았다면 더 속상했을 텐데, 이제 나는 우는 부모를 달래주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그게 좋다고, Y를 집에 데려다주고 혼자 돌아오는 길,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꿈에서도 시간이 없는 거야"
생각하다 보면 끝내 슬퍼지는 말.

누군가 편한 삶을 가지는 데에는 얼마큼의 행운이 따라야 하는 걸까.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늘 작은 것들뿐인데. 어제 집 앞의 다이소에 갔을 때 값싼 물건들 사이를 걸으며 신중하게 필요한 걸 고르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쓰는 알로에 젤은 시장에서 8,000원이 넘는데 여기는 3,000원밖에 하지 않는다고 반색하며 세 개를고르던 표정.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속이 노란 수박을 내어왔을 때 집에 돌아가서 심어보겠다고 수박씨를 휴지에 감싸 챙기던 아빠의 모습. 침대에 누워 여기선 산이 내려다보여 참 좋다고 말하던 모습, 꿈도 없이 곤한 잠을 잤다고 말하던 부스스한 얼굴. 그런 것만 마음에 맺혔다. 쉴틈 없이 살아오다가 한숨을 내어놓듯 잠에 빠지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자식은 언제나 부모보다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제야 조금은 의지가 되는 자식의 자리에 서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듯 장바구니에 무얼 주섬주섬 주워 담는다. 꿈에서도 없는 시간이 현실에서 넉넉할 리 없고, 올려다본 하늘은 꼭 해 질 넉처럼 노랗다. 서둘러도 삶에 자꾸만 지각하는 사람에게 유일한위로가 되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자각 속에서만 비로소제대로 하게 되는 일에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데에, 더 잘 사랑하는 데에 남은 시간을 쓸것이다.

테라스 자리를 빼고 나면 전에 살던 빌라보다 공간이더 좁았다. 1,000권 넘는 책들을 비롯해 어디에 둬야 할지난감해진 각종 짐들을 테라스 옆 창고에 뭉뚱그려 보관해야 했다. 말은 창고지만 바깥에 있던 계단을 없애면서길게 덧댄 임시 공간이었다. 북향집은 겨울이면 안팎의온도 차로 인해 테라스로 통하는 새시 문이 꽝꽝 얼어붙어 열리지 않았다. 방한재인 ‘뽁뽁이를 붙여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책들이 있는 창고로 가고 싶은 날엔 드라이어로 창틀의 얼음을 녹여야 했다.
그 집에서 세 번의 겨울을 났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난다. 책을 읽고 싶을 때마다 드라이어로 얼어붙은 새시문을 정성스레 드라이해 주고 있던 내가 농담 같아서.

나는 그런 한계를 좋아했다. 아껴 마땅한 시간을 아끼게 해주어서. 하루하루 이 테라스에서 보낼 시간이 줄어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좋은 사람들을 불러서 좋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 몫으로 온 것이니 아꼈고, 어떻게 더 쓰일지 모르니아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그가 삶으로부터 도망치려 한 적 없다는 걸 안다. 스물셋에 결혼하자마자 시할머니 중풍 수발을 들어야 했을 때에도, 빨래 널고 돌아서면빨랫감이 또 쌓여있는 집에서 한겨울에 맨손으로 빨래를하다 펑펑 울었을 때에도, 그나마 자신을 아껴주던 시아버지가 폐암 선고를 받고 집에서 2년 넘게 투병했을 때에도, 갚아도 갚아도 빛이 줄어들지 않는 살림이 막막할 때에도. 인숙 씨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전에 살 방법을,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화장실 세 번째 칸에 앉아서, 서로의 표정을 가려주는 파티션 안쪽에서 고개를 숙인 채, 사람들이 떠난 회의실에서 한숨을 돌리면서. 진짜 살아보고 싶은 삶을 내 마음속에만 숨겨 두었다는 것, 그건 ‘믿는구석‘인 동시에 일터의 고단함을 이겨내게 해주는 상비약 같은 것이기도 했다. 스스로 선택한 지금의 시간을 잘 딛고서 다른 시간으로 건너가고 싶었다. 일터에서 배우는 것들, 동료들과 일하는 즐거움, 함께 이룬 좋은 결과를 앞에 두고 느끼는 보람도 귀한 것이었다. 일하는 나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장점이 얼마나 큰가보다‘ 견딜 수 있는 단점인가 하는 것이기도 했고..

시간을 정말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정신없이 흘러가 버리는 하루로 인생이 채워지는 게괜찮은 걸까?
예전엔 괜찮았던 시간이 분명 있었다. 퇴근 후에, 주말에, 누구에게도 팔지 않은 시간 속에서 내 삶을 생각하는것만으로 다시금 회복되곤 했다. 휴일 오후의 카페에 앉아 밀린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여행지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살아보자, 저렇게 살아보자 마음먹을 때, 삶에 대한 통제권이 분명 내게 있다고, 쓰지않은 자유가 내 손 안에 있다고 느꼈다. 내려다 본 빈손이 허전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사전에서는 긍지를 이렇게 말한다. 늘 입에 담기엔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뜻풀이를 보니이해가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긍지를 잃어갔던 건조직이 요구하는 것에 함몰되어 나에 대한 믿음보다 의심을 키워갔기 때문이었다. 나를 계속 부족한 인간으로평가했다.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마음으로는 사실 무엇도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고 이미 믿고 있으니까.

그러니 방학이 끝나면 이젠 정말 글을 쓸 것이다. 내가선택한 일을 계속 사랑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데에 다가을 시간을 쓸 것이다. 여태 애써준 동생한테 고마워하는맘으로, 미래에서 기다릴 언니를 생각하는 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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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뙤약볕 아래를 벗어날 수 없게 된 건 집에 빚이늘어나면서부터였다.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어른들 드실 밥을 안치고 밭에 나갔고, 밤이슬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몇 년 차로 쓰러진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집에서 오랜 투병을 시작했다. 농사일이 밀린 날이면 엄마는 캄캄한 밤에도 헤드 랜턴을 쓴 채로 오이 덩굴을 손질하곤 했다. 사정도 모르는 사람들은 비닐하우스너머로 어른거리는 랜턴 불빛에 혀를 차며 말했다. 저집은 돈독이 올라 저렇게 일한다고. 독한 것 좀 보라고. 쉽게 흉보고 소문에 옷을 입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삶이 이곳에 있다고. 강의실이나 도서관이나 방송국 조명 아래가 아니라 이 들판에, 산자락에, 색색의 지붕 아래에 있다고. 어떤 마음이 너무 귀해서미안해지는 건 그 속에서 내가 잊고 살던 ‘더 나은 것’을보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런 셈도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돕는다는 자각 없이도 돕는 할머니 곁에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배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돕고,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이미 틀렸다는 비관이나 사람에게환멸을 느낀다는 말 같은 건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떤 반딧불은 길을 건너듯 이편에서 날아와 사람들사이를 거쳐 저편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위험한 줄도 모르고 다가오네, 생각하다 퍼뜩 이 밤을 헤집고 다니는 건나라는 걸 깨닫는다. 새삼스레 숲의 주인은 누구인가 생각하게 됐고, 제주에는 한낮의 여행자들과 바다를 향해선 카페들, 별점과 해시태그로 표시되는 식당들만 있는게 아니라, 밤의 어둔 숲이 있고, 반딧불이 있고, 빈 오름이 있고, 노루와 새들이 있다. 원래부터 이 섬에 살던 것.
이 섬의 주인인 것들. 그 생각을 하면 이 밤 이 숲에 불쑥들어온 것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어떤 존재를 의식하며 이토록 조심스럽게 걷는 경험도 낯설었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조용히 함께 있을 수도있었는데, 너무 크게 말하고 소란스레 걷고 팔을 휘젓는바람에 저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는 생각.

어떤 것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가 충분히 어두워져야만 한다는 것. 이상하게 그 밤엔 그것이 남은 삶에 대한은유로 들렸다. 계속 걸으라는 말로도 들렸다. 우리는 어둠 속을 걸을 수 있는 존재. 캄캄한 마음으로 걷다가 어둠에 서서히 눈이 익었을 때 비로소 보게 되는 것, 내가 언제고 글로 옮기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었다.

낭만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볼 일은 없으니 곰곰이 앉아 생각해 본다. 낭만은... 어쩌면 동해를 보러 가려면 두 시간아니라 열두 시간이 걸리던 시절에 있는지도 바꿔 말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야만 생기는 일들 속에 돋보기로햇빛을 모으듯 하염없이 쌓이는 시간을 바라보다 마침내거기서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기다릴 수 있을때, 우리가 속도를 얻은 대신에 잃어버린 건 어떤 ‘이야기‘가 생길 가능성인지도 몰랐다.

기꺼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던 순간을 떠올리다 보면기억은 어느새 10여 년 전의 지산 록 페스티벌에 이른다.
소나기가 와서 잔디밭은 이미 진흙탕이 된 지 오래였다.
비라는 게 맞기 전에야 피하려고 들지만, 어느 정도 맞고나면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사람을 좀 천진하게 만드는구석이 있다. 사람은 몰리는데 임시로 지은 시설들은 열악했고 우리는 한여름의 더위와 습도와도 싸워야 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하면 어딘가에 적어둔다. 휴대폰 메모장에 일기처럼 끼적일 때도 있고,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에 단어만 몇 개 적어둘 때도 있고, 가방 속에 노트가들어있을 땐 거기 짧게 메모해 두기도 한다. 방금 만난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아끼는 상자에 넣어두는 마음으로, 그럴 때 깨닫는다. 그동안 나도 줄곧 뭔가를덕질해 오고 있었다는 걸. 학창 시절부터 어떤 대상을 깊이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내 밍밍한 애정은어디에도 속할 데가 없는 것 같아서. 그런 나에게도 알고보니 오랜 덕질 대상이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붙잡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발에 쉽게 채는 것 같지만 실은 보거나듣다 보면 이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잖아, 싶어지는 그런 이야기.

디테일에 마음을 빼앗겨 책 바깥의 실체를 만져보고싶어질 때도 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들어간 술집 벽에 적혀있는 낙서가 언급되면, 지금이라도 당장 낡은 벽이 낙서로 채워져 있는 걸 아는 몇몇 술집에 찾아가 낙서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나는 거기서 어떤 낙서들을 발견하게 될까. 지나가는 버스 옆구리의 광고판에 적힌 문구를 주인공이 중얼거릴 때면 차량 흐름이 많은 집 앞 사거리로 달려 나가 버스 옆구리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 자리에 10분 동안 서있으면서 나는 어떤 문구들을 읽게 될까. 이상하게도 불쑥불쑥 그런 마음이 치솟는 것이다. 글속에 담긴 것을 글 밖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 우리삶이 결국 이런 디테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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