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바를 다 먹고 해가 지는 천변을 오래 걸었다. Y가 꿈에서 봤다는 하늘이 꼭 이랬을까? 나는 지난 어버이날 먼저 전화를 걸어온 엄마가 수화기를 붙잡고 아이처럼 울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안좋은 일이든, 안 좋은 마음이든 자식이 신경 쓸까 봐 무조건 숨기려고만 하던 엄마가 이제는 올 일이 생기면 자식에게 먼저 전화해서 "오늘은 내가 마이 싫다" 말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나는 그게 반갑다고 엄마가 충분히 약해진게, 평생 기댈 줄을 모르고 살았다면 더 속상했을 텐데, 이제 나는 우는 부모를 달래주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그게 좋다고, Y를 집에 데려다주고 혼자 돌아오는 길,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꿈에서도 시간이 없는 거야" 생각하다 보면 끝내 슬퍼지는 말.
누군가 편한 삶을 가지는 데에는 얼마큼의 행운이 따라야 하는 걸까.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늘 작은 것들뿐인데. 어제 집 앞의 다이소에 갔을 때 값싼 물건들 사이를 걸으며 신중하게 필요한 걸 고르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쓰는 알로에 젤은 시장에서 8,000원이 넘는데 여기는 3,000원밖에 하지 않는다고 반색하며 세 개를고르던 표정.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속이 노란 수박을 내어왔을 때 집에 돌아가서 심어보겠다고 수박씨를 휴지에 감싸 챙기던 아빠의 모습. 침대에 누워 여기선 산이 내려다보여 참 좋다고 말하던 모습, 꿈도 없이 곤한 잠을 잤다고 말하던 부스스한 얼굴. 그런 것만 마음에 맺혔다. 쉴틈 없이 살아오다가 한숨을 내어놓듯 잠에 빠지는 게 어떤 기분인지 나는 짐작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자식은 언제나 부모보다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이제야 조금은 의지가 되는 자식의 자리에 서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는 듯 장바구니에 무얼 주섬주섬 주워 담는다. 꿈에서도 없는 시간이 현실에서 넉넉할 리 없고, 올려다본 하늘은 꼭 해 질 넉처럼 노랗다. 서둘러도 삶에 자꾸만 지각하는 사람에게 유일한위로가 되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자각 속에서만 비로소제대로 하게 되는 일에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데에, 더 잘 사랑하는 데에 남은 시간을 쓸것이다.
테라스 자리를 빼고 나면 전에 살던 빌라보다 공간이더 좁았다. 1,000권 넘는 책들을 비롯해 어디에 둬야 할지난감해진 각종 짐들을 테라스 옆 창고에 뭉뚱그려 보관해야 했다. 말은 창고지만 바깥에 있던 계단을 없애면서길게 덧댄 임시 공간이었다. 북향집은 겨울이면 안팎의온도 차로 인해 테라스로 통하는 새시 문이 꽝꽝 얼어붙어 열리지 않았다. 방한재인 ‘뽁뽁이를 붙여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책들이 있는 창고로 가고 싶은 날엔 드라이어로 창틀의 얼음을 녹여야 했다. 그 집에서 세 번의 겨울을 났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난다. 책을 읽고 싶을 때마다 드라이어로 얼어붙은 새시문을 정성스레 드라이해 주고 있던 내가 농담 같아서.
나는 그런 한계를 좋아했다. 아껴 마땅한 시간을 아끼게 해주어서. 하루하루 이 테라스에서 보낼 시간이 줄어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좋은 사람들을 불러서 좋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 몫으로 온 것이니 아꼈고, 어떻게 더 쓰일지 모르니아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그가 삶으로부터 도망치려 한 적 없다는 걸 안다. 스물셋에 결혼하자마자 시할머니 중풍 수발을 들어야 했을 때에도, 빨래 널고 돌아서면빨랫감이 또 쌓여있는 집에서 한겨울에 맨손으로 빨래를하다 펑펑 울었을 때에도, 그나마 자신을 아껴주던 시아버지가 폐암 선고를 받고 집에서 2년 넘게 투병했을 때에도, 갚아도 갚아도 빛이 줄어들지 않는 살림이 막막할 때에도. 인숙 씨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 전에 살 방법을,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손을 뻗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화장실 세 번째 칸에 앉아서, 서로의 표정을 가려주는 파티션 안쪽에서 고개를 숙인 채, 사람들이 떠난 회의실에서 한숨을 돌리면서. 진짜 살아보고 싶은 삶을 내 마음속에만 숨겨 두었다는 것, 그건 ‘믿는구석‘인 동시에 일터의 고단함을 이겨내게 해주는 상비약 같은 것이기도 했다. 스스로 선택한 지금의 시간을 잘 딛고서 다른 시간으로 건너가고 싶었다. 일터에서 배우는 것들, 동료들과 일하는 즐거움, 함께 이룬 좋은 결과를 앞에 두고 느끼는 보람도 귀한 것이었다. 일하는 나에게 중요한 건 언제나, 장점이 얼마나 큰가보다‘ 견딜 수 있는 단점인가 하는 것이기도 했고..
시간을 정말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정신없이 흘러가 버리는 하루로 인생이 채워지는 게괜찮은 걸까? 예전엔 괜찮았던 시간이 분명 있었다. 퇴근 후에, 주말에, 누구에게도 팔지 않은 시간 속에서 내 삶을 생각하는것만으로 다시금 회복되곤 했다. 휴일 오후의 카페에 앉아 밀린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여행지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살아보자, 저렇게 살아보자 마음먹을 때, 삶에 대한 통제권이 분명 내게 있다고, 쓰지않은 자유가 내 손 안에 있다고 느꼈다. 내려다 본 빈손이 허전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사전에서는 긍지를 이렇게 말한다. 늘 입에 담기엔거리감이 느껴지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뜻풀이를 보니이해가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긍지를 잃어갔던 건조직이 요구하는 것에 함몰되어 나에 대한 믿음보다 의심을 키워갔기 때문이었다. 나를 계속 부족한 인간으로평가했다.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많았다. 그런 마음으로는 사실 무엇도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고 이미 믿고 있으니까.
그러니 방학이 끝나면 이젠 정말 글을 쓸 것이다. 내가선택한 일을 계속 사랑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데에 다가을 시간을 쓸 것이다. 여태 애써준 동생한테 고마워하는맘으로, 미래에서 기다릴 언니를 생각하는 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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