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뙤약볕 아래를 벗어날 수 없게 된 건 집에 빚이늘어나면서부터였다.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어른들 드실 밥을 안치고 밭에 나갔고, 밤이슬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몇 년 차로 쓰러진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집에서 오랜 투병을 시작했다. 농사일이 밀린 날이면 엄마는 캄캄한 밤에도 헤드 랜턴을 쓴 채로 오이 덩굴을 손질하곤 했다. 사정도 모르는 사람들은 비닐하우스너머로 어른거리는 랜턴 불빛에 혀를 차며 말했다. 저집은 돈독이 올라 저렇게 일한다고. 독한 것 좀 보라고. 쉽게 흉보고 소문에 옷을 입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내가 배우고 싶은 삶이 이곳에 있다고. 강의실이나 도서관이나 방송국 조명 아래가 아니라 이 들판에, 산자락에, 색색의 지붕 아래에 있다고. 어떤 마음이 너무 귀해서미안해지는 건 그 속에서 내가 잊고 살던 ‘더 나은 것’을보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런 셈도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돕는다는 자각 없이도 돕는 할머니 곁에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배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돕고,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이미 틀렸다는 비관이나 사람에게환멸을 느낀다는 말 같은 건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솟아나는 말들을 나는 그대로 둔다. 희망이 생기도록 내버려 둔다. 가르친 적 없는데 배우게 하는 것, 그게 내가아는 할머니들의 교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떤 반딧불은 길을 건너듯 이편에서 날아와 사람들사이를 거쳐 저편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위험한 줄도 모르고 다가오네, 생각하다 퍼뜩 이 밤을 헤집고 다니는 건나라는 걸 깨닫는다. 새삼스레 숲의 주인은 누구인가 생각하게 됐고, 제주에는 한낮의 여행자들과 바다를 향해선 카페들, 별점과 해시태그로 표시되는 식당들만 있는게 아니라, 밤의 어둔 숲이 있고, 반딧불이 있고, 빈 오름이 있고, 노루와 새들이 있다. 원래부터 이 섬에 살던 것.
이 섬의 주인인 것들. 그 생각을 하면 이 밤 이 숲에 불쑥들어온 것이 미안해지기도 했다.

어떤 존재를 의식하며 이토록 조심스럽게 걷는 경험도 낯설었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조용히 함께 있을 수도있었는데, 너무 크게 말하고 소란스레 걷고 팔을 휘젓는바람에 저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는 생각.

어떤 것을 바라보기 위해 우리가 충분히 어두워져야만 한다는 것. 이상하게 그 밤엔 그것이 남은 삶에 대한은유로 들렸다. 계속 걸으라는 말로도 들렸다. 우리는 어둠 속을 걸을 수 있는 존재. 캄캄한 마음으로 걷다가 어둠에 서서히 눈이 익었을 때 비로소 보게 되는 것, 내가 언제고 글로 옮기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었다.

낭만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볼 일은 없으니 곰곰이 앉아 생각해 본다. 낭만은... 어쩌면 동해를 보러 가려면 두 시간아니라 열두 시간이 걸리던 시절에 있는지도 바꿔 말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야만 생기는 일들 속에 돋보기로햇빛을 모으듯 하염없이 쌓이는 시간을 바라보다 마침내거기서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기다릴 수 있을때, 우리가 속도를 얻은 대신에 잃어버린 건 어떤 ‘이야기‘가 생길 가능성인지도 몰랐다.

기꺼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던 순간을 떠올리다 보면기억은 어느새 10여 년 전의 지산 록 페스티벌에 이른다.
소나기가 와서 잔디밭은 이미 진흙탕이 된 지 오래였다.
비라는 게 맞기 전에야 피하려고 들지만, 어느 정도 맞고나면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사람을 좀 천진하게 만드는구석이 있다. 사람은 몰리는데 임시로 지은 시설들은 열악했고 우리는 한여름의 더위와 습도와도 싸워야 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하면 어딘가에 적어둔다. 휴대폰 메모장에 일기처럼 끼적일 때도 있고,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에 단어만 몇 개 적어둘 때도 있고, 가방 속에 노트가들어있을 땐 거기 짧게 메모해 두기도 한다. 방금 만난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아끼는 상자에 넣어두는 마음으로, 그럴 때 깨닫는다. 그동안 나도 줄곧 뭔가를덕질해 오고 있었다는 걸. 학창 시절부터 어떤 대상을 깊이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내 밍밍한 애정은어디에도 속할 데가 없는 것 같아서. 그런 나에게도 알고보니 오랜 덕질 대상이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붙잡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발에 쉽게 채는 것 같지만 실은 보거나듣다 보면 이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잖아, 싶어지는 그런 이야기.

디테일에 마음을 빼앗겨 책 바깥의 실체를 만져보고싶어질 때도 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들어간 술집 벽에 적혀있는 낙서가 언급되면, 지금이라도 당장 낡은 벽이 낙서로 채워져 있는 걸 아는 몇몇 술집에 찾아가 낙서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나는 거기서 어떤 낙서들을 발견하게 될까. 지나가는 버스 옆구리의 광고판에 적힌 문구를 주인공이 중얼거릴 때면 차량 흐름이 많은 집 앞 사거리로 달려 나가 버스 옆구리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 자리에 10분 동안 서있으면서 나는 어떤 문구들을 읽게 될까. 이상하게도 불쑥불쑥 그런 마음이 치솟는 것이다. 글속에 담긴 것을 글 밖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 우리삶이 결국 이런 디테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기억해두고 싶은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