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최초로 문자를 발명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 문자를 가르쳐 주고자 했으나 마땅한 종이도 없고 책도없었기 때문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문자를 빨랫줄처럼 생긴 긴줄에 매달아 놓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문자를 배우면서 빨랫줄까지 포함해서 받아 적게 되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사실이기라도 하듯, 오늘날 인도의 문자들은 모두 빨랫줄에 걸린 것 같은모양을 하고 있다.

나는 내 고장인 마르와리어와 내가 기르는 낙타들의 언어,
그리고 신과 대화를 나누는 영혼의 언어를 이해할 줄 안다오, 뒤의 두 가지는 아마도 당신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일지도모르겠소."
신문기자와 내가 침을 꼴깍 삼키는 사이, 노인이 덧붙였다.
‘당신들이 아무리 외국어 실력이 유창하다 해도, 신과 대화를나눌 줄 모른다면 그 모든 것은 쓸모없는 일일 것이오."
나는 노인의 이 말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신문기자의 통역을 거쳐야만 했다. 신과의 대화에는 통역이 필요 없어야 한다는 것을 그 사막 유목민이 내게 일깨워 준 것이다.
실제로 그러했다. 아무리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한다고 해도영혼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처음에 나는 그것이 나 자신의 경험이고, 내가 주인공인 것으로 착각했다. 이야기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주연과 조연, 모든 엑스트라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아니, 이 영화에는 엑스트라란 없었다. 모두가 훌륭한 주연들이었다. 이마에 붉은 점을 찍고, 한 손가락으로 코를 풀고, 태양을향해 엄숙한 자세로 기도를 올리고, 때로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폼을 잡긴 해도 그들은 어떤 할리우드 배우도 흉내 낼 수 없는탁월한 인생극장의 배우들이었다. 나는 어색하고, 긴장하고, 두려움에 떨고, 때로는 쓸데없이 거만하기까지 한 엉터리 배우에 불과했다.
따라서 내가 쓰는 모든 스토리는 그들의 것이지, 결코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그 스토리를 경험하고 그것으로부터 삶에대해 배울 뿐이다. 그것만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배역이다. 그 배역을 훌륭하게 해냈는가가 다음 생에서의 나의 배역을 결정하는 기준이리라.

‘인도를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어느 곳에서든 진정한 인도, 혹은진정한 삶의 신비와 맞닥뜨릴 것이다. 인도에서든 삶 속에서든나는 신비를 발견하는 눈을 잃지 않고자 노력했다. 나는 별을 바라보는 사람이고자 했다. 따라서 나를 신비주의자라고 나무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신비를 찾아가는 자이고,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젊은 사두에게 더 늦기 전에 글을 배울것을 강조하자, 그는 내게 들으라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글을 모르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영적인 문맹이다. 세상에는 많은 학식을 자랑하지만 영적으로 문맹인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의 타르 사막에서 만난 한 사두에게 일생에 남을 ‘한마디의 말‘을 부탁하자, 그는 내 물병을 바라보며 즉석에서 한마디의 명언을 남겼다.
"사막에서는 한마디의 명언보다 한 방물의 물을 나눠 마시는 것이 더 소중하다!"

"신은 지름길로 가게 하려고 우리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찾던 게스트하우스는 바로 다음 골목에 있었다.

적선을 청하는 나가 바바(평생 나체로 수행하는 사두)의 깡통에 동전 하나를 떨어뜨리며 ‘지혜의 말씀‘을 부탁하자, 벌거벗긴 했지만 자존심 센 그 사두는 말했다.
"고작 2루피(35원)를 던져 주고서 인생을 바꿀 한마디의 말을 요구한단 말인가?"
그러고 나서 그가 들려준 지혜의 말은 이것이었다.
‘소중한 것을 얻으려면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라‘

"내가 잊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북인도 심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가 묻자, 히말라야 산중의 강고트리로 가는 중인 고행승 사두가 말했다.
"우리 모두는 인생 수업을 받으러 온 학생들이라는 사실이지.
그것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해."

북인도 하리드와르에서 만난 한 사두는 어디서 왔느냐는 내 질문에 단 한마디로 정곡을 찔렀다.
‘전생에서 왔다!"

바레일리 출신의 한 사두는 내가 가난한 인도인 가장에게 병원에 갈 돈 300루피를 적선한 이야기를 하자, 내게 충고했다.
"선한 행위를 한 것을 남에게 말하지 말라. 한 번 말할 때마다그 공덕이 절반씩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는 공덕이 전부사라지고 만다. 그 대신 당신이 나쁘게 행한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라. 그것이 진정으로 참회하는 길이다."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푸쉬카르의 노천 찻집에 앉아 여행가이드북을 뒤적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사두가 말했다.
"힌두스탄을 여행하면서 그까짓 안내 책자에 의지하지 말라.
신으로 하여금 그대의 여행을 인도하게 하라."

"나는 행복한 사람이오, 가진 게 많지 않을 뿐, 반면에 당신들은 가진 게 많을 뿐이지 행복한 사람들은 아니잖소?"
인도에서 내가 배운 ‘행복론‘은 다름 아닌 이것이다. 우리는 다만 행복해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것,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을 자신에게 자주 일깨워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단 하나의 길은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이미 갖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것. 삶을 사랑하고,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행복은 때때로 놀라움과 함께 찾아오며, 자기 자신이 완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 곧 행복임을기억하라는 것이다.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곧잘 서로에게 "아 유 해피?" 하고인사를 한다. 이 행성에 여행을 온 우리들 역시 하루에 한 번씩은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행복한가?‘ 하고.
‘노프라블럼!‘이라는 말과 함께 그것은 내 인도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마치 인도 대륙 전체가 내게 묻는 것 같았다.
"아유 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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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생각과 행동을 통합하기란 크림에게 여전히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죽기전까지 살았던 로어이스트사이드의 온수도 안나오는아파트에서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자신을 갈기갈기찢어놓던 그 무력감을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필력이절정에 달했을 무렵, 크림은 자기처럼 환상을 현실로바꿔내지 못한 모든 이를 대변하는 데 재능을 할애했다.
그는 반항적으로 백일몽을 꾸는 이 자아를 계몽의 도구로삼는 단순한 방식을 통해, 성장하지도 일에 착수하지도못하는 미국인의 무능을 은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이 사회에서 당당하고도 탐구심넘치는 ‘실패자‘이고, 우리 같은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사실에서 모순적인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무엇을 시도했고 지금은 왜 취약해졌는지 안다는 건현명하고도 명예로운 일이다. 한때 빛나는 포부를망토처럼 두른 당신을 보았지만 지금은 그저 흐린 날어수선한 이부자리와 거친 나무 탁자에 놓인 더러운컵들밖에 보지 못하는 이들이 주는 충격에 왜 이토록취약해졌는지를

관용구란 본디 어떤 언어에서든 아드레날린을곧장 치솟게 만드는 종류의 표현이라 늘 젊은 감각을선사하지만, 뉴욕 길바닥에서 들을 수 있는 산전수전 다겪은 그런 언어에 견줄 만한 건 지금껏 없었다. 뉴욕은중년의 산문 작가들이 영원한 젊음의 목소리로 ‘난 이제젊지 않아!"라고 외쳐대도 되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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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컬러 축제 때 입었던, 물감으로 얼룩덜룩해진 티셔츠를 꺼내 볼 때면 잔티가 문득 어디선가 미소 지으며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잘록한 허리에 기다란 손가락들을 펴고서 그러고는 환영처럼 속삭이며 내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의 삶에는 봄이 왔나요?"

"신은 빛이라네. 그 빛은 내 안에도 있고, 그대 안에도 있어. 이허공중에도 있고, 그 빛은 언제까지나 우리 안에서 빛날 거야.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말이야."

지금 나는 깨닫는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이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내게 필요했기 때문에 그 많은 일들이 일어났음을. 한때 나는 어리석었고, 긴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모든 것이하나의 과정이었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로 나를 데려오기 위한필연적인 단계였다.
그 길 외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었다.

"그대는 왜 부처가 아닌 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언제까지 그렇게 부처가 아닌 것처럼 가장하며 살 것인가?"
졸고 있던 나는 화들짝 놀라 스승을 바라보았다. 스승은 불같은 목소리로 내 영혼을 흔들어 놓았다.
"그대는 본래 부처이다. 과거에도 부처였으며, 지금도 부처이고,
앞으로도 부처이다.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그대 자신이 부처가 아닌 체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그대여, 더 이상 부처 아닌 체하며 살지 말라!"

고백할 필요도 없이, 그 후로도 나는 매번 졸음에 빠져 나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다. 어떤 때는 너무 철저히부처가 아닌 것처럼 행동한 나머지, 정말로 나 자신이 부처가 아니라는 굳은 확신이 들기까지 했다.
지금 그 스승은 육체를 벗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날 아침의 불꽃같던 음성은 아직도 내 안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그대는 언제까지 그렇게 부처가 아닌 체하며 살아갈 것인가!"

‘당신들은 언제나 다음을 이야기하죠. 하지만 다음이란 없어요. 내 말을 잘 들어요. 우리도 항상 다음으로 미루며 살아왔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라를 빼앗기고는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집을 잃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가 뒤로 미루기만 하던 일들을 하나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한곳에 오래 머물라. 그래서 그들과 하나가 되고, 똑같은 태양으로 이마를 그을리라.
그것만이 자아의 벽을 허물고 세상과 화해하는 길이다……….
‘옴마니밧메훔‘과 함께 내 목걸이에 새겨 둘 중요한 여행 수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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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결론을 내리듯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쓰는 글을 다른 사람이 읽기 전에 맨 먼저 읽는 사람이 당신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마시오. 당신이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당신의 신이 맨 먼저 당신의 글을 읽는다는 것도 당신이 쓰는 글은 당신의 영혼에 맨 먼저 새겨질 것이고, 신은 언제나 당신의 영혼 속에 새겨진 것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오."

신은 그 거지 여인을 통해 내게 말하고 있었다. 인간은 서로 만져 주어야 한다는 것을 시인이든 문둥병 여인이든 누구나 만져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무도 만져 주지 않는다면 길에 버려진망고 열매처럼 영혼이 쪼그라들어 버린다는 것을………….
행복에 찬 거지 여인의 얼굴은 한 떠돌이 여행자의 영혼에도생기를 불러일으켰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그 거지 여인과 작별하고 히말라야를 향해 출발했다.

어디로 갈여행자가 가장 힘들 때는 길이 없을 때가 아니라 길이 너무 많을 때다.
넓은 운동장에서 혼자 제식 훈련을 하는 사람처럼 배낭을 멘채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바꿔 보았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에서 기차가 정차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었다. 한순간의 충동에 이끌려 기차를내린 것이 잘못이었다. 그때 나는 단조롭게 반복되는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반쯤 졸음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기차가 이유 없이 들판 한가운데 멈춰 섰고, 그 틈을 타 충동적으로 배낭을 들고 기차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점점 무거워져 가는 배낭을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나무에다 걸어 놓았다.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도 뽑아서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아무리 가벼운 것도 무거운 법이다.
그렇게 반나절이 넘도록 걷고 또 걸었다. 이제는 너무 멀리 와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갈 수조차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미 너무멀리 와버렸기 때문에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갈 수가 없게 된 사람.....….

그들은 내게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중인지조차 묻지 않았다.
그렇다, 지친 여행자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야 한다. 그는 이미 많은 여정을 지나왔을 테니까.
힌디어로 ‘손님‘은 약속 없이 찾아오는 사람이란 뜻이다. 나는그들에게 말 그대로 손님이었던 것이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차파티로 저녁을 먹고 나자, 지평선저쪽에서 휘영청 달이 떠올랐다. 달은 무대의 막을 올리듯 수많은 반짝이 별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모닥불에 끓인 짜이와 고독, 잠든 염소들과 별들, 그 모든 것들이 넘치도록 많은 밤이었다.

그 여행이 너무도 힘들어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순간이 올지라도 여행자에게는 그 여행을 이끌어 주는 소중한 빛이 있다. 내게끝없이 손을 흔들어 주던 그 집시들처럼.
나는 광막한 무인 지대를 지나, 태양의 볼록렌즈 속을 다시 통과하면서 철길이 있는 간이역으로 돌아왔다. 둥근 지구 저편으로 집시들의 천막도 아득히 멀어져 갔다.

‘당신, 이거 아시오? 사람 역시 잘 익은 파파야 같아야 하오.
익지 않았으면 신은 이틀을 더 기다릴 것이오. 그래도 안 익었으면 결국 소에게 먹이로 던져질 것이오."
인도는 과연 언제 어디서 영적 교사가 등장할지 예측할 수 없는 나라이다. 파파야 하나를 사면서도 큰 깨우침을 얻게 되는 나라 아닌가!

‘신이 창조한 날은 단지 오늘뿐이란 말이오 어제와 내일을 만드는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이오, 안 그렇소?"

손을 들어 할아버지의 얼굴에 앉은 파리를 쫓아내며 잔티가내게 물었다.
"당신은 왜 해마다 인도에 오나요?"
내가 잡지를 덮으며 말했다.
"그만큼 인도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러자 뜻밖에도 잔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녜요,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인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가 당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인도가 언제나 당신을 부르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자꾸만 인도에 오게 되는 거예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가. 기억이란 참으로 이상한것이다. 어떤 것은 잊으려고 해도 계속 기억이 나는가 하면, 또어떤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아주 오래전 일처럼 잘 기억이 나지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고개를 돌리면 열여덟 살의 잔티 초베가바로 내 옆에 앉아 있는 것만 같다. 그날 밤처럼 내게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온 한 고독한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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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맞은편 의자에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아서 안부도건너뛴 채 그와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내 목소릴 몇분쯤 듣노라면 그의 얼굴, 몸, 손짓에 다시 생기가 돌기시작했다. 우리는 이내 책과 뉴스 헤드라인과 지인들에관한 대화를 언제나처럼 신나게 나누었지만, 언쟁을벌이는 일은 없었다. 그 기적 같은 변환의 광경을 영영잊지 못할 것 같다. 고도의 지성이 작동하자, 반송장 같던사람이 생생한 활기를 되찾는 모습을 본다는 건 그야말로마법이나 다름없는 변신을 목격하는 기분이 드는일이었다.

7월의 어느 저녁, 사람들로 붐비는 40번가 9번애비뉴를 따라 걷다가 그 군중 속에서 미동도 없이서 있는 남자와 여자를 보았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뚫어져라 보며 한 손으로는 여자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는 남자에게서 얼굴을 돌린 채 두 눈을질끈 감았고 말 없는 입으로 싫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계속 흘끔거리며 걷다가 우연히 눈을들었는데 비상계단에 한 여자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그여자는 충혈된 눈으로 거리에 있던 남자와 여자를 빤히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낯빛엔 고통이 완연했다. 나는잠시나마 헬스키친Hell‘s Kitchen" 에서의 삶에 질투를 느꼈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그 원피스절단 사건을 끄집어낼 때마다, 엄마도 매번 그 이야기의진실성을 부정했다. 쭉 그 상태로, 나는 계속 엄마를 믿지않고, 믿지 않고, 또 믿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별안간믿게 됐다. 오십대 후반이 된 나는 어느 쌀쌀한 봄날오후에 23번가 시내 횡단 버스를 타고 가다 9번 애비뉴정류장에서 내렸고,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반백여 년 전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든 내가 기억하는 그런 식은 절대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에,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치며 생각했다. 나는내 울분을 제조해내려고 태어난 사람이구나. 하지만 왜?
하물며 소중한 인생에 내처 그걸 붙들고 있었다니. 대체왜? 이마에서 손을 뗀 나는 상상 속에서 모자를 벗어레너드에게 인사를 건네며 나도 그렇네, 하고 나직이중얼거렸다. "이 나이를 먹고도 이렇게 아는 게 없어."

물건들이 누군가의 주변에 온기와 색채를 더하고거기에 비중, 맥락, 특색 따위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그순간 불현듯 깨닫기라도 한 것 같았다. 물건들을 치워버린세상에 남는 건 삭막한 공기다. 검은색, 흰색, 사람 사는것 같지 않은 분위기 매니와 내가 그러듯이 물건에 대한소유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앞으로도자신의 음울한 자아를 기꺼이 그 자리에 계속 세워둘만큼 확고한 주변인의 감각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일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임1893년 봄, 콘스턴스는 대운하를 면한 건물에 집을얻어 살기 시작한다. 헨리는 기뻐하며 겨울엔 베네치아에들르겠다고 약속했다. 콘스턴스는 그가 올 날을 기다리며기운을 내겠다는 편지를 쓴다. 편지를 받자마자 헨리는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한여름이 되자 그는 새책 집필을 시작하게 돼 겨울 일정을 아직 계획하지 못한상태라 아무래도 베네치아에 아예 못 갈 가능성이 크다고답장한다. 콘스턴스는 묵묵부답이다. 그해 여름이 지나고또 가을이 오는 동안 둘 사이에는 사실상 연락이 없었다.
이후 콘스턴스는 작업 중이던 소설을 탈고했다는 소식을전하는 간단한 편지 한 통을 보낸다. 헨리는 콘스턴스가작업을 끝내고 다음 집필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과도기에급격히 쇠약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려나

1950년대 초 시모어 크림이라는 뉴욕의 저널리스트는반체제 작가가 되기를 염원하면서도 동시에 전국적인명성을 누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스스로는 이도저도실패라고 여겼다. 실패했다는 그 감각을 바탕으로 크림은당대에 말을 거는 주제와 목소리를 찾아냈다. 조울증이있었고, 야망과 신경증과 자조 사이를 오가던 크림의페르소나는 잉크를 흥건히 쏟아내며 좌절과 허기에 관해,
경멸의 대상인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던 성공을쟁취한 이들을 향한 어마어마한 질투에 관해 끊임없이설명했다. 그 목소리는 철저히 도회적이기도 했다. 시모어크림 같은 사람을 낳을 수 있는 곳은 지구상에 뉴욕밖에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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