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감각적인 쾌락의 문제점을 보고 그 주제를 추구한다면,
그리고 만약 포기가 주는 보상을 이해하고나 자신이 그것에 익숙해진다면,
내 가슴이 포기로 뛰어오르고 자신감이 커지고흔들림 없으며 굳건해서평화롭게 그것을 바라볼 가능성이 있으리라
-붓다 앙굿따라니까야 (주제 숫자별로 묶은 경전),

"내가 그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하거나 그를 기억하거나 혹은 그의 이름을 들으면, 그의 독특한 에너지가 기쁨과 환희로 나를 간지럽힌다. 가장 좋은 의미에서 말이다. 나는 그의 얼굴 모습을, 큰 미소로 반짝이는 그의 눈을 본다.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있다. 그는 항상 삶을 기쁨에 찬 놀라움과 축복과 선물로 보는 것같았으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삶에 마음을최대한 열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나는 늘 배운다. 나는 새로운 사물새로운 생각, 새로운 길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우주에는무제한의 지식이 있다! 지식의 끝은 없다.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식물과 나무들, 곤충과 동물들로부터 나는 배워 왔다.

나는 두려움에 대한 나의 평정심을 시험하기 위해 그 영화에 관심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지켜본다. 나는 그 영상들이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마음이 어떻게 그것들을 진짜라고 생각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그것에 호기심을 가진 것이다.

"나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몇 가지 생각들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다. 무닌드라는 말했다. ‘왜 그대는 마음속의 그 생각들 때문에 그토록 혼란스러워하는가? 그대가 그것들을 초대했는가? 그대가 이시간에 질투나 욕심 혹은 그 무엇으로든 마음을 채우고 싶다고 말했는가?‘ 그는 그 생각들이 내가 아니라는 것, 즉 아나따를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우리에게 오는 이 생각들은 우리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정신적, 육체적 현상의 텅 빔 혹은 비개인성을 강조하기 위해 무닌드라는 붓다가 수행자 바히야에게 준 방법을 자주 인용했다.
‘바히야여,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인식하는 것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그대는 그것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함께하지 않을 때 거기에는 그대가 없다. 거기에 그대가 없을 때 그대에게는 이 세상도없고 저 세상도 없고, 그 둘 사이의 어떤 세상도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우다나(자설경)』)

제자들이 자신들의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말할 때 때때로 무난드라의 반응은 놀라웠다. 데니스 틸은 말한다.
사람들은 미친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힌다. 감정은 단지 휘저어진 마음 상태이다. 무닌드라는 그것을 바로 자르고 들어가며 말하곤 했다. 그것은 완전히 망상이라고. 무지로부터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고통을 창조하고 있다고. 그는 그들에게 단지 걸으라고 말하곤했다. 그는 걷는 명상의 중요성을 아주 많이 강조했다. 그는 그것이치유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앉아 있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무닌드라는계속 걷기를 시켰다."

친구여, 지혜의 목적은 직접적인 일이다그것의 목적은 충분한 이해이다.
그것의 목적은 놓아 버림이다.
-사리뿡따맛지마니까야(중간 길이의 경전),

"그는 나의 고통이나 쾌락 같은 감정을 주시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마음속에 무엇이 일어나는 나는 평정심을 갖고 그것을 주시해야만 했다. 어떤 논평도 달지 말고, 내가 집중하지 못하거나 가만히 있지 못해도 나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으면서 어느 날 나는신체적 고통에 대해 불평했다. 오랜 시간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있는것이 괴롭다고. 그러자 그가 내게 말했다. ‘설령 그대가 구름 위에비스듬히 앉아 있을지라도 괴로움은 찾아올 것이다.‘ 그 말은 내게정말로 중요했다. 우리는 무엇이 오든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인간은 고통을 겪으며,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무닌드라는 그것을 큰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것이 그가 그것을 말한 방식이었다. 마치 농담하듯이.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는 평화롭게 미소지으며 밝게 깨어 있었다."

완전히 회복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나는 지금 80살이고,
이것은 현대 성인 남자의 평균 수명이다. 조만간 모든 사랑하는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고통은 위대한 스승이다. 나는평정심을 갖고 그것을 받아들인다. 마음의 반응 없이 일어나는그대로를 만약 내가 얼마간 더 살아 있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면 나는 그대를 서양에서 한 번 더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대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온 마음으로 축복과 자애를 보낸다.

흙과 같은 마음 상태를 발달시켜라홈 위에 사람들은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똥과 오줌 참 고 과를 던지지만혹은 고통받거나 거부하거나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다그대가 훔처럼 성장하면 유지하거나 불쾌한 것들과 접촉해그대의 마음이 붙잡히거나그것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붓다 맛지마니까야 (중간 길이의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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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선 대개 알지 못하는 남자를 그냥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무난드라를 따라가는 것은 더없이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장애물도 없었다. 수행은 매우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나는 그 3주 동안 내 전생애를 통해 배운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 후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안내를 받은것은 매우 중요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이 우주적 진리, 그것은 되살릴 수 있다. 그것은 다시 수행될 수있다. 그것은 모든 존재들에게 좋다. 그것은 더 나은 사회, 더나은 세계, 더 나은 지구 행성이 되도록 놀라운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행성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들을 위해서도…………. 그것은 조화와 통합을 가져다줄 수 있다. 모든 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평화로울 수 있으며 오랫동안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다. 모든 나라들은 서로를 도울 수 있다. 모든 사람들, 모든 국가들을 위한하나의 진리, 똑같은 진리 아래서.

이 세상에서는 주는 사람에게 세 가지 가치 있는 것이 있다.
주기 전에 주는 사람의 마음은 행복하다.
주는 동안 주는 사람의 마음은 평화롭다.
주고 나서, 주는 사람의 마음은 날아오른다.
-붓다 앙굿따라니까야(주제 숫자별로 묶은 경전)

우리는 이것들에 감사해야 하며, 또한 그들을 위해 좋은 공덕을쌓아 나가야 한다. 내가 어디서 어떤 좋은 공덕을 쌓든 그것을내가 빚진 모든 사람들과 나누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어떤 식으로도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고, 우리가 행하는 좋은 카르마를통해 우리는 그 빚을 갚는다. 그렇게 해서 서서히 빛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만일 네가 간절히 바라고 대의를 위해 헌신한다면, 그때 성취의길을 방해할 어떤 장애물도 있을 수 없다. 설령 네가 장애물을발견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방해를 야기할 뿐이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녹아 없어질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증발할 것이다.

경전에 따르면 스승은 깔야나미, 즉 ‘영적인 친구‘, ‘영적 안내자‘로 불린다. 구루라는 제도는 없다. 경험한 사람들,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 그들은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여 줄 수 있다.
그들은 단지 그 길을 가리키고, 그 길을 보여 줄 뿐이다. 모든 개인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 자신만의 노력을 해야 한다. 누구도 그대가 그것을 깨닫도록 설명할 수 없다.

깨달음의 경험은 수행에 의해서 언제든 지각의 어떤 문에서든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기대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준비되었을때 그것은 일어난다. 계속해 나가라. 모든 걸음이 그대를 목적지가까이로 데려가고 있다. 계속하는 것이 성공의 비밀이다. 삶의기술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진리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것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기대만 하고 있는 한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존재들을 향한 무드라의 친절한 성격은 자연에 있는 생명체들을 포함했다. 비비언 다스트와 봅 레이는 무닌드라를 각자미국의 다른 도시에 있는 동물원에 데려갔다. 두 사람 다 동물에대한 무드라의 깊은 관심에 대해 말한다. 그는 각각의 동물을 모두 보기 위해 계속 멈춰 섰다. 사람들이 한동안 무닌드라를 혼자남겨 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는 그들을 안심시키곤 했다.
"나에 대해선 걱정하지 말라. 내겐 많은 동료가 있다. 개미들이여기에 있고, 모기들이 여기에 있고, 새들이 여기에 있다. 천신들ㅣ여기에 있다. 난 결코 외롭지 않다."
그는 의식적으로 아주 작은 곤충과도 연결되고 애정을 느꼈다.
그리고 반복해서 말했다.
"우리 모두는 우주의 중요한 부분들이다. 나는 인간뿐 아니라 식물들과 나무들에게도 친밀감을 느낀다. 그들에게 깊은 동료애를느낀다.

무난드라는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이든 더없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많은 스승들을 만났었다. 심지어 다른종교의 스승들도 만났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큰 소리로, 약간은공격적으로 말하거나 자신들의 관점을 강하게 밀고 나갔다. 무닌드라는 매우 부드럽게 말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다. 그가 걷는 방식, 말하는 방식, 존재하는 방식 모두가 온화함의화신이었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보여 준 본보기였다. 즉, 사랑과 연민이 그것이다."

만약 내가 과거에 나의 부모와 스승, 연장자나 그 누구에게라도생각으로든 행동으로든 말로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어떤 잘못을 했다면 용서받을 수 있기를. 만약 누군가가 생각으로든 행동으로든 말로든 나에게 잘못을 했다면, 만약 그가 원한이나 불평이나 비난이나 기분 상할 만한 것을 쌓아 두었다면, 내가 그를 용서할 수 있기를.

무난드라는 붓다가 제자들에게 가서 세상에 대한 자비와 모든사람이 경험하는 고통에 대한 연민으로 많은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진리를 나누라"라고 한 지시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에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육체적으로 먹을 것과 마실 것,
입을 것과 잘 곳, 심지어 약을 가졌는지 확인해 사람들을 돌보았고 병에 걸리면 보살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진리를 가르쳤다.

"이 세상에는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과 물질주의, 밖에서 찾으려하고 타인들의 관심을 추구하는 행위가 넘쳐난다. 그런 차원의 소박함, 다정함, 무집착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다. 무난드라는 어떤면에선 쉽게 만족하지 않고 특정한 것에 대해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마시는 차의 온도처럼. 그러나 무집착을 이해하는, 그래서 더없이 행복하고 겸손하며 그토록 순수했던 누군가를 아는 경험은 정말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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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본래 색깔이 없다. 그것이 욕망으로 물들 때 우리는 그것을 ‘탐욕스러운 마음‘이라 부른다. 분노가 일어나는 순간 그것은
‘화내는 사람‘ 혹은 ‘화내는 마음‘으로 불린다. 마음챙김이 없으면 마음은 이 분노에 영향을 받는다. 분노는 마음을 오염시키는본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독을 만든다. 그러나 마음은 분노가아니며 분노는 마음이 아니다. 마음은 탐욕이 아니고 탐욕은 마음이 아니다. 이것을 기억하라. 마음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본성을 갖고 있지 않다. ‘마음‘은 단지 ‘아는 능력‘, ‘인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그에게는 런던 지하철역에 열차가 도착한 것도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처음엔 거의 알아차릴 수없는 열차 소리, 열차가 다가옴에 따라 점점 커지는 소리, 그 앞으로 밀려오는 바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모든 것이그의 전염성 있는 마음챙김의 장 안에서 활기를 띠었다. 그와 함께있는 것은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지금 여기에 열려 있고 깨어 있는, 살아 있는 수행이었다."

온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일 때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 그것은 영적인 면에서 이로울 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면에서도 유익하다.
그것은 또한 정화의 과정이다. 마음이 정화될 때, 몸과 마음의많은 병들이 자동적으로 치유된다. 그때 자신의 분노, 미움, 질투를 이해할 수 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불건전한 요소들의 대부분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혹은 감정적인 반사 작용에 의해 축적해 온 그토록 많은 몸/마음의 질병들은 통제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억압과는 다르다.
가까이 다가가 그것들을 들여다봄으로써 많은 육체적 질병, 정신적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때 그것들은 더 유연해지고 더 다루기 쉬워진다.

"일어나고 있는 것이 진리이다. 만약 그대의 마음이 산만해져 있다면, 이 순간에는 그것이 진리이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슴과 머리, 감정과 지성, 믿음과 지혜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 이 사띠, 즉 마음챙김이 둘사이에 균형을 가져온다. 둘 다 필요하다. 너무 많은 노력은 인간을 쉬지 못하게 만든다. 너무 많은 사마디(사념을 떠나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고도로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얻는 고요한 선정 상태)는졸리게 만든다.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집중이 필요한지 어떻게 아는가? 그것이 마음챙김의 기능이다. 마음챙김은 노력과 집중 사이에 균형을 가져다준다.

카말라 마스터즈가 한번은 무닌드라에게 화가 난 적이 있는지물었다. 무닌드라는 카말라에게 말했다.
화가 올 때 거기 하나의 조짐, 신호가 있다. 느낌이 있다. 그것은심적인 불편함이다. 따라서 그 신호가 있을 때 그것(화)이 입밖으로 나오게 하지 말라. 그것이 활동을 시작하게 하지 말라. 그저 그것이 지나가게 하라 온 마음으로 주의를 기울이라 그것을지켜보라. ‘화가 일어난다. 화가 일어난다, 화가 일어난다. 하고.

그대가 큰 강을 건너고 싶어 한다고 가정하자. 그대는 헤엄을 쳐서 건널 수도 있지만 배를 이용할 수도 있다. 배는 훨씬 쉽고 더즐겁다. 만약 그대가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다 알고 수행한다면그대는 배를 타고 빠르게 이 강을 건널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사마타를 알지 못한다면 그대는 손과 발을 이용해야 한다. 사마타수행이 없으면 그것을 메마른 위빠사나(숙카 위빠사나)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둘 다를 아는 것이 좋다."(선정이나 정신 집중의 준비과정 없이 바로 위빠사나를 닦는 수행법을 청정도론』 등의 문헌에서는
‘건乾‘이라고 했다. 사마타, 즉 고요함 없이 통찰의 지혜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마음이 깊은 선정 상태에 들면, 그때 그대는 육체의 의식 너머로 간다. 누군가가 그대를 찔러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소리도 듣지 않는다."

마음의 장애 요소들은 진압될 수 있지만 그것들은 내면 깊은 곳의 무의식 차원에선 사라지지 않는다. 선정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이 부정적인 힘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인간으로서 그대는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다. 왜냐하면 몸이 물질적 차원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대는 돌아와야 한다. 돌아와서 감각 대상과 접촉할 때 그때 그대는 기쁨을 주는 것에 집착한다. 매달리고 비난한다. 짜증이 오고 화가오고 미움이 오거나 탐욕이 온다. 이해가 없고 지혜가 없으면 선정에서 다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그대는 슬퍼진다.

무드라의 메시지는 우리가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니얼 테일러는 무닌드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진리 추구를 계속해 나아감을 상징한다. 그는 우리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예이다. 진리에 대한 이 경이로움은 끝이 없으며, 다음 순간에 대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에게서 배웠다."
대니얼은 무닌드라가 준 영향에 대해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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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그런 동의의 뜻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경험은 대부분 훗날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곤 하지만 그날의 그 깨달음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롤케이크를 들고 다시 의자에 앉은뒤, 나는 아직도 많이 남은 롤케이크를 베어 물었다. 크림이 삐져나와서 바지 위에 떨어졌는데 더이상 창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계속 먹으니 입안이 미끌거리고 속이 메스꺼웠지만 나는 멈추지않았다. 물 한모금도 요구하지 않았다.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을때까지 그녀 역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환상과 두려움의 기원은 같을지도 모른다. 이를 추동하는 미지의 영역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에 따라 성장의 모양은 달라진다. 이 소설집의 소녀들은 점액질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불현듯 탄생한 놀라운 사랑을 받아들이고, 밤을 또렷하게응시하게 된다. "지저분하고 오염된 것, 우스꽝스러운 느낌" (60쪽)이 드는 것들이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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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로부터 받은 참고서가 가득 든 쇼핑백을 품에 안고 있었다. 눈에 젖지 않게 복층 아줌마가쇼핑백 위에 신문지를 덮어주었는데, 눈에 젖은 신문의 기름냄새를 맡을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과 패배감을 느꼈다. 나는 내가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지만 누구로부터 그런 취급을 받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엄마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내내 나는 입을 꽉 다물고 있었고, 평소와 달리 엄마는 그런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불과 며칠 후, 결국 새로운 과외 선생님이 집으로 왔다. 그는 두꺼운 모직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안에 코르덴 재킷과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는 코트와 재킷을 차례로 벗었고 엉거주춤하게 선 채로 물었다.
"이걸 걸어둘 곳이 없을까?"

"네, 미국에서 같이 살았었다고요."
‘같이 살았다‘라는 표현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었다. 나 역시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때는 동거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전이었다. 그건 엄마가 경멸하는 가출한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잘못 불순하고 불온한 일로만 여겨졌다.

그 질문은 내 본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를 당황시키거나 곤란하게 만들려고 계획적으로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왜? 내게 왜 그전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단 말인가? 나는 정말로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그 생강과자 냄새를 풍기고, 자신의 코트와 재킷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신을 물 먹는 하마라고 소개하는가 그것에대해 설명해주기를 절실하게 바랐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설명할 기회를 얻게 되기를 바랐다.

이사 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편함을 뒤지곤 했다. 그전에살던 동네에서 나를 돌봐줬던 언니가 한 달에 한 번 편지를 보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현관의 낡은 우편함을 뒤질때마다 어머니는 팔짱을 끼고 뒤에 서서 나를 지켜보았다. 두어달쯤 지났을 때, 어머니는 그런 말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기겠다는 듯이, 그녀가 편지를 보내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진짜로 끈이 달려 있진 않은데, 뭘로 언니가 나를 조종해요?"
처음 그녀가 그 놀이를 제안했을 때, 나는 그렇게 물었다. 사실나는 기꺼이 그녀의 꼭두각시가 될 생각이었다. 아니, 그러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그렇지만 동시에 질문이 필요하다고도 느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는 것에 약간은 우쭐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우리 어머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런 식의 단어를 사용해 (몇 번 마주치지도 않은) 어른을 평가 내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의 판단을진실인 양 선포해버리는 그 자신만만함 때문에 그녀는 종이의 맨아래에 날짜와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고, 이름 옆에 빨간색 펜으로도장을 그려넣었다. 상장은 아주 그럴싸해 보였다.

그런 일이 있었던 건 그날 딱 한 번이었다. 나는 요즘도 그날 밤을 종종 떠올려보곤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 속에서 어머니는이제 막 물속에서 나온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머리카락이젖어 있거나 옷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느낌의 문제였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꿈을 꾼 게 아닐까, 무엇인가를 착각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니었을것이다. 꿈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방학을 이 주 정도 앞둔 그날은 성급하게 우편함 안으로 손을 집어넣지 않았다. 어떤 예감이 있었던 걸까? 아니었다.
그저 정말로 추웠을 뿐이었다. 손이 꽁꽁 얼어서 약간 고통스러울지경이었다. 손을 녹인다 한들 별 효과도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나는 손을 녹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덜덜 떨면서 손에입김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외투 소매로 손을 감싼 후에 우편함 안으로 집어넣었다.

"우리 엄마가 입원해 있는데, 아빠는 내가 거기에 가면 안 된대요. 하지만 나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특별히 머리를 쓴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이 입에서 잘도 나왔다.
병원은 거대했고 건물도 여러 개였으며 통로가 많았다. 그런 병원에는 그날 처음 가본 것이었다. 병원이 너무 크고 그곳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사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내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사람들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그녀의 병실이 있는 층에 내렸다. 그런 후 별 고민도 없이 다른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느라 병실 복도로 이어지는 커다란 유리문이열렸을 때 그 안으로 쑥 들어갔다(성인이 된 후 이 병원을 다시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나는 계속 헤맸다).

"맞아, 내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어. 선물을 돌려달라고 말이야."
그녀는 딴청을 피우듯이 블라인드가 쳐진 창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주었다는 뜻일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편지를 보냈다는 말일까? 다른 사람들도 포옹해준 적이 있다는 걸까? 다른 사람에게도・・・・・・ 내안에서 이런저런 궁금증이 흘러넘쳤지만, 어째서인지 그때 내 입에서 나온 질문은 이것이었다.
"선물을………… 돌려준 사람이 있어요?"

"언니가 외고에 떨어져서 내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 말에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그녀의 눈물이 볼을타고 내려와 머리카락을 적셨고, 목덜미로 흘러들어가 베개에 흔적을 남겼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났을 때, 그녀가 손으로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정성을 들여서 잠시 후 그녀는 상체를일으켜 앉고서 나를 바라보다가 입술 끝을 올려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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