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은 여섯 살이다. 석 달 전 넬슨의 근육이 뻣뻣해졌다. 근육을 풀어주는 약은 실제로 근육을 약간 풀어주었지만 동시에 근육을 부어오르게 했다. 그것만 아니면 아이는 괜찮다. 뻣뻣하고 부어올라서 움직일 때 아플 뿐. 원래 아이의 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있었지만, 약 때문에 아이가 붓자 닥터 에번스는 아이의 문제가 뭐든 처음 생각했던 것은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아이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우리는 쭈그리고 앉아 "예비 크래커‘를 먹으면서 가끔 손으로서로를 찰싹찰싹 때린다. 우리는 동굴 주위에서 허리를 구부리고비명을 지르며 옥신각신하고 종종걸음을 치는 척하고 있다. 그녀는 정말로 아주 잘하고 있다. 나는 성난 모습으로 돌에 돌을 두들겨 그녀의 얼굴에 흙을 던질 작정이라는 표시를 한다. 그녀는 아주날카롭게 마주 짖어댄다.

나는 넬슨 생각을 한다. 성긴 머리카락과 구부러진 코, 내가 약용감하게 다 먹어줘서 고맙다고 할 때마다 아이는 늘 머리를 내어깨에 뉘며 말한다. 문제없어. 다만 지을 발음하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이렇게 들린다. 문에 없어. 그런 다음 내 배를 두드린다. 마 치약을 용감하게 다 먹은 사람이 나인 것처럼.
태도상 곤란한 점이 눈에 띄는가?

하얏트의 조명을 끈 회의실에서 여든 명이 대량 생산된 종이 모자를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모자‘는 ‘시작을 시작하고 있었다. ‘분홍 모자‘는 ‘시작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초록 모자‘
는 ‘아주 확실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황금 모자‘까지 올라가는 먼길을 향해 ‘삶에 통달한 ‘황금 모자‘는 ‘간식 테이블‘ 주위에 모여서서 아래 등급 모자를 쓴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소곤거리고 의논하고 팔꿈치로 서로 쿡쿡 찔렀다.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그 만트라를 알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급 ‘하얀 모자‘도 만트라를 알았다―심지어 완전히 넋을 잃은 채불안정하게 첫 줄에 앉아 콧수염을 빨고 있는 닐 야니키조차 만트라를 알았다. 늘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고 또 ‘오리엔테이션 자료‘
의 표지에도 크고 굵은 글자로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사람이 자신이 엄청나게 멍청한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실 아무런 경력도없었고 사업도 하지 않았으며, 그저 컴퓨파츠에서 일을 받아 지하실에서 하나에 사십칠 센트를 받고 작은 삼각형 조각을 납땜하는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뭔가 나은 일을 하겠다는큰 희망은 품고 있었고, 그것이 여기 온 이유지만.

" 좋습니다!" 톰 로저스가 "미친 것처럼 보이고"를 지웠다. "우리가 바꾸려고 하는 바로 그것을 향해 곧장 나아갈 수 있도록 단순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좋아요. 이 지점에서, 만일 이 여자를 닐의집에서 내보낼 수 있으면 미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견딜 만하다고우리는 결정을 했습니다. 큰 진전입니다. 하지만 왜 거기서 멈추겠어요? 내가 하나 제안하죠. 그 여자가 닐한테 가까이 오지만 않으면 종교적이든 아니든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는 비키의 손상된 얼굴을 향해 그녀가 자신의 삶을 망치고 있고 피를 몽땅 다 빨아먹었으니 이제 다른 데 가서 살아야 한다고말하기 시작했고, 비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토닥이다가이따금 그의 말을 끊고 그가 너무 가혹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엌에서 그녀는 쿠키 봉투를 뜯어 열었지만 깨끗한 접시가 없어서 접시를 하나 씻었지만 타월이 없어서 상의로 접시의 물기를닦았다. 이런, 그녀는 여전히 노란 상의를 입고 있었다. 도대체 뭐야? 녹색 상의가 어디 있더라? 막 서랍에서 꺼내지 않았나? 하하!
웃긴다. 이걸 <크라이스트라이프>에 보내야겠다. 거기는 설령 예수와 아무런 관계가 없더라도 실제로 일어난 귀엽고 웃기는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그녀는 다시 층계를 달려올라가 상의를 갈아입었다. 녹색 상의가 있었다, 층계 맨 꼭대기에! 나쁜 상의! 때려줘야겠어! 그녀는녹색 상의를 찰싹 때려 먼지를 털고 규율을 잡아주고, 기다란 몰딩과 더러운 양말을 계단에 내려놓고 바로 거기 그 자리에서 상의를갈아입고, 몰딩을 집어들고 더러운 양말을 어깨에 걸치고 쿵쾅거리며 다시 층계를 내려갔다.

그녀는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다! 이것은 그의 파티가 될 거다.
그가, 오빠가, 그녀의 끝까지 함께 갈 친구가, 그녀가 이 세상에서발견한 유일하게 사랑스러운 영혼이 받아 마땅한 엄청나게 크고큰 파티의 작고 작은 일회분 파티가 될 거다.

슬픈 일이다. 그래, 약간 슬프다. 하지만 훌륭해지는 게 쉬운 거라면 누구나 훌륭해질 거다.
그래, 그녀도 한때는 귀여운 아이였다. 그래, 그들은 좋은 순간들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녀는 그에게 크래커와 조그만 라디오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아빠가 저녁을 먹다울기 시작하는 바람에 그가 계단 밑에서 꼬박 다섯 시간 동안 숨어있었을 때, 그래, 큰 남자애들과 낚시를 하다 관자놀이에 미늘이걸려 그에게 달려왔을 때 겁에 질려 있던 그녀의 눈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래, 그가 그녀를 집에 안고 갈 때 큰 남자애들은 낄낄거렸다. 그래, 그녀는 노래를 너무나 못하는데도 스스로 잘한다고각하는 것은 슬프고 세탁물에서 발견한 그녀의 팬티가 이제 엄청나게 큰 것도 슬프지만,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화장용 장작더미를 가로지르려면 염병할 몸이 엄청나게 뜨거워질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다고 모든 순간을 푸른색으로 칠하라는 뜻은 아니다. 기쁨의 푸른색 안에도 고통이 주는 어둠이 있을 수 있다. 과거에 겪은 슬픔을 떠올리면서도 행복의 맛을 새롭게음미할 수 있다.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은 바다의 짙은 푸른색이 아닐까? 바다의 짙은 푸른색은 검은색이 칠해진 과거처럼 장엄하고 비밀스러운 상처와 같지 않은가? 인생을 푸른빛으로 본다고 해서 환상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다. 칙칙한 일상을 빛낼 무엇인가를 끌어내어 삶의 기쁨을 찾는것이다.

신이 얼마나 재능있는지 잊게 될 때,
나는 바다를 본다.

휘청이는 배에서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건 커다란닻뿐이다. ‘성스러운 닻‘ 혹은 ‘자비의 닻‘이라고 불리기도한다. 배에서 가장 무거운 것도 바로 닻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휩쓸려가지 않고, 내가 가고자하는 방향대로 가기 위해서 의지할 수 있는 단단한 버팀목이다

닻은 힘을 불어넣어준다. 도무지 벗어나기 힘든 어려운이다지도 모든 것을 싫어도 물러서지 않게 해주는 힘이다. 그리고 낮은 지방을 상징한다. 낮은 믿음. 그것이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믿음이다.

파도와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도와주는 자신만의 닻을 찾으면 된다. 그 닻을 알아보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불어넣어주고 의지를 갖고 결정할 수 있게 돕는 구원의 존재가 그 닻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닻으로 반복되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끝내야 한다. 그 순간에는 참고 있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태도와 결별해야 한다. 닻은 우리가 자신에게 멈추라는 말. 당하고 있지 말라는 경고, 두려움과 계속 생각나는 옛 상처에서 벗어나라는 충고다. 나만의 닻이 있으면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편안한 마음과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내게 자주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나 쓸데없는 근심에서벗어나려면 굳은 결심이 있어야 한다. 힘을 빼고 스스로 재능을 낭비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꼭 붙어 있는 신성한 닻은 역설적으로 가장 큰 자유를안겨준다. 물결이 아무리 강해도 닻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얻을 수 있는 자유다.

바다의 물결은 가슴을 채우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편안한 호흡과 같다.

그건 바다를 보면 알 수 있다. 바다는 지조가 있다. 바다는 자유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존재다. 우리는 어디에 갇히거나 무엇에 방해받지 않을 때 ‘자유롭다고 한다. 이처럼바다는 우리에게 삶에서 억지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준다. 늘 준비해서 대답을 할 필요가 없고, 아무계산 없이 도와야 할 의무도 없고, 남의 말을 조용히 경청할 의무도 없다. 바다와 선원들은 따뜻하고 건강한 ‘이기주의‘가 있어야 독립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부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야한다고 늘 생각한다. 그러나 부당함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억만 선명하게 되살릴 뿐이다. 분노만 해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이러한 무력감 때문에 복수하려는 사람은 더 분노하며 피의 복수는 강도가 더욱 세진다.

선장은 모비 딕의 등 위에 갈고리를 던졌으나 갈고리는빗나간다. 하얗고 매끄러운 등에서는 모든 것이 미끄러져버린다. 이처럼 분노의 고래잡이배에 올라타지 않으려면,
우리 자신이 에이해브 선장처럼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할수 있을까?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저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삶이란 바다처럼 다양한 색을 띤다.
어느 날은 눈부신 푸른색이었다가
또 다른 날은 짙은 회색이다.
바다의 빛이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처럼
산다는 것도 그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마 사람들은 복잡한 로마와 폭염을 피해 지방으로 떠났다. 부유한 귀족들은 캄파니아Campania 에 있는 별장으로갔다. 나폴리, 아말리 해안, 카프리・・・. 이처럼 로마 사람들은 우리에게 삶의 예술이 무엇인지 풍부한 예시를 알려주있다. 여기서 말하는 삶의 예술이란 ‘오티움rotion‘으로 ‘유유자격이다. 비생산적인 것에만 몰두하며 영혼과 정신을 높이 갈고닦는 시간을 가리킨다. 독서와 철학, 명상, 친구들과의 대화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진정으로 축제를 즐기려면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뭔가 쓸모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공상에 잠길 수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유가 있을 때 눈앞의 모든 것이 내뿜는 특별한 빛을보게 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주변에 쉽게 집중하게되어 장식에서 살짝 달라진 부분, 아주 작은 변화도 이벤트가 된다.

바다의 운명은 끝없이 돌아가는 운명의 바퀴와 같다.
운명의 바퀴는 우리의 삶에 좋은 일과 나쁜 일,
성공과 실패를 가져다준다.
인생이란 한순간이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경계를 넘게 해주는 재능이 있다면, 그건 바로 ‘호기심‘
이다. 호기심 덕분에 우리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다. 호기심이 있으면 늘 다니던 길로만 가지 않고 미지의 땅으로 방향을 틀어 용들과 신비한 괴물들과 마주할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몸을 사리며 산책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곳만 갈 때가 많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고 그것에안주하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일을 하고, 잠을 자는 반복되고 단조로운 일상은 지하철 탓도, 일탓도, 잠 탓도 아니다. 바로 우리 탓이다. 우리가 탐험하는 대신 반복하는것에 만족하기 때문이고, 우리가 자신만의 생각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맞추기 때문이다.

파도는 예상보다 더 깊게 파고들고, 더 멀리 밀려간다.
밀려갈 때는 영영 사라질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발밑에 와 있다.
우리 삶에 영원히 사라지는것은 없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후회만 하고 있으면 이미 지나간 행동과놓쳐버린 기회에 대한 미련만 느낄 뿐, 현실 속에서는꼼짝도 하지 못한다. 앞으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걷다가 끝없이 상실과 실패만 곱씹는다. 과거의 실수를 깨닫고 변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만 곱씹다가 끝나는 것이다.

과거에 후회가 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지나쳐온 여정이다. 인생의 여정은 후회의 총집합도, 죽을 정도로무겁고 버거운 일도 아니다. 내가 실제로 항해하는 수많은길 중 하나다. 실수투성이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바람을 헤치고 나아가자. 그렇게 해야 사르가소의 슬픈 추억을 곱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다.

바다는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오르고, 내일은 내린다.
바다를 보며 굴곡 있는 인생이무조건 나쁘지 않다는 걸 배운다.
바다에게 거친 파도와 잔잔한 물결이 일상이고필요한 것처럼 삶도 그러하다.

우리에게는 문제가 있지만 그것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은없다. 그 문제는 바로 ‘배멀미‘다. 배멀미를 가라앉히려면어떻게 해야 할까? 누워 있으면 될까? 생강 뿌리를 먹으면될까? 갑판에서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으면 될까? 이렇게해도 소용없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 방파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방파제가 있으면 아무리 성난 파도가 쳐도 막아주니배멀미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언제나 같은 빛을 보이는 것 같아도 바다는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바다마다 각각 다른 빛을 가지고 있는 건 물론이고, 같은 바다여도 어제와 오늘의 빛깔이 다르기도 한다. 어느 날은 푸르스름한 빛이었다가 어느날은 푸른빛, 어느 날은 짙은 녹색을 띠기도 한다. 그런 걸보면 바다는 마치 하늘 같다.

바다는 배경에 따라서, 무엇과 함께 있느냐에 따라서도그 빛이 달라진다. 밝은색 모래가 있는 프랑스 남부의 바다는 새파랗고, 식물성 플랑크톤과 작은 해조류가 많은 곳의바다는 터키옥색을 띤다. 간혹 바다가 유난히 에메랄드빛녹색을 띠는 것은 식물성 플랑크톤 때문이다. 바다 안에 떠다니는 작은 해조류가 자체 엽록소를 통해 태양 빛에서 푸른색을 흡수해서 녹색만 남는 것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은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 뿐인데 그처럼 바다 위에 드넓은 초원을 만들어준다.

삶은 아름답게 빛내는 것이다. 그저 숨 쉬며 살아가는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평범한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그럴 마음만 있다면 별것 아닌 작은 것을 근사한 선물 상자처럼 만들 수있다.

삶을 다채로운 색으로 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삶을 푸른색으로 칠하자. 삶이라는 그림을 펼쳐놓고 바람이 와서 넘기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붓을 들고 직접 색을 칠하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는 우리에게 자유를 미루지 말라고 말한다.
인생을 제대로 산다는 건 쓸데없는 걱정으로
나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이다.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서 새로운길을 가보자. 어쩌면 이 단계가 가장 어려울지 모른다. 습관이 너무나 강하게 뿌리박혀 있고 생각하는 틀이 좁으면용기는 밥 먹을 때만 쓰는거라고 생각하기 쉬우니까.
인생은 멀리 바라보는 항해와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짧은 인생이라는 항해를 제대로 하려면 상상력을 마음껏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대답을 해보면 상상력을 활용할 수 있다. 이미 사람들이 지나간 고속도로를 그대로 가지 말고 나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자.

바다와 대양이 우리에게 끝없이 전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삶은 당신에게 이미 주고자 하는걸 모두 주었다.
마치 바다처럼.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상어가 피곤할것 같지만, 상어는 계속 움직여도 피곤해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상어에게는 살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상어가 유일하게 휴식을 취할 때는 산소를 유지하기 위해 해저에서 잠시 멈출 때다.

바다는 자신을 그대로 내보인다.
우리의 인생도 똑같다.
필요 이상으로 숨길 필요도, 꾸밀 필요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보이며 나아가면 된다.

서두르지 말자.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교류하고 나누도 무리하게 남에게 맞추지도, 남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지도, 무리에 휩쓸리지도 말자.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유일한 섬이 되자.

파도처럼 인생에도 게으름과 탄생. 상실과 풍요.
회의와 확신이 나름의 속도로 온다.

우리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자. 우리 자신에게 관심을기울이자. 강렬한 설렘을 주는 것에 진실된 것에 주목하자.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려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자.
저 사람이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고 설명할 필요도 없다.

거짓은 대체로 나쁘지만 자기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는것이 가장 최악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면 결국 다른 사람을기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서 자신의 모습을거짓으로 포장하고, 그 거짓된 모습을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믿고 받아들이게 된다. 진정한 자아를 버리고 만들어진 자아, 남을 유혹하기 위해 가공해 만든 자아를 선택하는것이다.

인생에서 모든 것이 맛있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에게 신비로움을 일깨워주고, 행복의 비밀이나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속삭여주는 듯한 최고의 순간들은 있다. 바로 그 순간들이 기억에 색채를 더한다. 그 기억의 색채가흐릿한 잿빛이 되면 우리는 다시 색을 이끌어내야 한다. 시인, 화가, 선원, 모험가만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도 각자 모든 것을 바꾸는 순간의 소금을 수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소금이야말로 모든 것을 구한다.

바다는 파도가 오지 않도록 막거나 무리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건 바꾸려 하지 않고
다가오는 건 그대로 받아들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 여행처럼 해보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배를조종하는 사람과 선원, 여행 날짜, 적당한 때를 선택한다. 그런데 폭풍우가 찾아온다. 왜 아직도 신경을 써야 할까? 내 생각에는 모든 것이 끝났는데 말이다. 이제는 또 다른 문제인 조종사의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배가 침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대담집》

삶이라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 어떤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육지에 다다를 때까지는
절대 포기하지 마라.

바다에는 풍랑과 폭풍, 암초와 난파, 거친 파도가 있다.
바다는 거품이 이는 높은 파도로 분노를 표현한다. 바다에게 우리는 그저 작은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꼭두각시처럼 우리를 조종하며 즐기는 것 또한 바다다.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인간은 변덕스러운 파도와 해양풍 앞에서 너무나 나약한 존재다. 그렇지만 바다는 우리를 지켜주는 마지막 방패막이자 외투이기도 하다. 지구의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바다가 굴복당하면 지구는 맨몸으로 거친 세상에휩쓸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구에 초대받은 손님에 불과하니 자연과 바다에서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인생은 멀리 떠나는 항해와 같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이라는 항해를 제대로 하려면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바다는 절대 믿으면 안 된다. 바다는 여러 얼굴을 보이며 모든 해안선을 속여 유혹하고 신비감을 주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언어를 모두 구사하여 우리를 흘린다.
산다는 것도 어쩌면 이와 같지 않을까? 제법 오래 살아도우리는 인생에 라벨을 붙이기가 어렵다. 누구에게나 다른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꿈같고, 또 다른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은 게 우리네 삶이다. 인생처럼 바다도 그 참모습을 알 수 없다. 바다는 기름 같은 존재인지, 거품 같은 존재인지 알 수가 없다.

바다에 밀물과 썰물이 있듯 인생에도 올라갈 때가 있고내려갈 때가 있다. 그 움직임을 거스르기보다는 곁에서 함께 움직이는 편이 낫다. 노련한 바닷사람처럼 바람에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바람을 역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바다는 가슴을 채우고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편안한호흡과 같다. 그 호흡을 가만히 따라 가면 갑자기 몸이 수평으로 길게 뻗어 붕 뜬 것 같았다가 곧 수직으로 봉긋하게솟는 느낌이 든다. 마치 교회의 높은 천장, 소프라노의 아리아, 서프라이즈 감동으로 느끼는 기분처럼 말이다. 동시에 우리의 근심과 욕심도 점점 아래로 내려와 땅에 닿는 걸느낄 수 있다. 그때 바다는 우리에게 더 높게, 더 넓게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대책 없이 허황된 크고 강한것만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섬세한 감정을 기르라는 뜻이다. 우리의 마음 어딘가는 원대한 것을 목표로삼는다. 바다가 지닌 풍요로움에 감동하며 바다와 함께 숨쉬는 법을 배우면서 이룰 수 있는 목표다.

아름다움을 쫓아다니지만 말고 아름다움을 통해 예상치못한 감동을 느낄 수 있게 감각을 갈고닦아야 한다. 세상을끝없는 말초적인 자극과 흥분으로 채우지 말자. 우리가 보내는 시간을 끝없는 분주함으로 채우지 말자. 혼자 있는 시간 자체를 소중히 하고, 고독이 찾아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완벽한 로빈슨의 모습은 디포의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무엇인가를 하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다. 침묵의 위대함, 여유로움의 위엄을 실험해보는 야심 있는 로빈슨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신과 함께한다면 그곳은 진짜무인도일지라도 무인도가 아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