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평생을 끝없이 방탕하게 살다 간 사람이라서내가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언쟁이 잦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외동아들인 나를 데리고 자주 집을나갔다. 앞으로 며칠은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가출했지만, 날이 저물면 결국 어디도 갈 곳이 없어서 다시 내 손을잡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북쪽 지역의 번화가나 상점가 신사이바시스지를 걸을때 볼 수 있는 화려한 것은 없었고, 작은 탁자 위에 얇은 나무판을 늘어놓고 참배객의 요청에 따라 거기에 붓으로 뭐라고 써넣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몹시 초라하고 고독해 보였다. 언제까지고 걸어도 어머니가 말하는 절은 안 나오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시영 전철이 지나가는 굉음과 대중식당 몇 채와 꾀죄죄한 빌딩이 그 거리의 한 모퉁이를 빗속에서 한층 너저분하게 만들었다. 어수선한 거리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차갑고 한산하다. 말로 표현하자면 그에가까운 감정을 그때 나는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가게를 나와 다시 참뱃길을 걸어 서문까지 갔다.
경내로 들어가 다시 한 번 시텐노지에 있는 것을 봐둘각이었지만, 흐린 하늘 아래에서 기묘히도 눈부시게 빛나는 무성한 새잎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갑자기 불우한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경내에 발을 들이지 않은 채 원래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초여름이었으나거기서 보이는 시텐노지의 가람은, 나에게는 역시 온기 없이 황량한 건물로만 느껴졌다.

평생토록 두 번 다시 생명체는 키우지 않겠다고 맹세했을 텐데, 열흘 전 나는 비글종 수컷 강아지를 데려왔다. 덴스케, 마리, 무쿠, 2대 무쿠, 고로에 이은 여섯 번째 개다.
나의 어린 아들들에게 사랑할 대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며, 생로병사라는 엄연한 법칙을 자연스레 인식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공부를 싫어했고 운동도 잘 못했고 친구를 사귀는 것도 서투른 데다 제멋대로에 울보에 병약하기까지 했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담임선생님이 물을 때마다 아버지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배신하지 마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이렇게만 교육하고 있습니다. 매화나무에서는 장미꽃이 피지 않습니다."

는나는 결핵으로 입원했을 때 문화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문화란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병으로 고통받으며 오랫동안 입원 생활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은내 말의 의미를 알 것이다. 일본의 의료기관에서 일하는공무원 중에는 타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은 사람이 많다.
문화국가란 다정한 사람들에 의해 성립되는 나라이지, 전자제품이나 무력이 완비된 나라가 아니다.

이똥
"그는 강가의 자갈밭에 누워 강물을 마시려고 했지만 마실 도리가 없었다. 그는 랭보인가. 천만에, 그런 묘한 남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다. 우리 모두가 죽기 직전의 모습이다."
랭보라는 인간의 정신과 그 말로에 대한 상념에 젖을 때,
나는 고바야시 히데오 씨가 정말 그렇게 느꼈고 느낀 그대로 글을 썼다는 것을 납득한다. 랭보도, 다른 숱한 천재들도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사람은 죽음에 처할 때 그게 우리라는 사실을 틀림없이 알 것이다.

나는 거절당하고 또 거절당해도 상품 하나를 팔기 위해계속 걸어가는 세일즈맨을 존경한다. 매일매일 핸들을 쥐는 운전사를 존경한다. 눈의 통증을 참으며 교정지를 확인하는 편집자를 존경한다. 그 사람들은 어중간한 학자나 소설가보다 훨씬 훌륭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내 아내는 그 강아지에게 틀림없이 엄마일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이길 수 없구나 싶다. 엄마라는 존재는 불가사의하리만치 끝 모를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힘에는 외적 우연을 곧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 법이다. 이 사상은 종교적이다."
이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모차르트> 속 한 구절이다. 어떤 불행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며 그에 맞서는 철학을,
인간은 슬슬 추구하기 시작하지 않을까.

인생도 마찬가지일 터다. 야마모토 슈고로는 굴지의 이야기꾼이었지만 벚나무에 장미꽃을 피우지는 않았다. 그- 거짓말은 했지만 인생의 실상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야마모토 슈고로의 작품은 전부 대중소설의 범주속으로 내던져졌다. 나니와부시"라는 소리를 들었고 통속소설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인간의 일상에서 통속적이지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을 통속소설이라든가 나니와부시라고 평가하는 이는 벚나무에장미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기뻐할 사람이 틀림없다.

현대 문학은 두 가지 길로 나뉘려 하고 있다. 벚나무에장미꽃을 계속 피울 것인가, 혹은 벚꽃은 벚꽃, 장미는 장미로 피울 것인가. 이 두 가지 길로 말이다. 100년 뒤에도야마모토 슈고로의 작품이 계속 읽히리라고 확신하는 나는, 머지않아 ‘요물’이 패배해 달아나는 시대가 오리라는것도 확신한다. 야마모토 슈고로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을읽을 때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믿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이들기 때문이다. 정교한 이론은 결국 늘 소박한 현실에 굴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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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처럼 비가 오는 날, 더 자도 괜찮은데 여덟 시가 되면 허겁지겁 일어나 전철을 타고 대학교 근처의 찻집으로 뛰어든다. 거기에는 볕에 그을린 같은 테니스부 패거리가 벌써 네다섯 명 모여서 시치미 뗀 얼굴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근처 여대의 테니스 부원들도 비 오는 날에는연습을 하지 않아서, 그날만큼은 마음 편히 주스나 초콜릿파르페 같은 것을 먹으며 우리 그룹에 끼기 때문이다. 각자 찍어둔 여자 선수가 있었으므로 비가 아침부터 오는 날이면 강의든 뭐든 뒷전으로 돌리고 찻집에 눌어 붙었다.
요컨대 비 오는 날만이 연습, 연습에 내몰리는 우리에게주어진 장미와 안식의 날이었던 셈이다. 그날만큼은 세상의 여느 대학생들처럼 음악을 들으며 여성의 달콤한 향기를 코끝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소설을 쓰다 지치면 흔들어도 두들겨도 소리가 나지 않는 〈간다강〉 레코드를 바라보았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레코드 라벨을 매직으로 칠해 뒤덮어버렸다. 구입한 지몇 년 만에 나의 전축으로 《간다강>을 들었을 때는 아주행복하기도 했고 이상하게 슬프기도 했다.
당신의 상냥함이 두려웠어…………."
이것은 노래가 되어 비로소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한 소절이다.

내가 산 마권은 모조리 빗나갔고, 해가 슬슬 저무는 무렵에는 돌아갈 전철비와 세뱃돈용으로 빼둔 천엔짜리 지폐 한 장만 남게 되었다. 원래라면 그 천 엔까지도 남김없이 다 써버리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 나였지만, 하늘 높이 떠오른 연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좋아져서 멍하게 잔디밭에 앉아 4코너를 통과해 달려가는 무수한 말발굽 소리와 몇 만 명이 내지르는 고함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나는 5년 동안 다닌 회사를 1975년 여름에 그만뒀다. 스물여덟 살 때였다. 그 3년 전부터 심한 불안 신경증이 도져서회사원 생활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오래 전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상당히 고민했지만, 나는 낮에 회사 일을 하고 밤에 소설을 쓰는 생활을 이어나갈 수 없어졌다. 회사에서 돌아와 열한 시쯤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새벽 서너 시까지 작업을 계속하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출근을 하는 나날이었는데, 몸이 약한 나에게 그런 턱없는 생활이 가능할 리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똑바로 걷지 못하게 되었고 계단 대여섯 개만 올라가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지쳐버렸다. 이대로 그런 생활을 계속한다면 나는 분명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이미 아내와 자식이 있었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아무 장점도 없는 인간이고, 머리도 나쁘고 완력도없으며, 제멋대로에 겁쟁이에 질투가 심하다. 하지만 단한 가지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내가조금은 타인의 고통과 함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살짝 낮춰 대답할 것이다. 대답한 순간 나의 마음에는 틀림없이그 열 권의 손때 묻은 문고본 다발이 스쳐갈 것이다.

나는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는지모른다. 머지않아 다시 르네상스가 일어날 거라고. 그러지않는다면 지구는 멸망해버릴 거라고.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 그런가요, 하고 애매한 대답을 할 뿐이다. 진정한 평화는, 달리 말해 전쟁을 저지할 것은, 보유하고 있는무기의 수가 아니라 실은 문화의 힘이라고 믿는 나는 21세기에 르네상스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인간 중 하나다. 열여덟 살 때 읽은 162편의 러시아와 프랑스 소설은 나의 내면에 깊게 침전해 딱 한 방울의 이슬을 뇌수에 떨어트렸다.
그것이 혀 위로 올라오면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한다,
라는 말로 바뀐다.

어느 날 갑자기 퇴원하라는 말을 듣고 내 방으로 돌아오자 ‘스토마이‘가 협탁 위에 발라둔 잼을 핥아먹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스토마이‘를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손가락으로 눌러 으깨버리자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관두자, 아냐, 으깨버리자, 승강이 끝에 나는 어째서인지 내 마음과는 정반대로 5개월을 함께한 ‘스토마이‘를 집게손가락으로으깨었다. 사람을 죽인 것과 같은(아직 죽인 적은 없지만) 두려움을 느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해버렸을까.

운이 나쁜 사람은 운이 나쁜 사람을 만나 서로 이어진다.
야쿠자의 곁에는 야쿠자가 모여들고, 편협한 사람은 편협한 사람과 친해진다. 마음이 맑은 사람은 마음이 맑은 사람과, 사기꾼은 사기꾼과 만나 어울린다. 실로 신기한 일이다. ‘유유상종‘이라는 사자성어가 담고 있는 것보다 더심오한 법칙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만들어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최근 겨우 이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법칙 중하나를 깨달았다. ‘만남‘이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지않고서야 어떻게 ‘만남‘이 한 인간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있겠는가. 내가 하는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인간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자신의 아내를, 혹은자신의 친구를 철저하게 분석해보기 바란다. ‘만남‘이 결코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다.

을어느 맑게 갠 가을날, 나는 아버지와 경마장에 갔다.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말을 사달라고 졸랐다. "이번 장사가잘 되면 두세 마리 사주마"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하지만
‘이번 장사‘가 성공적으로 궤도에 오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벌써 십몇 년이 지났다. 말을갖고 싶다는 나의 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예탁료*만 해도 1년에 월급쟁이 연봉만큼의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가난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설령 내 책이아무리 베스트셀러가 되더라도 그 꿈은 이룰 수 없겠구나생각했다. 10엔이 없어서 사카이에서 오사카의 후쿠시마구까지 걸어 돌아왔던 저녁을 결코 잊지 못하는 나에게 경주마를 가질 도량이 있을 리가.

시텐노지四天王寺*는 거리 속에 있다.
이제까지 나는 시텐노지의 경내에 두 번 발을 내딛었다.
첫 번째는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내가 열 살 때였고 두 번째는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취재차 방문한 1981년 봄이다.
열 살 때 기억에 남은 시텐노지와 그 일대의 풍경은 그저잿빛 일색이었고, 아마도 비가 온 듯 흠뻑 젖은 아스팔트길과 비둘기 몇 마리, 절에 인접한 어떤 건물의 긴 담장, 게다가 가람 기와의 빛바랜 광택이 묘하게 선명한 인상으로마음에 각인되어 있다. 모든 것이 죄다 잿빛이었던 듯한느낌이다. 추운 날이었다는 것도 기억이 나고, 어머니와둘이서 시영 전철을 타고 갔던 것도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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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남자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더니 그렇게말했다. 어머니가 불안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자고 일어났을 때 한 잔, 낮에도 한 잔, 밤에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한 되를 마시는 술꾼이었다. 남자는 기가조금 죽은 모양이었다. 열차는 만원이었고 통로에는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신문지를 깔고 주저앉은 상황이었으니, 다른 자리로 가라는 말은 아버지가 남자한테 명백하게 싸움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날카로운말을 내뱉을 때 아버지 얼굴에는 모종의 태연한 풍격과 기백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특유의 미소를 띠며 중얼거리고는 어두운 개찰구 쪽으로 걸어갔다. 25년 전의 나는 그저차창으로 바라본 눈보라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헌팅캡을 쓴 남자에 대한 건, 아마도 내가 상상으로 지어낸이야기겠지. 나에게는 그런 병이 있다.

다들 다음에는 눈이 오는 계절에 오라고 말했지만 나는아직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나는 올해 (1983년) 9월 중순부터 약 2주 동안 중국을 여행할 예정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따라가겠다고 우기며 물러서지 않으셨겠지. 너는 분명 중국의 대지로부터 배울 점이 많을 게야. 서른 해 가까이 지난 지금, 아버지의 그 말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비가 오려고 할 때는 기압의 영향으로 자율신경이 잘 흐트러져서, 그로 인해 까닭 없이 우울해지거나 두통에 시달리거나 지병이 도지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태까지도짚이는 일은 몇 번이나 있었고, 특히 작년 봄 결핵으로 입원했을 때는 잔뜩 흐려지는 날씨와 함께 눈이 침침해지고묘하게 숨 쉬기가 괴로워져서 ‘아아, 컨디션이 이상한데‘
하고 생각하면 곧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침대에 드러누워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선잠에 빠져보지만 깊게 잠들지 못해 몇 번이나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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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신우연이 우리의 길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환경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불리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출세할 확률이 더낮다. 그럼에도 그가 모든 장벽을 딛고 성공하는 경우에는 재능과능력 외에 뜻밖의 동시적인 사건들이 성공에 기여한다. 우리는 진화와 관련하여 이런 법칙을 이미 알고 있다. 우연은 종종 약자의 편에서 싸운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자기 자신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자녀를 여러분과 똑같이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은 뒷걸음치지 않으며 어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뇌는 신체의 왼쪽을 관장한다. 그리고 도파민은 근육 활동에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우뇌에 도파민이 많으면 왼쪽 신체를 더 잘 쓰게 된다. 브루거에 따르면 사람들이 손을 깍지 끼는 모양과 팔짱 끼는 모양으로 그들이 운명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분간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오른손잡이는 손을 깍지 낄 때와 팔짱낄 때 모두 왼쪽이 위에 올라온다. 즉, 팔짱 낄 때 왼팔이 오른팔 위에 위치하고 깍지 낄 때도 왼손 엄지손가락이 오른손 엄지손가락 위에 위치한다. 하지만 브루거는 운명을 믿을수록 팔짱낄 때 왼팔이위로 올라가면 손을 깍지 낄 때는 왼손 엄지손가락이 밑으로 내려가고, 반대로 깍지낄 때 왼손 엄지손가락이 위로 가면 팔짱낄 때는왼팔이 밑으로 가는 등 이런 틀에서 어긋나게 행동한다.

커다란 고통에 직면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의미를 찾다가 더욱 고통스러워지기도 한다. 많은 암 환자가 병에 걸린 이유를 자신이 살면서 지은 잘못 때문이거나 자신의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걱정을 쌓아두면 암이발생한다는 입증되지 않은 믿음이 많은 환자에게 부가적인 고통을안겨주고 있다.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신적인 원인이 암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유전자의 우연한변화가 거듭되어 암이 유발된다는 증거는 아주 많다. 환경 오염, 잘못된 영양, 흡연도 유전자 변이의 빈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암에 걸리는 것은 우연한 사건이다.

이런 견해는 중세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유래한 것으로인간이 신에게 대항할 수도 있기에 신의 전능함과 약간의 모순을 빚는다. 칼뱅주의자들은 다른 종파와는 대조적으로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의 운명은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신의 전능함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의철학이 더 반박의 여지가 없다. 결국 무엇을 우연으로 보고, 무엇을신의 손길로 볼지는 각자에게 달린 문제다. 신의 계획을 명백하게파악할 수 없으므로 신의 개입은 증명할 수도, 배제할 수도 없다. 이로써 교부들은 현대 수학자들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우연은 증명이불가능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직관은 때로 위험하다. 복잡한 상황에서는 우리가 내리는 빠른 결정이 최적의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관적인 생각은 나중에 바꾸기도 힘들다. 의식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들을 충분히 안다 해도 감정은이성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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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혁신은 적당한 시대에 적당한 환경에서 이루어질 때만이 승산이 있다. 기존의 무리 속을 뚫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거주자들과 새내기 간의 경쟁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예상할 수없다. 새로운 형질이 어떤 개체군에 확고하게 뿌리내린다 해도 기후변동이나 운석의 추락이나 인간의 남벌 같은 재앙이 탁월한 유전자를 가진 동물을 휩쓸어버릴 수도 있으며 그로써 진화는 한 걸음 후퇴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진보는 보이지 않게 이루어진다. 새로운 버전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한동안 견뎌내야 한다. 자연과사회에서 새내기는 처음에 불리한 경쟁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가능하려면 새로운 것을 배출하는 공동체가 실험 공간을 허락해야 한다. 경쟁의 압력 또한 너무 거세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성숙해야 할 발명품의 싹이 잘려나갈 수 있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영양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듯 혁신의시대가 도래하기도 전에 우연이 혁신을 몰아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우연이 새로운 것을 도울 수도 있다. 전염병이 기득권 무리를 쓸어버리는 등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기존의 것들을 밀어내고비실거리는 발명품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우연은 종종 약한 자의 편에서 싸움으로써 약한 자들에게 우연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기회를 허락한다.

"다양성은 진보에 도움이 된다. 다양성은 우연이 힘을 발휘할 수있도록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모든 종류의 독점은 진화를힘들게 한다."

진보를 위한 전제는 문화의 다양성이다. 그러나 점점 글로벌화되는 세계에서 문화의 다양성은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 지구상의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6000개가 넘는다. 그러나 요즘 같은 추세로 가면 절반 이상의 언어가 앞으로 100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바벨탑으로 인한 언어의 혼란은 인류에게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진화에서도 꼭 더 좋은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데 성공한 것이 이긴다. 그것은 앞으로의 일을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누가 더 나은지는 종종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누가 시합에서승리할지는 우연에 달려 있다. 경쟁에서 한 번 이긴 자는 자신보다더 나은 대적자가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승자가모든 것을 취하는 것이다.

모래언덕 위에 맨 처음 떨어진 빗방울은 우연히 길을 뚫는다. 이어 빗방울이 많이 떨어질수록 빗방울들은 처음의 길을 더 깊게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물이 같은 흐름을 탄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것은 환경에 영향을 끼치고 환경을 되돌릴 수 없게 변화시킬 수있다. 모래 위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그러는 와중에 처음의 우연은굳어지고 길이 정해진다.

아마도 40억 년 전 진화 초기에는 지금과는 다른 화학구조를 가진 생명의 대안들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의 구조와같은 단세포 생물들이 우연히 약간 더 일찍 확산되는 바람에, 다른화학구조로 이루어진 생명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사에서 생물들은 언제나 만회할 수 없을 만큼 앞장섰기에 살아남았다.
때로는 재앙이 상황을 뒤집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몇 가지 사건의 보기 드문 연결고리가 커다란 생태학적 파국을 유발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건들은 인간에게는 무척 행운이었다. 소행성이 다른 곳에 떨어졌다면 포유류는 결코 지구의 주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여전히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연을 조절하는 두 번째 힘은 진화가 가진 것만으로 게임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기존의 것을 다르게 조합하면서 새로운것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결코 아무 때나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
우연은 그런 한계 내에서만 작용한다.

따라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혼란을 유발하여 지배권을 확실히 하는 데 이상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악명 높은 전제군주들은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무정부 상태는 절대 권력으로 가는 도약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가위바위보는 게임 이론의 면모를 보여준다. 게임 이론이란 형가리 출신의 미국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1920년대에 정립한 개념으로 다양한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이론은 인간 또는 동물들이 서로 경쟁하며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임금 협상을 할 때도, 독수리와 뱀의 먹고 먹히는 생존 싸움에서도,
포커를 칠 때도 말이다. 게임 이론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상대편이 어떻게 행동하든 상관없이, 언제나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해결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결정은 가장 최악의 것을 피하는것이다."
지금까지 미군의 공식적인 독트린은 적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결정을 내릴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적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최악의결정에 근거하여 전략을 선택하라는 폰 노이만의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한 회사원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할 것이라면, 기대한 승진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회사를 계속 다닐지 자문해야 한다.

우연만이 보복의 악순환을 깨뜨릴 수 있다.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 속에서 때때로 한쪽이 협력을 섣불리 포기하지 않고 관대하게 행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참아주면 장기적으로 둘 다 유리하다. 그러나그럴 때 자신이 상대방의 어떤 부당함을 묵인하고 참아줄 수 있는지를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상대방이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용이 너무 자주 반복되지 않고, 무엇보다 무작위적으로 행해지면 양쪽에 유익이다. 계산할 수 없게끔 행동할 때에만 우리는좋은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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