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혁신은 적당한 시대에 적당한 환경에서 이루어질 때만이 승산이 있다. 기존의 무리 속을 뚫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거주자들과 새내기 간의 경쟁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예상할 수없다. 새로운 형질이 어떤 개체군에 확고하게 뿌리내린다 해도 기후변동이나 운석의 추락이나 인간의 남벌 같은 재앙이 탁월한 유전자를 가진 동물을 휩쓸어버릴 수도 있으며 그로써 진화는 한 걸음 후퇴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진보는 보이지 않게 이루어진다. 새로운 버전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까지 한동안 견뎌내야 한다. 자연과사회에서 새내기는 처음에 불리한 경쟁을 견디고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가능하려면 새로운 것을 배출하는 공동체가 실험 공간을 허락해야 한다. 경쟁의 압력 또한 너무 거세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성숙해야 할 발명품의 싹이 잘려나갈 수 있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영양이 사자에게 잡아먹히듯 혁신의시대가 도래하기도 전에 우연이 혁신을 몰아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우연이 새로운 것을 도울 수도 있다. 전염병이 기득권 무리를 쓸어버리는 등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기존의 것들을 밀어내고비실거리는 발명품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우연은 종종 약한 자의 편에서 싸움으로써 약한 자들에게 우연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기회를 허락한다.

"다양성은 진보에 도움이 된다. 다양성은 우연이 힘을 발휘할 수있도록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모든 종류의 독점은 진화를힘들게 한다."

진보를 위한 전제는 문화의 다양성이다. 그러나 점점 글로벌화되는 세계에서 문화의 다양성은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 지구상의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6000개가 넘는다. 그러나 요즘 같은 추세로 가면 절반 이상의 언어가 앞으로 100년 안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양성을 유지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바벨탑으로 인한 언어의 혼란은 인류에게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진화에서도 꼭 더 좋은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데 성공한 것이 이긴다. 그것은 앞으로의 일을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누가 더 나은지는 종종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누가 시합에서승리할지는 우연에 달려 있다. 경쟁에서 한 번 이긴 자는 자신보다더 나은 대적자가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승자가모든 것을 취하는 것이다.

모래언덕 위에 맨 처음 떨어진 빗방울은 우연히 길을 뚫는다. 이어 빗방울이 많이 떨어질수록 빗방울들은 처음의 길을 더 깊게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물이 같은 흐름을 탄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것은 환경에 영향을 끼치고 환경을 되돌릴 수 없게 변화시킬 수있다. 모래 위에 떨어진 빗방울처럼 그러는 와중에 처음의 우연은굳어지고 길이 정해진다.

아마도 40억 년 전 진화 초기에는 지금과는 다른 화학구조를 가진 생명의 대안들이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의 구조와같은 단세포 생물들이 우연히 약간 더 일찍 확산되는 바람에, 다른화학구조로 이루어진 생명은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자연사에서 생물들은 언제나 만회할 수 없을 만큼 앞장섰기에 살아남았다.
때로는 재앙이 상황을 뒤집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몇 가지 사건의 보기 드문 연결고리가 커다란 생태학적 파국을 유발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건들은 인간에게는 무척 행운이었다. 소행성이 다른 곳에 떨어졌다면 포유류는 결코 지구의 주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여전히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연을 조절하는 두 번째 힘은 진화가 가진 것만으로 게임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기존의 것을 다르게 조합하면서 새로운것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결코 아무 때나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다.
우연은 그런 한계 내에서만 작용한다.

따라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혼란을 유발하여 지배권을 확실히 하는 데 이상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악명 높은 전제군주들은 오래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무정부 상태는 절대 권력으로 가는 도약판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가위바위보는 게임 이론의 면모를 보여준다. 게임 이론이란 형가리 출신의 미국 수학자 존 폰 노이만이 1920년대에 정립한 개념으로 다양한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이론은 인간 또는 동물들이 서로 경쟁하며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임금 협상을 할 때도, 독수리와 뱀의 먹고 먹히는 생존 싸움에서도,
포커를 칠 때도 말이다. 게임 이론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상대편이 어떻게 행동하든 상관없이, 언제나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해결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결정은 가장 최악의 것을 피하는것이다."
지금까지 미군의 공식적인 독트린은 적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결정을 내릴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적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최악의결정에 근거하여 전략을 선택하라는 폰 노이만의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한 회사원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할 것이라면, 기대한 승진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회사를 계속 다닐지 자문해야 한다.

우연만이 보복의 악순환을 깨뜨릴 수 있다. 반복되는 죄수의 딜레마 속에서 때때로 한쪽이 협력을 섣불리 포기하지 않고 관대하게 행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참아주면 장기적으로 둘 다 유리하다. 그러나그럴 때 자신이 상대방의 어떤 부당함을 묵인하고 참아줄 수 있는지를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상대방이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용이 너무 자주 반복되지 않고, 무엇보다 무작위적으로 행해지면 양쪽에 유익이다. 계산할 수 없게끔 행동할 때에만 우리는좋은 사람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