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남자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더니 그렇게말했다. 어머니가 불안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자고 일어났을 때 한 잔, 낮에도 한 잔, 밤에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한 되를 마시는 술꾼이었다. 남자는 기가조금 죽은 모양이었다. 열차는 만원이었고 통로에는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신문지를 깔고 주저앉은 상황이었으니, 다른 자리로 가라는 말은 아버지가 남자한테 명백하게 싸움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날카로운말을 내뱉을 때 아버지 얼굴에는 모종의 태연한 풍격과 기백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특유의 미소를 띠며 중얼거리고는 어두운 개찰구 쪽으로 걸어갔다. 25년 전의 나는 그저차창으로 바라본 눈보라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헌팅캡을 쓴 남자에 대한 건, 아마도 내가 상상으로 지어낸이야기겠지. 나에게는 그런 병이 있다.

다들 다음에는 눈이 오는 계절에 오라고 말했지만 나는아직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나는 올해 (1983년) 9월 중순부터 약 2주 동안 중국을 여행할 예정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따라가겠다고 우기며 물러서지 않으셨겠지. 너는 분명 중국의 대지로부터 배울 점이 많을 게야. 서른 해 가까이 지난 지금, 아버지의 그 말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비가 오려고 할 때는 기압의 영향으로 자율신경이 잘 흐트러져서, 그로 인해 까닭 없이 우울해지거나 두통에 시달리거나 지병이 도지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태까지도짚이는 일은 몇 번이나 있었고, 특히 작년 봄 결핵으로 입원했을 때는 잔뜩 흐려지는 날씨와 함께 눈이 침침해지고묘하게 숨 쉬기가 괴로워져서 ‘아아, 컨디션이 이상한데‘
하고 생각하면 곧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침대에 드러누워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선잠에 빠져보지만 깊게 잠들지 못해 몇 번이나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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