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의견은 가장 그럴듯하다. 사회적 감정이 기본 감정과 구분되는 근거는 사회적 감정으로 인한 행동 표현이 문화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아이들은 선천적인 언어능력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독일어나 일본어를 배우듯이, 감정능력 또한 국가에 따라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랑과 연모는 슬픔이나 증오처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경향이다. 사랑과 연모는 뜻밖에 우리를 습격하는 것이며 다른 감정보다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에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거의 모든 문화권의 민속 문학에도 우리가 ‘유럽적‘이라고 말하는 사랑과 관련된 모티프나 행동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그리움, 친밀함, 욕망, 꼭 지켜야 하는 약속 등이다. 즉 문화적 이론이 중세 시대의 문학 트렌드로 미루어 실제 삶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사랑을 서구적인 파트너십의 전개 방식과 혼동하게 되었다. 서로 만나고, 의례적인 말로 호감을 사고, 영화를 보고, 요리하고, 촛불을 켠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식사하고, 키스하고, 성교하고, 교회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과정 전부가 사랑인양 착각하는 것이다.

다마지오와 그의 동료 연구진 중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감정이판단을 이성적으로 조종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정을 이렇게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것은 혁신적인 결론이었는데,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감정이 이성을 가로막고 방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언어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두가지 답이 있다. 짧은 답변은, 약 6,000개 정도라는 것이다. 긴 답변은, ‘언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언어학자들이 ‘독일어‘ 혹은 ‘베를린어‘ 등을 나누어생각하는 것이 애초에 타당한지 의문을 품는다. 그보다는 개인어,
즉 각 개인 고유의 언어 습관을 연구하는 편이 더 유용하고 보람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 두 사람이거의 비슷하게 말한다고 하더라도, 뭉뚱그려서 "두 사람은 독일어로 말하고 있다"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그 이상의 정보는 도출하지못한다. 얼핏 과장되어 보이는 이 주장은 세상에 만연한, 하지만 불확실한 의미론에 대항하는 예방책이다. 의미론에 따르면 언어는 추
‘상적인 ‘기호 체계‘로서 독자적으로 활약한다.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려면 우선 언어적 의미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 사용론자들은 ‘암시적 규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특히 미국의 언어철학자 로버트 브랜덤Robert Brandom이 주장한 것이다. 브랜덤에 따르면 언어는 규칙적이며 규범적이다. 언어사용에 ‘옳음‘과 ‘그름‘이 있기 때문이다.

어원이론에 대해 더욱 전반적으로 반박해보자. 각 단어의 역사를모두 꿰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우리는 모두 그 단어가 무슨뜻인지 안다. 즉 어원학 지식이 없어도 언어를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게다가 조상들이 같은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도 상관없다. 그들이 사용했던 단어를 현재 우리가 전혀 다른 뜻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네‘, ‘아니오‘라는 표현은 ‘진실‘과 ‘거짓‘이라는 표현이나 마찬가지다. 콰인이 말했듯이 이 보조수단 덕택에 연구자는 미지의 언어세계의 문을 열고 발을 들일 수 있었다. 문장 구조에 대한 명제를실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단어는 고립되어 있을 때 아무런의미를 갖지 못하며, 완전한 문장 속에 있어야만 의미를 갖는다.

"어떤 문장을 이해한다는 건 그것이 사실일 때가 어떤 경우인지아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가 단어를 보고 알아낼 수 있는 내용은 오로지 그 단어가 전체 문장의 사실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뿐이다. 그것이 그 단어의 의미다.

말하자면 형식적인 의미론은 언젠가 경계를 맞닥뜨린다. 어쨌든의미론에서 중요한 것은 단어적인 의미다. 각각의 단어의 의미가문장의 의미에 기여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서로의 의사소통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학과창작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암시와 풍자, 은유, 다의어, 유머, 말장난 등을 생각해보라. 이런 현상은 화용론, 즉 언어 사용 이론과 관련이 깊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이렇게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다. 언어는반복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어의 한 부분을 다른 상황에서 사용하거나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왕자‘는 ‘우울한 왕자‘가 될 수있고, 다시 ‘우울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왕자‘ 혹은
‘우울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이해받은 적은 없는왕자‘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 머릿속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부위는 마치 프로그램처럼 기나긴 문장을 만들고 가공한다. 촘스키의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모든 언어의 문법이 똑같은 구조를 기반으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바로 우리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보편문법이다.

‘모든 것에는 저마다 자리가 있다‘는 말을 고차원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내용은 똑같다. 그는 후기 작품에서 더욱 창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통찰이 번쩍임이 되고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져목격되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기술의 위협에 대해서는 몰아세움Gestell13 이 위험으로서 존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것은 하이데거에게 친숙하지 않은 유머나 아이러니와 같은 언어유희가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견해에 덧붙여 이야기를 꾸며내는 유희에서는나쁜 철학만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하이데거를 겨냥하지 않았더라도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언어가 ‘휴가를 떠나면‘ 철학적 문제들이 발생한다."

일신론자들은 신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하나는 초인, 다른하나는 추상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화를 내고 귀 기울여 듣고 용서하기도 하는 인격적인 신은 인간이라는 견본을 무궁한 존재로 확장한 것이다.

수많은 유일신 종교에서 신은 여러 측면이 조화된 존재다. 신은이 세상의 창조자이자 도덕적 권위자이자 광대하고 인간으로서는이해할 수 없는 정신이자 인간의 삶에 의미를 주는 존재이자 현명한 아버지로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우리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존재다. 종교인이 되려면 이런 존재가 필요한 걸까? 신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우리는 과연 종교를 갖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먼저 탐구해야 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영성과 종교적 믿음이 같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 헬멧을 쓴 사람과 교회에 가는 사람은 각기다른 것을 체험한다. 두꺼비의 피부선 분비물에는 DMT가 들어 있는데, 이것을 핥는 행동과 기도가 똑같은 체험을 불러일으키지는않는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영적인 감정이 발생하는 데 다른 요소가 필요하다. 이 요소란 이 세상의 발생과 질서에 대한 매우 구체적인 가정, 권위자의 존재 인정, 더 높은 감각에 대한 바람 등이다.
이런 요소는 베일에 싸이고 신비로운 감각이 아니라 복잡한 사고과정에서 나타난다. 많은 유신론자들이 신의 현존을 기꺼이 증명하려고 하지만 신을 느꼈다는 예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보다도과연 우리는 신의 현존을 증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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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우리를 번개같이 움켜쥐고, 우리는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감정은 대개 짧은 시간 동안만 머무른다. 아주 가끔 분노나 기쁨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감정은 뜻밖에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 의도해서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차단할 수 없다. 감정이 우리를 습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문헌에서는 감정을 ‘정열leidenschat‘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 고전적인 감각에서 감정이란 우리가 수동적으로 ‘당하는erleiden‘ 것이기 때문이다.

간지러움, 배고픔, 고통 등의 감각을 느낄 때는 정서와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정서나 감정은 늘 존재하지만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언짢음이나 짜증과 같은 정서를 예전부터 감정과 구별했는데, 감정은 그 원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고, 해바라기를 보고 기뻐한다. 아무 원인도 없는데 질투하거나 화를 낼 수는 없다. 정서는 다르다. 하루 종일 우울하거나 스포츠를 하고 나서 활기를 느끼듯이 원인이 존재하지 않거나 지나간 다음에도 정서를 유지할 수있다.

두려움을 느끼면 우리는 동시에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이웃의 도베르만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지이론에 따르면 감정은 생각의 한형태, 즉 평가 혹은 판단이다. 인지이론을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이때때로 감정은 느끼는 것과 관련이 있지만, 그 관련성은 우연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런데 누스바움은 한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그렇다면 우리의판단이 바뀌자마자 감정도 바뀌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미가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거미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잘못된 판단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지만 감정에서는그럴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이 무서운지 제대로 판단하기 전에 이미 두려운 감정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니 신중한 판단이 두려움의 본질은 아니다.

라자루스는 우리가 감정을통해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우리가 인식을 통해 세계상을 구축하듯이, 감정은 우리에게 집단 내에서 함께살아갈 때, 그리고 야생에서 살아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알려준다. 라자루스는 이런 요소를 ‘핵심 주제‘라고 불렀다.

게다가 핵심 주제만으로도 감정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신체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신체론은 물론이고 인지이론에도 구멍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쪽 이론 모두 절반 정도만옳은 걸까? 광범위한 토론에서는 진실이 정중앙에 놓인 경우보다반대 의견을 적절히 조합한 결과물인 경우가 훨씬 많다. 이것이 바로 혼합이론이 등장한 이유다. 혼합이론은 감정이 여러 요소의 다발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이 질문에 대해 미국의 철학자 제시 프린츠 Jesse Prinz는 자신이주장한 ‘체화된 평가‘ 이론에 따라 답을 내렸다. 프린츠에 따르면 감정은 신체 변화의 인식이고, 이를 통해 위험이나 상실과 같은 핵심주제를 더 확실하게 나타낸다. 감정의 신체 경험은 말하자면 표지판이다.

이런 접근법에서 보면 잘못된 판단이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만약 전혀 해롭지 않은 쥐를 보고 공포를 느끼거나, 반대로 대단히해로운 방사성 폐기물이 가득 담긴 컨테이너를 보고도 미동도 하지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에 대해 프린츠는 간단한 답변을내놓았다. 어떤 이론이든 이런 문제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실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모든 정지 표지판은 없어야 할 곳에 있거나 있어야 할 곳에 없을 수 있다. 혹은 우리가 표지판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 때때로 감정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거나, 우리가 감정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대부분의 경우 감정은 우리에게 주변 환경에 대한 믿음직스러운 평가를 전달한다.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은 기뻐하고, 그 감정은 만면의 웃음으로드러난다. 그 말은 기쁨이라는 감정은 선천적인 것이며, 다른 표정으로 나타나는 수많은 감정, 어쩌면 모든 감정이 타고났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감정이 인간의 진화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연구하기도 전에 우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감정을 알고 있다는점을 증명해야 했다. 지난 세기 가장 중요한 감정 연구자 중 한 명인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은 1960년대 말에 감정이보편적인 것인지 검증하고자 했다. 이것은 학계를 뒤흔든 도발이나다름없었는데, 당시에는 사회구성주의‘가 지배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감정은 각기 다른 전형적인 표정으로 드러나고, 똑같은 유발인자를 갖고 있다. 신경망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은 우리 뇌의 대뇌변연계 Limbic system‘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비둘기나 고양이, 쥐와 같은동물들도 똑같다. 요컨대 우리의 감정이 선천적이라는 뜻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약 5억 년 전에 살았던 초기 척추동물에게서도 발견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두려움과 다른 감정은 치열한 생존 싸움에서 어떤 기능을 할까?

감정은 우리가 일단 행동에 나서도록 만든다. 두려움, 분노, 혐오는직접적으로 기능한다. 이런 감정을 느끼면 우리는 도망치거나, 맞서싸우거나,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한다. 다른 감정은 간접적으로 기능한다. 수치나 슬픔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감정을 피하려고 애쓴다. 반면 기쁨은 아무리 느껴도 부족하기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즐거워지려고 노력한다.

직감을 믿는다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주변 환경에 대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이 감정의 두 번째 기능이다. 감정은 정보 체계이자 조기 경보 체계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느끼고 이해하는 능력을 과한 말에 동학자들은 ‘마인드 리딩Mind reading‘, 즉 생각을 읽는다고 표현한다.
텔레파시가 아니라, 오로지 행동만으로 타인의 생각,감정, 의도 등을 알아내는 인간의 선천적인 재능이다. 이것을 ‘사회적 지능Socialintelligence‘이라고도 한다.

‘우리 몸에서 ‘영혼의 문‘ 역할을 하는 부위는 눈뿐만이 아니다.
얼굴 근육 또한 ‘영혼의 문‘이다. 얼굴 근육을 잘 해석하는 사람만이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감정 표현 방식을 발명한 에크만은 기본 감정만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람의 얼굴 근육으로 대략 1만 가지 이상의 각기 다른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추정했다. 이 모든 표정을 잘 알고 있다면 타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에크만은 동료연구진과 함께 수년에 걸쳐 모든 표정을 연구하고 체계화했으며 스스로 각각의 표정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이렇게 습득한 지식으로그는 살아 있는 ‘거짓말 탐지기‘가 되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남을 속이려 들 때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는 여러 가지 표정을 짓는데, 훈련 없이는 이런 ‘미세표정‘을 구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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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주체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정해준 한계를 받아들인다. 실현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다른사람들의 의견을 실제적인 진실로 간주한다.
두려움은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해서 자기 능력을발휘할 수조차 없도록 한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 일을 해낼 확률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않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런 사고방식에서 탈피한 사람이 세상에 더 많이 필요하다.

저항일우리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변화를 일으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도 실제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비이성적인 사람이다. 이야기의결말을 정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역사를 쓸 기회가 주어진다.

지독하게 강렬한 이 순간이 멋지고 인상 깊지 않은가? 아니다. 애초부터 차라리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착한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총을 들이미는 일은 없어야 한다. 누구도 옳은 일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방어하는 일이 있어서는안 된다.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친절한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평정심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강렬함, 공격성, 무력시위라고 부르는 것들이 우리를 지켜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서는 안 된다. 움츠러들어서는 안 된다. 괴롭힘을 받아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 순간에 되받아쳐야 한다. 강렬하게공격해야 한다. 주먹을 들어야 한다.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릎 꿇게 될 것이다.

물론 일어나서 떠나는 방법은 이민 말고도 많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용기를 내서 직장을 그만두는 일일 수도 있고,
인생과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통째로 잃을지도 모를 프로젝트에 뛰어드는 일일 수도 있다. 자신이 속한 정당에서 나오거나수년간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이혼을 결심하는 것도해당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고군분투했다. 우리는 용감하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냥 잘 풀리지 않았을 뿐이다.

도약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그 자질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높게 사야 한다. 그리고 영감을 받아야 한다. 희망이 없는 상황은 없고, 주체성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우리는 언제나 용감하게 짐을 싸서떠날 수 있어야 한다.

존 F. 케네디는 "용감한 사람이 있으면 위험천만한 장소도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기가 맡은 일을 하는사람이,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동료경찰관들과 맞선 세르피코, 당대의 관료주의와 무관심에 도전하던 나이팅게일, 부커 T. 워싱턴을 백악관으로 초대해서 벌집을 건드린 루스벨트가 그 예다.

확률에 도전할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어떻게 달라졌을까? 모든 기업가와 운동가, 일반인이 수치 예측에만 귀 기울인다면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까? 모든 의사가 환자 상태를 진단한 후 낙관적인 전망 없이 객관적 사실에만 집중한다면 어떤 환자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후반전에 기운이 빠진 팀이 이번 경기는 완전히 졌다고 생각한다면 점수를 만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1940년의 모든 영국 공군 조종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이 영국에 가한 폭격및 공습과 관련한 통계를 봤다면, 즉 비행 시 사망할 확률이 10분의 1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저항할 수 있었을까?

위인들의 생애는 우리를 깨우친다.
우리도 장엄한 인생을 이룰 수 있다고또한 떠나가면서 우리 삶 뒤편으로세월의 모래톱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고.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르는 용감한 선조들이 이곳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보호해 주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이라면지금 여기서 무슨 일을 할지 스스로 떠올려 보라. 선조들의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니 더 용감해져라. 바로 지금,
여기, 이 결정적인 순간에 말이다.

모든 위대한 지도자는 이를 이해한다. 드골 또한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라고 부르던 것을 연습했다. 열광적인 프랑스 시민 무리에 뛰어들어 기개와 사랑으로 서로 마음을 적셨다. 맥아더의 보좌관들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경고했듯이 드골의 참모들도 지도자의 안전을 극도로 걱정했다. 하지만 드골은 너무나도 위험하므로 오히려 반드시 해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워하면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을것이다. 또 이러한 대담함, 즉 모든 위험에 맞서 대의를 직접대변하려는 의지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들도 괜찮으리라는것을 보여준다. 지도자는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다. 전면에 나선다. 자기의 용기를 전염시키는 것이다.

용기의 비이성적인 측면보다 더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다.
바로 애타심과 이타주의다. 실제로 진화심리학자와 생물학자,
극작가도 마찬가지로 몇 년 동안 이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미국의 역사가 T.R. 페렌바흐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인간의 용맹함보다 설명하기 쉽다"라고 말했다.

자기보존의 논리는 강하다. 특히 이해관계를 모두 따져보는이들에게 자기보존의 논리는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렇기에 자기보호의 논리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려면 사람은 그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이상한 역설이 발생한다. 자기보호본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은용감하지 않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다. 때때로 가장 고귀한 형태의 용감함은 자신의 생명까지 버려야 하는 자살행위와도 같은 이타심을 요구한다. 그래서 자기보호본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으므로 사실 가장 용감한 것이다.

진정한 영웅적 행위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할 수 없는 행위이기에 이성을뛰어넘어 행동하게 한다. 그래서 그렇게 영웅적 행위를 숭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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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지 않는다면? 뭐, 어쨌든 실패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니 다른 형태의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나중에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 했었다며 후회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말이다.
한마디로 지금 당장, 해야 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이런 행동을 감탄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것이 일반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사람으로서 기본도리가 아니던가?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은진실을 배반하는 것이다. 침묵을 지켜서 유죄를 면할 수는 있겠지만 변명의 여지는 없다. 잘못한 일이다. 비겁한 사람이다.
아무도 진실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진실을 들을 때아주 겁먹을 수도 있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할 수는없다.

현재 상황에 도전하는 인물이 필요하다. 문제를 캐내고 공개적으로 비판할 예술가가 필요하다. 정직하게 나라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과 불쾌한 사실을 주저하지 않고말하는 전문 고문관이 필요하다. 선전이나 합리화, 은폐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전 참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사회의 모든 위치에서 기꺼이 목소리를높여줄 사람들. 세상은 우리가 그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도 사실은 선택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때 무언가를 해야 했다고후회할 것이다. 자기를 해치는 관계를 끊어내든 사업을 시작하든 맞서 싸우지 말고 결정하라. 당장.
다른 사람들과 논의하는 데 쓰는 시간을 제대로 썼더라면허리케인에서 더 멀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해 망설였던 시간을 안 좋은 결과를 줄이는 데 쓸 수도 있었을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오래전이고, 두 번째로 좋은 시기는 지금이다.

용기는 한순간에 결정된다. 나설 것인지 물러설 것인지, 도약할지 후퇴할지 결정하는 순간은 1분보다 더 짧은 시간이다.
사람은 일반적으로 용감하지 않지만 특별하게도 우리는 용감하다. 부끄러워도 단 몇 초 동안만 용기를 내면 우리는 위대해질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대의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무슨 일을 하든 공격적으로 추구해야한다. 두려움에 휘둘릴 때 상대방에게 쫓길 때 우리에게는 기회가 전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상황을 끌고갈 수가 없다. 성공하려면 먼저 공세를 취해야 한다. 조심해야할 때도,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가정하에 승리를 향해 언제나집요하게 움직여야 한다. 일을 진행하는 속도를 조절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전투에서든 회의실에서든 큰 문제든 작은 문제든일의 진행 속도를 우리가 정해야 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지상대방이 두려워하도록 해야지,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할지 우리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있다. 그 힘으로 정당한권리를 요구하고 학대와 탄압, 불합리한 차별에 저항함으로써용감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글러스가 그랬던 것처럼 다음 세대를 도울 수 있다.

용기는 바이러스처럼 소리 없이 접촉해서 퍼진다. 공기를 통해 퍼져나간다. 우리는 용기를 발산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넘치는 힘을 쏟아서 용기를 감염시킨다. 그 사람들은 차례차례 또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감염시킨다. 해롭고 나쁜 병원체가 아니라 힘과 목적의식을 기를 병원체를 퍼뜨린다.
두려움에 가득 찼을 때 조그만 불씨는 공황에 불을 붙일 수있다. 확실히 사기가 떨어지고 패배할 수 있다. 불씨가 쉽게 불을 붙일 수 있는 만큼 그 불씨를 땅에 비벼 쉽게 끌 수도 있다.
한 사람이 태세를 전환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그렇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우리를 지지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 행운은 이곳에 있다. 운명은 우리에게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것들은 금방 지친다. 기다리게 한다면 노할 것이다.
나중에 도박하기보다 지금 위험을 감수하는 게 낫다. 하지만나중에 도박하는 지금 위험을 감수하는 과감하게 진행하라.

세네카의 희곡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있다면 당신은 죽는법을 잊은 것이다." 기억하라.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강요할 수없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없을 정도로 불가능한 일은 없다.
그러므로 평생 용감하게 살아야 한다.
-톨스토이

신중하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살펴볼 여력이 없다. 조언을 구할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사람들이 우리에게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런 일을대비해서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상황이 요구하고,
이상이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으라. 의무를 다하라. 잘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앞으로 펼쳐질일을 알 수 없어도 어쨌든 영웅은 그렇게 한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들 어떤가? 산에 오르는 것을 비웃는 사람은 가보지 못한 땅에 첫발을 내딛는 의미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 사람이 틀렸다는것을 증명할 수 있다.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우리는 산을 오를 만큼 용감했다. 허무주의는 패자를 위한 것이다.

안네 프랑크에게는 소피아와 비슷한 나이의 미프 히스라는젊은 이웃 여성이 있었다. 히스는 몇 달 동안 위험을 무릅쓰고다락방에 유대인 가족을 숨겨주고 먹을 것을 줬다. 모두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났는지 알고 있다. 한 이웃이 배신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용감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집중해야 한다. 히스가 말했듯이 희망이 없는 싸움이라도 남을도울 용기를 품어야 한다. 히스는 수년 뒤에 이렇게 회고했다.
"뭐라도 하려는 시도가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 시도가 잘못될 수도 있지만, 가만히 있으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는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어둠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빛을 찾아야 한다. 빛이 되어야 한다.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서로빛이 되어줘야 한다.

마젤란의 호탕함과 대담함에 언제나 고유의 태도가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마젤란의 행동을 살펴보면, 대담하게 행동하는 것이 자기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건 정교하게 계획을 세우고 찬찬히 살펴본 다음 아주 조심스럽게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을 의미했다. 마젤란의 가장 대담한 계획은 질 좋은 강철처럼 불에 달군뒤 얼음으로 차갑게 굳힌 것과도 같았다.
5024841우리의 본보기는 머리가 뜨거운 사람이 아니라 차가운 피가흐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압박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을 ‘압박 속의 초연함’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주의와 조심은 용기의 반대말이 아니라 용기를 보완해 주는 말이다.
이 모든 것을 반드시 하나로 묶어야 한다. 무모하게 행동해서 후회하는 일은 종종 생긴다. 하지만 용기를 냈다고 후회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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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단걸 부끄러워하지 말라. 성벽에 돌격하는 군인처럼 당신은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다. 만약 다쳐서 일으켜 줄 전우가 필요하다면 어떡할 텐가? 도움을 청하는 게 뭐 어떻다는 건가?"
바로 그거다.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인가? 일어날 수 있게 그냥 손을 잡아달라는 거지, 안아 일으켜 주는 대로 거저 일어나려는 게 아니다. 조언을 구하고 있지, 거기서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다.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 싸울 수 있도록 단지 상처를 치료하는 것뿐이다. 동정이나 관심을 구하는 게 아니라다른 사람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이고있는 것뿐이다. 불공정한 이득을 취하려는 게 아니다. 현재의상황에서 필요한 도움을 구하고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려는 것뿐이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 안심, 호의, 용서,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괜찮다. 심리 상담이 필요한가?
받으러 가라! 다시 시작해야 하나? 괜찮다! 누군가의 어깨에기대야 하나? 당연히 괜찮다!
부탁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필요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용기가 있을 때 지금 당장 부탁해 보자.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우리는한배를 탔다. 우리는 동지다. 도움을 청하라. 단순히 용기 있는일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옳은 일이다.

세상은 잔인하고 냉혹한 곳이다. 적어도 45억 년 동안 망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다. 최상위포식자인 종 전체부터 헤라클레스, 헤밍웨이 자신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놀랍도록 튼튼하고 강력한 생물들이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어디에있는가? 사라졌다. 먼지가 됐다. 그 가운데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전에 불필요하게 목숨을 잃었다. 강함과 회복탄력성을 착각했기 때문이다.

"믿음을 품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자 냉소적이지 않은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법을 배울 것이다. 전쟁에서 평화롭게 일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없이 많은 다른사람처럼,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울 것이다." 우리 또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오, 강적에 맞서 싸우고 싶어라.
의연하게 적수와 맞서고 싶어라.
그들과 홀로 대적하고 싶어라.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고 싶어라.
갈등과 고문, 감금, 대중의 악평을 직접 대면하고 싶어라.
단두대에 오르고 싶어라.
총구를 겨누고 담담하게 앞으로 진격하고 싶어라.
정말이지 신이 되고 싶어라!
-월트 휘트먼, 환희의 노래(A Song of Joys)」

비겁함이 나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용기는 두려움을 딛고 올라가 행동으로 옮기는 결정이다. 부름에 응하는일, 두려움을 극복하고 운명을 쟁취하는 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 성공할지 확신이 서지않더라도 인내와 기개, 배짱과 투지를 가지고 임하라.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시간이 우리를 부르면 그 시간에 맞추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은 여기에 있다. 운명을 움켜쥐어 보자.

사람들의 비겁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는 영웅이 필요했다.
1920년대에 드골은 이렇게 썼다. "사태가 위중해지고 위험이곳곳에 도사리게 되자 해일은 강인한 사람들을 최전선으로 밀어붙였다."드골에게 닥친 사건들은 심각하고도 긴박해졌다.
드골은 부름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아가 자신과 함께할 사람이 있느냐고 손을 내밀었다. 몇몇은 도망갔고 몇몇은손을 맞잡았다.

용기는 엄청난 역경에 홀로 맞서 싸우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심지어 세상 전체와 맞서 싸우는 느낌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드골 뒤에 프랑스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뒤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이 있다. 그리고 열심히, 오랫동안, 끈질기게 싸울 때 모든 이가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시작은 개인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다음단계는 내가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생각하며 두려움을 없앨 수 있지만 다른 것으로 두려움을 대체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바로 ‘역량‘이다. 훈련과 과업, 그리고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두려움을 대체할 수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 일만 신경 쓰고 쉬운 길을 택하려고 한다. 미국의 농구선수 앨런 아이버슨이 말한 유명한 구절을 빌려서 이야기해 보겠다. "연습에 관한 얘기냐고요? 네, 연습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연습이기 때문이죠. 연습을 통해 마음속에서 행동을 하나하나 되짚어갑니다. 이 상황이나 그 상황에서 뭘 했는지 몸이 기억합니다. 강해지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강해집니다. 연습을 반복하면 계획했던 범위까지 해내게 됩니다. 어려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게 됩니다. 불편한 상황이 편해집니다. 급격하게 지치는 지점까지 의도적으로 인터벌트레이닝을 하면서 달리기선수로서 역치를 높입니다. 익숙해집니다. 눈을 가리고 소총을조립하고 중량 조끼를 입고 뛰게 됩니다. 천 번 연습한 뒤 압박받지 않는 상태에서 천 번 더 연습해 보면 뭘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게 됩니다." 노하우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용기를 내게하는 것은 준비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작은 차이가 얼마나 큰 변화를 낳는지를 보면 놀랄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무언가를 하는 연대장 한 명은 백 명의병사를 거느리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 빛난다"라고말했다. 대규모 전투에서 완승을 거둘 날을 기다리기보다는 소규모의 전투를 계속해서 이기는 게 더 낫다. 투쟁은 계속되고우리는 주어진 몫을 다한다.
시작하자.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에게 있는 것을 동원해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작은 행동이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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