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주체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로 선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정해준 한계를 받아들인다. 실현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다른사람들의 의견을 실제적인 진실로 간주한다.
두려움은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게 해서 자기 능력을발휘할 수조차 없도록 한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 일을 해낼 확률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시도조차 하지않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런 사고방식에서 탈피한 사람이 세상에 더 많이 필요하다.

저항일우리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변화를 일으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도 실제적 진실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비이성적인 사람이다. 이야기의결말을 정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역사를 쓸 기회가 주어진다.

지독하게 강렬한 이 순간이 멋지고 인상 깊지 않은가? 아니다. 애초부터 차라리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착한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총을 들이미는 일은 없어야 한다. 누구도 옳은 일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방어하는 일이 있어서는안 된다.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친절한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평정심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강렬함, 공격성, 무력시위라고 부르는 것들이 우리를 지켜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서는 안 된다. 움츠러들어서는 안 된다. 괴롭힘을 받아서는 안 된다. 아무것도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 순간에 되받아쳐야 한다. 강렬하게공격해야 한다. 주먹을 들어야 한다.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무릎 꿇게 될 것이다.

물론 일어나서 떠나는 방법은 이민 말고도 많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용기를 내서 직장을 그만두는 일일 수도 있고,
인생과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통째로 잃을지도 모를 프로젝트에 뛰어드는 일일 수도 있다. 자신이 속한 정당에서 나오거나수년간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이혼을 결심하는 것도해당한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고군분투했다. 우리는 용감하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냥 잘 풀리지 않았을 뿐이다.

도약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그 자질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높게 사야 한다. 그리고 영감을 받아야 한다. 희망이 없는 상황은 없고, 주체성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우리는 언제나 용감하게 짐을 싸서떠날 수 있어야 한다.

존 F. 케네디는 "용감한 사람이 있으면 위험천만한 장소도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자기가 맡은 일을 하는사람이,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동료경찰관들과 맞선 세르피코, 당대의 관료주의와 무관심에 도전하던 나이팅게일, 부커 T. 워싱턴을 백악관으로 초대해서 벌집을 건드린 루스벨트가 그 예다.

확률에 도전할 정도로 용감한 사람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어떻게 달라졌을까? 모든 기업가와 운동가, 일반인이 수치 예측에만 귀 기울인다면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까? 모든 의사가 환자 상태를 진단한 후 낙관적인 전망 없이 객관적 사실에만 집중한다면 어떤 환자도 살릴 수 없을 것이다. 후반전에 기운이 빠진 팀이 이번 경기는 완전히 졌다고 생각한다면 점수를 만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1940년의 모든 영국 공군 조종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이 영국에 가한 폭격및 공습과 관련한 통계를 봤다면, 즉 비행 시 사망할 확률이 10분의 1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저항할 수 있었을까?

위인들의 생애는 우리를 깨우친다.
우리도 장엄한 인생을 이룰 수 있다고또한 떠나가면서 우리 삶 뒤편으로세월의 모래톱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고.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르는 용감한 선조들이 이곳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보호해 주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이라면지금 여기서 무슨 일을 할지 스스로 떠올려 보라. 선조들의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니 더 용감해져라. 바로 지금,
여기, 이 결정적인 순간에 말이다.

모든 위대한 지도자는 이를 이해한다. 드골 또한 ‘대중 속으로 들어가기‘라고 부르던 것을 연습했다. 열광적인 프랑스 시민 무리에 뛰어들어 기개와 사랑으로 서로 마음을 적셨다. 맥아더의 보좌관들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경고했듯이 드골의 참모들도 지도자의 안전을 극도로 걱정했다. 하지만 드골은 너무나도 위험하므로 오히려 반드시 해야 한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워하면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을것이다. 또 이러한 대담함, 즉 모든 위험에 맞서 대의를 직접대변하려는 의지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들도 괜찮으리라는것을 보여준다. 지도자는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다. 전면에 나선다. 자기의 용기를 전염시키는 것이다.

용기의 비이성적인 측면보다 더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다.
바로 애타심과 이타주의다. 실제로 진화심리학자와 생물학자,
극작가도 마찬가지로 몇 년 동안 이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미국의 역사가 T.R. 페렌바흐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인간의 용맹함보다 설명하기 쉽다"라고 말했다.

자기보존의 논리는 강하다. 특히 이해관계를 모두 따져보는이들에게 자기보존의 논리는 더욱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렇기에 자기보호의 논리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려면 사람은 그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이상한 역설이 발생한다. 자기보호본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은용감하지 않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다. 때때로 가장 고귀한 형태의 용감함은 자신의 생명까지 버려야 하는 자살행위와도 같은 이타심을 요구한다. 그래서 자기보호본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관계를 따져보지 않고 남을 위해 희생할 수 있으므로 사실 가장 용감한 것이다.

진정한 영웅적 행위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할 수 없는 행위이기에 이성을뛰어넘어 행동하게 한다. 그래서 그렇게 영웅적 행위를 숭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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