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우리를 번개같이 움켜쥐고, 우리는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감정은 대개 짧은 시간 동안만 머무른다. 아주 가끔 분노나 기쁨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감정은 뜻밖에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 의도해서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차단할 수 없다. 감정이 우리를 습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전 문헌에서는 감정을 ‘정열leidenschat‘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 고전적인 감각에서 감정이란 우리가 수동적으로 ‘당하는erleiden‘ 것이기 때문이다.
간지러움, 배고픔, 고통 등의 감각을 느낄 때는 정서와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정서나 감정은 늘 존재하지만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언짢음이나 짜증과 같은 정서를 예전부터 감정과 구별했는데, 감정은 그 원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고, 해바라기를 보고 기뻐한다. 아무 원인도 없는데 질투하거나 화를 낼 수는 없다. 정서는 다르다. 하루 종일 우울하거나 스포츠를 하고 나서 활기를 느끼듯이 원인이 존재하지 않거나 지나간 다음에도 정서를 유지할 수있다.
두려움을 느끼면 우리는 동시에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이웃의 도베르만을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지이론에 따르면 감정은 생각의 한형태, 즉 평가 혹은 판단이다. 인지이론을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이때때로 감정은 느끼는 것과 관련이 있지만, 그 관련성은 우연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런데 누스바움은 한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그렇다면 우리의판단이 바뀌자마자 감정도 바뀌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미가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거미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잘못된 판단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지만 감정에서는그럴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이 무서운지 제대로 판단하기 전에 이미 두려운 감정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니 신중한 판단이 두려움의 본질은 아니다.
라자루스는 우리가 감정을통해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관찰했다. 우리가 인식을 통해 세계상을 구축하듯이, 감정은 우리에게 집단 내에서 함께살아갈 때, 그리고 야생에서 살아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알려준다. 라자루스는 이런 요소를 ‘핵심 주제‘라고 불렀다.
게다가 핵심 주제만으로도 감정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신체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신체론은 물론이고 인지이론에도 구멍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양쪽 이론 모두 절반 정도만옳은 걸까? 광범위한 토론에서는 진실이 정중앙에 놓인 경우보다반대 의견을 적절히 조합한 결과물인 경우가 훨씬 많다. 이것이 바로 혼합이론이 등장한 이유다. 혼합이론은 감정이 여러 요소의 다발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이 질문에 대해 미국의 철학자 제시 프린츠 Jesse Prinz는 자신이주장한 ‘체화된 평가‘ 이론에 따라 답을 내렸다. 프린츠에 따르면 감정은 신체 변화의 인식이고, 이를 통해 위험이나 상실과 같은 핵심주제를 더 확실하게 나타낸다. 감정의 신체 경험은 말하자면 표지판이다.
이런 접근법에서 보면 잘못된 판단이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만약 전혀 해롭지 않은 쥐를 보고 공포를 느끼거나, 반대로 대단히해로운 방사성 폐기물이 가득 담긴 컨테이너를 보고도 미동도 하지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에 대해 프린츠는 간단한 답변을내놓았다. 어떤 이론이든 이런 문제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실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모든 정지 표지판은 없어야 할 곳에 있거나 있어야 할 곳에 없을 수 있다. 혹은 우리가 표지판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 때때로 감정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거나, 우리가 감정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대부분의 경우 감정은 우리에게 주변 환경에 대한 믿음직스러운 평가를 전달한다.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은 기뻐하고, 그 감정은 만면의 웃음으로드러난다. 그 말은 기쁨이라는 감정은 선천적인 것이며, 다른 표정으로 나타나는 수많은 감정, 어쩌면 모든 감정이 타고났다는 뜻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감정이 인간의 진화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연구하기도 전에 우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감정을 알고 있다는점을 증명해야 했다. 지난 세기 가장 중요한 감정 연구자 중 한 명인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만Paul Ekman은 1960년대 말에 감정이보편적인 것인지 검증하고자 했다. 이것은 학계를 뒤흔든 도발이나다름없었는데, 당시에는 사회구성주의‘가 지배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감정은 각기 다른 전형적인 표정으로 드러나고, 똑같은 유발인자를 갖고 있다. 신경망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은 우리 뇌의 대뇌변연계 Limbic system‘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비둘기나 고양이, 쥐와 같은동물들도 똑같다. 요컨대 우리의 감정이 선천적이라는 뜻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약 5억 년 전에 살았던 초기 척추동물에게서도 발견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두려움과 다른 감정은 치열한 생존 싸움에서 어떤 기능을 할까?
감정은 우리가 일단 행동에 나서도록 만든다. 두려움, 분노, 혐오는직접적으로 기능한다. 이런 감정을 느끼면 우리는 도망치거나, 맞서싸우거나,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한다. 다른 감정은 간접적으로 기능한다. 수치나 슬픔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감정을 피하려고 애쓴다. 반면 기쁨은 아무리 느껴도 부족하기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즐거워지려고 노력한다.
직감을 믿는다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주변 환경에 대해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이 감정의 두 번째 기능이다. 감정은 정보 체계이자 조기 경보 체계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느끼고 이해하는 능력을 과한 말에 동학자들은 ‘마인드 리딩Mind reading‘, 즉 생각을 읽는다고 표현한다. 텔레파시가 아니라, 오로지 행동만으로 타인의 생각,감정, 의도 등을 알아내는 인간의 선천적인 재능이다. 이것을 ‘사회적 지능Socialintelligence‘이라고도 한다.
‘우리 몸에서 ‘영혼의 문‘ 역할을 하는 부위는 눈뿐만이 아니다. 얼굴 근육 또한 ‘영혼의 문‘이다. 얼굴 근육을 잘 해석하는 사람만이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감정 표현 방식을 발명한 에크만은 기본 감정만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람의 얼굴 근육으로 대략 1만 가지 이상의 각기 다른 표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추정했다. 이 모든 표정을 잘 알고 있다면 타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에크만은 동료연구진과 함께 수년에 걸쳐 모든 표정을 연구하고 체계화했으며 스스로 각각의 표정을 만드는 연습을 했다. 이렇게 습득한 지식으로그는 살아 있는 ‘거짓말 탐지기‘가 되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거나남을 속이려 들 때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는 여러 가지 표정을 짓는데, 훈련 없이는 이런 ‘미세표정‘을 구분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