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모래바람이 내 얼굴을 때린다. 그렇지만 아직 보고 놀라워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세상은 밝은 햇빛과 바람 속에서 생기에 넘치고 또 봄의 열기와 아침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은 이곳 사막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식물과 동물의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처럼 생명체들이 붐비지 않고 띄엄띄엄흩어져 있기 때문에 각각의 풀이나 관목, 나무 그리고 풀잎 하나하나까지도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유기체들은 생명이 없는 모래와 황량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대담하고, 용감하고, 생기있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향나무가 햇빛에 그 앙상한 자태를 드러내고 눈 앞에 서 있다. 너덜너덜한 뿌리가 바위를 움켜쥐고 있고, 텁수룩한 가지에는 청록색 열매들이 다닥다닥 달려 있다. 이 향나무는 암나무다. 이 늙은 할머니 나무의 나이는 300살쯤 되었을지도 모른다. 성장이 느린 향나무는 조건이 좋은 장소에서도 4.5~6m 이상의 높이로 자라는 경우가 드물다. 이 향나무는 아직도 열매를 맺고 활기에차 있지만 일부는 죽어 있다. 갈라진 둥치의 반쯤에서 나온 가지가말라죽어 발톱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이 가지는 잎도 없고 껍질도 벗겨진 데다 햇볕과 바람에 시달려 은색으로 변해 버렸다. 이 가지는 내가 너무 가까이 있지 않을 때 까치나 갈까마귀들이즐겨 앉는 장소다.

태양이 윙윙 소리를 내는 황색 바람을 뚫고 떠오르고 있다. 아침식사 시간이다. 트레일러로 들어간 나는 베이컨을 굽고 달걀을 부친다. 군침이 돈다. 바람에 날린 모래가 트레일러의 금속 벽에 부딪치고 창틀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고운 모래는 문 밑과 창밑에 쌓인다. 트레일러가 갑자기 몰아치는 돌풍에 흔들린다. 그래도나는 상관없다. 모래바람이 불든, 햇빛이 나든, 먹을 것이 있고 건강이 좋고, 땅이 나를 지탱해 주고 태양이 내 뒤에서 비춰 주기만 한다면 나는 만족한다.

도로 위에 하트 모양의 사슴 발자국이 또렷이 찍혀 있다. 그 사슴은 지금 어디 있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사슴들의 먹이는 충분할까,
궁금하다. 호저와 마찬가지로 사슴들도 인간이 자연에 간섭함으로써 희생자가 되고 있다. 코요테의 수가 충분치 않고 퓨마가 거의 멸종되었기 때문에 사슴이 토끼처럼 수가 불어나서 먹이란 먹이는 모조리 먹어치우고 있다. 이렇게 되면 매년 많은 사슴들이 천천히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다. 사슴사냥꾼들이 남아도는 ‘잉여‘사슴들을 수확한다면서 매년 가을 솔트레이크와 캘리포니아에서 수천 명씩 몰려오지만, 그들은 그 일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오두막 뒤로 황량한 모리슨 언덕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언덕은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흙과 이판암 그리고 부서진 바위로이루어져 있어 음침해 보인다. 앞에는 드라이 메사의 암벽과 솔트크리크 협곡이 있다. 이곳은 움푹 파인 덥고 황량한 장소이다. 닫혀있어 조용하긴 하지만 시야가 가려 답답하다. 징기스칸이 인도에 대해 했던 말이 여기 해당될 것 같다. "물은 나쁘고 더위가 사람들을병들게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곳에서 외롭게 죽은 사나이의 혼백이 떠도는 으스스한 장소이다.

바람이 여전히 불고 있고, 작은 회색 새들이 공중에 뿌린 색종이조각들처럼 하늘을 날고 있다. 아직도 기온이 떨어지고 있는 걸 보니 아마 눈이 오려나 보다. 몇 시간째 순찰을 돌았으니 이제 나의 안식처인 따뜻한 트레일러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오늘 아치스 내셔널모뉴먼트 안에서 사람이라곤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암석은 그 이름들도 아름답다. 옥수, 홍옥수, 벽옥, 녹옥수, 마노,
줄무늬마노와 붉은줄마노, 은미정질 석영, 규암, 부싯돌, 처트, 금록석, 리티아휘석, 석류석, 지르콘, 공작석, 흑요석, 터키옥, 방해석, 장석, 각섬석, 홍석류석, 전기석, 반암, 장석질사암, 금홍석. 그리고 희귀금속류인 리튬, 코발트, 베릴륨, 수은, 비소, 몰리브덴, 티타늄, 바륨도 사랑스럽다. 현무암, 화강암, 편마암, 석회암, 사암, 대리석, 점판암, 반려암, 이판암 같은 기본적인 암석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암석들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발견된다. 오래 자세히 관찰하기만 하면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이란 유타주 남동부를 말한다. 이곳은협곡지대, 나의 세상이다.

아마추어 탐광자로서 역시 운이 좋았던 사람으로 버넌 픽이 있다.
중서부 지방 어딘가에서 흘러온 그는 한 번에 몇 주일씩 더티데빌강 위쪽의 거대한 바위들 사이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협곡을 누비곤 했다. 독성이 있는 강물에 중독되기도 했지만 살아남아오지에 깊이 숨겨져 있는 우라늄을 발견하고는 그 광산에 ‘숨겨진영광이라는 시적인 이름을 붙였다.

그는 아마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이 밀려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울림 같기도 하고, 매우긴 터널의 반대쪽 끝으로 들어오는 기찻소리 같았을 것이다. 그러다서서히 진동이 강해지더니 마침내 협곡이 둔하고 무거운 포효소리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나 밀려오는 물 자체는 아직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피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반쯤 의식을 잃은 빌리 조는 집에 있는 꿈을 꾸었다.

이그는 처음 며칠 동안은 나무둥치에서 내려와 물속에서 자기 몸을식히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이 점점 빠지면서 그는 물에서 나무둥치 위로 다시 자기 몸을 끌어올리기가 얼마나 힘든지알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그런 노력을 포기하고 나무둥치 위에 머물면서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받았다. 밤이 오면그 고통에서 벗어나서 얼마간의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으나 다시해가 뜨면 황금색 태양이 그의 타버린 몸뚱이를 더욱 깊이 태웠고,
그를 더욱 깊은 꿈속으로 밀어넣었다. 마침내 그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고통을 넘어서 더 깊은 열반의 상태로 들어갔다.

사막의 6월. 태양이 우주의 궤도에서 맹렬하고 성스러운 빛으로포효한다. 마음속에 멋진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산맥의 눈은수목한계선까지 물러났다. 투쿠니키바츠와 다른 봉우리들은 그 측면에 부드러운 봄의 녹색을 띠고 있고 포플러나무에는 잎이 돋아나고 있다. 초원과 숲으로 들어가는 도로들이 다시 열리고 그 위에서가축을 방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모아브의 모든 목동들(그리고 일부 허가가 없는 목동들)이 그들의 가축을 사막 밖으로 이동시켜 국유림속으로 몰아넣는다. 가축들은 9월이 와서 눈이 다시 내릴 때까지 그국유림 안에서 머물 것이다.

이런 장점과 약점들을 지닌 가련한 비비아노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맥주를 두세 잔 마시면 그 문제가 완연하게드러난다. 그는 편견에 오염되어 있다. 오염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그 자신이 편견의 희생자다. 피부가 까무잡잡한데다가 스페인어 악센트가 있어서 자주 멕시코인으로 오인받는 그는 멕시코인을 경멸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심하게 분개한다. 그는 인디언들도 경멸한다.
심지어 그 자신의 유산까지도 경멸하는 것 같다. 언젠가 스스로를
‘바보 같은 바스크인‘이라고 지칭한 적도 있다. 술이 취하면 그는 은연중에 미국을 소유하고 주무르고 있는 창백한 얼굴의 인종들 속에끼어들었으면 하는 소망을 드러낸다.

로이와 비비아노가 말을 멈추고 로프를 좀 늦추어 주었다. 나는단단한 땅 위에서 벌벌 떨며 서 있는 암소의 목에서 로프를 풀었다.
그놈의 눈알은 두 개의 양파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설태로 덮인자줏빛 혀가 입의 한 옆에 썩은 고깃덩어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고깃간 밖에서 내가 본 가장 긴 혀였다.

로이 노인은 어떻게 됐냐고요?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소? 그는 당신이 떠나고 2년 후에 목장을 팔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애리조나로 내려가서 세도나 부근에 인디언 보석가게를 냈지요. 그는 지금세상을 떠나고 없어요. 가게 벽에 그림을 걸다가 심장발작이 일어났다는군요. 그때 그는 의자에 올라서 있었지요.

외로울 때가 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고독을 즐기는 사람도 외로움을 느끼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 생활이감옥살이처럼 지겨워지고 머릿속이 뜨거운 한낮의 트레일러 속처그럼 답답해져서 견딜 수 없게 된다.

‘마음의 고독한 감금‘에 관한 내 이론은 유아론(唯我論, Solipsism, 실재하는 것은 오직 자아와 그 의식뿐이며 다른 사물은 자아의 관념에 불과하다는이론)에 빠진 망상일지도 모른다. 전문적인 철학자들이 내놓은 다른우스꽝스런 개념들이나 마찬가지로, 도서관의 책더미와 연기 가득한 다방(뇌에 정말 나쁘다) 그리고 말이 난무하는 세미나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결과로 나온 허황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헛소리를 늘어놓는 유아론자나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자를 조용히 시키고 싶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그의 머리를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이다. 그가 돌을 피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이다.

겁에 질린 토끼가 그 소리를 듣고 벌벌 떤다. ‘부엉이는 어디 있지?
아마 다음 덤불, 다음 바위가 여기보다 더 좋은 은신처가 될지도 몰라 토끼는 망설인다. 수리부엉이가 다시 한번 울자 토끼는 마침내피신처에서 뛰어나와 더 좋은 장소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달려감으로써 자기 위치를 노출시키고 만다. 부엉이가 나방이처럼 소리없이토끼를 덮친다.

공포가 토끼를 부엉이에게 노출시킨다. 공포가 어려운 일을 대신해서 부엉이의 일을 덜어 준다. 평생 공포에 시달려온 토끼가 그 마지막 순간에 일종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부엉이에게 먹힌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수리부엉이가 다시 운다. 1분에 한두 차례 꼴로 운다. 별로 조급한 기색이 없는 울음이다. 저녁거리가 제발로 찾아올 테니까. 박쥐몇 마리가 원두막 근처를 푸드덕 날면서 재깍재깍 소리를 조그맣게낸다. 음파탐지기를 작동시키고 있다. 오늘밤에는 달이 없다. 별자리들이 하나하나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갈자리, 카시오페이아, 용자리, 궁수자리, 큰곰자리・・・ 외로운 금성이 해가 넘어간 서쪽 하늘의희미한 황혼 위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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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사막의 고독』은 숨겨진 뜻이나 비밀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소 가운데 하나인 아치스에서 보낸 길고 달콤했던 시절에 대한 평범하고 단순한 서술일 뿐이다. 이 책이 단순한 외형, 사물의 표면만을 다룰 뿐, 존재의 진정한 실체를 형성하고 있는 통일된 관계의 본질을 밝혀내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나는 표면과 외형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나는 ‘근저에 숨어 있는 실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것을 접한 경험도 없다.

나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을 위해 노력했다. 단순한 사실에 일종의 시(詩), 심지어는 진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사막은 바다만큼이나 깊고 복잡하고 다양하며 광활한 세계다. 대양과 같은 세계다. 무한한 사실들 속에서, 언어는 단순한 사실을 포착하기 위해 강력하고도 느슨한 그물을 만든다. 만약 내가 향나무에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향나무가 아니라 아치스 내셔널 모뉴먼트의 오래된 입구 근처 벌거벗은 사암 바위틈에서 자라는 하나의 특별한 향나무 말이다. 그때내가 시도한 것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어부가 그물로 바다를 끌어올리는 것처럼, 사막을 책에 담을 수는 없기에 나는 사막이 소재가아닌 매개체로서 등장하는 말의 세계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 그러니까 모방이 아니라 환기가 목표였다.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전에 잠에서 깼다. 나는 머리를 슬리핑백 밖으로 내밀고 성에가 낀 창문을 통해 안개에 덮인 뿌연 바깥 경치를 내다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신비스러운 풍경이었다.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 곧 떠오르리라는 기미는 역력했다. 연보라색 구름들이 함대처럼 연녹색의 새벽하늘을 가로지르고있었다.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구름장의 아랫부분은 불타는 황금색이었다. 남동쪽으로 32km 떨어진 곳에 시에라 라살의 봉우리들이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해발 3,600m에서 3,900m에 이르는 이 봉우리들은 모두 눈으로 덮여 있었고, 아침햇살을 받아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차가운 공기는 건조하며 맑았다. 어젯밤 폭풍우의 잔해인 마지막 안개가 유령처럼 물러나면서 바람과 햇빛 앞에서 점점스러져 가고 있었다.

그곳에 서서 그 괴상하고 기이한 이국적인 바위와 구름과 하늘과공간의 장엄한 경관을 바라보노라니 우스꽝스러운 욕심과 소유욕이 나를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소유하고 싶었다. 또한 한 남자가 한 아름다운 여인을 욕망하듯이 그 모든 경치를 깊고, 완벽하고, 친밀하게 포옹하고 싶었다. 정신 나간 소망일까?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와 소유권을 다툴 사람이나 그 무엇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긴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 마리의 갈까마귀들이 서로를 향해서 또 새벽을 향해서 깍깍거리며 밸런스드 록 근처,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놈들도 나처럼 태양이 다시 돌아온 것을 기뻐하고 있다고.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먼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 비슷한 존재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보다는 이 지구에 사는 새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더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까마귀들은 황금빛 하늘을 배경으로 검푸른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목쉰 소리로 울고 있다.
어깨 너머로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베이컨이 튀겨지는 냄새가난다.

향나무가 타는 냄새보다 더 향기로운 냄새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단테의 천국에서 나는 냄새도 이보다 더 향기롭지는 못할 것 같다. 비 온 후의 산쑥 향기 같은 향나무 연기 냄새를 한 모금 깊이 들이마시니 마술적인 카타르시스 효과가 난다.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럽, 미국 서부의 때 묻지 않은 낯선 풍경을 감상하는 것처럼. 아무쪼록 이 불이 오래 타기를 빌어 본다.

손전등을 사용하면 또 다른 불리한 점이 있다. 많은 다른 기계장치들처럼 그것은 인간을 주위의 세계와 격리시키는 경향이 있다. 손전등을 켜면 내 눈은 그 빛에 적응되어 그것이 내 앞에 만드는 조그만 빛의 연못만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주위와 격리된다. 손전등을 주머니 속에 넣으면 나는 내가 걷고 있는 주위 환경의 일부로남는다. 내 시각은 제한되지만 분명한 경계선을 갖지 않는다.

나는 기다린다. 이제 밤이 다시 돌아오고 장엄한 정적이 나를 포옹한다. 별이 다시 보이고 별빛의 세계가 다시 돌아온다.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인간과 32km 이상 떨어져 있다. 그러나 나는 외로움 대신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사랑스러움과 조용한 환희 같은 것을 느낀다.

사월의 아침은 청명하고, 맑고, 평온하다. 오후가 되어서야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깔때기 모양의 회오리바람이 빙글빙글 돌면서 먼지와 모래를 불어 올린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사막에 미친 사람의 고함소리가 일어나고, 하늘과 태양이 먼지와 모래가 섞인 노란 구름 뒤로 사라져 버린다. 새들도 바람에 날리고 작년에 떨어진 오크나무 잎새들, 꽃가루, 메뚜기의 시체, 향나무 껍데기도 바람에 날린다.

오후에 고약한 바람이 불 것임을 알기 때문에 오전은 더 달콤하다. 나는 아침 허드렛일을 시작하기 전에 뜨거운 커피를 한 컵 손에들고 맨발로 맨땅을 디딘 채 문턱에 앉아서 해돋이를 바라보곤 한다. 공기는 아직 차지만 트레일러 안의 부탄 히터 덕분에 내 등은 따뜻하고, 떠오르는 태양이 내 앞가슴도 덥혀 준다. 또 커피는 내 내장까지 덥혀 준다. 이때가 하루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밖에도아름다운 시간은 많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지만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시간도 달라진다. 한여름에 가장 감미로운시간은 오후의 끔찍한 열기가 사그라진 다음인 해가 지는 시간에 시작된다. 그러나 4월인 지금은 그 반대다. 해돋이와 함께 감미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겨울이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이맘때쯤 돌아오는 새들도 나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다. 어치들이 이 나무에서저 나무로 떼지어 날아다니면서 조잘거린다. 몇 마리의 커다란 갈까마귀가 하늘을 선회하며 꺼억꺼억 울어 댄다. 놈들은 가끔 그 큰 날개를 퍼덕거리며 생쥐를 찾는다. 가끔 절벽 위 어디선가에서 굴뚝새가 또렷한 목소리로 울어 댄다. 플루트의 저음 같은 그 울음소리는아마 새로 마련한 둥지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리일 것이다. 역시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산비둘기의 처량한 울음소리도 들린다.
그 울음소리는 잃어버린 짝을 찾으려는 간절한 부름인 것 같다.

내가 이 같은 인간중심의 논리를 펴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어쩌면 타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갖는 중요한 요소를 내 주위의 뱀이나 새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에게 이로운 일을 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이 기르는 개 이외의 다른 동물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고 단순한 합리주의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모슬렘이 여자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생각이다. 인간이 길들이지 않은 다른 많은 동물들도 우리가 모르는 정서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요테가 달을 보고 울부짖는 것은무슨 이유 때문이겠는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려는 듯한 돌고래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내 눈을 향해 곧장 달려올 때그 두 마리 인디고이 품었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때로는 속으로 절반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우리는 모든 인간은 형제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 말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단세포동물이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는 말은 어떻게생각해야 할까? 그 말 역시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스럽고 괴로울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든 지구상의 생물은 일가친척‘이라는 소식을 퍼뜨려야 한다.

메이데이(mayday, 5월 1일 노동절)다.
금빛 줄무늬를 드리운 진홍색 아침햇살이 밸런스드 록과 아치들과 구멍 뚫린 바위들 너머 그리고 콜로라도의 그랜드 메사 너머에서 빛났다. 새벽 바람이 시에라 라살 봉우리들의 남은 눈을 녹이고있다. 모아브 일대에서 가장 큰 산인 투쿠니키바츠(Tukuhnikivats)도이 바람이 멎지 않는다면, 곧 그 화강암 몸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30km쯤 떨어진 곳에서 바람에 날리는 눈이 푸른 스카프처럼 보인다. 이런 날씨에 해발 3,900m가 넘는다는 그곳에 가 있기를 원하는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절벽장미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실용적인 식물이다. 이 무렵에는꽃 때문에 숨겨져 있지만, 그 잎새들은 작고 단단하며 수액으로 덮여 있어 혀에 닿으면 쓰다(그래서 키니네나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잎새들은 사슴의 먹이로 인기가 높다. 다른 먹을 만한 것이별로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사슴덤불이란 이름도 갖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옛날에 이 나무의 껍질로 샌들이나 매트, 밧줄을 만들었으며 호인디언의 치료사들은 오늘날에도 이 나무의 잎새를 이겨서 최토제(구토를 일으키는 약)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유카는 그 무시무시한 방어 수단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그 방어수단 때문에 어디에서나 특이해 보이고 또 아름답다. 이 식물은 뉴멕시코 남부의 고원 초지, 그랜드캐니언의 가장자리와 내부, 이곳아치스 공원 일대에 분포하고 있고 유타주의 붉은 모래 지대에서도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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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해안도로는 깨끗하게 잘 포장되어 있었으며 왼쪽으로새파란 바다와 제주 본섬의 산방산과 한라산까지 보여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탁 트인 바다 풍경을 바라보고 걷는다면 킥보드까지도 필요 없고, 개미가 기어가는 속도로 걸어다녀도 하나도 답답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여름 더위가 채가시지 않은 9월의 뜨거운 뙤약볕이 오른쪽 귀와 어깨에내리꽂혀도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 청량하게만 느껴졌다.

상주 작가들의 자기소개가 모두 끝난 후, 제주문화재단 이사장님과 팀장님, 스태프분들의 환영 인사가 이어졌다. 이들 사이에서 3개월간 살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치 나역시 대단한 예술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뿌듯한 마음을 한가득 품은 채로 방으로 돌아왔다. (나답지 않게) 청소기로 바닥을 한번 쓴 뒤, 한없이 나답게) 침대에 누웠다. 15킬로그램의 짐을 끌고 서울의 집에서 김포공항, 제주공항을 거쳐 유람선을 타고 가파도까지 오는 여정이 만만치 않았는지 온몸이 무거웠다. 세수를 하고 자야 할 텐데 생각하는 순간, 절로 잠이 쏟아졌다. 오랜만에 꿈 없이잔 깊은 잠이었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하는두려움도 잠시, 나는 이내 다시 가파도의 파도 소리와 따뜻한 햇살이 주는 평화로움에 빠져들었다. 매일 밤 틀어놨던ASMR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면서도 평온한 파도 소리가 나의 모든 감각기관을 파고들었다. 창문을활짝 여니 9월임에도 더운 바닷바람이 옆구리에 감돌았다.
나는 잠옷으로 입고 있던 민소매 티와 반바지만을 걸친 채레지던시 밖으로 나섰다.

‘해는 벌써 중천에 떠 있었고 지하에 지어진 레지던시건물에는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짧게 낮잠을자기로 마음먹었다. 자고 일어나 곧바로 나머지 원고를 고치리라 다짐하며.

가파도에 와서 나는 풍경 사진을 찍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아침 동이 트는 아침의 섬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막 피기 시작한 코스모스 꽃밭과 파도의 장관이 너무 절경이라, 도저히 그 아름다움을 기록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을 때의 내가 바깥 풍경에 전혀관심이 없고 언제나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고 사는 사람이었던 걸 떠올려보면 놀라운 변화였다.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이미 호텔 주차장에 차를세워놓았으니 얼른 내려오라고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바지와 후드 집업을 챙겨 입었다. 무거웠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친구들이 창문을 내린 채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있었다. 스무 살 때부터 봐왔던 내가 잘 아는 그 얼굴들이었다. 대책 없이 긍정적이면서도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던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차에 탔다.

"어! 반딧불이다."
숏컷의 여성분이 유리잔을 든 채 옥상을 누비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라 괜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가 곧 빛나는 벌레를 컵 속에 가두었다. 야광별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반딧불이가 컵 속을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는 게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반딧불이의 모습이었다. 김연수 작가님도 아주 오랜만에 반딧불이를 본다며어릴 적에 심심치 않게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벌레였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나는 줄리아에게 반딧불이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줄리아는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김연수 작가님은 여느 때처럼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셨다. 줄리아의 옆에 앉아 있던 숏컷 여성분이 자신을 이슬기라고 소개하며 나의 나이를 여쭈어보셨고 나는 (88년생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슬기 작가님의 성함과 인상이뭔가 익숙했다. 줄리아와 불어로 유려하게 대화를 나누는이슬기 작가님을 보다가 나는 문뜩 떠올리고 말았다.

내가 묘사한 작품의 정확히 반대편 전시실에 위치한,
정갈하고 단정했던 작품이 바로 떠올랐다. 엄청난 결례를저지른 것을 깨달은 나는 거듭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슬기 작가님은 괜찮다고, 한꺼번에 네 명이나 전시를 해서 충분히 헷갈릴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뒤통수에 넘실댔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들고 온 제주맥주를 원샷했다. 이슬기작가님께서는 부끄러워하는 나를 배려해서인지 계속 말을걸어주셨다

가파도 사람들은 태풍이 오면 일제히 짐을 싸서 섬 밖으로 나간다. 배가 뜨지 않으면 관광객들이 오지 않고 어업도 할 수 없어 섬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 중 상당수가 서귀포에 별장(?)을 두고 있어 태풍이 올때마다 그곳에 머무른다고 한다. 더불어 가파도의 필수 가전은 ‘노래방 기계‘라고 했다. 거의 모든 가구에 노래방 기계가 보급되어 있으며, 어업이 끝나고 휴농기가 되면 서로의 집에 모여 노래를 부르는 게 유일한 낙이란다. 코로나가오기 전에는 마을회관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윷놀이를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가파도에 묵는 마지막 주, 나는 매일 산책을 했다.
며칠 만에 공기의 냄새가 바뀌어 있었다. 섬의 식생도바뀌었다. 모르는 꽃과 빛깔이 생겨났다. 억새가 흩날리는방향으로 바람이 불었다. 남쪽 섬이라 가을 겨울이 별로 춥지 않을 줄 알았는데, 바람이 제법 찼다. 오히려 서울보다더 추운 것 같기도 해서 신기했다.
많이 쌀쌀하지만 걷기에 좋은 온도였다. 섬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마디도 안 하고 계속 길을 걸었다. 바다만보고 있어도, 사방을 바라보기만 해도 온갖 감정이 피어올랐다. 아쉽고도 후련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몇 번의 물이 더 마르고 또 차올라야 내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가파도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자유와 휴식의 동의어가되어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세상 어딘가에 이런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가파도를 떠나야 하지만, 때때로 숨이 막히게 힘든일을 마주할 때마다 소란하고도 고독한 이 공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나는 이곳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그 밤, 여수 밤바다는 우리가 꿈꾼 풍경과는 사뭇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졌음에, 또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오랜만에 감사했다.

그렇게 아련한 첫째 날 밤이 지나고, 나는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거실로 나가보니 조하나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부지런히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하나는 전날 형제상회에서 시켜 먹고 남은 밥과 문어, 삼겹살과 날치알을 소스로 제공된 참기름에볶아 그럴싸한 볶음밥을 만들어놓았다. 그것은 곡기를 끊은수도자마저도 돌아서게 만들 만큼 훌륭한 맛이었다(과장을조금 보태자면 여수에서 먹은 것들 중 가장 맛있었다). 먹다 남은재료로 이토록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M과김종미, 나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역시나 전주 출신조하나의 요리 공력은 어디 가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내 출출해진 우리는 바다김밥에서 사 온 김밥을 집어 먹기 시작했는데 그중 한 종류가 상상 이상으로 매웠다.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우리지만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해 타는 혀를 부여잡고 꾸역꾸역 김밥을 다 먹었다.
남해까지 가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산을 둘러만들어진 구불구불한 도로에 숙취를 앓고 있던 우리는 멀미를 호소하며 연신 창문을 열었다 닫고는 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만, 이런찰나의 노력들이 모여 결국 우리 인생을 구성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는 지금이 순간의 반짝임이 곧 인생이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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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당일 광주 송정역에 내린 나는 까만 세단 옆에기대서 있는 윤주성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본게 윤주성의 결혼식 날이니(심지어 나는 결혼식 사회를 보기까지 했다) 족히 3년 만에 보는 것이었음에도 윤주성은 전혀달라지지 않았다. 평균보다 조금 작은 키에 구부정한 자세,
눈보다 턱이 먼저 마중 나오는, 내가 아는 윤주성의 모습그대로였다.

,
서로의 삶이 이토록 달라졌다는 사실이 새삼 묘하게느껴졌다. 한때 우리의 삶은 같다고 봐도 좋을 만큼 완벽히 겹쳐 있었으니까.

겉보기에 윤주성은 멀쩡해 보였다. 언제나처럼 걸걸한목소리로 자주 웃었고, 쾌활하게 학교를 오갔으며, 때문에크게 낙담한 것 같지 않았으나 나는 윤주성이 매우 절망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낙원일 리 없었다. 한 학기라는 시간은 이상의 공간이라고 여겼던 ‘서울‘이 실은 내가 살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대학 생활 역시 아름답지 않았다. 당시 부쩍 어려워진 가정 형편 탓에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곧바로 등교를 했으며, 수업이 끝나면 분당이나 평촌, 강남의 아파트단지에 과외를 하러갔다. 유럽산 그릇이 장식되어 있고 좋은 향기가 나는 과외 학생의집에서 나와 쿰쿰한 냄새가 나고 벽지가 울어 있는 나의반지하 방에 도착하면 밤늦은 시간이었다. 지면보다 낮은곳에 위치한 반지하 창문을 열면 가로등 불빛이 내 방으로새어 들어왔다.

나는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고 충동적으로 대학을 그만뒀다. 그리고 아빠가 등록금 내라고 힘들게 마련해주신돈을 몰래 빼돌렸다. 알바에 과외를 하며번쌈짓돈을 모아 미국행 티켓을 샀다. 아무런 대책도 그럴듯한 계획도 없었다. 10대의 내가 서울이라는 낙원을 꿈꾸었듯, 스무 살의나는 뉴욕이라는 꿈의 도시를 그저 낙원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순전히 윤주성만을 믿은 채 말이다.

트리는 푸른 색조의전구가 둘러져 있었으며 자본주의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듯 온갖 휘황찬란한 오너먼트가 달려 있었다. 우리는돈이 없어 아이스링크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대신 인파를뚫고 들어가 살면서 본 가장 큰 트리 앞에서 캐논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근처에 관광객이 너무 많아 내 얼굴이 어딨는지 분간하기도 힘든 사진이 찍혔다. 우리는 카메라 화면에 뜬 사진을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힘겹게 닿은 몬토크의 바닷가.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눈은 한 톨도 내리지 않았다.
그저 메마른 목초지에 해변이 펼쳐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아연실색할 만큼 파란 바다 앞에서, 세상의 온갖 빛이 다 비추고 있는 것 같은 선명한 빛깔 앞에서 스무 해를살며 앓아온 모든 시름이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같은 추위를 느꼈다.) 윤주성 역시 나와 마찬가지였는지 이전에 본 적 없던 환희에 찬 표정으로 ‘좋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해 한국의 정권이 교체되었고, 그 유명한 월스트리트발 세계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층간 소음 때문에 자주 우리 방문을 두드렸던 컬럼비아대학 경제학과에 다니던 남자는 대공황에 맞먹을 만큼 세계경제가 휘청일 거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1달러당 950원이었던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았다. 결국, 나와 윤주성은 강제로 한국에 송환되었다.

연병장에 서서 인생이 다 끝난 것처럼 걸어가고 있는내게 손을 흔들어주던 윤주성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고개를 돌리면 언제고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그장난기 어린 얼굴을 말이다

우리는 각자 인생 주기에 맞춰 몇 번 마주치고 가끔은 절망하기도 하며 살아왔다. 윤주성은 대학을 졸업한뒤 서울과 경기도, 대구 등지의 여러 병원에서 일했고, 우리는 1년에 한두 번씩 만나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만날 때마다 매번 예열도 없이 바로 전투 수다에 돌입해, 어제 만난 것 같은 사이란 게 어떤 것인지 몸소 증명하고는 했다.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만 있으면 되는 삶.
그것이 스무 살의 내가 간절히 꿈꾸던 삶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꿈꿔왔던 미래에 당도해 있다는 것을,
윤주성의 말로 인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감정에 가슴이 울렁였다. 마치 오래전의 내가 오늘의 내게작고 반짝이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놓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주성은 발톱을 깎아줄 고양이들과중성화를 시킬 강아지들이 수십 마리라며 퇴근 시간이 오기 전에 병원에 들러야 한다고 부지런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떡갈비 중 가장 무거운 한 덩이를 내게 떠안기듯 건네고는, 홀연히 차를 몰고 사라졌다. 나는 고소한 떡갈비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봉지를 쥔 채 강연장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광주(光州)는 빛이 고이는 마을이라는 의미다.
빛이 고이는 마을이라. 그 말을 읽는 순간 처음으로 광주라는 도시가 윤주성과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터널 선샤인>을 좋아하는 사람, 때때로 마른 입술에 촉촉함을 더해주던 사람, 추억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 그래서 잊고 있던 사소한 추억까지 간직해 반짝이는 모습 그대로 상대에게 전해주는 사람. 그러니까 언제나 밝은 빛을 뿜어내는 사람. 윤주성과 내가 보내온 그 찬란한 시절이 낯선도시에 찰방찰방 고여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을 멈추라니, 의사 선생님의 말이 마치 모르는 외국어처럼 들렸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못 하는 게 있다면생각을 멈추는 일일 거다. 나는 침대에 그저 가만히 누워있기를 곧잘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동안에도 무언가를 계속 생각한다. 대개는 오늘 저녁, 내일, 모레, 먼 미래에 내가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 하다못해 저녁 메뉴라도 고민한다. 그런 내게 생각을 멈추고 완벽하게 휴식하라는 것은 마치 주식투자로 만 원을 100억으로 만들라는 것만큼이나아득하고 말도 안 되는 과제처럼 느껴졌다.

제주도에서도 배를 타고 내려가야 하는, 인구 300명이채 넘지 않는 외딴섬. 오후 4시면 배가 끊기고, 24시간 편의점도 마땅한 배달 음식도 없고, 노래방도, 밤늦게 운영하는 술집도 없는 그곳만큼 휴식에 적절한 곳이 있을까?

이후 보름가량의 기다림 끝에 가파도 레지던시로부터소식이 날아들었다. 다음 계절부터 레지던시에 기거할 수있다는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두 달 뒤, 레지던시가 수리 및보수에 들어가 내년으로 입주 기간이 변경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쉬웠지만 그럴 수도 있지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의 다른 모든 계획처럼 출간 일정도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늘어난 집필 기간과 출판사의 사정에의해 출간 일정은 한도 끝도 없이 밀려나버렸다.

못 가봤어, 못 가봤다고! 도대체 몇 번을 말해?" 나는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창밖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거짓말처럼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고, 이 모든 풍경이 왠지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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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K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나로서는....… 역술인이 영화 <트루먼 쇼>처럼 내 삶에 CCTV를달아놓은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너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가면,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병나서 간다고 하신다! 쉬어! 좀 쉬라고!"
K는 더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써놓고 보니 (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

영국에서의 첫날 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최저가의 방을 예약한 우리는 무려 30명이 한방을 쓰는 도미토리에서 잤다. 완벽히 불협화음인 오케스트라의 협주를듣는 것처럼 전 세계 사람들의 다채로운 코골이를 들으며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잠귀가몹시 밝고 예민한 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쯤 되니 없던 괴물이라도 만들어 호수에 풀어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목이 길쭉한 괴물 모양의 기념품을사는데 Y와 나는 꿋꿋이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빈손으로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 다녀온 이후 나의 통증은 씻은 듯이 나았다. 계산해보니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닷새 만에 처음으로 큰일을 본 것이었다. 평생 변비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내가 유럽에 와서야 ‘가스가 찬다는 것‘의 감각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생경한 감각을 맹장염으로오인한 거였다. 나는 Y에게 달려가 나의 무사함을 알렸고,
Y는 한숨을 쉬며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밝고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행자보험 안 들길 잘했다!?

나는 거의 졸도할 정도로 놀랐다. Y가 원체 성실하고꾸준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문자그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해왔을 줄이야. 그것은 성실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거의 초인에 다다른 그 경지에 나는 Y를 조금은 존경하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은 그 후로도 온갖 해프닝으로 점철되었다. 유럽 5개국을 오가는 힘든 여정에, 한 달 동안 200만원도 쓰지 않았을 정도로 극도로 절약한 고생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다만 많이 웃었다. 후에 생각해보면 초저가의 예산에 맞춰 힘겹게 계획을 짜고 통역을 하며 나를 끌고 다닌 Y가 아무것도 하지않고 졸졸 따라다니는 나를 견뎌준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Y의 말이 진실인지, 정말 열몇 살의 그때부터 내가 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었던 내 삶을, 궤적을 누군가 믿고 지켜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이제는 그 옛날 강남역 맥도날드 때처럼 서로 마주 보고 있지 않으니, 나는 마음껏 울 수 있었다

일ㄹ
송지현의 다른 다짐들처럼 공허하게 흩어져버릴 헛소린 줄 알았는데, 지현은 정말 그길로 강원도 동해로 가 살기 시작했다(그리고 그곳에서도 아주 적은 양의 소설을 쓰고 아주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나는 꿔준 돈보다 턱없이싼 아파트를 받아 온 지현의 아버지와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과대평가한 송지현 덕분에 여름마다 동해로 휴가를 갈수 있었으며, 때문에 일생의 대부분을 경기도에서 살아온송지현을 강원의 딸로 여기게 되었다(하나 송지현은 약 2년여의 강원도 생활을 뒤로하고 빈손으로 다시 경기도의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ㄷ그러나 우리의 꽃가마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난관에부딪혔다. 봉천동, 상가 앞의 골목이 너무 좁아 초보 운전인 내가 운전하기에 몹시 까다로웠다. 나는 개미가 기어가는 속도로 차를 몰며 음식물 쓰레기통을 치지 않기 위해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간신히 건물 앞에 당도해비상등을 켜고 차를 주차해놓았는데, 송지현에게서 문자가왔다. 소설 합평이 길어져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정도 수업이 늦게 끝날 것 같다고. 나는 좁은 골목에 차가 지나갈 때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며 30분을세 시간처럼 버텼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고 내비게이션 속 예상 도착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잘 시간이 다가오자 눈이건조해 앞이 점점 흐려졌다. 이윽고 차는 대관령에 도달했고 순간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짙은 안개가 도로를 덮쳐왔다. 가시거리가 5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당황해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안 보여! <디 아더스> 같아!"

그러고 나는 인파를 뚫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을 향해 달렸다. 지역 행사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타이밍을잘못 잡았다간 주차장에서 수십 분 동안 대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30년 차 드라이버처럼 능숙하고 잽싸게 차를 뺀 후, 주차장 입구에 있으니얼른 나오라고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현은 백은선의차를 타면 되니 먼저 식당에 가 있으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겨울이면 언제나 죽고 싶다고 난리를 치던 송지현이 이제는 목숨 귀중한 것을 알게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30분쯤 차를 달려 도착한 해안은 과연 절경이었고, 사람도 많지 않아 가만히 바다를 구경하기 좋았다. 해안가로내려가 파도를 만끽하던 우리는 놀랍게도 한 무리의 청둥오리가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목격했다. 청둥오리의 정체를 두고 여러 의견이 오갔다. ‘오리는 원래 호수나 강에서식하는 것 아닌가?‘ ‘옆의 경포대에서 살던 오리가 세력다툼에 밀려 이곳까지 이주한 것이다.‘ ‘아니다, 철새인 청둥오리가 동남아로 떠나기 전 바다에 들러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등등.

해가 져버린 시각, 온수풀 안에는 커플들만이 즐비했다. 나는 저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고고한 학처럼 핸드폰을 들어 홀로 셀카를 찍었다.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어도 애정 행각을 벌이는 커플들의 모습이 잡혔고, 갈수록 자괴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일행에게 얼른 수영장으로 올라오라고 문자를하던 도중, 그만 수영장에 핸드폰을 빠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2년 동안 내 삶의 모든 날아이폰SE2는 영면에 들었다

그조차 너무나 유행의 첨단 같은 느낌이라 우리는 강릉이 새로운 마포임이 분명하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되었다(심지어 진짜 마포에도 지점이 있었다. 술자리는 갈수록무르익었고 시간은 밤 10시, 직원 한 분이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와 영업이 종료되었다고 말해주셨다. 우리는 쫓기듯 밖으로 나와 허망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강릉의 마포 부부는 몹시 초조한 표정이었다. 연신 핸드폰으로 주점을 검색했지만 일요일 밤, 문을 연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번화가 주변을 배회하며 문연 주점을 찾아다녔다. 몇 번이고 영업시간 종료가 임박한가게를 마주하고 난 후, 나는 조용히 중얼댔다.
"강릉은 마포와 같다. 영업시간만 빼고…………"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백은선이 말했다.
"나도 너 우는 거 본 적 있는데?"
내 눈물의 트리거가 되어준 송재랑도 덧붙였다.
"오빠, 나랑 술 마실 때도 운 적 있어."
그렇게 하나씩 퍼즐을 맞춰보니,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심지어 태어나서 두 번째 보는 나디아조차 내가 술자리에서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지금껏 누군가 주사가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현대 서울말로 차분히 말하곤 했다.
"졸려서 집에 가요. 귀소본능이 남다르거든요. 연어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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