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모래바람이 내 얼굴을 때린다. 그렇지만 아직 보고 놀라워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세상은 밝은 햇빛과 바람 속에서 생기에 넘치고 또 봄의 열기와 아침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다. 생명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은 이곳 사막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나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식물과 동물의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처럼 생명체들이 붐비지 않고 띄엄띄엄흩어져 있기 때문에 각각의 풀이나 관목, 나무 그리고 풀잎 하나하나까지도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유기체들은 생명이 없는 모래와 황량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대담하고, 용감하고, 생기있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향나무가 햇빛에 그 앙상한 자태를 드러내고 눈 앞에 서 있다. 너덜너덜한 뿌리가 바위를 움켜쥐고 있고, 텁수룩한 가지에는 청록색 열매들이 다닥다닥 달려 있다. 이 향나무는 암나무다. 이 늙은 할머니 나무의 나이는 300살쯤 되었을지도 모른다. 성장이 느린 향나무는 조건이 좋은 장소에서도 4.5~6m 이상의 높이로 자라는 경우가 드물다. 이 향나무는 아직도 열매를 맺고 활기에차 있지만 일부는 죽어 있다. 갈라진 둥치의 반쯤에서 나온 가지가말라죽어 발톱 모양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이 가지는 잎도 없고 껍질도 벗겨진 데다 햇볕과 바람에 시달려 은색으로 변해 버렸다. 이 가지는 내가 너무 가까이 있지 않을 때 까치나 갈까마귀들이즐겨 앉는 장소다.
태양이 윙윙 소리를 내는 황색 바람을 뚫고 떠오르고 있다. 아침식사 시간이다. 트레일러로 들어간 나는 베이컨을 굽고 달걀을 부친다. 군침이 돈다. 바람에 날린 모래가 트레일러의 금속 벽에 부딪치고 창틀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고운 모래는 문 밑과 창밑에 쌓인다. 트레일러가 갑자기 몰아치는 돌풍에 흔들린다. 그래도나는 상관없다. 모래바람이 불든, 햇빛이 나든, 먹을 것이 있고 건강이 좋고, 땅이 나를 지탱해 주고 태양이 내 뒤에서 비춰 주기만 한다면 나는 만족한다.
도로 위에 하트 모양의 사슴 발자국이 또렷이 찍혀 있다. 그 사슴은 지금 어디 있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사슴들의 먹이는 충분할까, 궁금하다. 호저와 마찬가지로 사슴들도 인간이 자연에 간섭함으로써 희생자가 되고 있다. 코요테의 수가 충분치 않고 퓨마가 거의 멸종되었기 때문에 사슴이 토끼처럼 수가 불어나서 먹이란 먹이는 모조리 먹어치우고 있다. 이렇게 되면 매년 많은 사슴들이 천천히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다. 사슴사냥꾼들이 남아도는 ‘잉여‘사슴들을 수확한다면서 매년 가을 솔트레이크와 캘리포니아에서 수천 명씩 몰려오지만, 그들은 그 일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오두막 뒤로 황량한 모리슨 언덕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언덕은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흙과 이판암 그리고 부서진 바위로이루어져 있어 음침해 보인다. 앞에는 드라이 메사의 암벽과 솔트크리크 협곡이 있다. 이곳은 움푹 파인 덥고 황량한 장소이다. 닫혀있어 조용하긴 하지만 시야가 가려 답답하다. 징기스칸이 인도에 대해 했던 말이 여기 해당될 것 같다. "물은 나쁘고 더위가 사람들을병들게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곳에서 외롭게 죽은 사나이의 혼백이 떠도는 으스스한 장소이다.
바람이 여전히 불고 있고, 작은 회색 새들이 공중에 뿌린 색종이조각들처럼 하늘을 날고 있다. 아직도 기온이 떨어지고 있는 걸 보니 아마 눈이 오려나 보다. 몇 시간째 순찰을 돌았으니 이제 나의 안식처인 따뜻한 트레일러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오늘 아치스 내셔널모뉴먼트 안에서 사람이라곤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암석은 그 이름들도 아름답다. 옥수, 홍옥수, 벽옥, 녹옥수, 마노, 줄무늬마노와 붉은줄마노, 은미정질 석영, 규암, 부싯돌, 처트, 금록석, 리티아휘석, 석류석, 지르콘, 공작석, 흑요석, 터키옥, 방해석, 장석, 각섬석, 홍석류석, 전기석, 반암, 장석질사암, 금홍석. 그리고 희귀금속류인 리튬, 코발트, 베릴륨, 수은, 비소, 몰리브덴, 티타늄, 바륨도 사랑스럽다. 현무암, 화강암, 편마암, 석회암, 사암, 대리석, 점판암, 반려암, 이판암 같은 기본적인 암석들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암석들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발견된다. 오래 자세히 관찰하기만 하면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이란 유타주 남동부를 말한다. 이곳은협곡지대, 나의 세상이다.
아마추어 탐광자로서 역시 운이 좋았던 사람으로 버넌 픽이 있다. 중서부 지방 어딘가에서 흘러온 그는 한 번에 몇 주일씩 더티데빌강 위쪽의 거대한 바위들 사이와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협곡을 누비곤 했다. 독성이 있는 강물에 중독되기도 했지만 살아남아오지에 깊이 숨겨져 있는 우라늄을 발견하고는 그 광산에 ‘숨겨진영광이라는 시적인 이름을 붙였다.
그는 아마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이 밀려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울림 같기도 하고, 매우긴 터널의 반대쪽 끝으로 들어오는 기찻소리 같았을 것이다. 그러다서서히 진동이 강해지더니 마침내 협곡이 둔하고 무거운 포효소리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나 밀려오는 물 자체는 아직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피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반쯤 의식을 잃은 빌리 조는 집에 있는 꿈을 꾸었다.
이그는 처음 며칠 동안은 나무둥치에서 내려와 물속에서 자기 몸을식히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이 점점 빠지면서 그는 물에서 나무둥치 위로 다시 자기 몸을 끌어올리기가 얼마나 힘든지알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그는 그런 노력을 포기하고 나무둥치 위에 머물면서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받았다. 밤이 오면그 고통에서 벗어나서 얼마간의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으나 다시해가 뜨면 황금색 태양이 그의 타버린 몸뚱이를 더욱 깊이 태웠고, 그를 더욱 깊은 꿈속으로 밀어넣었다. 마침내 그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고통을 넘어서 더 깊은 열반의 상태로 들어갔다.
사막의 6월. 태양이 우주의 궤도에서 맹렬하고 성스러운 빛으로포효한다. 마음속에 멋진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산맥의 눈은수목한계선까지 물러났다. 투쿠니키바츠와 다른 봉우리들은 그 측면에 부드러운 봄의 녹색을 띠고 있고 포플러나무에는 잎이 돋아나고 있다. 초원과 숲으로 들어가는 도로들이 다시 열리고 그 위에서가축을 방목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모아브의 모든 목동들(그리고 일부 허가가 없는 목동들)이 그들의 가축을 사막 밖으로 이동시켜 국유림속으로 몰아넣는다. 가축들은 9월이 와서 눈이 다시 내릴 때까지 그국유림 안에서 머물 것이다.
이런 장점과 약점들을 지닌 가련한 비비아노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맥주를 두세 잔 마시면 그 문제가 완연하게드러난다. 그는 편견에 오염되어 있다. 오염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그 자신이 편견의 희생자다. 피부가 까무잡잡한데다가 스페인어 악센트가 있어서 자주 멕시코인으로 오인받는 그는 멕시코인을 경멸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심하게 분개한다. 그는 인디언들도 경멸한다. 심지어 그 자신의 유산까지도 경멸하는 것 같다. 언젠가 스스로를 ‘바보 같은 바스크인‘이라고 지칭한 적도 있다. 술이 취하면 그는 은연중에 미국을 소유하고 주무르고 있는 창백한 얼굴의 인종들 속에끼어들었으면 하는 소망을 드러낸다.
로이와 비비아노가 말을 멈추고 로프를 좀 늦추어 주었다. 나는단단한 땅 위에서 벌벌 떨며 서 있는 암소의 목에서 로프를 풀었다. 그놈의 눈알은 두 개의 양파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설태로 덮인자줏빛 혀가 입의 한 옆에 썩은 고깃덩어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고깃간 밖에서 내가 본 가장 긴 혀였다.
로이 노인은 어떻게 됐냐고요?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소? 그는 당신이 떠나고 2년 후에 목장을 팔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애리조나로 내려가서 세도나 부근에 인디언 보석가게를 냈지요. 그는 지금세상을 떠나고 없어요. 가게 벽에 그림을 걸다가 심장발작이 일어났다는군요. 그때 그는 의자에 올라서 있었지요.
외로울 때가 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고독을 즐기는 사람도 외로움을 느끼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이 생활이감옥살이처럼 지겨워지고 머릿속이 뜨거운 한낮의 트레일러 속처그럼 답답해져서 견딜 수 없게 된다.
‘마음의 고독한 감금‘에 관한 내 이론은 유아론(唯我論, Solipsism, 실재하는 것은 오직 자아와 그 의식뿐이며 다른 사물은 자아의 관념에 불과하다는이론)에 빠진 망상일지도 모른다. 전문적인 철학자들이 내놓은 다른우스꽝스런 개념들이나 마찬가지로, 도서관의 책더미와 연기 가득한 다방(뇌에 정말 나쁘다) 그리고 말이 난무하는 세미나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결과로 나온 허황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헛소리를 늘어놓는 유아론자나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자를 조용히 시키고 싶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그의 머리를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이다. 그가 돌을 피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이다.
겁에 질린 토끼가 그 소리를 듣고 벌벌 떤다. ‘부엉이는 어디 있지? 아마 다음 덤불, 다음 바위가 여기보다 더 좋은 은신처가 될지도 몰라 토끼는 망설인다. 수리부엉이가 다시 한번 울자 토끼는 마침내피신처에서 뛰어나와 더 좋은 장소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달려감으로써 자기 위치를 노출시키고 만다. 부엉이가 나방이처럼 소리없이토끼를 덮친다.
공포가 토끼를 부엉이에게 노출시킨다. 공포가 어려운 일을 대신해서 부엉이의 일을 덜어 준다. 평생 공포에 시달려온 토끼가 그 마지막 순간에 일종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부엉이에게 먹힌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수리부엉이가 다시 운다. 1분에 한두 차례 꼴로 운다. 별로 조급한 기색이 없는 울음이다. 저녁거리가 제발로 찾아올 테니까. 박쥐몇 마리가 원두막 근처를 푸드덕 날면서 재깍재깍 소리를 조그맣게낸다. 음파탐지기를 작동시키고 있다. 오늘밤에는 달이 없다. 별자리들이 하나하나 나타나기 시작한다. 전갈자리, 카시오페이아, 용자리, 궁수자리, 큰곰자리・・・ 외로운 금성이 해가 넘어간 서쪽 하늘의희미한 황혼 위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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