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사막의 고독』은 숨겨진 뜻이나 비밀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 책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소 가운데 하나인 아치스에서 보낸 길고 달콤했던 시절에 대한 평범하고 단순한 서술일 뿐이다. 이 책이 단순한 외형, 사물의 표면만을 다룰 뿐, 존재의 진정한 실체를 형성하고 있는 통일된 관계의 본질을 밝혀내지 못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나는 표면과 외형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나는 ‘근저에 숨어 있는 실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 것을 접한 경험도 없다.
나는 무엇보다도 정확성을 위해 노력했다. 단순한 사실에 일종의 시(詩), 심지어는 진실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사막은 바다만큼이나 깊고 복잡하고 다양하며 광활한 세계다. 대양과 같은 세계다. 무한한 사실들 속에서, 언어는 단순한 사실을 포착하기 위해 강력하고도 느슨한 그물을 만든다. 만약 내가 향나무에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면 한 권의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향나무가 아니라 아치스 내셔널 모뉴먼트의 오래된 입구 근처 벌거벗은 사암 바위틈에서 자라는 하나의 특별한 향나무 말이다. 그때내가 시도한 것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어부가 그물로 바다를 끌어올리는 것처럼, 사막을 책에 담을 수는 없기에 나는 사막이 소재가아닌 매개체로서 등장하는 말의 세계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 그러니까 모방이 아니라 환기가 목표였다.
오늘 아침 나는 해가 뜨기 전에 잠에서 깼다. 나는 머리를 슬리핑백 밖으로 내밀고 성에가 낀 창문을 통해 안개에 덮인 뿌연 바깥 경치를 내다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신비스러운 풍경이었다.
태양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 곧 떠오르리라는 기미는 역력했다. 연보라색 구름들이 함대처럼 연녹색의 새벽하늘을 가로지르고있었다.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구름장의 아랫부분은 불타는 황금색이었다. 남동쪽으로 32km 떨어진 곳에 시에라 라살의 봉우리들이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해발 3,600m에서 3,900m에 이르는 이 봉우리들은 모두 눈으로 덮여 있었고, 아침햇살을 받아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차가운 공기는 건조하며 맑았다. 어젯밤 폭풍우의 잔해인 마지막 안개가 유령처럼 물러나면서 바람과 햇빛 앞에서 점점스러져 가고 있었다.
그곳에 서서 그 괴상하고 기이한 이국적인 바위와 구름과 하늘과공간의 장엄한 경관을 바라보노라니 우스꽝스러운 욕심과 소유욕이 나를 사로잡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소유하고 싶었다. 또한 한 남자가 한 아름다운 여인을 욕망하듯이 그 모든 경치를 깊고, 완벽하고, 친밀하게 포옹하고 싶었다. 정신 나간 소망일까?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와 소유권을 다툴 사람이나 그 무엇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긴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세 마리의 갈까마귀들이 서로를 향해서 또 새벽을 향해서 깍깍거리며 밸런스드 록 근처,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놈들도 나처럼 태양이 다시 돌아온 것을 기뻐하고 있다고. 그들이 주고받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먼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 비슷한 존재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보다는 이 지구에 사는 새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더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까마귀들은 황금빛 하늘을 배경으로 검푸른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목쉰 소리로 울고 있다. 어깨 너머로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베이컨이 튀겨지는 냄새가난다.
향나무가 타는 냄새보다 더 향기로운 냄새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단테의 천국에서 나는 냄새도 이보다 더 향기롭지는 못할 것 같다. 비 온 후의 산쑥 향기 같은 향나무 연기 냄새를 한 모금 깊이 들이마시니 마술적인 카타르시스 효과가 난다. 마치 음악을 듣는 것처럽, 미국 서부의 때 묻지 않은 낯선 풍경을 감상하는 것처럼. 아무쪼록 이 불이 오래 타기를 빌어 본다.
손전등을 사용하면 또 다른 불리한 점이 있다. 많은 다른 기계장치들처럼 그것은 인간을 주위의 세계와 격리시키는 경향이 있다. 손전등을 켜면 내 눈은 그 빛에 적응되어 그것이 내 앞에 만드는 조그만 빛의 연못만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주위와 격리된다. 손전등을 주머니 속에 넣으면 나는 내가 걷고 있는 주위 환경의 일부로남는다. 내 시각은 제한되지만 분명한 경계선을 갖지 않는다.
나는 기다린다. 이제 밤이 다시 돌아오고 장엄한 정적이 나를 포옹한다. 별이 다시 보이고 별빛의 세계가 다시 돌아온다.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인간과 32km 이상 떨어져 있다. 그러나 나는 외로움 대신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사랑스러움과 조용한 환희 같은 것을 느낀다.
사월의 아침은 청명하고, 맑고, 평온하다. 오후가 되어서야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깔때기 모양의 회오리바람이 빙글빙글 돌면서 먼지와 모래를 불어 올린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사막에 미친 사람의 고함소리가 일어나고, 하늘과 태양이 먼지와 모래가 섞인 노란 구름 뒤로 사라져 버린다. 새들도 바람에 날리고 작년에 떨어진 오크나무 잎새들, 꽃가루, 메뚜기의 시체, 향나무 껍데기도 바람에 날린다.
오후에 고약한 바람이 불 것임을 알기 때문에 오전은 더 달콤하다. 나는 아침 허드렛일을 시작하기 전에 뜨거운 커피를 한 컵 손에들고 맨발로 맨땅을 디딘 채 문턱에 앉아서 해돋이를 바라보곤 한다. 공기는 아직 차지만 트레일러 안의 부탄 히터 덕분에 내 등은 따뜻하고, 떠오르는 태양이 내 앞가슴도 덥혀 준다. 또 커피는 내 내장까지 덥혀 준다. 이때가 하루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밖에도아름다운 시간은 많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지만
계절에 따라 아름다운 시간도 달라진다. 한여름에 가장 감미로운시간은 오후의 끔찍한 열기가 사그라진 다음인 해가 지는 시간에 시작된다. 그러나 4월인 지금은 그 반대다. 해돋이와 함께 감미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겨울이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이맘때쯤 돌아오는 새들도 나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 같다. 어치들이 이 나무에서저 나무로 떼지어 날아다니면서 조잘거린다. 몇 마리의 커다란 갈까마귀가 하늘을 선회하며 꺼억꺼억 울어 댄다. 놈들은 가끔 그 큰 날개를 퍼덕거리며 생쥐를 찾는다. 가끔 절벽 위 어디선가에서 굴뚝새가 또렷한 목소리로 울어 댄다. 플루트의 저음 같은 그 울음소리는아마 새로 마련한 둥지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리일 것이다. 역시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산비둘기의 처량한 울음소리도 들린다. 그 울음소리는 잃어버린 짝을 찾으려는 간절한 부름인 것 같다.
내가 이 같은 인간중심의 논리를 펴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어쩌면 타당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갖는 중요한 요소를 내 주위의 뱀이나 새들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에게 이로운 일을 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의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이 기르는 개 이외의 다른 동물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고 단순한 합리주의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모슬렘이 여자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생각이다. 인간이 길들이지 않은 다른 많은 동물들도 우리가 모르는 정서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요테가 달을 보고 울부짖는 것은무슨 이유 때문이겠는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려는 듯한 돌고래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내 눈을 향해 곧장 달려올 때그 두 마리 인디고이 품었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때로는 속으로 절반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도 우리는 모든 인간은 형제라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 말은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단세포동물이 진화해서 인간이 되었다는 말은 어떻게생각해야 할까? 그 말 역시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말을 듣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스럽고 괴로울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든 지구상의 생물은 일가친척‘이라는 소식을 퍼뜨려야 한다.
메이데이(mayday, 5월 1일 노동절)다. 금빛 줄무늬를 드리운 진홍색 아침햇살이 밸런스드 록과 아치들과 구멍 뚫린 바위들 너머 그리고 콜로라도의 그랜드 메사 너머에서 빛났다. 새벽 바람이 시에라 라살 봉우리들의 남은 눈을 녹이고있다. 모아브 일대에서 가장 큰 산인 투쿠니키바츠(Tukuhnikivats)도이 바람이 멎지 않는다면, 곧 그 화강암 몸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30km쯤 떨어진 곳에서 바람에 날리는 눈이 푸른 스카프처럼 보인다. 이런 날씨에 해발 3,900m가 넘는다는 그곳에 가 있기를 원하는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절벽장미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실용적인 식물이다. 이 무렵에는꽃 때문에 숨겨져 있지만, 그 잎새들은 작고 단단하며 수액으로 덮여 있어 혀에 닿으면 쓰다(그래서 키니네나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잎새들은 사슴의 먹이로 인기가 높다. 다른 먹을 만한 것이별로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사슴덤불이란 이름도 갖게 되었다), 인디언들은 옛날에 이 나무의 껍질로 샌들이나 매트, 밧줄을 만들었으며 호인디언의 치료사들은 오늘날에도 이 나무의 잎새를 이겨서 최토제(구토를 일으키는 약)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유카는 그 무시무시한 방어 수단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그 방어수단 때문에 어디에서나 특이해 보이고 또 아름답다. 이 식물은 뉴멕시코 남부의 고원 초지, 그랜드캐니언의 가장자리와 내부, 이곳아치스 공원 일대에 분포하고 있고 유타주의 붉은 모래 지대에서도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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