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들은 K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나로서는....… 역술인이 영화 <트루먼 쇼>처럼 내 삶에 CCTV를달아놓은 게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너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가면,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 병나서 간다고 하신다! 쉬어! 좀 쉬라고!"
K는 더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써놓고 보니 (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

영국에서의 첫날 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최저가의 방을 예약한 우리는 무려 30명이 한방을 쓰는 도미토리에서 잤다. 완벽히 불협화음인 오케스트라의 협주를듣는 것처럼 전 세계 사람들의 다채로운 코골이를 들으며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잠귀가몹시 밝고 예민한 편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쯤 되니 없던 괴물이라도 만들어 호수에 풀어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목이 길쭉한 괴물 모양의 기념품을사는데 Y와 나는 꿋꿋이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빈손으로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화장실에 다녀온 이후 나의 통증은 씻은 듯이 나았다. 계산해보니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닷새 만에 처음으로 큰일을 본 것이었다. 평생 변비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내가 유럽에 와서야 ‘가스가 찬다는 것‘의 감각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생경한 감각을 맹장염으로오인한 거였다. 나는 Y에게 달려가 나의 무사함을 알렸고,
Y는 한숨을 쉬며 그럴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밝고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행자보험 안 들길 잘했다!?

나는 거의 졸도할 정도로 놀랐다. Y가 원체 성실하고꾸준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문자그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해왔을 줄이야. 그것은 성실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거의 초인에 다다른 그 경지에 나는 Y를 조금은 존경하게 되었다.

우리의 여행은 그 후로도 온갖 해프닝으로 점철되었다. 유럽 5개국을 오가는 힘든 여정에, 한 달 동안 200만원도 쓰지 않았을 정도로 극도로 절약한 고생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다만 많이 웃었다. 후에 생각해보면 초저가의 예산에 맞춰 힘겹게 계획을 짜고 통역을 하며 나를 끌고 다닌 Y가 아무것도 하지않고 졸졸 따라다니는 나를 견뎌준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Y의 말이 진실인지, 정말 열몇 살의 그때부터 내가 부커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작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오랜 시간 동안 나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었던 내 삶을, 궤적을 누군가 믿고 지켜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이제는 그 옛날 강남역 맥도날드 때처럼 서로 마주 보고 있지 않으니, 나는 마음껏 울 수 있었다

일ㄹ
송지현의 다른 다짐들처럼 공허하게 흩어져버릴 헛소린 줄 알았는데, 지현은 정말 그길로 강원도 동해로 가 살기 시작했다(그리고 그곳에서도 아주 적은 양의 소설을 쓰고 아주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나는 꿔준 돈보다 턱없이싼 아파트를 받아 온 지현의 아버지와 자신의 창조적 역량을 과대평가한 송지현 덕분에 여름마다 동해로 휴가를 갈수 있었으며, 때문에 일생의 대부분을 경기도에서 살아온송지현을 강원의 딸로 여기게 되었다(하나 송지현은 약 2년여의 강원도 생활을 뒤로하고 빈손으로 다시 경기도의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ㄷ그러나 우리의 꽃가마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난관에부딪혔다. 봉천동, 상가 앞의 골목이 너무 좁아 초보 운전인 내가 운전하기에 몹시 까다로웠다. 나는 개미가 기어가는 속도로 차를 몰며 음식물 쓰레기통을 치지 않기 위해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그렇게 간신히 건물 앞에 당도해비상등을 켜고 차를 주차해놓았는데, 송지현에게서 문자가왔다. 소설 합평이 길어져 당초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정도 수업이 늦게 끝날 것 같다고. 나는 좁은 골목에 차가 지나갈 때마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며 30분을세 시간처럼 버텼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고 내비게이션 속 예상 도착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잘 시간이 다가오자 눈이건조해 앞이 점점 흐려졌다. 이윽고 차는 대관령에 도달했고 순간 태어나서 본 것 중 가장 짙은 안개가 도로를 덮쳐왔다. 가시거리가 5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당황해 소리를 질렀다.
"아무것도 안 보여! <디 아더스> 같아!"

그러고 나는 인파를 뚫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차장을 향해 달렸다. 지역 행사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타이밍을잘못 잡았다간 주차장에서 수십 분 동안 대기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30년 차 드라이버처럼 능숙하고 잽싸게 차를 뺀 후, 주차장 입구에 있으니얼른 나오라고 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현은 백은선의차를 타면 되니 먼저 식당에 가 있으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나는 겨울이면 언제나 죽고 싶다고 난리를 치던 송지현이 이제는 목숨 귀중한 것을 알게 되었나 보다, 생각했다.

30분쯤 차를 달려 도착한 해안은 과연 절경이었고, 사람도 많지 않아 가만히 바다를 구경하기 좋았다. 해안가로내려가 파도를 만끽하던 우리는 놀랍게도 한 무리의 청둥오리가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을 목격했다. 청둥오리의 정체를 두고 여러 의견이 오갔다. ‘오리는 원래 호수나 강에서식하는 것 아닌가?‘ ‘옆의 경포대에서 살던 오리가 세력다툼에 밀려 이곳까지 이주한 것이다.‘ ‘아니다, 철새인 청둥오리가 동남아로 떠나기 전 바다에 들러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등등.

해가 져버린 시각, 온수풀 안에는 커플들만이 즐비했다. 나는 저마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고고한 학처럼 핸드폰을 들어 홀로 셀카를 찍었다.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어도 애정 행각을 벌이는 커플들의 모습이 잡혔고, 갈수록 자괴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일행에게 얼른 수영장으로 올라오라고 문자를하던 도중, 그만 수영장에 핸드폰을 빠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2년 동안 내 삶의 모든 날아이폰SE2는 영면에 들었다

그조차 너무나 유행의 첨단 같은 느낌이라 우리는 강릉이 새로운 마포임이 분명하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되었다(심지어 진짜 마포에도 지점이 있었다. 술자리는 갈수록무르익었고 시간은 밤 10시, 직원 한 분이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와 영업이 종료되었다고 말해주셨다. 우리는 쫓기듯 밖으로 나와 허망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강릉의 마포 부부는 몹시 초조한 표정이었다. 연신 핸드폰으로 주점을 검색했지만 일요일 밤, 문을 연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번화가 주변을 배회하며 문연 주점을 찾아다녔다. 몇 번이고 영업시간 종료가 임박한가게를 마주하고 난 후, 나는 조용히 중얼댔다.
"강릉은 마포와 같다. 영업시간만 빼고…………"

그때 옆에 앉아 있던 백은선이 말했다.
"나도 너 우는 거 본 적 있는데?"
내 눈물의 트리거가 되어준 송재랑도 덧붙였다.
"오빠, 나랑 술 마실 때도 운 적 있어."
그렇게 하나씩 퍼즐을 맞춰보니,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심지어 태어나서 두 번째 보는 나디아조차 내가 술자리에서 우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지금껏 누군가 주사가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교양 있는 사람들의 현대 서울말로 차분히 말하곤 했다.
"졸려서 집에 가요. 귀소본능이 남다르거든요. 연어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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